‘선수금환급보증서의 독립성과 권리남용의 법리적용’

김인현 교수, ‘대법원 2015.7.9선고 2014다 6442판결’ 주제 발표

 
 
2007년 8월 한국의 A선박회사와 한국의 B조선사, 그리고 선수금환급보증RG을 발급한 C은행이 선박건조계약을 체결했으나, A선박회사는 B조선사에게 선수금을 제때 주지 않았고, B조선사는 이를 이유로 선박건조계약을 2009년 해제했다. 이에 A선박회사는 C은행에게 RG 발급에 따른 선수금반환 청구의 소를 제기했다. 이 경우 C은행사는 A선박회사에게 선수금반환을 해야 할 의무가 있을까?

김인현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3월 18일 오후 7시 고려대학교 CJ법학관 5층 최
고위과정실에서 개최된 ‘제16차 선박건조금융법연구회’에서 ‘선수금환급보증서의 독립성과 권리남용의 법리적용’(대법원 2015.7.9.선고 2014다64442판결)을 주제로 동 사건의 법적 해석과 문제점, 개선 방향에 대해 발표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한국의 선박회사 갑(발주자)은 한국의 을 조선소(건조자)와 선박건조계약을 2007년 8월 9일 체결하면서 준거법은 한국법으로 했다. 동 계약서에는 을과 갑이 자신들 사이에 어떠한 분쟁이나 불일치를 이유로 계약에 따른 모든 지급을 지체하거나 유보할 수 없음에 합의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선박건조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발주자는 여러차례에 걸쳐서 건조자에게 선수금을 지급하게 되고, 선박을 인도받을 때 마지막 잔금을 치르게 되는 것이 통상이다. 이러한 관례에 따라, 본 선박건조계약에서도 갑은 선박건조를 위한 선수금을 을에게 여러차례 제공하도록 약정했다. 선박건조가 제대로 되지 않을 때는 갑은 을로부터 기 지급된 선수금을 환급받아야 한다.
이러한 경우를 대비해 갑은 을로부터 선수금 환급을 보증한다는 내용의 보증서를 받게 된다. 이 사안에서는 갑은 2007년 9월 20일 은행 병이 발급하고 ‘취소가 불가하고 무조건적’이라는 문구가 기재된 선수금환급보증서RG를 수령했다.

을은 갑이 약정된 선수금을 제때에 지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2009년 10월 16일 계약을 해제했다. 2010년 8월경 건조자는 1차 회생절차개시결정을 받았고, 갑은 2011년 8월 26일 을의 채무불이행을 근거로 계약을 해제하고, 선수금 반환을 요구했으나 을이 반환을 거부하자, 병(은행)에게 2011년 11월 25일 선수금 반환 청구의 소를 제기했다.
 

2차·3차 선수금 미지급 발주자에 대해 건조자
계약 취소, 발주자, 선수금 반환 요구... 원심 건조자에 ‘손’ 대법 발주자에 ‘손’ 들어줘

우선 서울고등법원(2013.11.29. 선고 2012나90216판결)은 건조자의 손을 들어줬다. 병이 갑을 위해 발행한 보증서는 ‘독립적 은행보증’에 해당하고 갑의 청구가 ‘권리남용’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보증급의 지급을 거절할 수 있다고 판시하며, 을이 건조선박에 관한 용골거치를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갑이 3차 선수급을 지급하지 않아 을이 건조계약을 적법하게 해제하고 기왕에 지급받은 1, 2차 선수금을 손해의 전보에 충당한 이상 갑은 을에 대해 선수금 환급을 청구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어 서울고등법원은 갑의 채무불이행 요건, 갑이 어떠한 분쟁이나 불일치를 이유로도 선수금 지급을 지체할 수 없음은 을과의 계약서에 명문으로 기재돼 있다는 점 등을 들어 갑이 을에 대해 선수금 환급을 청구할 아무런 권리가 없음이 객관적으로 명백하고 갑이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음에도 이 사건 보증서의 추상성 및 무인성을 악용해 이 사건 청구를 한 것이므로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선수금 환급보증=‘독립적 보증’ 원심, 대법의견 일치
발주자 ‘권리남용’ 대해 원심·대법의견 엇갈려

그러나 이러한 판시는 대법원에 의해 뒤집히게 된다. 대법원(2014.8.26. 선고 2013다53700)은 선수금 환급보증을 ‘독립적 은행보증’이라고 판시하고, 고등법원이 판시한 ‘권리남용’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명백한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해 인정하지 않으며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해운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독립적 은행보증’에 대해 은행이 보증을 하면서 보증금 지급조건과 일치하는 청구서 및 보증서에서 명시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서류가 제시되는 경우에는 그 보증이 기초하고 있는 계약이나 이행제공의 조건과 상관없이 그에 의하여 어떠한 구속도 받지 않고 즉시 수익자가 청구하고 보증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면 이른바 ‘독립적 은행보증’이라고 판결했다.

‘권리남용’에 대해서는 권리남용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원고들이 이 사건 소제기를 통해 보증금을 청구할 당시 을에 대해 아무런 선수금 환급 청구권이 없음에도 독립적 은행보증의 수익자라는 법적 지위를 남용해 청구하는 것이 독립적 은행보증인인 피고에게 객관적으로 명백하다고 인정돼야 한다. 그러나 을 조선소의 위 계약해제가 적법한지 여부가 쟁점이 되어 1년여에 걸쳐 심문절차가 이뤄졌음에도 결론이 내려지지 못한 채 회생절차폐지로 종결된 등을 고려하면, 사건의 소제기 당시 원고들이 을 조선소에 대해 선수금 환급청구권이 없음에도 이 사건 보증금을 청구하는 것임이 피고에게 객관적으로 명백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어렵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그럼에도 원심이 이와 달리 을 조선소의 위 계약해제가 적법해 원고들의 선수금환급청구권이 존재하지 않음이 객관적으로 명백히 밝혀졌다는 심리 결과에 기초해 원고들의 이 사건 청구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으니,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독립적 은행보증에서의 권리남용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판단해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시켰다.
 

김인현 교수 “선수금환급보증과 권리남용
법리 충돌한 사안.. 우리 대법원의 첫 판결”

김인현 교수는 “동 사건의 사실관계를 통해 드러난 판결에 대해 선수금환급보증의 법적성질과 권리남용의 법리가 충돌한 사안으로서 이에 대한 우리 대법원의 첫 판결”이라며, 선수금환급보증과 권리남용의 법리 해석과 다른 국가의 입법예시를 들어 설명했다.
선수금환급보증은 일반보증 혹은 독립적 은행보증으로 발행된다. 일반보증과 독립적 보증은 법률효과에서 큰 차이가 나는데 독립적 보증으로 판단되면 발행인인 은행과 건조자는 매우 불리하게 된다. 실무에서 발행되는 선수금환급보증이 모두가 독립적 보증인 것은 아니며, 그리므로 독립적 보증인지 일반보증인지 구별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독립적 보증은 원인관계와 단절되어 자체에서 약정한 사유가 발생하면 보증금을 지급하게 되는 보증이다. 독립적 보증은 사유가 발생하면 무조건 보증인이 수익자에게 약정된 급부를 행하는 것이므로 최고검색의 항변이 인정되지 않는다. 독립적 보증으로 발행된 선수금환급보증의 경우에는 보증서에서 정한 사유가 발생하기만 하면 원인관계와 무관하게 보증인은 약정한 금액을 지급해야 한다.
영국 판례에 따르면, 퍼짓 원칙(paget’s presumption)이라는 것이 확립하게 되었다. 외국인들 사이의 보증, 은행 등 금융기관이 발행한 것, on demand라는 문구의 존재, 보증인의 항변사유를 제한하는 조항이 없는 경우에는 독립적 보증으로 해석된다. 동 사건의 경우, 고등법원과 대법원 모두 독립적 은행보증에 해당된다고 판시했다.

김 교수는 “독립적 보증인지 일반보증인지 구별의 어려움으로 인한 분쟁, 수익자들이 독립적 보증의 독립성을 악용해 청구하는 문제점을 입법적으로 해결하려는 국제적인 시도도 있다”며, 프랑스의 입법을 소개했다. 2006년 개정된 프랑스 민법 제2321조(독립적 보증)을 예를 들며, “우리나라도 프랑스의 입법례를 따라 우리 상법 57조의2에 독립적 은행보증에 대한 명문의 규정을 두는 것도 법적 안정성 확보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대법원 “객관적이고 명백한 경우가 아니면
수익자 청구 권리남용 판단 못해”

동 사건에서 원심과 대법원 판결에 가장 큰 차이가 나는 부문은 ‘권리남용’이다. 원심은 발주가 갑의 권리남용을 인정했으나, 대법원은 권리남용이 명백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권리남용이란 외형상으로는 정당한 권리의 행사인 것으로 보이나, 실질적으로는 권리의 공공성에 반하고 권리 본래의 사회적 목적을 벗어난 것이어서 정당항 권리의 행사로 인정받을 수 없는 행위를 말한다. 이에 권리남용에 해당하게 되면 법에 의한 조력을 받지 못해 법규정상의 법률효과를 주장하지 못한다. 따라서 선수금환급보증이 비록 독립적 은행보증이라 하더라도 수익자인 발주자의 청구자체가 권리남용이라 판단된다면 그 청구가 인정되지 않는다.

동 사안의 경우 발주자 갑은 을 조선소의 건조에 대한 재정 상태와 능력을 의삼하게 되어 2차, 3차 선수금을 더 이상 지급하지 않았다. 그러자 건조자 을은 건조계약에 따라 건조 계약을 해제했고, 이어 발주자 갑도 계약을 해제한 후 선수금환급보증서 발행자인 은행 병에게 선수금지급 보증금을 요구했다. 피고 병은 이미 수익자인 갑의 귀책사유에 의해 을이 건조계약을 해제한 것이므로 갑이 오히려 계약해제를 이유로 선수금반환지급을 요구하는 것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자인 원고 갑은 을 조선소가 선수금을 유용할 목적으로 건조가 진행 중이 흉내를 낸 것이므로 자신의 선수금지급의무는 발생하지 않았고 이러한 의무의 불이행을 이유로 을 조선소가 계약을 해제한것은 부적법하므로 무효가 된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문제된 선수금 환급보증서의 법적성질은 독립적 보증이고 이는 원인관계와 단절된 것이기 때문에 권리남용이 객관적으로 명백한 경우가 아니면 수익자의 청구가 권리남용이라는 판단을 쉽게 내려서는 안된다고 판시했다. 을의 기업회생절차에서도 갑과의 계약해제의 정당성이 다투어지고 있었다면 권리남용이 객관적으로 명백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권리남용 판단 기준시점 ‘소제기 당시’로
선수금 미지급 중요 요소서 배제

나아가 대법원은 수익자가 보증인에게 선수금 반환을 구하는 청구를 하면서 ‘원고들이 이 사건 소제기를 통하여 보증금을 청구할 당시’를 기준으로 수익자의 권리남용의 존재를 판단해야 한다고 설시하고 있다. 김 교수는 원심은 을이 계약을 해제할 때인 2009년 10월은 물론 그 후의 여러 사정을 살핀 결과 권리남용이 있었다고 판단했지만, 대법원은 그 판단의 기준시점은 갑이 보증인인 을에게 선수금 반환을 구하면서 소를 제기할 당시인 2011년 11월 전후라고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발주자인 갑이 선수금 지급을 하지 않았던 사유가 권리남용의 판단에 중요한 요소가 아니게 됐고, 결과적으로 발주자인 갑에게 유리한 것이 됐다.

김 교수는 “이러한 대법원의 입장은 유력한 학설과 외국의 입법례와도 일치하는 것으로 찬성한다”고 밝혔다. 권리남용행위가 언제 있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점에 대해 수익자가 선수금 환급을 구하는 청구를 할 당시로 보지 않고 시기를 앞당겨서 보게 되면 △독립적으로 지급되어야 하는 은행 보증의 기능이 훼손되고 △독립적 은행보증을 발행한 보증인과 보증의뢰인 사이의 구상관계에서도 법적 안전성을 헤치게 될 우려가 있다. 독립적인 은행보증을 발급할 때 권리남용을 이유로 수익자의 청구를 불허하여야 하지만, 그 시점은 그 보증의 성질과 내용에 맞춰 단순하게 판단하자는 의사의 교환이 보증인과 보증의뢰인 사이에 있었다고 해석되어야 합리적이라는 입장이다. 그렇지 않고 시기를 앞당기게 되면 양자간에 다시 복잡한 분쟁이 벌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동 사안에 대한 해석을 정리하면서, 독립적 보증과 권리남용 해석에 대해 다시한번 강조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독립적 보증이기 때문에 수익자가 권리행사를 남용하는 경우는 그 환급청구가 인정되지 않아야 할 것이지만, 권리남용의 원칙은 객관적이고 명백한 경우에만 인정돼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 판시의 주된 내용이다.

그러나 김 교수는 “그 권리남용이 있었는지의 기준을 소를 제기할 당시라고 대법원이 판단한 것은 결과적으로 수익자를 보호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면서, “대법원의 설시가 수익자의 보증인에 대한 선수금 환급의 청구가 별다른 시간 간격없이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원고들이 이 사건 소제기를 통해 보증금을 청구할 당시라고 기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판단시점은 수익자의 보증인에 대한 선수금 환급청구가 있은 다음 시간간격을 두고 청구의 소가 제기된 경우라면 환급청구시 권리남용이 있었는지 판단시점이 되어야 할 것”이라면서, “대법원이 이 점을 분명히 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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