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발생 시 해상운송 및 보험 관련사항

1.  서론
최근 ‘불의 고리’ 라고 불리는 환태평양 화산대에서 단기간 내 발생한 다수의 지진이 수많은 재산과 인명피해를 초래하였다. 특히 2016년 2월 6일 대만에서 발생한 6.4 규모의 지진 및 2016년 4월 14일 일본 구마모토현에서 발생한 7.2 규모의 지진과 이틀 뒤 에콰도르에서 발생한 7.8 규모의 지진은 도로와 건물 등 사회기반 시설을 붕괴시키며 수백 명의 사상자와 수만 명의 이재민을 초래하였다. 이후에도 대만과 필리핀 그리고 남태평양의 여러 섬에서 단기간 내 반복적으로 지진이 발생하여 50년 대지진설 등 지구촌에 지진의 공포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이러한 지진발생에 따른 해상 운송계약 및 보험에 관한 이슈를 정리하여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사항들에 대해서 대비하고자 한다.

 
2.  해상운송계약
(1) 화물의 손상/멸실 책임

해상운송 중 지진이 발생하여 선박이 좌초 또는 침몰되고 그로 인해 화물이 손상/멸실 되는 경우 해당 화물손해의 위험은 화주가 부담하며 운송인은 화물클레임에 관한 면책의 주장이 가능할 것이다. 상식적인 이유로 해당 사고는 운송인의 과실에 의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운송인의 정상적인 계약수행 노력에도 불구하고 천재지변의 결과로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화물 손상의 위험은 화주가 부담하는 것이 정당할 것이다 (천재지변에 의한 선체손상 등 선주의 손해는 선주가 부담하는 점 고려).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법적 근거로 다수 국가가 Hague Rule 또는 Hague Visby Rule (공히 “헤이그 규칙”으로 표현)을 비준하고 자국 법으로 입법하였는데 헤이그 규칙에서는 운송인이 발항 전 감항성 유지를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경우라면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 (Act of God) 에 기인한 화물의 손상/멸실 책임은 운송인에게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1) 한편, 헤이그 규칙이 입법되지 않은 국가의 법이 적용되는 경우를 대비하여 대부분의 선하증권 최고약관 (Paramount Clause) 은 헤이그 규칙이 입법되지 않은 국가에서는 헤이그 규칙이 해당 운송계약의 계약 조항으로써 인정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참고로 헤이그 규칙은 당사자가 직접 계약을 협상할 수 없는 선하증권의 운송계약에만 적용되며 당사자간 개별 협상이 가능한 정기용선이나 항해용선 계약에는 자동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2) 따라서, 정기용선계약이나 항해용선계약의 당사자는 항시 헤이그 규칙이 계약서에 명시되는지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며, 선주 및 운송인은 항시 발항 전 감항성 유지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증명을 할 수 있도록 관련규정에 따른 정기검사 수검 및 선박에서의 상세한 업무일지 기록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
 

(2) 안전항 (Safe Port)
지진으로 목적했던 항구가 파괴되거나 물리적 위험이 있는 경우 안전항 이슈가 고려된다. 정기용선과 항해용선계약에서는 공히 명시조항을 통해 용선주가 선주에게 안전항을 보장하는데 영국법 상 안전항이란 “예외적인 발생을 제외하고 선박이 충분한 항해술로 안전하게 입항하여 작업을 하고 안전하게 출항하는데 위험이 없는 항구”를 말한다 (Eastern City 영국판례).3) 이와 관련하여 선박이 용선주가 지정한 항구에 정박 중 갑작스런 지진의 발생으로 피해를 입는 경우 선주는 용선주의 안전항 책임을 묻기 어려울 것인데 이는 지진이 해당항구의 고유 특성이 아니라 예외적으로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4) 한편, 지진의 발생 이후 특정 항구가 법적으로 안전항인지 여부는 개별 사건에 따라 구체적 사실관계와 법리를 종합하여 판단해야 한다. 비록 지진에 의해서 항구가 파괴된 경우라도 항구 내 일부 접안지는 일정시간 후 위험에 노출 없이 사용이 가능할 수 있으며, 다수 선박에 안전한 항구도 특정 선박에게는 위험한 항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해당 항구가 위험한 항구로 판단되는 경우 선주는 해당 항구로의 입항을 거절할 수 있으며 용선주가 지속적으로 해당 항구로의 입항을 강요하는 경우에는 해당 명령을 용선주의 계약파기로 간주할 수도 있다.
 

(3) 이로 (Deviation)
용선주가 직접적인 계약의 당사자로써 안전항 지정 의무를 부담하는 용선계약의 경우 지진의 발생으로 목적한 항구에 안전문제가 생긴다면 선주는 적법하게 용선주에게 대체항 지정을 요구할 수 있다. 반면, 정기선과 같이 선하증권만을 근거하는 운송계약의 경우 운송인과 수화주 사이 직접적인 계약 협상의 기회가 없고 선하증권 상의 선적지와 양하지 정보를 근거로 여러 부수적인 거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운송인은 명시되지 않은 목적지로의 이로를 보다 신중히 검토하여야 한다. 영국 보통법 상 운송인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합의된 목적지로 가장 가깝고 빠른 항로를 통해 항해를 수행해야 하는 이로금지 의무가 있으며,5) 합의되지 않은 항로 및 항구로 항해하는 경우 운송인은 이로금지 의무 위반에 따른 책임을 부담한다 (보험관련 이슈 후술). 하지만, 이로금지 의무는 무조건적인 의무는 아니며 인명구조 및 선박/화물의 안전을 위한 경우 등 예외적으로 불가피한 경우에는 그 책임을 면할 수 있다.

헤이그 규칙에서도 명시적으로 “인명 및 재산의 구조” 목적이거나 “그 밖의 합리적인 사유”의 경우 운송인의 이로를 허락하고 있다.6) 과연 개별 상황에서 해당 이로가 정당한지 여부에 대해서는 개별적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질 것이며 지진으로 항구에 안전이 위협되거나 심각한 수준의 장기 항만폐쇄가 예견되는 상황이라면 충분히 “그 밖의 합리적 사유” 에 해당되어 이로가 정당화 될 것이다. 한편, 다수의 선하증권 이면약관에는 운송인의 이로 권리를 넓게 보장하는 조항이 있다.7) 이러한 이로 조항은 일정수준에서 운송인의 이로 권리를 보호하나 무조건적으로 이로를 정당화시키는 조항은 아니며 개별 상황에 따른 필요성과 합리성이 중요하게 고려된다. 그럼에도 지진의 발생으로 화물과 선박의 안전이 위협되고 상당한 기간의 항구폐쇄가 예견되는 상황에서 대체항으로 이로하는 것은 운송인의 정당하고 합리적인 조치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4) 시간손실 (Off Hire 또는 laytime)
지진과 같이 예상하지 않았던 사건으로 시간손실이 발생하는 경우 선박의 이해관계자들은 그 시간손실에 대한 책임주체를 고려하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정기용선계약의 경우 off hire 조항이 우선적으로 고려되며 항해용선의 경우에는 laytime 과 demurrage 조항이 고려된다. Off hire 는 계약상 나열된 off hire event 의 발생으로 선박이 용선주의 명령을 수행할 수 없고 용선주의 시간손실이 발생하는 경우에 해당하는데,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표준 양식에는 (NYPE 1946, NYPE 1993) 지진 자체가 off hire event 에 해당 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지진의 발생으로 선박 운항상의 지연이 발생하더라도 별도로 선체손상 등 off hire event 에 해당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용선자는 여전히 용선료 지급의무를 부담한다. 한편, 항해용선과 관련하여 지진 및 입출항 지연에 따른 시간손실 위험부담은 laytime 개별 조항에 따라 그 주체가 달라질 수 있다. Laytime 이란 계약 상 용선주에게 주어진 화물의 선적/양하 시간으로 선박이 지정된 장소에 도착하여 작업이 준비된 물리적 상태로 NOR (Notice of Readiness)을 통지해야만 기산이 시작된다.8)

이러한 laytime 기산 조건 중 중요하게 고려할 사항은 선박의 지정된 도착장소 및 laytime 개시 관련 조항이다. 항구port가 지정된 도착지인 경우 선박이 해당 항구 내 입항하여 NOR 을 통지하는 경우 laytime 이 기산되며 접안지berth가 지정 도착지일 경우에는 선박이 해당 접안지에 도착하여야만 NOR 을 통지할 수 있다. 따라서, 접안지berth가 지정된 계약인 경우 지진으로 인해 항구가 임시 폐쇄된다면 선박이 비록 항구 내에 도착하였더라도 해당 접안지에 도착하지 못했기 때문에 laytime 은 기산되지 않으며 관련 시간손실은 선주가 부담하여야 한다. 한편, 이러한 시간손실의 위험을 선주와 용선주간 나누기 위해 여러 계약문구가 만들어져 사용되어 왔다. 그 예로 “whether in berth or not” 또는 “always accessible upon arrival” 등의 문구는 비록 해당 용선계약이 정박지를 기준으로 체결되었다고 하더라도 항구의 사정으로 선박의 접안이 지연되는 경우 그 위험을 용선주에게 부담시킬 수 있다. 이와 같이 지진과 관련한 항해용선계약에서의 laytime 시간손실 부담 주체는 개별 계약조항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스스로에게 유리한 조항을 사용하도록 고려해야 한다. 
 

(5) Frustration / Force Majeure
영국법 상 양자의 과실 없이 계약의 목적 자체가 사라지는 경우 계약의 이행불능frustration이 발생하며 그러한 경우 양 당사자는 더 이상 해당 계약에 구속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지진의 발생으로 선박이 침몰하여 멸실되거나 선적 예정인 화물이 사라지는 경우 해당 계약의 특성 및 목적 등을 고려 했을 때 계약의 후발적 이행불능이 발생할 수 있다.9) 한편, force majeure 조항은 계약 당사자간 천재지변 등의 상황에서 계약 불이행 책임을 면할 수 있도록 합의한 조항인데 이러한 조항은 매우 엄격히 해석된다. 예를 들어 항해용선계약에서 지진으로 철도나 도로가 파괴되어 접안지에 화물 공급이 어려운 상황에서 용선자는 demurrage 부담 책임을 면하기 위해 force majeure를 주장하나, 비록 일부 도로/철도가 파괴된 경우에도 화물공급에 대체적인 방법이 존재하는 경우 force majeure 주장이 어렵다.  
 

3.  해상보험
해상보험과 관련해서는 적하보험, 선체보험과 P&I 보험을 고려할 수 있다.
 

(1) 적하보험
지진에 의한 좌초 또는 침몰로 선박과 화물이 멸실 되는 경우 상기 설명과 같이 운송인이 감항성 유지를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경우라면 화주는 운송인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우며 해당 손해의 위험은 적하보험을 통해서 대비하여야 한다. 적하보험과 관련하여 세계적으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보험약관은 런던보험자협회가 제작한 1963년 양식(Institute Cargo Clauses) 과 1982년 양식이 있다. 1963년 양식은 Lloyd’s SG policy 와 함께 사용되는 반면 1982 양식은 관련 양식을 통합하여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1982 양식에서 (C) 를 제외한 (A), (B) 조건은 명시적으로 지진으로 인한 손해가 담보사항임을 기술하고 있다. 반면, 1963 양식에서는 지진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지진으로 발생하는 화물 사고에 대해서 담보가 가능한지 여부가 모호한데10) Lloyd SG policy 상의 문맥으로 봤을 때 지진으로 인한 위험은 담보가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통상의 경우 선박이 이로하여 명시되지 않은 항구에 화물을 양하하는 경우 보험의 담보가 제외되나 지진으로 인해 항구가 폐쇄되거나 선박과 화물에 위험이 존재하는 경우 이로가 허락되며 보험 담보도 여전히 가능하다.11)
 

(2) 선체보험
선체보험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약관 역시 런던보험자협회가만든ITC-Hull 1983 양식이다. 이후 런던보험자협회의 1993 개정 양식과 합동선박위원회 (Joint Hull Committee) 가 제시한 2003년 약관이 제작되었으나 여전히 ITC Hull 1983 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편, ITC Hull 1983, ITC Hull 1995 그리고 IHC 2003 모두 지진으로 발생하는 선체손상의 위험을 명시적으로 담보해주고 있다. 따라서, 지진으로 발생하는 선박의 손상, 멸실 및 구조비 발생 등의 위험은 선체보험으로 대비할 수 있다.
 

(3) P&I 보험
지진으로 인해 선박에 사고가 발생하고 선주의 배상책임이 생긴다면 해당 위험은 P&I 보험약관에 따라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선원 보상, 화물손상, 항만 등 손상, 충돌, 오염, 난파물 제거 등). P&I 보험에는 지진에 대한 별도 면책조항이 없기 때문에 보험규정에 따라 배상책임이 인정되는 경우 P&I 보험의 보상이 가능하다. 다만, 일반 법에서 배상책임은 과실을 전제로 하므로 지진과 같이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발생하는 선박의 좌초, 침몰, 충돌 또는 항만시설 손상 등의 경우에는 선주의 배상책임 자체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12) 불가항력 상황에서의 선주 책임을 면하는 내용은 유류오염 민사협약과 난파물 제거 협약에도 언급되는데 각각의 국제조약은 해당 사고가 “예외적이고 불가항력적인 자연 현상”에 의해서 발생한 경우에는 선주의 책임이 없음을 명시한다.13) 한편, P&I 보험 규정 상 선박이 이로 하거나 대체항구에 화물을 양하하는 경우 화물배상책임 담보에 제한이 있을 수 있는데 그 판단 기준은 과연 해당되는 이로가 운송계약 상 허락되는 이로인지 여부이며, 계약상 허락된 이로의 경우에 한해서 담보가 가능하다. 따라서, 운송계약 상 최고약관 및 넓은 수준의 이로조항 삽입이 필요하며, 지진의 발생으로 인한 이로 및 대체항 화물양하 결정에 있어서 P&I 클럽과의 사전 협의가 필요하다. 또한, 지진으로 인한 실제적이고 물리적인 위험의 경우가 아니라 단순히 임시적 항만폐쇄 및 체증으로 인한 영업적 손해 경감을 위한 이로의 경우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와 같이 이로로 인해 통상적인 P&I 담보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에는 이로의 상황에서도 담보가 가능한 SOL 보험의 구입14)을 고려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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