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들 일상 그림처럼 잘 묘사된 대중가요

북한출신 이형탁, 월남해 고향 어머니 생각에 만들어
‘코리아나’ 멤버 홍신윤, “내가 작사·작곡 원조” 주장

푸른 물결 춤추고 갈매기 떼 넘나들던 곳
내 고향집 오막살이가 황혼 빛에 물들어 간다
어머님은 된장국 끓여 밥상위에 올려놓고
고기 잡는 아버지를 밤새워 기다리신다
그리워라 그리워라 푸른 물결 춤추는 그곳
아~저 멀리서 어머님이 나를 부른다

박양숙이 부른 '어부의 노래' 음반 표지
박양숙이 부른 '어부의 노래' 음반 표지
이형탁 작사·작곡, 박양숙 노래의 ‘어부의 노래’는 고향 어머님 생각을 나게 하는 가사가 인상적이다. 구수한 된장국을 퍼서 밥상 위에 올려놓고 남편을 기다린다는 설정이 그런 느낌을 준다. 요즘 시각으로 볼 때 현실감이 떨어지는 모습이지만 상에 오른 된장국과 그것을 올려놓는 어머니의 거친 손마디가 뚜렷한 이미지를 만들면서 푸근한 고향을 떠올리게 한다. 낡은 흑백사진 속의 고즈넉한 한 어촌마을의 옛 풍경을 보는 듯하다.
 

구전민요(口傳民謠) ‘어부노래’와 전혀 달라
어부들 일상이 한 폭의 그림처럼 잘 묘사된 ‘어부의 노래’는 서해에서 생을 마감한 작곡가 이형탁의 ‘사모곡’이란 얘기도 있다. 그는 북한에서 월남해 가족과 떨어져 지내다 말라리아 등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고향의 어머니 생각이 너무나 떠올라 가사를 쓰고 곡을 붙였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조선 중종 때의 문신 이현보(李賢輔, 1467~1555년)의 작품 ‘어부사漁夫詞’나 ‘심시나 바라도다 / 바다 지나 또 섬인데 / 갈매기 춤을 추고 / 물새는 노래하네 / 조는 듯 흰 돛 두 세 개 /오가는 줄 몰라라’로 나가는 경남 통영지방의 구전민요口傳民謠 ‘어부노래’와는 전혀 다르다.

4분의 4박자, 슬로 락(Slow Rock) 멜로디로 이어지는 ‘어부의 노래’는 영화 ‘마더’의 삽입곡으로 잔잔히 흐른다. 2009년 5월 28일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이 영화는 28살인데도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고 사고나 치는 좀 모자란 외아들(배역 원빈)이 살인혐의로 붙잡히자 약재상을 하는 홀어머니(배역 김혜자)가 아들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온힘을 쓴다는 내용이다. 2006년 7월 의병제대한 원빈의 복귀작품이어서 여성들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누적관객 수는 301만3523명으로 흥행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사형수들 애창한다”는 이유로 방송금지
이 노래는 최양숙, 박인희, 임수정, 김영임, 정영미, 리애지, 김구만 등 다른 가수들도 리메이크해 불러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졌다. 특히 사형수들이 애창했다는 이유로 방송금지곡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노래를 둘러싼 작사·작곡의 원조주장이 나와 눈길을 끈다. 1980년 이형탁 작사·작곡, 박양숙 노래로 돼있지만 그보다 훨씬 전에 나왔다는 것이다. 1965년 노래그룹 ‘코리아나’ 멤버인 홍신윤洪信潤이 작사·작곡·편곡하고 1967년 배우 남석훈이 취입한 ‘황혼 빛 오막살이’가 원곡이란 지적이다.
1965년 우리나라 첫 음악영화인 ‘청춘대학’(감독 김응천)의 음악을 맡은 홍 씨는 그해 이 노래를 OST(주제가)로 만들었으나 도용당했고 강조한다. 멜로디와 가사를 그대로 쓰고 후렴만 살짝 바꿨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곡은 홍 씨가 직접 기타를 쳤고 중간 중간에 이봉조 씨(진주출신으로 별세, 가수 현미 남편)가 테너색소폰(솔로)을 재즈 풍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남석훈이 부른 ‘황혼 빛 오막살이’ 가사는 박양숙이 취입한 ‘어부의 노래’와 몇몇 대목에서 다르다. 원곡작곡가 홍신윤 씨가 2007년 11월 22일 스위스에서 인터넷에 올려놓은 ‘황혼 빛 오막살이’ 노랫말과 비교하면 금방 알 수 있다.
 

푸른 바다 물결 춤추며 갈매기 떼 넘나드는 곳 / 내 고향집 오막살이가 황혼 빛에 물들어 가면 / 어머님은 된장국 끓여 밥상 위에 올려놓고선 / 고기 쫓아 나간 아버님 맘 졸이며 기다리시네 / 갈매기야 날아가서 아버님께 말 좀 전하렴 / 푸른 바다 물결 춤추며 갈매기 떼 넘나드는 곳 / 내 고향집 오막살이가 황혼 빛에 물들어가네

갈매기야 날아가서 아버님께 말 좀 전하렴 / 푸른 바다 물결 춤추며 갈매기 떼 넘나드는 곳 / 내 고향집 오막살이가 황혼 빛에 물들어가네 황혼 빛에 물들어가네

 
 
1939년 3월 15일 평양태생으로 서울 서라벌고등학교를 졸업, 1962년 영화 ‘두만강아 잘 있거라’ 단역으로 데뷔한 남석훈南錫薰은 배우, 가수, 작사가, 영화감독으로 이름을 날렸다. 가수데뷔 초기(1958년)엔 남궁 훈南宮 薰이란 예명으로 활동했다. 그는 이 노래 외에도 1960년대 ‘쟈니리의 가요 제1탄’ 음반을 통해 ‘청춘대학’, ‘못 잊어’, ‘아줌마 집’ 등도 불렀다.

노래 원조주장을 한 홍 씨는 1966년 해병대에 입대, 청룡부대 소속으로 베트남전에 참가했다. 그는 미8군 쇼 무대에서 활동하다 해병대연예단으로 복무하기도 했다. 제대 뒤엔 가족노래그룹 ‘아리랑싱어즈’를 창단했다. 베트남, 태국, 라오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나라들을 돌며 공연한 뒤 스위스로 가 ‘아리랑싱어즈’를 만든 것이다.

호텔 바, 나이트클럽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그는 스위스를 거점으로 독일, 오스트리아, 스웨덴 등 유럽에서 활동 중이다. 1980년 POLYDOL사와 계약해 ‘DARK EYES’, ‘I LOVE YOU. YOU LOVE ME’로 우리나라에도 알려졌다. 그 뒤 ‘코리아나’로 이름을 바꿔 가족 4명이 88서울올림픽 때 ‘손에  손잡고’를 불러 우리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왔다. ‘코리아나’는 ‘아리랑싱어즈’에서 홍신윤과 그의 부인이 빠지고 나머지 멤버들이 다시 만든 그룹의 새 이름이다. ‘코리아나’는 대전엑스포주제가 ‘그날은’(1993년), 월드컵 유치 홍보곡 ‘위 아 원’(1996년) 등 국가적 행사와 관련무대에서 가끔 모습을 드러냈다.
 

노래 취입한 박양숙, 7080시대 가수
‘어부의 노래’를 부른 박양숙은 7080시대 가수다. 그리 유명하진 않았지만 이 노래 한곡만은 확실하게 인기를 얻었다. 이 노래가 오래 사람들 기억 속에 남아있는 건 ‘어머님은 된장국 끓여 밥상 위에 올려놓고 / 고기 잡는 아버지를 밤새워 기다리신다’가 던져 주는 강한 인상 때문이다. 그는 ‘어부의 노래’ 외에도 ‘영상’, ‘곤륜산의 고운 옥을’, ‘사과꽃 향기’, ‘그림자’, ‘사랑의 벽’, ‘눈이 내리네’, ‘사랑의 나라로’, ‘날으리라’, ‘내 친구’, ‘달빛’, ‘사철인생’, ‘사랑을 위한 춤을 추어요’, ‘지난날 이야기’ 등을 불렀다. 작곡가 이형택은 이범희 작곡의 ‘날으리라’ 노랫말을 쓴 작사가이기도 하다.

‘어부의 노래’가 방송을 타는 등 제법 알려지자 같은 제목의 장편소설도 나왔다. 원로소설가 강신해(본명 강인수)씨 작품으로 제12회 한국해양문학상 대상작에 뽑혀 2008년 8월 6일 부산 광안리 호메로스호텔에서 상을 받았다. 소설 ‘어부의 노래’는 연근해어선 선장 이준수를 중심으로 어로작업과 가족생활을 그린 작품이다. 서술양식이 이웃과 얘기하듯 부드러우면서도 세련됐다는 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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