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5. 12. 10. 선고 2013다3170 판결-

 
 
Ⅰ. 사안의 개요
(1) 대한민국의 ST사는 요르단의 MA사에게 중고 차량부품 등을 수출하면서, 원고(주식회사 KR)에게 수출화물의 운송을 수차례 의뢰하였다. 이에 원고는 요르단의 아카바로 수출하는 중고 차량부품이 적입된 컨테이너 3개(이하 ‘이 사건 화물’)에 대하여 피고(덴마크 M사)에게 운송을 의뢰하였다.
(2) 원고는 이 사건 화물과 관련한 운송서류로서 해상화물운송장(Seaway Bill)을 요구하였다. 피고는 이 사건 화물을 인도받고, 이를 선박에 선적하여 부산항에서 아카바까지 해상운송하여, 2010. 4. 5.부터 같은 해 7. 20.까지 아카바항에 도착하였다.

(3) 아카바항에 도착한 직후 선적요청서(Shipping Request) 및 해상화물운송장에 기재된 화물의 수하인들로서 원고의 요르단 현지 대리인들인 A사와 B사가 피고에게 운임을 모두 지불한 뒤 각 선하증권번호(해상화물운송장에 기재된 번호임)가 기재된 서류를 제출하여 이 사건 화물에 대한 화물인도지시서(Delivery Order)의 발행을 요청하였다. 이에 따라 피고는 위 수하인들에게 이 사건 화물에 대한 화물인도지시서를 발행하였으며, 위 수하인들은 이에 기하여 2010. 4. 7.부터 같은 해 7. 25. 사이에 화물을 반출하였다.
(4) 선적지 운임을 아직 지급하지 않고 있던 원고 측은 2011. 3.경 피고 측에 미지급 운임 및 화물들의 반출상황에 대한 논의를 요청하였고, 그때 피고 측은 직원의 착오로 말미암아 위와 같이 이 사건 화물이 이미 반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반출되지 않았다고 확인해 주었다. 이에 원고 측은 화물대금을 지급받지 않은 상태에서 이 사건 화물이 반출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선하증권을 발행해 달라고 요청하였고, 피고는 그에 응하여 이 사건 화물에 관하여 2011. 4. 1.자 각 선하증권을 발행하여 주었다.
 

Ⅱ. 원고의 주장
(1) 원고와 피고 사이에는 송하인인 원고가 선적지 비용을 지급하지 않으면 비록 수하인이 화물의 인도를 요구하더라도 피고는 화물을 반출하지 않는 관행 또는 묵시적 약정이 존재하는데, 피고는 이를 위반하여 원고가 수하인으로부터 화물대금을 지급받기 전까지 화물의 반출을 저지할 목적으로 선적지 비용의 지급을 늦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적지 비용이 지급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하인들에게 이 사건 각 화물을 인도함으로써 원고는 화물의 멸실 및 피고의 화물 인도의무 불이행에 따른 화물가액 상당의 손해를 입었으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

(2) 이 사건 화물 운송과 관련하여 최종적으로 해상화물운송장이 아닌 선하증권이 발행되었으므로 피고는 위 각 선하증권과 상환하지 않고는 제3자에게 운송물을 인도하지 않아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위반하여 선하증권과 상환하지 않은 채 수하인들에게 이 사건 각 화물을 인도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원고는 이 사건 각 화물의 소유권을 상실하는 손해를 입었으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화물가액 상당의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
 

Ⅲ. 법원의 판단
가. 재판의 경과

제1심2)은 이미 화물이 반출된 상태에서 발행된 선하증권은 무효라고 보아야 하므로 피고가 그에 응하여 화물을 인도하지 못한 행위가 위법하다고 볼 수 없고, 그로 말미암아 원고에게 상당인과관계 있는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원고가 이에 불복하여 항소를 제기하였으나, 항소심3)도 제1심과 동일한 이유를 들어 항소를 기각하였다. 이에 대하여 원고가 상고를 제기하였으나, 대법원은 아래와 같은 이유를 들어 상고를 기각하였다.
 

나. 대법원 판결의 요지
(1) 이 사건 선하증권은 이 사건 화물이 목적지에 도착하여 운송계약상의 정당한 수하인에게 인도된 후에 비로소 발행되었으므로 무효이고, 이 사건 운송계약의 당사자인 원고는 상법 제854조 제2항에서 정한 ‘선하증권을 선의로 취득한 소지인’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원고가 이 사건 선하증권을 소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피고는 원고에게 무효인 이 사건 선하증권에 따라 이 사건 화물을 인도하여야 할 의무를 지지 아니한다.
(2) 원고가 선적지 비용을 지급하기 전에는 피고가 수하인에게 화물을 인도하지 않기로 하는 관행 또는 묵시적 약정이 원고와 피고 사이에 존재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이러한 관행 또는 묵시적 약정이 존재함을 전제로 하여 피고가 이를 위반하였다는 원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
 

Ⅳ. 해상운송에서 운송증서와 운송물의 인도
가. 선하증권

(1) 선하증권(Bill of Lading)은 해상물건운송에서 운송인이 운송물을 수령 또는 선적하였음을 증명하고 도착지에서 이를 정당한 소지인에게 인도할 것을 약속하는 유가증권이다.4) 선하증권은 운송물의 인도청구권을 표창하는 유가증권인데, 이는 운송계약에 기하여 작성되는 유인증권으로 상법은 운송인이 송하인으로부터 실제로 운송물을 수령 또는 선적하고 있는 것을 유효한 선하증권 성립의 전제조건으로 삼고 있으므로, 운송물을 수령 또는 선적하지 아니하였음에도 발행된 선하증권은 원인과 요건을 구비하지 못하여 목적물의 흠결이 있는 것으로서 무효이다.5)

(2) 상법 제854조는 제1항에서 “선하증권이 발행된 경우 운송인과 송하인 사이에 선하증권에 기재된 대로 개품운송계약이 체결되고 운송물을 수령 또는 선적한 것으로 추정한다.”라고 규정하는 한편, 제2항에서 “제1항의 선하증권을 선의로 취득한 소지인에 대하여 운송인은 선하증권에 기재된 대로 운송물을 수령 혹은 선적한 것으로 보고 선하증권에 기재된 바에 따라 운송인으로서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상법 제854조 제2항은 제1항에서 정한 운송인과 송하인 사이의 법률관계와 달리 선하증권을 선의로 취득한 제3자를 보호함으로써 선하증권의 유통성 보호와 거래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규정이므로, 여기서 말하는 ‘선하증권을 선의로 취득한 소지인’이란 운송계약의 당사자인 운송인과 송하인을 제외한, 유통된 선하증권을 선의로 취득한 제3자를 의미한다.
 

나. 해상화물운송장
해상화물운송장은 운송인이 운송물을 수령 또는 선적하였음을 확인하고 양륙항까지 운송하여 지정된 수하인에게 인도할 것을 약정하여 발행하는 운송계약의 증거서류를 말한다. 해상화물운송장을 발행한 운송인은 해상화물운송장 소지인이 아니라 해상화물운송장에 명시된 수하인에게 운송물을 인도하여야 한다. 수하인이 물품을 수령할 때 운송인에게 해상화물운송장을 제출할 필요가 없으므로 인접국가 간의 거래에서 화물보다 서류가 늦게 도착함으로써 물품의 인도가 지연되는 것을 피할 수 있고, 원본 분실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다.6) 해상화물운송장은 유가증권이 아니고 상환증권성이 없기 때문에 운송인은 계약상 수하인으로 지정된 자임이 확인되면 그에게 운송물을 인도하면 되고, 선하증권처럼 증권과 반드시 상환하여 인도할 필요는 없다.7)
 

다. 권리포기선하증권(Surrendered B/L)8)
(1) Original B/L 발행 이전 : 송하인이 surrender cargo로 처리해 줄 것을 운송인에게 요청하면, 운송인은 Original B/L을 발행하지 않고 서명도 없고 이면약관도 전혀 없이 선하증권양식의 사본에다가 surrender cargo임을 표시하여 송하인에게 교부한다. 운송인으로서는 선하증권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선하증권 상환에 대한 고려 없이 B/L Copy에 기재된 수하인에게 화물을 인도한다.
(2) Original B/L 발행 이후 : 송하인이 운송인에게 선하증권의 Surrender를 요청하면, 운송인은 Original B/L을 회수하여 그 위에 ‘SURRENDERED’라는 스탬프를 날인하고 선박회사의 대리점 등에 권리포기 사실을 전신으로 통지하여 Original B/L의 회수 없이 물품을 수하인에게 인도하라는 Surrender Notice를 보낸다. 수하인은 송하인으로부터 Surrender B/L을 팩스 등으로 통지받아 수하인의 고무명판을 이면에 날인한 후 운송인에게 제출하여 인도지시서(Delivery Order)를 교부받음으로서 화물을 수령할 수 있다.

(3) 사실상 효과 : 선하증권 표면에 이미 회수 또는 포기된 것이라는 표시(‘Surrendered’)가 되어버리면 더 이상 인도증권으로서의 기능이 인정되지 않고, 상환증권성도 인정될 수 없으며, 운송계약 및 화물의 인수사실을 증명하는 기능밖에 없는 등 성질상 유가증권이 아니라 화물수취증에 불과한 일종의 증거증권이 된다. 따라서 선하증권과 상환 없이 수하인 또는 그가 지시하는 자에게 화물을 인도해도 무방하다. 다만 이러한 효과는 선하증권에 Surrender 표시를 한 것 그 자체에 의하여 발생하는 것은 아니고, 송하인과 운송인 사이에 선하증권의 상환증권성을 소멸시킨다는 의사가 합치한 결과로 발생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송하인의 Surrender 요청 없이 운송인이 화물을 인도하여 준 경우에는 Original B/L 소지인인 송하인에게 대항할 수 없으므로 운송인이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여야 한다.
 

라. 선하증권이 발행되지 아니한 해상운송
(1) 선하증권이 발행되지 아니한 해상운송에서, 수하인은 운송물이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는 송하인의 권리가 우선되어 운송물에 대하여 아무런 권리가 없지만(상법 제815조, 제139조), 운송물이 목적지에 도착한 후 수하인이 그 인도를 청구한 때에는 수하인의 권리가 송하인에 우선한다(상법 제815조, 제140조 제2항). 운송물이 도착지에 도착한 후에는 수하인은 운송계약상 송하인과 동일한 권리를 취득하고, 자기의 명의로 이를 행사할 수 있지만(상법 제815조, 제140조 제1항), 이 단계에서는 송하인은 운송물처분권을 행사하여 수하인의 운송물인도청구권의 행사를 저지할 수 있으므로(상법 제139조), 송하인의 권리가 우선하는 결과가 된다.

(2) 즉 선하증권이 발행되지 아니한 해상운송에서 수하인은 운송물이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는 송하인의 권리가 우선되어 운송물에 대하여 아무런 권리가 없지만, 운송물이 목적지에 도착한 때에는 송하인과 동일한 권리를 보유하고, 운송물이 목적지에 도착한 후 수하인이 그 인도를 청구한 때에는 수하인의 권리가 송하인에 우선하게 된다.
 

마. 대상사안의 경우
  이 사건 화물이 아키바항에 도착한 후 선적요청서 및 해상화물운송장에 수하인으로 기재된 수하인들이 피고에 대하여 각 화물인도지시서의 발행을 요청할 당시에는 아직 선하증권이 발행되지 않았으므로, 수하인들의 요구에 따라 피고가 그들에게 각 화물에 대한 화물인도지시서를 발행하여 그들로 하여금 이 사건 화물을 반출할 수 있도록 해 준 것은 정당하다.
 

Ⅴ. 수하인이 운송인에게 인도청구한 후 발행된 선하증권
가. 무효인 선하증권

(1) 선하증권은 운송물의 인도청구권을 표창하는 유가증권인데, 이는 운송계약에 기하여 작성되는 유인증권(有因證券)으로 상법은 운송인이 송하인으로부터 실제로 운송물을 수령 또는 선적하고 있는 것을 유효한 선하증권 성립의 전제조건으로 삼고 있다. 수하인이 목적지에 도착한 화물에 대하여 운송인에게 인도청구를 하거나 수하인이 화물을 인도받은 다음에는, 비록 그 후 운송계약에 기하여 선하증권이 송하인에게 발행되었다고 하더라도 ‘운송인이 운송물을 수령 또는 선적하고 있다’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였으므로, 선하증권은 유인증권의 성질에 비추어 무효라고 보아야 한다.
(2) 종래의 판례9)도 수하인이 목적지에 도착한 화물에 대하여 운송인에게 인도청구를 한 다음에는, 비록 그 후 운송계약에 기하여 선하증권이 송하인에게 발행되었다고 하더라도 선하증권을 소지한 송하인이 운송인에 대하여 새로 운송물에 대한 인도청구권 등의 권리를 갖는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나. 선하증권을 선의로 취득한 소지인의 개념
  상법 제854조 제2항에서 말하는 ‘선하증권을 선의로 취득한 소지인’이란 운송계약의 당사자인 운송인과 송하인을 제외한, 유통된 선하증권을 선의로 취득한 제3자를 의미하고, 이 사건 운송계약의 당사자인 원고는 이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원고가 이 사건 선하증권을 소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피고는 원고에게 무효인 이 사건 선하증권에 따라 화물을 인도하여야 할 의무를 지지 아니한다.
 

다. 선적지 비용 선지급 관행의 존부
법원은, 원고가 선적지 비용을 지급하기 전에는 피고가 수하인에게 화물을 인도하지 않기로 하는 관행 또는 묵시적 약정이 원고와 피고 사이에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여, 이러한 관행 또는 묵시적 약정이 존재함을 전제로 하여 피고가 이를 위반하였다는 원고의 주장을 배척하였다.
원고와 피고 사이에 이러한 약정 내지 관행이 존재한다고 볼 수 없는 이상, 피고가 이 사건 선하증권을 발행하였다는 사정만으로 선적지 비용을 받기 전에는 수하인에게 화물을 인도하지 않겠다는 신뢰를 원고에게 부여하였다고 할 수 없고, 또한 피고가 선적지 비용을 지급받지 않은 상태에서 이 사건 화물을 인도한 것이 금반언의 원칙에 반한다고 할 수도 없다.
 

Ⅵ. 대상판결의 의의
  상법 제815조는 선하증권이 발행되지 아니한 해상운송에서 운송물이 도착지에 도착하였는지 여부, 수하인이 인도청구권을 행사하였는지 여부에 따라 송하인과 수하인의 권리 선후관계를 다르게 규정하고 있다. 대상판결은 수하인이 목적지에 도착한 화물에 대하여 운송인에게 인도된 다음에는, 비록 그 후 운송계약에 기하여 선하증권이 송하인에게 발행되었다고 하더라도 ‘운송인이 운송물을 수령 또는 선적하고 있다’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였으므로, 공선하증권(空船荷證券)과 동일하게 무효라고 판시하였다. 이는 유인증권으로서 유효한 선하증권의 요건과 발행기한을 확인함으로써, 해상운송에서 수하인의 인도청구권과 선하증권의 관계를 명확하게 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저작권자 © 해양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