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절차 개시후 정기용선계약 해지에 따른 손해배상채권의 준거법과 손해배상의 범위

-대법원 2015. 5. 28. 선고 2012다104526, 104533판결-
 

 
 

Ⅰ. 사안의 개요
(1) 원고(주식회사 S로직스)와 피고(J해운 주식회사)는 2007. 8. 14. 주식회사 오리엔트조선이 건조 중인 ① 이 사건 제1선박에 관하여 인도기간 2009. 12. 1.부터 2010. 2. 29.까지, 용선료 1일 18,700달러, 용선기간 5년으로 하는 이 사건 제1정기용선계약을,2) ② 이 사건 제2선박에 관하여 인도기간 2010. 3. 1.부터 2010. 6. 30.까지, 용선료 1일 18,400달러, 용선기간 5년으로 하는 이 사건 제2정기용선계약(이하 이 사건 제1, 2정기용선계약을 합하여 ‘이 사건 정기용선계약’이라 한다)을 체결하였다.
(2) 원고와 피고는 이 사건 정기용선계약의 준거법으로 영국법을 적용하기로 합의하고, 그 계약대상인 선박의 국적을 파나마로 정하였다.

(3) 이 사건 제1, 2선박이 건조 중인 2009. 3. 6. 정기용선자인 원고에 대한 회생절차가 개시되자, 원고의 관리인은 2009. 7. 15.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하 ‘채무자회생법’이라 한다) 제119조 제1항에 따라 이 사건 정기용선계약을 해지하였다.3) 한편 이 사건 정기용선계약의 체결에 앞서 이 사건 선박에 관한 선박건조계약이 체결되었는데, 이 사건 정기용선계약이 해지되자 이 사건 선박에 관한 건조계약도 피고의 2차 선수금 미납으로 모두 해제되었다.
(4) 피고는 2009. 7. 29. 원고의 이 사건 정기용선계약 해지로 인해 장래의 용선료 수입 상당의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주장하면서 그 손해원금만을 회생채권으로 신고하였고, 원고의 관리인은 이를 전부 부인하였다.
(5) 이에 피고가 원고의 관리인을 상대로 회생채권조사확정재판을 신청하자, 법원은 2011. 2. 23. 피고의 원고에 대한 회생채권은 24,187,113달러임을 확정한다는 취지의 결정을 하였고, 이에 대하여 원고와 피고가 모두 이의하였다.
(6) 그 후 2011. 5. 18. 원고에 대한 회생절차가 종결되었다.
 

Ⅱ. 당사자의 주장
1. 원고의 주장

피고는 이 사건 제1, 2선박의 최종 인도기한까지 원고에게 이 사건 제1, 2선박을 인도할 수 없었으므로, 원고의 해지로 인해 피고가 어떠한 손해를 입었다고 보기 어렵다.
 

2. 피고의 주장
손해배상액 산정의 기준시점은 이 사건 제1, 2계약의 해지일인 2009. 7. 15.이 아니라 최초의 확답기한인 2009. 3. 19.이고, 시장용선료는 발틱 건화물 종합 운임지수BDI를 기준으로 계산하여야 하므로, 피고의 손해액은 이 사건 제1계약의 경우 미화 24,202,828.65달러, 이 사건 제2계약의 경우 미화 23,955,172.50달러이다.

Ⅲ. 법원의 판단
1. 제1심

제1심4)은 아래와 같은 이유를 들어 원고와 피고의 주장을 배척하고, 서울중앙지법 2011. 2. 23.자 2010회확256 회생채권조사확정 재판을 인가하였다.
(1) 이 사건 제1, 2계약의 해지일로부터 이 사건 제1, 2선박의 최종 인도기한까지의 잔여기간(이 사건 제1선박 약 7개월, 이 사건 제2선박 약 11개월), 원고에 대한 회생절차개시결정(2009. 3. 6.) 및 이 사건 제1, 2계약의 해지(2009. 7. 15.) 당시 이 사건 제1, 2선박의 공정 정도, 피고의 자금조달방식 등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제1, 2계약의 해지일인 2009. 7. 15. 기준으로 피고가 원고에게 이 사건 제1, 2선박의 최종 인도기한까지 이 사건 제1, 2선박을 인도할 수 없었다고 단정하기 어려우므로, 이를 전제로 한 원고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
(2) 손해배상액 산정의 기준시점은 이 사건 제1, 2계약의 해지일인 2009. 7. 15.로, 시장용선료는 발틱선물지수BFA를 기준으로 계산함이 상당하므로, 피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
 

2. 항소심 및 상고심
제1심 판결은 항소심5)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에 대하여 원고는, 피고가 회생계획에 따라 원금의 일부만 분할변제받게 됨을 이유로 중간이자 공제를 인정하지 아니한 원심의 판단은 회생채권의 조사·확정절차와 회생계획안에 따른 변제절차를 별도로 규정하고 있는 채무자회생법에 반하여 위법하다는 내용으로 상고이유를 주장하였다. 대법원은 직권으로 도산법정지법의 적용범위에 관하여 설시하면서, 아래 V. 3.과 같은 판시내용을 들어 원고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Ⅳ. 쌍방미이행 쌍무계약에서 도산법정지법 원칙의 적용
1. 도산법률관계의 준거법 결정

도산법률관계의 준거법을 정하는 원칙에 관하여 채무자회생법과 국제사법에 아무런 규정이 없으므로, 그 준거법은 당해 법률관계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국가의 법을 준거법으로 정하는 국제사법의 기본원칙과 도산법률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정하여야 한다.6)
채무자회생법은 재정적 어려움으로 파탄에 직면해 있는 채무자에 대하여 채권자등 이해관계인의 법률관계를 조정하여 채무자 또는 그 사업의 효율적인 회생을 도모하거나, 회생이 어려운 채무자 재산의 공정한 환가·배당을 목적으로 하는데(채무자회생법 제1조), 이는 절차법적 규정과 실체법적 규정으로 구성된다.
 

2. 도산법정지법倒産法廷地法의 원칙
‘절차는 법정지법에 따른다’는 국제사법의 원칙(lex fori-Prinzip)에 따라, 외국적 요소가 있는 도산 법률관계의 절차법적인 사항 즉, 관할, 절차의 개시, 관리인의 선임·권한·의무 및 채권의 신고·확정·배당 등은 도산법정지법(lex fori concursus)에 의하여야 한다.7) 한편 도산법률관계에서는 절차와 실체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도산법정지법을 적용함으로써 채권자들의 평등취급이라는 국제도산의 이념과 정의에 보다 충실할 수 있으며, 법적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음에 비추어, 외국적 요소가 있는 도산법률관계의 실체법적인 사항 중 도산절차에 내재하는 구성요건에 의하여 발생하고, 나아가 도산절차의 목적에 봉사하는 ‘도산전형적인 법률효과(insolvenztypische Rechtsfolge)’ 또는 ‘도산법에 특유한 효력’에 대하여는 도산법정지법이 적용되어야 한다.8)
 

3. 선행 판례
원고들(파나마법에 따라 설립된 특수목적회사들로서 선박 소유만을 목적으로 하고 다른 영업활동을 하지 않는 ‘paper company’이다)은 1997. 10. 29. 선박 건조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파산자 D은행을 포함한 21개 은행과 사이에 신디케이티드 론(syndicated loan)9) 방식에 의한 차관계약을 체결하였고(준거법은 영국법으로 하였다), 원고들은 차관계약에 따라 파산자에게 1997. 11. 21.부터 1998. 7. 27.까지 사이에 관리수수료와 약정수수료를 지급하였는데, 파산자는 차관계약에 따른 약정 대출기일 이전인 1998. 10. 28. 법원으로부터 파산선고를 받았다.
대법원은 “준거법이 영국법인 차관계약상의 대주인 우리나라 은행이 파산한 사안에서 위 은행의 파산관재인이 구 파산법 제50조에 따라 미이행 쌍무계약의 이행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는데,10) 이는 도산법정지법 원칙이 적용된 예이다.11)
 

4. 대상사안의 검토
대상판결은 종전 판례에서 불명확하였던 준거법에 관한 판단을 통설의 입장과 동일하게 설시하였다. 즉, “외국적 요소가 있는 계약을 체결한 당사자에 대한 회생절차가 개시된 경우, 그 계약이 쌍방미이행 쌍무계약에 해당하여 관리인이 이행 또는 해제·해지를 선택할 수 있는지 여부, 그리고 계약의 해제·해지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배상채권이 회생채권인지 여부는 도산법정지법인 채무자회생법에 따라 판단되어야 하지만, 그 계약의 해제·해지로 인한 손해배상의 범위에 관한 문제는 계약 자체의 효력과 관련된 실체법적 사항으로서 도산전형적인 법률효과에 해당하지 아니하므로 국제사법에 따라 정해지는 계약의 준거법이 적용된다.”고 판시하였는바, 이러한 결론은 타당하다.
이에 따르면, 이 사건 정기용선계약이 쌍방미이행 쌍무계약에 해당하여 채무자가 이행 또는 해지를 선택할 수 있는지 및 해지로 인하여 발생한 상대방의 채권이 회생채권인지 여부 등은 ‘도산전형적인 법률효과’ 또는 ‘도산법에 특유한 효력’에 해당하여 도산법정지법인 우리나라의 채무자회생법이 적용되고, 이 사건 정기용선계약은 회생채무자 측(원고의 관리인)의 해지의사표시로 적법하게 해지되었으므로, 피고는 이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에 관하여 회생채권자로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Ⅴ. 영국법상 정기용선계약 해지에 따른 장래 손해
1. 정기용선계약의 준거법

이 사건 정기용선계약은 계약당사자인 원·피고가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적용하기로 합의하고, 그 계약대상인 선박도 파나마 국적선으로 정하는 등 외국적 요소가 있는 법률관계에 해당한다. 국제사법은 제25조 제1항에서 “계약은 당사자가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선택한 법에 의한다.”고 규정하여 계약의 성립과 효력의 준거법을 당사자의 의사에 따라 결정하는 ‘당사자자치의 원칙’을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이 사건 정기용선계약의 해지로 인한 손해배상채무의 발생 및 그 범위에 관하여는 원칙적으로 당사자자치의 원칙에 따라 계약 자체의 준거법인 영국법이 적용된다.
 

2. 영국 보통법상 손해배상의 범위
(1) 영국 보통법(common law)에 따르면 계약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의 범위는 타방이 계약을 정상적으로 이행하였더라면 일방이 도달하였을 상태로 만들어 주는 이행이익(performance interest)의 배상이 원칙이다.12) 이는 계약과 관련하여 이미 지출한 현실적인 손해(actual loss) 및 계약으로 인하여 장래에 얻을 수 있었던 이익의 상실로 인한 손해(lost expectation)의 배상을 포함하는 개념인데, 이러한 원칙은 정기용선계약의 해지로 인한 배상액의 산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13)
(2) 장래의 기대이익 상실로 인한 손해액은 통상 계약위반 시점을 기준으로 계약가격과 시장가격의 차액으로 산정되는 것이 원칙인데, 이를 ‘market price rule’이라 한다.14) 이는 정기용선계약의 해지로 인하여 선주가 입은 장래이익의 상실에 대하여도 적용되므로, 선주의 손해는 잔여 용선기간 동안의 시장용선료와 계약용선료의 차액으로 결정된다.15)
 

3. 대상사안의 검토
(1) 이 사건 정기용선계약은 용선 기간 개시 이전에 이미 용선자의 법정해지권 행사로 해지되었다. 손해배상의 범위에 관하여는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에 관한 법리가 적용되므로, ‘market price rule’에 따라 용선 기간 동안의 시장용선료와 약정용선료의 차액 즉, “(약정용선료 - 시장용선료) × 잔여용선일수”가 원고(용선자)가 지급할 배상액이 된다.
(2) 영국법상 향후 발생할 손해를 일정시점을 기준으로 일시금으로 지급하기 위한 장래손해(future loss)의 현가 산정은, 정당한 배상액을 정하기 위한 배상액의 조정으로 과잉배상 내지 과소배상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므로, 이러한 배상액 산정에 있어 중간이자를 공제하지 않더라도 과잉배상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반드시 중간이자를 공제하여 손해액을 할인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16)

이에 따라 대법원은 “채무자회생법은 제118조 제1호, 제3호에서 회생절차개시 전의 원인으로 생긴 재산상의 청구권뿐만 아니라, 회생절차 개시 후의 이자,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금도 회생채권에 포함시키고 있으므로, 피고는 이 사건 정기용선계약해지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의 원금 및 그 지연손해금에 대하여도 회생채권자로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회생채권으로 신고하지 아니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의 손해배상액 산정에서 중간이자를 공제하지 않더라도 과잉배상이 된다고 볼 수는 없으므로 반드시 중간이자를 공제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하였다.

(3) 원고는 손해배상의 범위를 정함에 있어, ① 용선기간 중 악천후(bad weather), 건선거입거(dry docking) 등으로 선박의 정상적인 운항이 불가능할 것으로 예견되는 휴항(Off-hire) 기간에 해당하는 용선료가 공제되어야 하고, ② 선주는 선박의 전손全損, 파산 등의 사업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이러한 사업위험이 현실화되는 경우 용선료수입을 얻을 수 없으므로 선주의 사업위험분이 공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법원은, ① 이 사건 제1, 2용선계약은 용선기간에 따라 용선료를 지급하는 정기용선계약이므로 악천후로 인하여 운항을 못하는 손해는 용선자가 그 위험을 부담하는 것이 상당하고,17) 이 사건 제1, 2용선계약은 용선기간을 5년으로 정하여 신조선박新造船舶을 용선하는 것이고 신조선박의 경우 관련 법령상 5년 이내에는 선박에 대한 검사가 없으므로 검사를 위한 건선거입거로 인하여 휴항하는 경우는 상정할 수 없으며, ② 이 사건 제1, 2용선계약의 해지로 인한 선주의 손해를 산정함에 있어 언제 현실화될지도 모르는 막연한 선주의 사업위험분을 공제하여야 할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여 이를 모두 배척하였다.
 

Ⅵ. 대상판결의 의의
대상판결은, 외국적 요소가 있는 쌍방미이행 정기용선계약의 계약당사자에 대하여 회생절차가 개시된 경우, 계약이 쌍방미이행 쌍무계약에 해당하여 관리인이 이행 또는 해제·해지를 선택할 수 있는지와 계약의 해제·해지로 발생한 손해배상채권이 회생채권인지에 관한 준거법(=도산법정지법) 및 계약의 해제·해지에 따른 손해배상의 범위에 관한 준거법(=국제사법에 따른 정기용선계약의 준거법) 등 도산법정지법 원칙의 적용범위에 대하여 최초로 명시적으로 판시하였고, 영국법상 장래손해(future loss)의 현가 산정에서 중간이자를 공제하지 않더라도 과잉배상이 되지 않은 경우 반드시 중간이자를 공제하여 손해액을 할인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시하였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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