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에 대한 법정관리가 시작되었다. 30여 년 전에 인수회사 한진해운과 피인수회사 대한선주의 첫 통합사업계획서를 작성한 바 있는 필자로서는 한진해운의 파경을 접하는 느낌이 남보다 강할 수밖에 없다. 남다른 느낌을 억제하면서 한진해운의 도산이 우리나라 해운과 경제에 주는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한진해운 몰락의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의미는 ‘한국해운의 전문인력 손실’이다. 한진해운이 청산되거나 조각내어 매각되는 경우 우리나라 해운은 우수한 전문인력을 잃게 될 것이다. 세계 구석구석에서 활동하고 있는 최상급 해운인력이 그 자질과 능력을 상실해갈 것이다. 한진해운이 회생되거나 다른 회사에 고스란히 인수되지 않는다면 그 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일부가 다른 해운회사나 관련분야에 재취업하겠지만 제 실력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예전에 어느 해운회사 사장님은 필자에게 “아무리 우수한 사람도 어느 회사에서 일하느냐에 따라 능력 발휘도가 크게 달라진다”고 말한 바 있다. 인력이 조직을 좌우하기도 하지만 조직이 인력을 좌우하는 면이 더욱 뚜렷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진해운 직원이 흩어지는 것은 ‘한국해운의 인적자산 손실’이라는 뼈아픈 후유증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한진해운 몰락의 두 번째 의미는 ‘한국해운의 경쟁적 리더쉽 붕괴’다. 우리나라 해운을 이끌어 오던 4대 해운회사들이 이번 해운불황으로 모두 몰락하였다. 따라서 해운국가의 국제경쟁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겨지는 ‘경쟁적 리더쉽’이 붕괴된 것이다. 어느 산업이나 경쟁적 선두 기업군이 살아있어야 그 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이 실현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한진해운, 현대상선, 팬오션, 대한해운 등 4대 선두기업의 도산은 우리나라 해운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태롭게 할 것이다. 특히 글로벌 기간항로를 운영하는 정기선사로서 경쟁적 발전관계를 유지해온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중 한 회사라도 사라진다면 우리나라 해운의 국제경쟁력은 갈수록 허약해질 것이다. 특히 맏형으로서 다른 선사들의 도전대상이었던 한진해운이 사라진다면 우리 해운이 향후 상당기간 허탈감에 빠질 수 있다. 일부에서는 “중국도 COSCO와 CHINA SHIPPING을 합병하지 않았느냐”고 강조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후발국의 잘못된 사례를 우리 정책에 인용하려는 것이다.

이 두 회사의 합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중국 해운인의 질문에 필자는 ‘경쟁적 발전의 효과’를 버리고 ‘독점의 폐해’를 취하는 것이라고 지적해준 바 있다. “시장경제 원리보다 사회주의적 발상일 수도 있다”고 상기시켜주었다. 또 다른 부류는 덴마크의 Maersk Line은 홀로서도 세계 최고 해운회사가 되었지 않느냐고 강변한다. 인구가 700만 명에 불과한 덴마크는 자체 해운시장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고, 덴마크는 모든 각료들이 해운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을 만큼 해운애정이 강하며, 덴마크는 150년 넘게 머스크를 키워왔다. 해외에서 머스크 이슈가 발생하면 정부와 의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왔다.
이것이 ‘머스크 성공의 배경’이다. 우리 선사들은 역사가 짧다. 우리 정부는 해운산업을 육성하면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경쟁관계를 조성해왔다. 이 경쟁적 발전관계를 복원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고 많은 시간이 필요한 과제이다. 아마도 20년은 족히 소요될 것이다.

한진해운 몰락의 세 번째 의미는 우리나라 수출경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글로벌 네트워크의 치명상’이다. 한진해운의 로고가 새겨진 컨테이너박스는 지구촌 구석구석을 돌아다닌다. 이 네트워크는 세계 정상급이라 할 수 있다. 26년 전 모스크바에서 만난 젊은이가 한진해운에 취직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바 있다. 소련이 러시아로 전환되는 와중에 외국에서 살고 싶은 청년이 수많은 해운회사를 제치고 한진해운에 취직하고 싶었을 만큼 한진해운의 네트워크는 국제적으로 손색이 없는 것이었다. 이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우리나라는 세계 10대 무역대국으로 성장해왔다. 대기업들의 성장에도 필요하지만 해외로 수출하려는 중소기업에는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네트워크다. 현대상선이 있고, 외국선사도 있지 않느냐고 항변할 수 있다. 언어장벽과 정보장벽을 느끼는 중소기업은 외국선사를 활용하기 어렵고, 홀로 남을 현대상선을 이용하는 경우 아무래도 독점적 폐해를 감당해야 한다. 그러므로 중소기업 수출상품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한진해운 몰락의 네 번째 의미는 ‘한국해운 발전사의 위기’다. 1949년 5월 26일 대한해운공사법이 국회에 상정되었고, 동년 10월 8일 대한해운공사가 출범하였다. 해운공사는 대한민국 최초의 국영기업이었으며, 우리나라 증권시장의 세 번째 상장기업이었다. 이때부터 해운공사의 선박은 오대양을 누비면서 우리나라 경제가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 공사는 수많은 전문인력을 배출하면서 해운산업 발전의 대들보 역할을 담당해왔다. 이 공사는 1980년 대한선주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1987년에는 한진그룹이 대한선주를 인수하였다. 한진해운이 지난 30여 년 동안 우리나라 해운산업의 대들보 역할을 담당해 왔다. 다시 말해 한진해운은 우리나라 해운발전의 주기관(main engine)이었다.

그러므로 한진해운의 몰락은 우리나라 해운의 선박엔진이 고장난 것에 해당된다. 지난 2012년 필자와 해운위기 대응책을 논의 하던 중견 6대선사 중 한 회사 사장님이 ‘다른 선사들은 몰라도 한진해운은 살려야 한다’고 강조하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자기 회사도 어려운데 왜 한진해운을 걱정하느냐고 물어보는 필자에게 그 사장님은 우리나라 해운의 대들보가 무너지면 모든 선사들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부연하였다. ‘리더기업의 우산효과’를 강조한 것이다. 지구촌을 누벼야 하는 글로벌 정기선사는 수많은 나라의 법과 특수사정에 적응해야 한다. 바다의 무서움도 모르면서 이 지구촌 지뢰밭에 섣불리 뛰어들면 무너지기 쉽다. 반대로 이 지뢰밭을 오랫동안 누벼온 회사와 인력을 무너뜨리고 다시 확보하려면 수십 년이 소요될 것이다. 그러므로 한진해운의 위기는 우리 해운발전사의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제 한진해운의 마지막 운명은 법원이 결정하게 되었다. 부디 현명한 결정을 기대한다. 부채/자산의 청산논리도 중요하지만 한국해운을 살려야 한다는 소명의식도 참고해주기 바라며, 세계 정상급 전문인력과 네트워크를 살리는 방향을 고려해주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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