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우 목포해양대학교 해사대학 명예교수
이재우 목포해양대학교 해사대학 명예교수

초급 해기사들이 3년간의 승선 의무기간을 채우고, 병역 의무를 다하고 나면 하선하여 전직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국비로 양성된 우수한 해기 전문인들이 타분야로 유출하게 되면 육상에서 필요한 고급 해기사의 공급에 차질이 생기는 심각한 문제가 야기된다. 이러한 문제 발생의 원인을 위험이 노출된 「바다」라는 선원직업의 자연 환경에서 먼저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선원직업의 매력 회복 대책 강구의 전제로 바다에 대하여 여러 가지 사항을 질서 없이 생각해 본다.

1. 문학에 비친 바다

-바다는 어떤 존재인가

영국의 선장 출신 해양소설가, 콘래드(J. Conrad, 1857~1924)는 선원 생활의 찬가讚歌라고 평하는 「청춘, Youth, 1902」의 말미에서 「아아, 그리운 그 시절 -그리운 좋은 시절. 청춘과 바다. 매혹의 바다!」(Ah, The good old time -the good old time. Youth and the sea. Glamour and the sea!)라고 맺고 있다.

바다는 과연 「매혹적인 존재」일까.

작가 미상인 8세기경의 고대 영시, 「뱃사람(The Seafarer)」은 해상 생활의 고통을 겪을 대로 겪은 늙은 뱃사람과 바다의 모험을 동경하는 젊은이 사이의 대화인데, 바다는 한랭하고, 황량하고, 우울하다. 시인의 어조는 침울하고 애조를 띠고 있다. 앵글로색슨 민족의 바다에 대한 감정이 전해지고 있는 것일게다.

이와 반대로, 바다에 대한 긍정적인 견해, 동경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낭만주의적 감수성이라고 오던(W.H. Auden, 1907~1973, 영국의 시인)은 말한다.

「낭만주의의 바다」는 바이런 경(Lord Byron, George Gordon, 1788~ 1824)의 브랜드다. 19세기의 바다를 창안하는 데 공적인 많은 바이런을 「대양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의 장시長詩, 「차일드 해롤드의 편력, Childe Harold's Pilgrimage, 1812」 중, 「대양의 노래, The Ocean」에서 인위人爲의 파괴자인 바다의 에너지를 칭찬하고 있다.

미국의 국민 시인 휘트먼(W.Whitman, 1819~1892)은 그의 생애를 통해서 바다가 좋았기에, 바다에 얽매였음을 잘 나타내고 있는 11편의 해양시 모음, 「표해漂海, Sea-Drift」가 그의 시집 「풀잎The Leaves of Grass」에 실려 있다. 원대한 미국의 꿈, 자유와 진보를 싣고, 바다의 문화적 상징인 배는 바다를 달리면서 세계로 뻗어 나간다.

한편 영국이 해양국가로 발전한 18~19세기에는 해양모험 소설이라고 할 대중작품이 많이 나왔다. 바다는 모험, 탐험의 무대가 되었다. 청소년들은 이러한 작품들을 읽고 바다에 도전했다.

미국의 여성 해양과학자 카슨(R. Carson, 1907~1964)은 바다를 「모든 생명의 모태인 어머니」로 표현하고, 인간의 생명도 어머니의 아기집 속에 있는 작은 해안(양수羊水)에서 비롯한다고 말하면서, 바다가 오염되면 아기집 속의 해안도 오염된다고 경고한다.

스위번(A. C. Swinburne, 1837~1909, 영국의 시인·비평가)도 바다를 거룩하고 다정한 어머니로 표현하고, 「오오, 푸른 띠 두른 아름다운 나의 어머니시여」라고 읊으면서도, 「인간의 생명을 즐기는 아름다운 어머니시여, 인간은 그대가 음흉하고 잔인하다고 하오, 그대는 앗아갈 뿐, 되돌려주질 않네, 그대는 그대가 죽인 자들로 가득 차고, 그들처럼 차갑도다, 그러나 죽음은 그대가 가져오는 최악의 것, 그대는 우리의 죽은 자들로 배를 불린다」라고 바다를 묘사한다. 생명의 바다는 어느덧 잔인한 바다(cruel sea)로 변하고 있다.

미국의 여성 시인 무어(M. Moore, 1887~1972)는 「무덤The Grave」이라는 시에서 바다를 냉정하고 비판적인 눈으로 관찰하고 있다. 「바다는 잘 파놓은 묘지墓地다. 바다는 죽은 자의 수집자다.(…a well excavated grave, the sea is a collector)」라고 묘사한다.

바다의 시인(a poet of the sea)으로 불리는 영국의 계관시인 메이스필드(J. Masefield, 1878~1967)는 「나는 바다로 다시 가련다… I must go down to the seas again…」로 시작하는 해수海愁(Sea-Fever)라는 명시에서, 그의 꿈의 나라인 바다로 가야만 한다고 바다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으면서, 삶과 죽음이 귀일歸一하는 곳을 바다에서 찾는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Hegel, 1770~1801)은 「바다는 혼돈되고 신비하며, 음침하고, 무섭고, 파괴적인 자연력 때문에 예측할 수 없는 성질을 지닌 존재다」라고 바다의 본성本性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존슨(Samuel Johnson, 1709~1784, 영국의 시인·비평가)은 「배를 타고 있는 것은 감옥에 있는 것과 같다, 익사의 위험을 길동무하고서. Being in a ship is being in a jail, with the chance of being drowned.」라고 말한다.

앞에 언급한 메이스필드도 「이 땅에 태어나 숨 쉬고 사는 우리는, 운명의 밑바닥, 말 없는 바다를 배가 건너게 한다. 언제나 열려 있는 저 죽음의 문(Death, that ever-open door)을 희롱하며」라고 말한다.

시원적始原的으로 위험에 노출된 바다, 「판자 한 장 밑은 지옥」인 바다에서 선원은 24시간 생활한다. 그래서 해상직을 24시간 사회(24-hour society)라고 표현하고 있다.

생명의 모태인 바다는 한없이 다정하면서도 준엄해서, 항거하는 일은 용서치 않는 무한한 바다의 힘을 갖고 있다.

가혹한 바다, 낭만의 바다, 생명의 바다, 잔인한 바다, 모험과 탐험의 무대인 바다, 공해와 오염으로 죽어가며 인류에게 되돌아오는 역류逆流의 바다… 등으로 바다는 시대에 따라 문학 속에서 그 모습을 달리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바다는 인류가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삶의 터전이 되었다.
 

2. 삶의 터전인 바다

「영국이라는 나라, 말하자면 인간과 바다가 서로 얽히어 있는 나라(England, where men and sea interpenetrate)-바다가 많은 사람들의 생활 속에 스며들고, 사람들도 오락이라든지, 여행이나 삶의 터전 등으로 바다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거나 샅샅이 알고 있는 나라」라는 한 구절로 콘래드의 중편 소설, 「청춘Youth」은 시작한다. 「인간과 바다가 서로 얽히어 있는 나라」, 이것이 바로 해양국가 영국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청춘」이라는 소설은 콘래드의 영국 민족관民族觀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민들이 자기 나라가 해양국가임을 자랑삼아 말할 때, 곧잘 이 구절을 인용한다.

영국 사회에서는 「바다는 삶이다, The Sea is life.」라는 표현을 많이 대할 수 있다. 1756년에 창립된 세계 최초, 최고最古의 해원육영단체海員育英團體인 머린소사이어티(The Marine Society)는 「Sealife Program」이라는 선원직업활성화 계획을 운영해 왔다. 「Sealife Council」이라는 단체조직도 있다. 1975년에 선주, 선원단체, DOT(정부의商務省) 3자 합동으로 구성하여 발족했다. 영국 해운산업에서 해상생활이 선원에게 더 매력적인 직업 생활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고, 효율적인 인력 활용 방안을 개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Ship Adoption」(후에 Sea Line으로 개명)이라는 모임도 있다. 1936년에 지리교사단체가 「To bring a breath of sea air into the classroom〔바다의 기운海氣을 교실에〕」라는 바다와 친숙해지는 학습방법을 고안하고, 선박과 초등학교의 결연(Ship-school link)을 추진한 결과, 한때 800개를 넘을 정도로 선원과 어린이 사이의 유대가 형성되었었다. 어린이들이 선원들에게 해운, 무역, 외국의 곳곳에 대한 질의 서신을 보내면, 선원들은 이에 대한 정보와 화물 표본이나 값이 싼 골동품 등을 선물로 보내며 응답했고, 학교와 선박사이의 상호 방문 견학을 장려하였다. 콘래드의 표현처럼 인간과 바다는 어린시절부터 생활 속에 끈끈하게 서로 얽히어 있는 나라, 바다가 생명이요, 바다가 삶(Sea is life)인 나라가 영국이다. 바다는 생명선(lifeline)이기에 많은 국가들이 바다를 중시한다.

성서聖書에 「배를 타고 바다로 내려가 대해大海에서 장사를 하는 자들은 여호와 하느님의 기적과 행사를 본다.(시편 107편 23~24)」라고 기록되어 있다. 바다가 삶의 터전이라는 이 계시啓示는 구미인歐美人들에게 해양진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심어 주었고, 그들은 「부富의 바다」를 탐험하고 도전해왔다. 바다는 바로 삶의 희망이다.

고대부터 여러 나라의 민족은 항해와 해운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항해해야 한다. It is necessary to sail to the seas.(Navigare necesse est.)」는 정신으로 해양을 탐험하고, 개척하며 진출했다. 이 말은 중세의 정치적·상업적 동맹인 한자 동맹(Hanseatic League)의 모토이다. 「교통은 문명이다. Transportation is civilization.」라고 키플링(Rudyard Kipling, 1865~1936, 영국의 시인, 소설가)이 말했듯이 문명은 해상운송을 필요로 한다. 항해의 미래는 인류의 문명의 미래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3. 해상 권력의 각축장(角逐場)인 바다

미국의 역사학자 마한(A. T. Mahan)이 저술한 「역사에 미친 시파워의 영향 The Influence of Sea Power upon History, 1660~1783」에서 「시파워란 무력에 의해서 해양 내지 그 일부분을 지배한 해상의 군사력뿐만 아니라, 평화적인 통상通商 및 해운을 포함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시파워를 편의상 「해양력海洋力」이라고 번역해서 사용키로 한다. 이 말은 해군력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는 세계의 무역을 지배하고, 무역을 지배하는 자는 세계의 부富를 지배하고, 그 결과 세계를 지배한다」고, 영국의 정치가 월터 롤리 경(Sir Walter Raleigh, 1552~1618)은 말한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He who rules the waves rules the world)」는 제해권制海權 사상이 확장되면서 바다는 식민지 개척을 위한 루트가 되었다.

러시아의 남하정책南下政策도 시파워 확장 정책의 표출表出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면서 침략적이며 식민지 확장의 중심 사상인 시파워는, 점차 사라졌다고는 하나, 21세기 해양시대, 해양혁명시대를 맞으면서 해양을 무대로 새로운 국면의 국제경쟁은 높은 파도만큼이나 치열할 것이라는 예측은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데, 아직도 도사리고 있는 것 같다. 최근에 일고 있는, 대양 해군大洋海軍을 계획하는 중국의 남지나해 사태라든지, 재무장을 획책 중인 일본의 움직임이 그 좋은 보기라고 할 것이다.

해양은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요, 인류의 생존 문제가 바다에 달려 있기 때문에, 21세기의 바다는 평화의 바다, 안전의 마다, 협력의 바다가 되어야 한다. 바다에 대한 국제 사회의 지대한 관심은 유엔해양법협약(UNCLOS, 언크로즈)이라는 이른바 해양헌법海洋憲法(A Constitution for Oceans)을 채택하게 했다.

발의한 지 27년만인 1994년에 협약은 발효했다. 국가 존립의 필수 조건이었던 시파워는 변모했다. 21세기의 시파워는 「인간과 바다의 종합적인 관계」를 포괄하는, 인간과 바다가 공생共生하는, 이른바 신해양력(Neo-Seapower)의 새로운 개념으로 정립되었다. 언크로즈(UNCLOS)가 탄생하고, 네오 시파워의 개념이 평명平明하게 그 행동의 영역을 넓히면서, 선진국들에게 한층 그 책임을 부과시켜야 하게 되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해상인명의 안전확보와 해양 환경의 보전을 목표로 설립된 유엔산하의 전문기구다. 유조선의 대량 기름유출사고로 바다가 오염되는 심각한 문제를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다. 「안전한 선박 운항, 깨끗한 해양 보전(Safer Shipping Cleaner Oceans)」을 표방하고, 하나뿐인 지구 살리기에 회원 국가의 지대한 관심과 협력을 기대하고 촉구한다.

쿠스토(J. Y. Coustou, 프랑스인, 1910~1997)는 해중 과학海中科學의 모든 분야에서 빛나는 큰 발자취를 남기고 있는데, 「바다가 죽으면 인류도 죽는다」고 경고한다.

신해양질서를 꿈꾸는 금세기 국제사회는 해양관할시대를 맞게 되었다. 해양분할시대가 되면서 바다는 「제2의 아프리카化」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낳고 있다.

21세기의 바다는 각국의 해양력 확장의 무대가 아니라, 「전세계가 해양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이러한 시각에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바다는 삶의 터전이요, 그래서 변함없이 해상 권력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고 할 것이다.
 

4. 선원생활의 환경인 바다

인류가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을 채택한 오늘의 세계에서, 해양정책은 종전의 침략적 군사적인 제해권 확장의 개념을 탈피하고, 「모든 해양 공간과 해양 자원을 규제하기 위한 종합적인 구상과 대책」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정립되고 있다. 냉전이 종식된 후 세계의 관심은, 군사적 대치에서 벗어나 인류의 공동 유산인 심해저深海底 자원의 개발을 위한 국제적 협력 체제의 구축이라는 새질서 확립에 초점을 맞추고, 인류의 공동 안전 보장을 위해서 해양환경 보전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임하게 되었다. 이제 인류는 바다를 떠나서는 살 수 없게 되었다. 인류의 생존권이 바다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일할 고도한 해기 전문인이 더욱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러나 「젊은이여, 바다로! Down to the sea, Young Men!」라는 구호는 허공에 메아리칠 뿐, 사람 없는 「바다의 공동화空洞化」를 우려하게 되었다.

바다라는 특수환경에서 위험에 노출된 직업이 선원직업이요, 별다른 혜택도 없는, 장래가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직업이라는 데 해상직업을 외면하는 근원적인 원인이 내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선원 배승船員配乘 문제는 위기에 처해 있는 심각한 문제가 되었고 선진해운국의 선원사회는 붕괴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선원 공급원은 아직은 고갈되지 않고, 해기사 양성기관인 목포해양대학교, 한국해양대학교 모두 높은 입시경쟁률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선진해운국의 선원교육기관의 경우와는 대조적으로 입학정원을 늘려나가고 있으니, 기적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크게 우려 되고 있는 것은 초급해기사들의 조기 하선早期 下船, 전직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육상에서 필요한 고급 해기사의 부족현상이 야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선원수급 계획은 「경제 변동에 대응한 개별 해운업계의 동향에서 예측되는 선복량과 선원의 과부족 산출과 이에 부합하는 선원교육기관의 정원수 조절」 이러한 흐름으로 검토되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국내외의 선원수급정책의 흐름은 이러한 경향을 탈피하지 못한 감이 있다.

선원비 절감을 위한 저임금 개발도상국 선원을 고용하는 혼승선이 출현하면서, 선진 해운국에서는 선원교육기관의 축소 내지 폐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선원비 여하에 따라서 노동력 수량의 신축은 부득이한 조치라는 매우 편리한 인적人的 자원론적資源論的인 것이어서, 초급해기사 양성 제한과 저임금 개발도상국 선원으로 대체, 고급해기사의 심각한 부족현상 야기 등의 악순환이 일어난다. 오랜 세월에 걸쳐서 신규 양성 교육과 채용을 억제하고 방치해온 대가를 선진해운국들은 한꺼번에 치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현재 일시적 미봉책으로 저임금 외국인 선원을 고용하고 있을지라도, 자국선 자국선원주의로 환원하려고 노력하지만, 한번 무너진 선원사회는 회복하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보아왔다.

넵튠神(Neptune)의 자비로 무사히 항해했던 시대는 지나갔다. 지금 운항 중인 선박들은 고성능 지능화선(intelligent ship)이요, 섬이나 다름없는 대형 선박들이 많다. 선박은 대형화, 전용화하고, 고속화되면서 정교선精巧船(sophisticated vessel)시대가 되었다. 선박 운항의 안전성과 신뢰성도 매우 높아졌고, 선원직업의 생활환경도 크게 향상되었다. 하지만 아직 인간의 지혜는 「바람과 파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1973년에 동독(GRD)에서 발간된 원작을 1983년에 영국에서 번역 출판한 「Ships and Shipping of Tomorrow」에서, 미래의 선박은 파도를 극복하기 위해서 수중 항해 또는 수상 비행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는 대목이 보인다. 인간의 지혜로 파도를 극복하고 평안한 항해를 할 수 있는 날이 과연 올 수 있을까.
발견항해시대, 대항해시대에 부富와 영광, 명예를 거머쥐든 선원들은 사라졌다. 범선시대의 선원, 바다의 열애자熱愛者들, 그들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Sea-mania」라고 부르지 않고 「Sea-enthusiast」라고 부르고 있다. 모험심으로 바다에 진출했던 당시의 선원직업은 젊은이들이 도전할만한 매력적인 직업이었을 것이다.

기술혁신의 진전으로 선박의 초자동화시대를 맞아 선박의 신뢰성과 안정성이 아주 높아진 시대이지만, 물질주의와 향락주의가 만연하면서 인류사회는 크게 변하고 있고, 그런 영향을 받아 젊은이들은 바다를 외면한다. 이런 성향을 나타내는 「Sea-blindness」라는 말이 생겨났다.

고도기술집단高度技術集團인 선원사회가 항상성恒常性을 유지하면서 확고하게 해기 전승을 해나가기 위해서는 높은 파도와 싸우면서 장시간 항해를 마치고 귀항하는 선원들을 전장戰場에서 돌아오는 병사兵士처럼 대우하고 아껴주어야 한다. 「바다」라는 위험한 자연환경에서 고투苦鬪하는 선원집단은 특수사회라는 점을 깊이 이해하고, 국가적 배려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선원정책은 높은 차원에서 해양정책의 핵심의 하나로 검토되어야 한다.

선원수급문제는 간단하고 편리하게 시장경제원리에 맡겨 둘 문제가 결코 아니다. 해운산업은 「제4군(The fourth arm of defence)」으로 국방과 교역(defence and commerce)의 역할을 맡고 있는 국가의 기간 전략산업이다. 「선원없이 해운은 존재할 수 없다(No Crew No Shipping)」. 해운은 무역의 날개요, 우리나라는 무역에 의존하고 있다. 선원수급의 항상성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국가경제안보는 어렵다. 선원직업의 장場인 바다의 특성에 대한 이해 없이 선원직업의 매력화 방안을 논의하거나 장기 승선 근무를 유도해 보려고 한다면 선원수급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영원한 과제」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1960년대에 스코틀랜드의 J&J Denholm Ltd.에서 1960년대부터 2066년까지 100년 동안의 해운산업을 예측하기 위해서 영국의 스터미(S. G. Sturmy) 등, 저명한 석학들에게 미래의 설계를 의뢰해서 「Shipping the Next 100 Years, 백년 후의 해운」 제하의 논문집을 펴낸 바 있다. 이중에서 「…선박은 현재 자동화에 의해서 이미 기관실 당직 인원수가 대폭 삭감되고 있고, 다음 단계는 항공기의 경우와 같은 운항 당직 방식으로 승무원 조직을 편성하는 일이며, 최종적으로 완전한 무인선無人船(SO船)이 될 것이다….」라고 예측하는 대목이 보인다.

「UN미래보고서 2045, State of the Future」에는 2045년이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시점時點, 즉 특이점特異點(singularity)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더 이상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시작이요, 인류가 이해할 수 있는 기술 범위를 넘어서는 시점이며, 인공지능의 습격으로 현존하는 직장 대부분이 소멸되고 새로운 일자리를 추구하게 될 것으로 내다보는 귀중한 통찰洞察이다. 「알파고」 때문에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초등학생들은 장래 어떤 직업을 선택할 것인가를 담임교사와 상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해운업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남을 것인가. 과연 무인선시대는 열릴 것인가.

무인선시대에는 해상직(sea-crew)은 사라지고 육상지원조직(land- crew)이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지만, 아직 현 시점에서는 해상직 선원은 필요하다.

저출산 소자주의小子主義 시대에 태어난 젊은이들은 무엇보다도 직업의 안전성을 추구한다〔safety first〕. 위험에 노출된 해상직업은 도외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은 「삶의 질, Quality of Life」이 중시되고 있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이 점이 도외시되는 직업은 외면하게 된다.

선원직업이 하나의 전문직업(maritime career)으로서 인정받고, 일시적인 생업(job)의 개념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는 「양성·고용·보장」의 각 단계에서 일관성 있는 투명한 비전이 제시되도록, 정·노·사·학政勞使學이 공동으로 연구개발을 해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학계에서는 선박운항기술학뿐만 아니라, 폭넓게 노동과학, 인간공학, 사회학, 인류생태학, 산업심리학, 경제학, 교육학 등, 여러 분야의 학제간學際間 연구 참여가 필요하다.

자국선 자국선원 확보 대책 외에, 선원 공급원을 찾아내는 일이 선원수급의 과제가 되고 있는데, 혼승선混乘船 선원집단의 문화적 마찰과 갈등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 또한 시급한 연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는 1987년에 해외취업선원수가 42,671명이었던 적도 있는 선원대국이었다. 명실 공히 해기를 통해서 한류韓流 문화를 국제사회에 널리 알린 선봉이었다. 최근 5년간 외항상선의 선원수는 만명 내외를 유지하면서 점차 이직률이 높아가고 있다.

젊은이들이 해기 한류海技 韓流 붐을 일으키는 날이 다시 오기를 기대해 본다.

가혹한 바다, 낭만의 바다, 생명의 바다… 등으로 문학 속에서 바다는 그 모습을 달리하면서, 역류逆流의 바다가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21세기의 바다는 평화의 바다를 지향하면서도 각국의 해양력 신장을 위한 각축장으로 여전히 존재하면서 정치의 바다가 되고 있다. 해상직에 종사할 해기 전문인은 더욱 많이 필요하다.

해기 전문인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 수립의 기저에는 예측할 수 없는 성질을 지닌 바다라는 위험한 자연 환경이 도사리고 있다. 위험에 노출된 바다에 젊은이들이 도전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높은 차원의 정책적인 배려가 있어야 한다. 「안전제일(safety first)」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고려해야 하는 첫째 항목이기 때문이다.

한때 매력적이었던 선원직업은 사회적 변화에 따라 매력을 상실했다. 장래가 불확실하고 별다른 혜택도 없이 거친 파도와 싸우는 선원생활은 항시 위험에 노출된 「24시간 사회」이기 때문이다. 선진해운국의 선원사회는 붕괴하고 있다.

세계 5위의 해운강국인 우리나라의 경우, 해기사 공급원은 아직은 고갈 상태가 아니지만 초급 해기사들이 조기 하선, 전직하는 경향이 나타나면서 육상직에서 필요한 고급 해기사 부족현상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해가고 있다.

해상직에 대하여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 해상운송 전선에서 황파와 싸우는 선원은 전쟁터의 병사와 다름없는 존재다. 그들을 소중하게 아껴주고 대우해야 한다. 선원직업의 「매력회복」 문제는 해양정책의 핵심 과제로 삼아야 한다. 선원은 국방과 교역을 담당하는 제4군이요, 우리의 생명선인 바다의 수호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원수급문제는 시장경제원리에 안이하게 맡겨 둘 문제가 결코 아니다. 선원 없이 해운 없고, 해운은 무역의 날개요, 우리나라는 무역에 의존하고 있는 국가다. 선원문제는 국가경제안보와 밀접한 관련있는 사활이 걸린 문제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늦기 전에 원인 분석과 대책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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