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욱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해운시장분석센터 전문연구원
고병욱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해운시장분석센터 전문연구원

“해운산업을 우리 경제의 수출입 물류인프라를 제공하는 하나의 생태계로 바라볼 때 다양한 영역에서 상생과 협력의 필요성과 수단이 도출될 수 있다”


5월 9일이면 새로운 대통령과 정부가 일을 시작하게 된다. 우리 사회의 큰 변화가 예고되는 이 시기에 국내 컨테이너 해운산업도 ‘상생’과 ‘협력’을 통해 새로운 활로를 열어가야 할 것이다. 

우리 컨테이너 해운산업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 9년 전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세계 경제의 침체와 함께 글로벌 컨테이너 해운시장에서 나타난 운임인하 전쟁은 결국 우리나라 제1의 선사 한진해운의 퇴출로 이어졌다. 이 와중에 한국 해운은 신뢰라는 보이지 않는 결정적 자산에 큰 상처를 입고 말았다. 더욱이 우리나라 컨테이너 해운산업의 버팀목이었던 아시아 역내 시장에서도 과당경쟁에 따른 운임하락과 수익성 악화로 미래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 같은 총체적 어려움에 직면한 우리 컨테이너 해운산업이 다시 건강을 회복하고 순항하기 위해서는 ‘상생’과 ‘협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그렇다고 고객이 왕인 시대에 기업 간 담합을 통해 고객의 희생을 담보로 부당한 이익을 얻을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될 것이다. 이에 해운산업을 둘러싼 다양한 영역에서 상생과 협력 과제를 발굴하고 실천할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상생과 협력 과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컨테이너 해운산업을 하나의 생태계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렇게 해운산업을 우리 경제의 수출입 물류 인프라를 제공하는 하나의 생태계로 바라볼 때 다양한 영역에서 상생과 협력의 필요성과 수단이 도출될 수 있다. 이 생태계에서 해운기업과 함께 살아가야할 가장 중요한 경제주체는 화주, 즉 운송을 필요로 하는 고객이다. 그리고 바다 길을 통해 운송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고가의 선박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를 공급하는 조선소가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그리고 해운기업에게 자금을 공급하는 금융기관 또한 매우 중요한 경제주체이다. 이들 거래 파트너와의 상생과 협력을 증진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 본다.

첫째, 선·화주 상생의 문화와 전통이 조성되고 강화되어야 한다. 해운시황은 어느 산업보다 큰 변동성을 지니고 있다. 불황기에는 선사가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화주들이 저렴한 물류비로 혜택을 본다. 반대로 호황기에는 화주가 곤경에 빠진 가운데 선사들이 커진 운임수입으로 수익성 제고의 혜택을 누린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는 선·화주 간의 상생이 이루어질 수 없다. 운임이 낮은 시기에 오히려 화주는 파트너 선사에게 적정한 운임을 보장해 주고, 운임이 높은 시기에는 선사가 파트너 화주에게 보다 저렴한 운임으로 안정적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이렇게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거래를 해야 서로가 신뢰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질 것이다.

최근에 머스크와 CMA-CGM은 중국의 Alibaba 인터넷 서비스에 온라인 선복예약 서비스를 개설했다고 한다. 이는 단발성 운송 니즈를 가진 중소 화주를 공략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화주는 충성도가 높고 장기적인 대량 화주와 충성도가 낮고 일시적인 중소 화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 같은 온라인 서비스 강화로 그동안 선사가 상대적으로 홀대해온 중소 화주를 놓고 경쟁이 치열해 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선사는 어느 때보다도 장기 대량 화주와 상생 협력을 강화하고, 급변하는 마케팅 여건에 화주 제일주의의 시각에서 신속히 대응해야 한다. 아울러 디지털 기반의 서비스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바, 이에 대한 IT 솔류션을 공동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둘째, 친환경적 운송을 위한 상생과 협력이다. 올해 9월이 되면 선박평형수 관리 협약이 발효된다. 그리고 2020년이면 황산화물 규제가 강화될 예정이고, 세계 각 수역에서는 ECA(Emission Control Area), 즉 배출통제지역이 확대된다. 이 같은 환경규제 강화는 규제에 맞추어 운항을 해야 하는 선사와 규제 순응에 필요한 선박과 장비를 공급해야 하는 조선소와의 협력을 요구한다. 여기서 주목되는 국제동향은 EU가 환경규제를 경쟁력 차별화의 지렛대로 간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EU는 소위 “Quality Shipping”이라는 슬로건으로 환경규제에 적극 대응하여 이를 경쟁력의 핵심요소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조선 1위 국가이다. 따라서 조선 1위의 경쟁력이 우리 해운기업에게 자연스럽게 흘러 갈 수 있도록 해운-조선 간의 상생 협력을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머스크 등의 30여개 선사, 물류기업들이 황산화물 규제에 대해 Trident Alliance를 결성하여 공동으로 대응하고 있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준다. 우리 기업들도 이 같은 환경규제가 가져오는 변화에 협력하여 대응할 필요가 있다. 특히 신조선, 수리조선에 필요한 기술사양을 선사와 조선소가 협력하여 파악하고, 선사들은 조선소에게 자신들의 신조, 개조 수요를 보증하여 조선소가 관련 기술과 장비에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러한 해운과 조선 간의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때 우리의 세계 1위 조선산업 역량이 해운산업에도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금융에 있어 상생 협력이 요구된다. 금융기관이 대출과 채권 등을 통해 해운기업에게 자금을 공급할 때 원리금 상환은 해운산업의 특성에 맞게 설계될 필요가 있다. 해운산업은 시황 변동이 크다. 따라서 시황이 좋을 때는 원리금 상환을 많이 하고, 시황이 좋지 않을 때는 원리금 상환을 적게 하거나 유예하는 금융계약이 해운산업에 적합한 금융구조이다. 지금과 같이 해운산업을 일반적인 위험관리의 틀에서 취급할 경우 시황이 좋을 때는 선박에 과잉투자되고, 시황이 좋지 않을 때는 과소투자가 되는 문제가 반복될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컨테이너 해운산업은 수출입 물류 기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 해운기업이 없으면 수출입 화주는 추가적인 운임부담은 물론이고 선복의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을 우려가 크다. 즉 우리 해운기업이 영업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우리 화주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편익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십 만개가 넘는 이들 수출입 화주들이 서로 의견을 모아 우리 해운기업에게 유동성 공급을 포함한 지원을 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따라서 정책금융기관은 이 같은 해운산업의 특성을 이해하고, 선사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자구노력을 전제로 유동성 위기 등에는 다양한 지원 대책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일본 정부가 자국 3대 선사의 컨테이너 사업부 통합에 만기 연장과 이자율 인하 지원책을 약속한 것과 같이, 우리나라도 해운산업에 적합한 만기와 이자율 등의 계약조건을 지닌 금융지원이 절실하다.

마지막으로 거래 파트너와의 상생 협력 이외에도 해운산업 내의 선사 간 협력 또한 보다 확대되고 강화되어야 한다. 올해 초 현대상선과 장금상선, 흥아해운은 HMM+K2 컨소시움을 결성하고 아시아 역내 시장에서의 협력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참여 선사 간 상생 협력을 실천하고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모습이다. 이들 선사 이외의 우리 국적 컨테이너 선사들도 선복교환, 공동운항 등의 협력을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선사 간 협력은 공동배선을 통해 선박자본비용을 낮출 수 있고, 낮은 원가 수준에서 서비스 범위를 크게 늘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아시아 역내 시장의 경쟁이 가열되고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두면 이 같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선사 간 협력이 더욱 절실하다. 정부도 우리 국적 컨테이너 선사 간의 상생 협력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일본처럼 협력에 참여하는 선사들에게는 만기연장, 이자율 인하 등의 지원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네 가지 영역에서 민간 주도의 상생 협력 노력을 경주하고 정부가 뒷받침을 해 나간다면 우리 컨테이너 해운산업은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산업생태계 여건이 급속히 변화하는 시대에 이 같이 기업과 정부가 서로 보완점을 찾아 꾸준히 정책과 전략을 개발하고 추진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선사, 화주, 금융, 조선 등의 민간 부문이 참여하는 국가 해운정책 의사결정기구로서 ‘해운산업발전위위회’와 같은 민관 협력의 가버넌스를 구축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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