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법상 낭비된 비용(wasted expenditure)과 기대이익 상실로 인한 손해와의 관계

 -대법원 2016. 5. 27. 선고 2014다67614 판결1)-
 

 
 

Ⅰ. 사안의 개요
(1) 원고는 2005. 12. 8. 피고 D와 사이에, 피고 D가 관리·운영하는 광양항 컨테이너 부두(이하 ‘이 사건 컨테이너 부두’라고 한다)에 관한 이용계약(이하 ‘이 사건 터미널이용계약’이라고 한다)을 체결하였다. 이 사건 터미널이용계약은 제21.1조에서 ‘피고 D는 이 사건 컨테이너 터미널이나 그가 주의·보호·관리하는 범위에서 발생하는, 원고가 소유·운항 또는 조종하는 선박, 화물, 컨테이너 및 그와 관련된 장치에 대한 지연 또는 손상에 따른 손해가 피고 D 내지 그의 고의·과실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님을 증명하지 않는 한 이에 관한 모든 책임을 부담한다’고 규정하고, 제31조에서 ‘이 사건 터미널이용계약은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하고 영국법에 따라 해석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2) 원고는 2006. 11. 24. 등록선주로부터 ‘MM호(이하 ‘이 사건 선박’이라고 한다)’를 1일 용선료 23,450달러에 정기용선하여 컨테이너 화물의 운송에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 사건 선박이 싱가포르, 대련 등을 거쳐 2007. 10. 20. 광양항에 입항하자, 피고 D는 항만공사로부터 임차한 이 사건 크레인 등을 사용하여 이 사건 선박에 컨테이너의 양화·적화작업을 실시하였다.

(3) 이 사건 선박은 광양항을 출항하여 부산항, 탄중, 수에즈 운하를 거쳐 포트사이드, 피레우스, 콘스탄자, 일치체프스키 등으로 운항하면서 컨테이너를 운송할 예정이었는데, 이 사건 선박이 2007. 10. 20. 14:20경 광양항을 출항하려 하자 피고 D 소속 운전기사는 선박이 출항할 수 있도록 양화 및 적화작업에 사용된 이 사건 크레인의 붐boom대를 원위치로 올리려고 하였고, 그 과정에서 붐대가 이 사건 선박 위로 추락하는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하였다.

(4) 이 사건 사고 당시 이 사건 선박에 적재되어 있던 총 1,854개의 컨테이너(이하 ‘이 사건 컨테이너’라고 한다)는 각각 선적항, 양하항 및 운임이 달리 정해져 있었는데, 원고는,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한 2007. 10. 20. 14:20경부터 이 사건 선박의 수리가 완료된 2007. 11. 13. 23:30경까지(이하 ‘이 사건 선박의 불가동기간’이라고 한다) 이 사건 선박의 운항이 불가능해지자, 이 사건 컨테이너를 원고가 운항하는 다른 3척의 대체선박(이하 ‘이 사건 대체선박’이라고 한다)에 환적한 후 이를 운송하고 운임을 수령하였다.

(5) 이 사건 사고로 원고에게 총 미화 1,339,140달러(용선료 571,711달러 + 선체수리비 363,483달러 + 컨테이너 손상 66,153달러 + 수리기간 중 연료비 292,405달러 + 선원들 초과수당 3,317달러 + 선박관리회사 수수료 14,666달러 + 검정조사비 27,40
5달러) 및 59,046,957원(환적비 25,303,976원 + 화물폐기비용 16,660,000원 + 본선 청소비 10,730,000원 + 청수공급비용 1,344,000원 + 검정조사비 5,008,981원) 상당의 손해가 발생하였다.
 

Ⅱ. 문제의 소재
이 사건에서 ① 선박의 불가동기간 동안 원고가 지출한 용선료는 영국법상 ‘낭비된 비용’에 해당하여 피고 D의 배상책임이 인정되는지 여부, ② 선체수리비, 컨테이너손상, 수리기간 중 연료비, 환적비, 화물폐기비용, 본선 청소비, 청수공급비용, 선원초과수당, 선박관리회사 수수료 및 검정조사비 등은 이 사건 사고로 인하여 비로소 원고에게 발생한 손해 내지 그 손해의 회복을 위해 지출된 비용으로서 이 사건 컨테이너 부두에서 원고가 운항하는 선박, 화물 또는 컨테이너에 대한 손상에 따른 현실적인 손해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되었다.2)
 

Ⅲ. 영국법상 계약위반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
1. 의의

영국법상 계약위반이 있는 경우 피해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피해자가 손해를 증명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명목적 손해배상(nominal damage)를 받을 권리가 인정된다.3) 손해배상을 지배하는 원칙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손해배상의 목적은 원고의 손해를 전보해준다는 것이다.4)
 

2. 배상받을 수 있는 손해의 종류
가. 기대expectation

영국법상 계약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은 계약이 정상적으로 이행되었더라면 당사자가 있어야 할 상태로 만들어 주는 계약당사자의 이행이익을 보호하는 것이 원칙으로,5) 이는 계약이 이행되었더라면 채권자가 장래에 얻을 수 있었던 기대이익의 상실로 인한 손해의 배상 및 채무자의 계약위반의 결과 채권자가 실제로 입게 된 현실적인 손해의 배상을 포함한다.
그리고 계약이 이행되었더라면 채권자가 얻을 수 있었던 장래의 기대이익이 상실되지 않았거나 상실된 이익을 증명할 수 없는 경우에는, 채권자가 계약을 준비·이행하면서 지출한, 채무자의 계약위반으로 ‘낭비된 비용(wasted expenditure)’을 기대이익의 상실로 인한 손해액으로 배상받을 수 있다.6)
 

나. 신뢰reliance
원고는 기대이익을 청구하는 대신 계약을 믿고 지출한 비용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를 통하여 원고는 계약이 체결되지 않았다면 있었을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먼저 원고가 계약을 이행하기 위하여 비용을 지출하는 경우에 피고가 채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면 그 비용을 신뢰비용으로서 배상청구할 수 있다. 계약체결 후에 지출한 비용이 신뢰이익으로서 배상청구할 수 있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계약체결 이전에 지출한 비용(pre-contract expenditure)도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7)
 

다. 원상회복restitution
원상회복의 청구는 원고가 계약상 의무를 이행하여 피고에게 이득을 준 경우 그 이득 또는 그 이득의 가치의 반환을 청구하는 구제방법이다. 원상회복 청구권의 목적은 양당사자를 계약이 체결되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있었을 위치로 환원시키는 것이다.
 

3. 구제수단의 선택
가. 원고의 선택권

피고가 계약을 위반한 경우에 원고는 손해배상으로 기대이익 또는 신뢰이익의 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고, 원상회복을 청구할 수도 있다. 계약을 해제하였다고 하여 손해배상이 배제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 구제수단들 사이의 관계가 명확한 것은 아니다.
기대이익, 신뢰이익, 원상회복을 청구할 수 있는 경우에, 그들 중에서 어떤 구제수단을 선택할 것인지는 원고에게 달려있다. 피고는 원고가 선택하지 않은 다른 구제수단을 이용하라고 주장할 수 없다.
원고가 기대이익을 증명할 수 없는 경우, 불리한 계약을 체결하여 계약이 이행되더라도 순이익을 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기대이익 대신 신뢰이익의 배상을 청구하려고 할 것이지만, 이에는 다음과 같은 한계가 있다.
 

나. 신뢰이익의 한도
원고가 구제수단을 선택하는 데는 일정한 제한이 있다. 피고가 계약을 위반한 경우에 원고가 세 유형의 구제수단을 항상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원칙적으로 원고는 항상 기대이익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청구를 하려면 기대이익을 증명해야 한다. 원고가 이를 합리적인 정도로 확실하게 증명할 수 없다면, 신뢰이익과 원상회복만을 청구할 수 있다.8)
판례에 의하면, 원고는 신뢰이익과 기대이익 중에서 하나만을 선택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9) 그러나 계약이 이행되었더라면 원고가 받을 수 있었던 총수익을 넘는 지출비용에 대해서는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지출비용이 원고의 기대이익을 초과한다는 것이 증명되면 기대이익의 한도에서만 지출비용의 배상이 인정된다. 원고가 지출한 모든 비용을 청구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원고가 손해를 보는 불리한 거래를 한 경우에도 피고에게 그 손해를 전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10)
 

다. 중복배상의 금지
기대이익, 신뢰이익과 원상회복을 함께 청구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 영국법의 태도가 명확한 것은 아니다. 계약이 이행되었더라면 있었을 상태로 만드는 것(기대이익의 배상)과 계약이 체결되지 않았더라면 있었을 상태로 만드는 것(원상회복과 신뢰이익의 배상)이 동시에 청구할 수는 없다.11)

라. 소원성疎遠性의 법리(Remoteness Rule)
소원성의 법리란 계약위반과 손해간의 인과관계 존부에 의하여 손해배상범위를 결정하는 것으로, 대륙법의 상당인과관계설과 유사하다. 소원성의 법리는 계약위반으로 인한 특별손해에 대한 손해배상의 범위가 통제 불가능하게 확대되는 것을 지양하기 위해 손해배상범위의 일반적 제한 원칙으로서 고안된 것이나, 영미법원은 불법행위로 인한 특별손해의 경우에도 공통적으로 적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즉 소원성의 법리는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의 근거가 채무불이행인지 불법행지인지를 불문하고, 피고가 의도하지 않은 손해(non-deliberate damage)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에 적용되는 공통된 일반원칙이 된다.12)

영국 계약법상 손해배상액은 예견가능성에 기초한 소원성의 법리에 따라 산정된다. 즉 계약체결시점에서 계약당사자가 계약 위반의 결과로서 합리적으로 예견할 수 있는 손해는, 소원한 손해가 아니므로 계약위반자는 그 손해를 전부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13) Hadley v. Baxendale 판결에 따라 손해배상 산정기준에 관한 두 가지 원칙이 확립되었다. 즉 계약위반자는 ① 계약위반으로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하였다고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간주되는 손해를 배상하거나, 또는 ② 계약체결시점에서 계약당사자가 계약위반의 개연적 결과라고 합리적으로 예견한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14)
 

Ⅳ. 대상사안의 검토
1. 용선료 상당액에 대한 손해배상책임
가. 기대이익의 증명불가

이 사건 사고 당시 이 사건 선박에 선적되어 있던 총 1,854개에 달하는 이 사건 컨테이너는 컨테이너마다 선적항, 양하항 및 운임이 각각 달리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 사건 선박의 불가동기간 동안 원고가 이 사건 선박에 적재된 컨테이너의 운송으로 얻을 수 있는 운임 및 그 운송에 소요되는 비용을 정확히 증명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 기간 동안 원고가 이 사건 선박의 운항으로 얼마만큼의 기대이익을 얻을 수 있었는지 여부를 증명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 원고는 이러한 기대이익 대신 이 사건 선박의 불가동기간 동안 자신이 지출한 용선료를 피고 D에게 ‘낭비된 비용’으로 청구할 수 있다.
 

나. 원고가 수령한 운임
원고가 예정된 운임을 수령하였다 하더라도, 이러한 운임은 이 사건 선박의 운항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이 사건 사고 후 이 사건 대체선박의 운항으로 얻은 것이므로, 이 사건 선박의 불가동기간 동안 원고가 이 사건 선박 운항으로 수입을 얻을 기회를 박탈당한 일실이익 내지 기대이익 상당의 손해는 원고가 취득한 운임으로 상쇄 내지 전보된다고 볼 수 없다.15)
 

2. 용선료 이외의 손해항목
가. 낭비된 비용이 아님

용선료 이외의 손해항목들, 즉 선체수리비, 컨테이너손상, 수리기간 중 연료비, 환적비, 화물폐기비용, 본선 청소비, 청수공급비용, 선원초과수당, 선박관리회사 수수료 및 검정조사비는 원고가 이 사건 터미널이용계약을 준비·이행하기 위하여 지출한 비용이 아니라, 이 사건 사고로 인하여 비로소 원고에게 발생한 손해 내지 그 손해의 회복을 위해 지출된 비용이므로, 영국법상 ‘낭비된 비용’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나. 현실적인 손해
선체수리비, 컨테이너손상, 수리기간 중 연료비, 환적비, 화물폐기비용, 본선 청소비, 청수공급비용, 선원초과수당, 선박관리회사 수수료 및 검정조사비는 이 사건 컨테이너 부두에서 원고가 운항하는 선박, 화물 또는 컨테이너에 대한 손상에 따른 현실적인 손해로서 이 사건 터미널이용계약 제21.1조에 따라 피고 D는 그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
 

Ⅴ. 대상판결의 의의
대상판결은, 영국법상 계약이 이행되었더라면 채권자가 얻을 수 있었던 장래의 기대이익이 상실되지 않았거나 상실된 이익을 증명할 수 없는 경우에는, 채권자가 계약을 준비·이행하면서 지출한 용선료 상당액을 채무자의 계약위반으로 낭비된 비용(wasted expenditure)으로 보아 기대이익의 상실로 인한 손해액으로 배상받을 수 있지만 용선료 이외의 손해항목은 영국법상 낭비된 비용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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