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초 새로 부임한 L 장관이 해운계의 소리를 들어보고 싶다는 요청이 있었던 모양.
해운업계, 학계, 항만분야 대표등 몇 명 속에 객관적 의견을 이유로 당시 모 국장의 요청으로  세종시에 간 적이 있다. 약 두 시간에 걸친 합동 논의(?)가 있었고 좋은 제안들도 다수 포함되었던 기억이다. 신임장관이 무언가 해운계를 위해 큰 그림을 그려줄 것으로 기대를 갖고 돌아왔으나 며칠후 남해안 어느 수로에서 발생한 선박사고로 인해 비록 짧은 재임기간이었지만 기대를 모았던 그분은 텁수룩한 수염 속에 어느 항 포구에서 유족들의 아픔을 위로해 주던 모습밖에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씁쓸한 여운을 남긴 체 빈손으로 해운계로부터 멀어져갔다.

그 사고로 온 국민이 심한 후유증을 겪었고 해운업계는 언제부터인가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무뢰배 취급을 받는가 하면 주무부처는 이런 저런 이유로 혹독한 고초를 치러야 했다. 사고 여파가 아직도 미 수습된 상태인데 금년 3월 말 브라질 외해에서 발생한 인명사고까지 겹치자 남해안 사고 신드롬인지 주무부처가 점점 외항 해운계와 거리를 두려한다는 뒷말들이 회자되면서 결국 해난사고 처리가 관련법이나 관행과는 별개로 진행되어도 한국해운계는 유구무언의 처지에 놓이게 되었고 선주들은 해난사고 이후의 후폭풍에 대해 공포증까지 갖게 되었다.

통계에 의하면 전세계 항공, 철도, 선박중 안전도면에서 선박이 3위라고 하며 페리사고로 인한 인명손실이 매년 약 3,000명 정도로 항공대비 약 4배에 달한다고 한다. 크고 작은 도서를 갖고 있는 반도국가로서 당연히 유념하여야 할 사항이지만 지난 50년간 사고 다발국가의 최상위국을 보면 방글라데시, 콩고, 인도네시아, 필리핀 그리고 탄자니아 순으로 대형인명사고의 발생지가 주로 개발도상국들이다.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유추하기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난 9월 동경에서 개최된 세계 해상보험자들의 모임IUMI에서 남해안 인명사고가 거론되면서 OECD 회원국에서 그러한 사고가 발생한데 대하여 다소 듣기 민망스러운 언급까지 나왔다.
 해상사고와 관련된 세미나가 종종 개최된다. 얼마전 서울에서 개최되더니 이번에는 부산에서 ‘인적과실에 의한 해양사고’ 에 대한 세미나 안내문이 왔다. 안내문을 보니 해양사고의 절대적 비중이 인적과실에 의해 발생한다고 되어있는 것까지는 이해가 되지만 그 인적과실이 마치 전적으로 선원들에 의한 것인 것처럼 표현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공감하기 어렵다. 더구나 객관적으로 바다를 잘 알고 또 그럴 것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는 분들로부터 그런 주장이 나오고 있기에 더욱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과연 모든 해상사고가 선원들에 의한 선상과실에서 비롯된 것인가.
 

사고의 원인
모든 사고의 원인을 조사해보면 어느 특정 시점에서 발생한 단 한가지 원인에 의해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는 없다. 무릇 모든 사고는 순간적인 실수나 판단착오에 의해서만 발생되는 것이 아니라 상당기간 잠재상태로 누적되어온 대소의 잘못들이 일정 한계점을 초과할 경우 실수를 초래하고 판단착오를 유발시키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는 것이며 이는 과거 수많은 사고들의 분석과 검증을 통해 확립된 결론이다. 사고가 발생하기까지는 여러 가지 에러error들이 사슬을 이루며 누적상태로 잠재하고 있다가 마지막 어느 한 순간의 실수를 통해 표면화 되는 것으로 이러한 연결고리를 인과관계의 사슬이라고 한다.

장기간에 걸쳐 발생한 대형사고를 분석한 전문가들은 인과관계의 사슬을 논함에 있어 사고의 원인을 사고와 시간적으로 가장 근접해 있는 원인인 즉발적 실수(active failure)와 사고 시간과는 시간상 거리가 멀지만 근본적인 원인에 해당하는 잠재적 실수(latent failure)의 두 가지로 대별하고 있다. 즉발적 실수라 함은 인과관계 사슬의 맨 마지막 단계 혹은 끝부분에서 나타난 실수로 가장 쉽게 포착 될 수 있고 실수의 내용이 단순하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이 실수를 사고의 원인으로 판단하여 문책하는 것이 보통이다. 외관상으로는 사슬의 맨 마지막 단계에서 나타난 실수 즉 즉발적 실수가 사고를 일으킨 것처럼 보일 수 있을지 모르나 잠재적 실수 그 자체가 후일 즉발적 실수를 범하도록 하는 여건을 조성하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그 이면에 내재하는 잠재적 실수가 더 큰 위협threat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당직 항해사가 깜박 졸다가 선박이 충돌하였을 경우 ‘졸음’을 즉발적 실수(active failure)라고 한다면 당직중 졸게 된 배경과 그 원인(정박당직, 인력부족, 빈번한 입출항 작업, 과도한 작업량등으로 인한 피로와 과로등)을 잠재적 실수(latent failure) 라고 한다.
 

선원의 실수와 육상의 폐습
마크 트웨인(Mark Twain)이 말했듯이 인간은 미완의 피조물이기에 (Man was a creature made at the end of week when God was tired)실수를 범할 수 있다. 선원들도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이기에 바다에서의 사고도 완전히 근절될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선원에 대한 처벌이 지금보다 3~4배 강해진다고 해서 선원들에 의한 실수나 태만이 크게 줄어들지는 않는다. 그들의 과실은 ‘완벽할 수 없는 사람이기에’ 범하게 될 뿐 아니라 그 저변을 살펴보면 실수를 유발 할 수 있는 기본환경을 조성한 책임은 선원들 자신보다는 육상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다.

안전관리 차원에서 더욱 유념해야 할 사실은 대부분의 잠재적 실수는 현장 실무 근로자보다는 조직의 상위에 있는 관리직(매니지먼트), 즉 고위층의 의사 결정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이다. 선박을 구입한 당사자, 보수 정비 관리자, 운항 스케쥴을 정하고 운송화물을 선택하고 선적량을 정하는 사람 모두가 실질적으로 육상조직이다. 따라서 사고 원인조사의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서 사고 직전의 실수나 판단착오(이를 즉발적 실수)만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더 나아가 그러한 실수나 착오의 근원이 되는 근본적인 원인(root cause)을 규명하고 이 양자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 조사하고 분석해야 한다.

선박이라고 하는 공작물工作物 자체의 문제(ship failure 라 함)가 더 심각한 사고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세계 최대 클럽인 UK P&I Club의 분석에 의하면, Ship failure는 ①선박의 강도와 구조(ship‘s fabric)등 강력상의 문제(structural failure) ②주기(main engine)나 조타기기(steering gear)등 동력장치의 문제(mechanical failiure) ③항해장비등 선교(bridge) 장비의 문제(equipment failure)등 세가지 유형으로 대별되며 이들로 인한 사고는 대체적으로 대형사고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이상의 세가지 문제도 선원의 과실로 발생하는 것인가? 마모되어버린 햇치 커버(hatchcover)의 패킹을 제때 교환하지 않아(시간과 수리비를 절약하기 위해서) 발생한 선창(hold)의 침수, 보수 정비 소홀로 인한 선체의 균열, 정시성을 이유로 한 무리한 태풍 돌파, 선원비 절감을 위해  질 낮은 선원을 채용하고, 정비를 소홀히 하여 선박을 기준미달선(sub-standard)상태로 방치하는 매니지먼트의 의사(decision)등이 바로 이러한 잠재적 실수, 폐습의 표본이다. 이러한 고질적인 폐습은 질병처럼 조직의 시스템 이면에 가려진 상태로 수년간 잠복하기 때문에 폐습이 잠재하고 있는 한 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단지 시간 문제일 뿐이다.
 

운전자와 사업자
얼마전 창원 터널근처에서 대형트럭화재 사건이 발생했다. 원인에 대해서는 대체로 중량제한기준 5.5톤에 대해 7.5톤을 적재한 과적, 고박부실 등의 적재함 관리소홀, 사고다발 경력의 고령 운전자, 열악한 근무여건 등 주로 화물차 사업자 측의 과실이 거론되고 있다. 종종 발생하는 광역대형버스 사고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현장에서 나타나는 운전자의 과실들은 차선위반, 속도위반, 신호위반 등의 도로교통법 위반이고 그 이면에는 예외없이 과로와 브레이크 파열등 정비불량이 있다. 과적(overstowage), 고박(lashing & securing)불량, 부적격 운전자(poor manning), 과로(fatigue) 등의 해양사고에서도 흔히 거론되는 원인들이다. 육상의 도로교통법 위반은 해상에서의 항법위반과 동일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도 트럭, 버스, 철도 등 사고를 조사함에 있어 운전자 개인보다는 사업자 즉 법인의 위법행위, 정비소홀이나 열악한 근무환경 등에 조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고 그런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당연히 사업자 입장에서는 운전자의 처벌 여부보다는 사고의 규모와 원인 여하에 따라 곧 사업의 존폐와 직결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게 되고 그러한 인식이 강하면 강할수록 예방에 대한 주의의 정도도 크기 마련이다. 이러한 현상은 곧 사고방지를 향한 지름길이자 원인조사의 궁극적 목표다. 도로사고에 대한 조사의 심도가 여기까지 이르렀는데 선박사고는 어떤가. 혹시 아직도 운전자 처벌에만 주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Profitability vs Safety
육해상을 막론하고 ‘안전’이란 시간time과 비용cost을 들이지 않고서는 확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윤창출이 지상과제인 기업은 매출revenue은 최대화하고 시간과 비용은 최소화하려는 속성이 있다. 매출신장에는 한계가 있지만 안전과 직결된 시간과 비용은 어느정도 매니지먼트가 통제할 수 있다. 굳이 전자장비, 디지털화, 4차 산업혁명 등을 꼽지 않더라도 해사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컨테이너선박의 Bay plan을 지금도 일등항해사가 작성하는가?. 40만톤급 초대형 광탄선의 경우 선적할 물량의 엄청난 무게와 선체의 종강력과 횡강력에 미칠 응력stress을 감안한 선창별 물량배정, 선적 순서와 속도 등을 반영한 적부계획의 수립은 더 이상 일등항해사의 수작업에 의존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교과서적으로, 법적으로는 이와 관련된 제반 권한이 선주와 선장에게 있고 선장은 선주를 대리한다고 되어있는 한 명목상의 모든 책임은 선장에게 집중되어 있다. 과연 선장에게 그러한 권한이 주어져 있는가? 혹자는 70~80년대 교과서에 바탕을 두고 혹은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법조문을 들어 모든 선박의 적부(stowage), 출항준비, 안전항해 등이 선장을 포함한 선원의 책임이라고 주장한다. 고속버스 운전자의 역할은 정해진 시각에 운전석에 올라 운전을 해서 정해진 목적지에 도착시키는 것이 주 임무다. 물론 고속도로 운행중 발생한 긴급사태(first-aid treatment)에 대해서는 자신의 능력껏 보살피는 것은 있을수 있으나 그 이상의 역할을 기대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교과서적, 법적 규정을 떠나 현실은 해상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동화, 디지털화 등 첨단산업이 자리한 현대해운에서 선원의 역할은 화물관리, 안전관리와 관련된 역할은 점차 보조적 역할로 축소되는 반면 주 임무는 예고된 시각에 A 항을 출항하여 정해진 시간에 목적지 B 항에 도착시키는 것이 운전자(driver, navigator)의 역할로 전환되고 있다. 일등항해사가 적부계획서(stowage plan)를 작성하고 이에 근거하여 자신의 재량으로 기항지별로 스페이스를 배정하고 필요 시에는 선적이 예정된 화물도 취소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물론 법제가 현실을 따라오는데는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나 최근 해사사건의 판례는 구시대 법조문의 자구해석보다는 급변하는 해사산업의 환경과 현실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외국의 사고 조사제도
육해공을 구분할 것 없이 사고의 객체인 선박, 트럭, 철도 비행기를 제작, 정비 보존하고 관리하는 주체, 이를 조종하는 주체도 모두 사람이다. 사고가 발생한 장소, 그 형태와 규모가 다를 뿐 육해공 전분야에 걸쳐 사고의 원인이자 책임의 주체는 사람, 곧 인적과실이다. 철저한 원인 조사를 통해 재발을 방지하는 것이 조사의 최우선 목표라면 선원의 과실은 물론 시간과 비용을 통제하는 육상조직내에 잠재되어있는 폐습을 찾아내어 근본적인 원인을 먼저 제거하는 것이 현장의 실수나 판단착오보다 더 중요하다.
선진국가들이 운수사고의 원인을 조사하고 재발방지책을 담당하는 기관을 운영함에 있어 육해공 구별없이 통합관리하고 있는 것도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은 운송모드mode 여하와 관계없이 바로 사람의 문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해양사고의 원인을 조사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필요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이 있다. 과연 현 시스템이 합목적적으로 기능하는데 부족함이 없는지, 그리고 외국의 시스템은 어떤지 검토해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미국의 NTSB : 미국에는 1967년 대통령 직속기구로 설립된 육해공사고 조사를 전담하는 NTSB(National Transport Safety Board)가 있다. 일단 사고가 발생하면 NTSB 주관으로 육해공 구분없이 즉시 팀을 구성하여 조사에 착수하며 국민, 정치권 모두가 그 결과를 존중한다. 2013년 7월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발생한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사고와 관련하여 NTSB, 미 연방항공청(Federal Aviation Administration), 항공기제작사Boeing등으로 구성된 사고조사단이 그해 7월 말 약 열흘간 아시아나 항공본사를 방문하여 사고조사를 시행한 바 있다.
 

-일본의 JTSB : 일본의 경우 1949년(쇼와 24년) 6월 1일 해난 심판청이 설립되었고 1974년(쇼와 49년) 1월 11일자로 국토교통성의 심의회로 항공 철도사고 조사위원회가 설치되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사고조사의 효율성과 사고조사체계의 개선을 위해 2008년(헤이세이 20년) 10월 1일 해난심판청과 항공 철도사고 조사위원회를 통합하여 일본운수안전위원회JTSB를 설치하고 해난심판청과 JTSB간 업무분장을 조정하였다
 

JTSB는 육해공 운수분야 전체를 그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당연히 해양사고도 그 관리 범위 내에 있다. 다만 일본의 해양심판소는 선원의 과실에 대해서만 조사하고 필요시 해당선원에 대하여 행정제제를 하지만 사고의 원인조사업무는 JTSB가 전담하고 있다. JTSB에는 조종사, 선장, 기관장등 육해공 운수분야의 전문가(분야별 2명 정도)를 포함, 13명(2017년 기준)의 위원(board member)이 있고 법률가, 공학박사, 심리학전문가 등 원인조사에 필요한 분야별 전문가들이 포진하고 있다. 조직 상으로는 일본 국토교통성MLIT 산하로 되어 있지만 위원 13명은 전원 양원(중의원과 참의원)의 승인을 득하여야 한다. 따라서 JTSB의 조사위원들은 국회의 승인을 통해 정치권과 국민으로부터 조사권한을 수임한 만큼 조사기능이나 결과에 대해서는 정치권에서 이의를 제기할 명분이 없을 뿐 만 아니라 실제 JTSB의 조사결과에 대해 정치쟁점화 된 적이 없다. 물론 조사의 원활한 수행을 위하여 법원에서 JTSB의 조사기록을 인용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손해배상사건에서 부지런한 해상사고 담당 변호인들이 조사결과를 외면할 리가 없다. 우회적으로 간접적으로 공격과 항변의 자료가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JTSB의 필요성이 부각된 것도 일본해양심판원의 선원에 편중된 반쪽짜리 조사결과가 그 일인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한국의 조사제도
우리는 육상과 항공을 관장하는 철도 항공 안전위원회가, 해양사고의 원인을 조사하는 해양안전심판원(해심)이 따로 있다. 조직상으로 전자는 현 국토교통부, 후자는 해양수산부 산하로 되어 있으며 해심과 별개로 안전관리부서가 해수부 조직 내에 있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할 경우 해심은 물론 해수부 역시 책임의 범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고의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더라도 해양수산부는 해양사고가 발생할 경우 사고의 실상을 공개하고 조사결과를 국민앞에 공개하여야 할 책임이 있다 보니 여론의 주목을 받기 마련이고 규모에 따라 사고의 후폭풍에 휘말릴 수 있다.

2014년 남해안에서 발생한 대형 인명사고가 초래한 후폭풍을 온 국민이 경험한 가운데, 그 사고로 인해 주무부서는 중앙부처로서 지켰어야 할 위상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결국 그 피해는 한국해운업계로 이어졌다. 문제는 조사의 한계이고 조사에 대한 신뢰도다. 더구나 사고가 정치쟁점화될 경우 그 파장은 예측불허일 뿐 아니라 기본적으로 시스템 자체가 신뢰도를 결여할 경우 아무리 전문가 집단이 매의 눈으로 조사하고 분석했더라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진다는 보장이 없다. 그렇다고 대형사고 때마다 사고원인 여하와 별개로 주무부처의 위상이 흔들린다는 것은 모두에게 바람직 하지 않다. 조사기구는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공정성, 신뢰성과 함께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하며 그런 의미에서 행정부서와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사제도의 확대 개편
해양사고의 예방을 위해서는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안전문제를 타협하고 있는 현상을 외면한 채 인적과실이라는 이름하에 해양사고의 원인을 전적으로 선원의 책임으로 귀결시키려는 현 제도는 개선되어야 한다. 선원의 실수나 착오는 인간이기에 사라질 수 없는 대상이지만 사고의 근본적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의도적인 폐습은 개선될 수 있고 또 개선되어야 한다. 사고원인 조사가 전방위로 이루어지고 그 결과에 따라 단계적으로 사고의 원인을 해소해 나간다면 다소 시간은 걸리더라도 해양사고는 감소될 것이며 선진 해운국들이 취하고 있는 접근방식도 바로 이런 것이다.

미국의 NTSB처럼 대통령 직속기구로 독립하든지 혹은 일본처럼 철도 항공 선박을 통합한 안전위원회가 되든지 어떤 경우든 현재 해심의 기능이 조정되거나 기능일부가 별도 조직으로 독립될 경우 그 합리성 여부와는 별개로 현 주무부처의 입장에서는 조직의 기능이 부분적으로 축소될 가능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해양사고의 재발방지를 위한 전 방위 원인조사가 행하여지고 그로인해 해양사고를 줄일 수 있다면 이 또한 바람직한 것이며 더구나 과거의 몇 차례 사고에서 경험하였듯이 언제 발생할지 예측 불허의 해양사고로 인해,  해운·항만·수산행정을 총괄하여야 할 중앙부처가 과도하게 여론의 비판 대상이 되는가 하면 주무부처의 위상이 흔들리는 것은 관련 산업계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해양사고 업무의 이해관계자인 해양수산부도 안전관리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한 해수부 자체가 사고의 원인이 될 수 있으며 안전관리 운영상의 과실이 원인이 되거나 기여하였다면 조사기구가 해수부를 상대로 안전을 위한 권고를 발하고 그 이행여부를 감독해야 하는데 해양수산부의 영향이 절대적인 현 체계하에서는 객관적인 조사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실제 우리나라에서도 2013년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P의원(현 정부 대변인)이 항공철도사고 조사위원회를 국토교통부에서 독립시키고 여기에 해상사고를 통합시켜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받는 독립적인 사고조사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조사제도 개선과 장애요인
안전과 직결되어 있는 시간과 비용을 통제하는 육상조직의 관리에 문제가 있다면 사고 예방을 위하여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육상에 대한 조사는 해기적 영역을 뛰어넘어 안전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의사결정의 전 과정, 곧 법인의 경영활동 분야 전반을 대상으로 할 수 있음으로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물론 법인의 과실, 태만, 위법한 행위나 의사결정을 조사해서 노출시키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것만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자기성찰을 요하는 것으로 Top down 형식의 강력한 의지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여기에도 나름의 위험부담이 있고 불편함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첫째는 접근성의 한계다. 선원의 경우는 관련법상 사고가 발생하면 보고하도록 되어있고 보고를 접한 당국이 관련 선원을 소환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법인의 경우에는 형사적 사건이 아닌 한 당국이 조사를 이유로 소환하는 것도 용이치 않을 뿐 아니라 해심이 현 체제 하에서 사고원인 조사를 이유로 유관기관이나 법인에 대해 자료제출을 요구하거나 소환하는 전례도 없었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두 번째는 사실관계의 파악이 어렵다. ISM 제도가 시행되고는 있지만 육상의 제반절차가 문서화되어 있지 않는 한 누가 어느 과정에서 어떤 의사결정을 했고,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그러한 절차가 공개리에 투명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한 용이한 것이 아니다.   

세번째는 그러한 조사 결과가 법인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이 치명적일 수 있다. 현행 법제하에서는 해사사고로 인한 손해와 관련하여 책임주체의 배상책임에 관한 한 그것이 운송인의 책임이든 선주로서의 책임이든 광범위한 면책제도와 책임제한 제도가 있다. 즉 항해과실(error in navigation)로 인한 손해에 대해서는 면책을,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에는 책임제한(limitation of liability)을 허용하고 있다. 즉 선원의 항해와 관련된 과실에 관한 한 그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그로 인한 배상책임으로부터 선주 혹은 운송인을 보호하는 반면, 선원의 항해상의 과실과 달리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목적하에 행하여진 상사과실商事過失에 대해서는 그러한 면책이나 책임제한을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사고방지를 위해 육상과 해상을 망라한 전 방위 원인조사도 중요하지만 그 결과가 상사과실로 판명될 경우(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면책 부인, 무한책임 등 그로인해 선주 혹은 법인이 감당해야할 부담도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부담을 이유로 해양환경 파괴와 재산 및 고귀한 인명의 희생을 초래하는 해양사고의 예방이라는 사회적 책무를 소홀히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결언
‘The elephant in the room’ 이란 모두가 알고 있는 문제지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선뜻 꺼내어 해결하려 하지 않는 문제를 의미한다. 해상사고의 원인이 인적과실인 것은 인적과실의 주체가 선원이라는 고정관념에서 선원들의 실수나 착오가 마치 사고를 유발한 원인의 전부인 것처럼 속단하는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해양사고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해상근무 기피현상으로 인한 구인란을 해결하기 위해 이른바 ‘선원직 매력화(?)’ 라는 구호가 해운계에서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매력화의 구체적 수단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최소한 진실 이상으로 사고의 모든 책임을 선원들에게 전가시키는 ‘잘못된 관행’은 중단되어야 한다. 이는 사고조사의 기본 취지에도 반할 뿐 아니라 선원들의 사기와도 직결된 문제다. 생업에 쫓기고 있는 선원의 입장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기 보다는 ‘내가 떠나면 그만이지’ 하는 마음으로 쉽게 포기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선원들의 속성이 그들에게 사실 이상의 책임을 지우는 행동을 정당화 할 수는 없다.

현 조사제도와 관련하여 ⓐ해양사고의 원인이 선원의 과실이 주가 아니라 현장의 실수를 유발케 한 육상의 누적된 폐단이 우선 개선되어야 할 대상이라는데 이의가 없다면 ⓑ해양안전심판원의 조사대상이 선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육상관리 층의 폐습을 조사하고 개선시키는데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조사의 원인이 유사사고의 재발방지에 있다면, 우리의 현행 시스템에는 개선해야할 영역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원인조사는 객관성, 전문성, 신뢰성이 확보 될 수 있는 제3의 조사기구에 맡기고 주무부처에서는 원인조사의 결과에 따라 관련법이나 규제를 보완하고 선원의 과실에 대한 행정제제는 해심에서 관장한다면 해수부의 업무부담이 대폭 완화될 수 있을지 모른다. 미국의 NTSB, 일본의 JTSB 등 해외의 조사체제가 바람직한 제도라는데 이견이 없다면 현 조사제도는 확대 개편되어야 하며 다소 부처간의 조직과 관할업무의 조정문제가 있더라도 그것이 효과적인 시스템 구축에 장애요인이 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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