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우리가 미국을 가려면 거의 예외 없이 알래스카를 거쳐야했다. 그런 연유로 해서 알래스카 앵커리지공항을 자연히 들르게 되어, 알래스카는 우리에게 비교적 친숙한 곳이다. 그리고 내가 환갑이 되던 해 지금부터 약 25년 전 밴쿠버에서 떠나는 알래스카 크루즈를 당시 미국에 계셨던 형님 내외와 함께 다녀온 일도 있었다. 그 때 거대한 빙산을 보고 받은 감격은 아직 내 마음속에 생생하다. 또한 일부 한국 사람들이 함경도 출신을 알래스카라고 불러, 오래전 알래스카 대학교(University of Alaska) 주최 세미나가 있을 때 알래스카주의 주도 주노에 가서 세미나에 참석하여 그곳 주지사로부터 알래스카 명예시민권을 받아 좋아했던 일도 있었다. 알래스카가 미국의 땅이 된 내력을 설명하고자 한다.

알래스카(알래스카)는 미국의 영토확장이라는 관점으로 볼 때 그 당시 미국 영토를 거의 배로 키운 일이므로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그 일을 담당한 사람은 당시 미 국무 장관이었던 시워드(W. Seward)라는 인물로, 그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알래스카를 여행하면서 가끔 눈에 띄는 단어는 ‘시워드(Seward)’이다. ‘시워드’라는 이름의 항구도시가 있고, ‘시워드 하이웨이(Seward Highway)’ 라는 고속도로도 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알래스카주 사람들이 시워드라는 사람에게 마음 속 깊이 감사의 뜻을 간직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이 알래스카는 미국정부가 1867년 3월 30일 제정 러시아로부터 720만달러를 주고 사들인 땅이다. 1에이커에 단 2센트를 주었으니, 우리가 사용하는 평수로 환산하면 1,200평에 2원을 준 셈이다. 그러나 약 150년 전의 달러가치로 환산했을 때 미국정부가 부담하기에는 그렇게 만만치 않은 돈이었을 지도 모른다. 알래스카의 구입은 미국국토 확장이라는 면에서 볼 때 그 이전 프랑스(나폴레옹)로부터 광대한 땅을 사들인 루이지애나 구매(약 1,400만달러)(1803년, 82만7,192평방미터) 못지않게 미국의 국력신장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대부분의 미국 정치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알래스카 매입을 주도한 사람은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윌리엄 시워드(William Seward)였다. 당시에는 미국이 남북전쟁(American Civil War, 1861-65) 직후에 남부의 산업화와 서부개발이라 난제가 있었기 때문에 거액을 지불하고 알래스카를 구입하겠다는 시워드의 제의에 대해 미국 의회와 언론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먼 미래를 내다보며 알래스카의 전략적 가치를 예견했던 시워드 장관은 사면초가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 땅을 구입하는데 혼신의 노력으로 성사시켰다.
당시 의회와 언론은 시워드가 사들인 알래스카를 ‘시워드의 무용지물 (Seward’s Folly)’이라고 조롱했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앤드류 존슨의 이름을 따서 ‘앤드류 존슨의 북극 곰 별장(Andrew Johnson’s Polar Bear Garden)’ 이라고까지 비난하였다. 하지만 알래스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엄청난 자원을 공급하는 원료공급기지로 진가가 부각되면서 미국 국민들은 알래스카가 단순한 하나의 주(전 미국토의 20%, 586,412sq mi)를 넘어 무한정한 전략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949년에 미국의 49번째 州로 당당히 승격되었다.

알래스카를 구입할 당시 시워드 장관은 핵무기나 핵잠수함 시대를 전혀 예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알래스카를 매입한 덕분에 불과 1세기가 지난 후 미국은 태평양을 미국의 영해처럼 사용하며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에 바탕을 둔 세계전략을 편하게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알래스카 사람들은 시워드 국무장관의 혜안이 없었더라면, 알래스카는 러시아 영토의 일부로 남아 냉전시대에 그곳에 수천기의 핵미사일이 미국을 향해 배치되었을 것이라고 상상할 때 알래스카가 미국 땅이란 사실은 정말 대단한 행운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알래스카 사람들에게 시워드는 미국 역사상 그저 유명한 한사람의 정치가가 아니라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미국 본토에서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든다면 대체로 워싱턴, 링컨, 프랭클린 루즈벨트, 레이건 대통령을 꼽지만, 알래스카에서는 시워드 장관이 당연히 1위에 오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시워드는 미국민 전체의 사랑을 받아야 마땅한 인물이다.

시워드는 앤드류 존슨 대통령 당시 국무장관으로서 알래스카 매입을 추진했지만, 그를 처음으로 국무장관에 임명한 사람은 바로 그의 정적이었던 링컨 대통령이었다. 시워드와 링컨은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경쟁자였다. 시워드는 현재 알래스카의 작은 항구도시이다. 인구 2,700명의 아담한 도시이다. 시워드 항에 정박 중인 잠수함 지원함 USS McKee 함과 핵잠수함 USS Alaska를 볼 때 알래스카의 안보상의 중요성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어진다. 우선 세계지도를 펴보면 알래스카는 러시아에 대면해서 미국과 캐나다를 확실하게 보호하고 있는 것이 믿음직하다.

시워드 장관은 사실 링컨보다 훨씬 화려한 경력을 지닌 정치인이었다. 약관의 나이에 뉴욕 주지사와 연방 상원의원에 각각 두 번씩이나 당선되었으며, 젊은 변호사 시절부터 급진적이라고 할 만큼 흑인인권 보호 등에 적극적인 인물이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지명도에서 앞서 있던 시워드에게 시골 출신의 링컨이 도전장을 던졌던 것이다. 그러나 경선에서 예상을 뒤엎고 시워드는 링컨에게 패하고 말았다. 패배 당시 시워드가 느꼈을 상실감과 자괴감은 굳이 시워드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이다.

그러나 경선에서 패한 시워드는 패배를 깨끗하게 시인하고 다음 날부터 미국 전역을 돌며 경쟁 상대였던 링컨 지원 유세에 열성적으로 나섰습니다. 이후 대통령에 당선된 링컨은 시워드를 국무장관에 임명하였다. 시워드는 국무장관으로서 링컨 정부의 남북전쟁 수행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였다. 대통령으로 손색이 없는 두 정치인이 파트너가 되어 혼란기의 내각을 이끌어 나갔던 것 참으로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시워드와 링컨 두 정치인이 미국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이유는 자신보다 화려한 정치적 경력을 가진 경쟁자를 국무장관으로 발탁할 수 있었던 링컨의 정치적 포용력 때문이다. 더욱이 개인의 이익보다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국무장관으로서 충실하게 봉사했던 시워드의 겸손한 자세와 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혜안과 판단력은 다시 한 번 칭송을 받아야 한다.

여러 면에서 특히 자유민주제 면에서 아직도 정치경험이 미숙한 우리에게 링컨과 시워드 두 사람의 삶은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시워드 장관이 알래스카를 사들인 일은 정말 역사에 길이 남을 훌륭한 일이었다고 보지만, 그보다 과거의 정치경쟁자를 그런 요직에 임명할 수 있었던 링컨 대통령의 리더십이야말로 우리 정치판에서 참고해야 할 일이다. 링컨과 시워드가 보여준 민주주의의 본은 어쩌면 시워드가 알래스카를 사들인 일보다 더 높이 평가하고 싶다.

국토의 확장과 민주적 리더십의 발휘에서 미국은 여러 가지로 축복받은 나라라고 생각한다. 다시 강조지만 미국은 좋은 선조 그리고 그들은 여러 면에서 선각자였기에 오늘날 미국은 팩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를 일세기동안 구가하고 있고, 미국 정치도 가장 본받고 싶은 자유민주제이다. 미국 정치사에서 에이브러험 링컨을 지금도 최고의 정치지도자로 존경하는 것은 당연하고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의 링컨기념관이 시내 중심부에 우뚝 서있는 것도 수긍이 가며, 링컨대통령을 지금도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로 꼽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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