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에 걸쳐 소수 대형화를 향한 사상 최대의 정기선 해운업계의 재편 1라운드가 마무리 되었지만 시장의 지배력을 강화한 3대 얼라이언스 선사들은 통폐합 작업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인식이다. 해운기업의 채산성보다는 무역상품의 수송비 절감을 더 중시하며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COSCO의 공격적인 확장 정책, 작년 말부터 재개된 컨테이너선박의 대량 발주, 임박한 환경규제로 인한 비경제선의 퇴출 등 영향으로 2020년부터 수급의 균형이 다시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컨테이너 해운시장의 침체와 재편의 2라운드가 예고되고 있다.

글로벌 컨테이너해운 시장은 3분화와 함께 재편의 윤곽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최근 선주들의 발주 성향을 통해 나타난 향후 선단의 구성은 3,000teu 급 주도의 역내 항로, 1만~1.6만 teu급의 태평양 및 남북항로, 1만 8천teu급 이상의 유럽항로로 3분될 전망이다. 지배구도는 이미 유럽형의 강력한 가족경영체제, 국영체제, 전문경영인 체제로 나누어지는 등 3대 얼라이언스, 선단의 3분화, 지배구도의 3분화가 정착되고 있다. 우리는 이들 중 어디에 속하는가?

3분화에 더해 얼라이언스 선사들 간에는 어렵게 회복한 운임 결정권과 간선항로에서의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얼라이언스의 진입장벽을 강화하는 동시에 역내항로가 근해항로 전문선사에 의해 과점되는 현상은 불허하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실제 얼라이언스선사중 다수가 역내 선사를 자회사로 두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 유럽, 미주의 3대 역내선사들의 재편 향방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전문기관의 분석에 의하면 자회사를 제외하면 역내항로별로 제3의 역내선사에게 배정될 수 있는 티켓은 2~3개에 불과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와 같은 국제시장의 흐름 하나 하나가 재건을 향해 안간힘을 쏟고 있는 한국의 원양컨테이너선사의 복원과 다수 소형화 형태로 편성되어 있는 근해항로 선사들의 진로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지금의 전망대로라면 2~3년내에 재편의 2라운드를 거쳐 원양항로는 사실상 一國一社 체제와 함께 7~8개 선사에 의한 독과점체제가 정착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시장의 재편은 발빠르게 진행되고 있는데 재건을 향한 한국해운의 행보는 더디기만 하다. 원양항로 복원이라는 총론에서는 일치하지만 각론에 들어가면 혼란스럽다. 산적한 과제와 장벽을 돌파하기 위해 일사불란한 전열 정비와 전폭적인 재정지원이 있더라도 한진사태 이전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별로 높지 않은 것이 엄중한 현실임에도 전열정비는 고사하고 민망한 국내선사간 밀땅이 지속되는가 하면 한국에서 문제가 해결되면 마치 모든 것이 해결되는 양 너무 국내 지향적이다. 과거에는 해운시장의 위기를 정부 주도하에 해결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정부가 이른바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구사하며 합리화란 이름으로 선사간 통폐합을 유도하고 웨이버 제도 등 국기차별 정책으로 한국의 수출입 물량 일부를 국적선으로 유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글로벌 경쟁시대, 특히 해운자유주의를 표방해야 할 한국의 컨테이너 해운업계의 입장에서 70년대 80년대의 발상으로 현재의 위기에 접근하는 것은 득보다는 실이 큰 시대 착오적 발상이다.

한진해운 사태로 인해 글로벌 하주, 글로벌 선단의 절반 정도를 소유하고 있는 용선선주(NOO), 미래의 잠재적 파트너가 되어야 할 해외 컨테이너선사, 항만과 터미널, 장비의 임대사, 급유사 등 전 세계에 걸친 해운산업의 협력업체들에게 막대한 피해와 혼란을 초래한 바 있으며, 이는 한국해운이 청산하지 않으면 안될 ‘빚’으로 남아 있다. 한진사태 이후 글로벌 고객들은 선사의 재정상태도 중요하지만 채권단의 성향도 주시해야 한다고 했다. 왜 그랬을지?

진정 한국이 글로벌 컨테이너 해운시장에 복귀를 위해 선결되어야 할 과제는 국내문제가 아닌 국제시장의 문제다. 내부 전열정비는 국제시장으로 복귀하기 위한 기초이자 준비일 뿐 그 본막은 국제시장의 흐름이 좌우하는 것이다. 한국하주의 지지보다 몇 배 더 중요한 것이 글로벌 하주들이고 한국 정부의 지지보다 더 중요한 것이 국제시장에서의 신뢰 회복이다. ‘빚’을 청산하지 않은 상태에서 거래를 재개하려고 하면 상대가 뜨악해 하지 않을지.. 시장의 관심이 한국해운기업의 지속 가능성과 신뢰성 여부에 있는 한 크고(big), 강하고(strong) 경쟁력있는 선사를 구축하는 것만이 잃어버린 글로벌 항로에 한국해운이 복귀하는 길이다.

1만8,000~2만3,000teu급 거대 선단을 갖춘 내셔널 캐리어가 있어야만 안보, 전략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미국, 영국, 싱가폴, 말레이시아 등의 예에서 보듯이 이들 국가는 3대 간선항로에 취항하는 원양 컨테이너선사를 두고 있지 않거나 철수했다. 정답은 없다. 중요한 것은 자국의 지정학적 여건 등에 따라 상사적 측면과 안보 전략적 측면중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느냐의 문제다.
우리는 어느 쪽인가? 2016년 정부가 표방했던 것처럼 컨테이너 해운의 위기도 상사 베이스에서 결자해지해야 하는 것이라면 답변은 명확하다. 이는 해운산업의 안보 전략적 역할을 사실상 부인한 것과 다름이 없고 앞에 열거한 몇몇 국가들의 인식과 궤를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을 보면 혼란스럽다. 상사 베이스를 강조했던 2016년 기조가 그대로 지속되고 있는지 아니면 U-턴을 한 것인지? 해운을 포함한 운수정책은 정치 환경, 정부조직 또는 담당라인의 인사이동에 의해 그때그때 바뀔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정책의 기조가 안보 전략적 측면이라면 현 한국해운의 실상에 비추어 볼 때 위기의식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 해운백서(white paper)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이유다.

개별 해운기업의 경우 경영성과에 따라 존립이 좌우되는 것은 당연하며 이는 기업이 감당해야 할 시장의 리스크(risk)다. 그러나 일국의 해운산업 전체가 벼랑 끝에 처해 있다면 이는 국가가 관리해야 할 위기(crisis)인 것이다. 현 상황을 늘상 반복되는 시장의 리스크로 볼 것인지 아니면 국가가 나서야 할 위기로 인식하느냐에 따라 대처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리스크 인지 위기인지 구분되지 않는 혼란스러운 상태가 오래가서는 안된다. 해운시장의 문제는 시장의 논리로 풀어야 한다. 정치공학적 접근이나 금융정책, 채권단이 해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현재 해운계 자력으로 컨테이너 해운을 재건할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은 별로 없으며 정부주도가 아니면 해결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원양 컨테이너해운은 더욱 그렇다. 국적 원양컨테이너 해운의 건재는 근해항로는 물론 항만과 터미널의 진로에도 지대한 영향을 초래한다. 국익적 차원에서 National carrier의 육성이 운수정책의 기본이고 국내외 여건상 정부와 해운계가 혼신의 힘을 다해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심각한 상황이라는데 인식을 함께 한다면 한국컨테이너해운의 현 위기를 관리(manage)하고 재건을 이끌어야 할 주체는 명확하다. 국제시장의 흐름을 감안할 때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지만 운수정책부서의 책임과 주도하에 National carrier의 재건에 나서야 하며 해운계는 당사자로써 적극 협조하고 동참해야 한다.

스스로 자문자답해야 한다. 운수정책이 일국일사의 National Carrier인가? 그렇다면 그 정책에 부합하는 법적, 행정적 절차와 요건을 갖춘 실체가 현존하는가? 유념해야 할 것은 금융정책이 주도했던 한진사태가 재발하게 되면 한국해운은 재기 불능상태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2016년의 상황과 비교할 때 운수정책과 금융정책의 공조와 균형 차원에서 실질적으로 크게 달라진 것이 있는지 의문이다. 급변하는 글로벌시장의 흐름을 볼 때 시간은 우리편이 아니다. 운수정책 부서의 혁신적인 발상, 용단과 실천이 아쉬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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