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1950년대까지도 보리가 미처 여물기 전에 곡식이 떨어져 먹을 것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보릿고개가 있었다. 영아사망률 통계로 보면 1950년대에 영아 1천 명당 138명이 죽었던 것이 2014년에는 2.9명으로 줄었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천지개벽이라 평가해도 좋을 만큼 단기간에 물질적으로 크게 풍요로워졌다. 변화 속도에는 차이가 있을 지라도, 이 같이 우리 인류의 삶이 끊임없이 개선되어 온 것은 경제적 혁신(革新, innovation)이 있어 가능했다. 또한 앞으로도 혁신은 상상을 뛰어 넘는 수준으로 우리의 삶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혁신도 그 시대에는 불가피하게 실업 등과 같은 경제적 조정문제를 야기하면서 사회적 과제를 던져준다. 이 글에서는 최근에 큰 주목을 받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을 경제학의 혁신 이론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시사점을 논의해 보고자 한다.

4차 산업혁명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역사적 사건에 대해 우리는 흔히 혁명(革命)이라 부른다. 혁명이 정치적 의미를 지닐 때 정치혁명이라 하고, 혁명이 일하는 방식을 변화시킬 때 흔히 산업혁명이라고 부른다. 1차 산업혁명은 석탄을 이용한 증기기관이 등장하고 이를 이용한 철도와 증기선으로 운송이 이루어지고, 섬유를 기계가 짜면서 우리의 삶이 이전의 농업문명과 확연히 달라진 시기를 의미한다. 2차 산업혁명은 1860년대부터 석유가 석탄을 대신하고, 전기를 사용해 전신이나 전화를 사용하기 시작한 변화를 말한다. 이 시기에 생산조립 라인이 출현하면서 대량생산-대량소비가 문명의 상징이 되었다. 3차 산업혁명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반도체와 컴퓨터, 그리고 이를 활용한 수치 제어 로봇 등이 우리의 삶을 바꾼 시기로 ‘컴퓨터 혁명’ 혹은 ‘디지털 혁명’으로 불린다.

4차 산업혁명은 21세기 들어 물리학 기술, 디지털 기술, 생물학 기술 등이 상호 간에 끊임없이 융합하고 조화를 이루면서 우리 삶을 혁명적으로 바꾸고 있는 지금 현재의 모습을 지칭한다. 2016년 3월에 있었던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로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과 로봇공학,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 자율주행자동차, 3D 프린팅, 나노기술, 생명공학, 재료공학, 에너지 저장기술, 퀀텀(quantum) 컴퓨팅 등의 분야가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고 있다. 물론 이 같은 큰 변화는 이전의 산업혁명에도 있었지만, 흔히들 4차 산업혁명은 그 규모, 범위, 깊이, 속도 그리고 복잡성에서 그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다고 평가되고 있다.

해운․항만에서의 4차 산업혁명
이러한 4차 산업혁명이 해운과 항만에는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낼까? 혹자는 4차 산업혁명의 로봇공학, 3D 프린팅 등의 자동화 기술로 인해 현재의 선진국-개도국 간의 분업구조가 바뀌면서 생산거점이 선진국의 소비지 중심으로 이동할 것으로 전망한다. 소위 리쇼어링(reshoring)이 크게 확대된다는 것이다. 이 전망이 현실화되면 해상물동량이 원거리 항로에서 근거리 항로로 옮겨 갈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필자는 이 같은 전망에 대해 아직은 유보적 입장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국제무역은 개도국의 낮은 인건비라는 한 가지 요인에 의해서만 생겨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제무역은 부존자원의 차이, 비교우위, 규모의 경제 활용을 위한 시장 확대 요인 등의 다양한 이유로 해서 발생한다. 따라서 4차 산업 혁명이 이러한 요인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에 따라 국제무역의 방향과 규모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4차 산업혁명은 해운․항만산업의 서비스 생산방법 또한 변화시킬 전망이다. 인공지능, IoT, 빅데이터, 초고속 해상통신망 기술을 활용해 선박은 자동차와 같이 자율운항이 가능해 질 것이다. 또한 항만 터미널도 하역과 야드 작업이 무인화된 완전자동화 터미널이 이미 상용화되었다.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여 무역 및 물류에 수반되는 정보흐름의 효율성과 안전성이 제고될 것이다. 아울러 선박관리, 해운중개 등의 전통적인 해운지원 산업의 업무도 빅데이터를 활용한 인공지능 기술로 크게 바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해운․항만산업에서의 4차 산업혁명은 분명 이전에 비해 큰 혜택을 제공한다. 해상사고에 따른 인명손실, 하역과정에서의 다양한 안전문제 등이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고, 업무의 효율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다. 우려스러운 부분은 이러한 4차 산업혁명으로 선원, 하역 노동자 등의 일자리가 사라질 위협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후술하겠지만, 이러한 실업문제는 우리 경제사회의 포용성을 확대하여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혁신의 이해
혁신은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첫째, 시장 경제 내에서 나타나는 혁신의 일반적 특성을 기준으로 혁신의 종류를 분류해 볼 수 있다(what, where, when). 둘째, 혁신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알아봄으로써 혁신에 대한 이해를 더 할 수 있다(who, how). 셋째, 혁신이 경제 전체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메카니즘을 이해함으로써 혁신의 중요성을 파악할 수 있다(why).

슘페터(Schumpeter)는 일찍이 혁신을 새로운 결합(new combination)으로 이해하고, 혁신이 수행되는 경우를 다섯 가지 경우로 나누어 설명했다. 첫째, 새로운 재화, 즉 소비자들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스마트폰은 대표적인 새로운 재화이다. 둘째, 새로운 생산방법, 즉 재화를 보다 효율적인 방법으로 생산하는 것이다. 자동화 기술의 채택이 이에 해당된다. 셋째, 새로운 판로의 개척, 즉 기존에 매출이 없던 곳에서 새롭게 고객을 창출하는 것이다. 기업들이 신흥시장에 진출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넷째, 원료 혹은 반제품의 새로운 공급원 획득, 자연자원이 풍부한 곳을 개발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다섯째, 새로운 조직의 실현, 해운에서는 정기선사들의 동맹이 해체된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예를 들면, 해운에서는 컨테이너의 도입이 새로운 운송 서비스를 만들어 낸 것이자, 운송서비스의 효율성을 크게 개선시킨 경우이다. 아시아 및 개도국 운송시장의 성장은 새로운 판로의 개척에 해당한다. LNG 추진선의 도입은 새로운 원료의 공급원을 찾는 경우가 된다.

슘페터는 새로운 결합, 즉 혁신을 능동적으로 수행하는 경제주체를 기업가(起業家, entrepreneur)라고 불렀다. 개념적으로 본다면, 기업의 주주, 전문 CEO, 관리자, 중역 모두 새로운 결합을 수행한다면 기업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생산 측면에서의 새로운 변화가 혁신이라고 할 때, 현재의 우리 경제에서는 기업이 혁신의 경제주체라고 이해된다. 혁신의 개념을 보다 일반화하여 진화(또는 변화)하는 소비자의 니즈(needs)에 맞추어 기업이 기존의 생산방식을 바꾸어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혁신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혁신은 현대 기업의 일상적 업무가 되었고, 이를 통해서만 시장경쟁에서 살아남고 번영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혁신이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기업가(起業家)적 활동에 의한 것인지, 기업(企業)의 일상화된 조직된 연구개발(R&D)에 의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보몰(Baumol) 교수는 기업의 일상화된 연구개발이 혁신의 99%를 차지한다고 주장하면서, 자본주의 경제는 이 같은 기업의 혁신으로 지속적으로 발전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우리가 신문이나 정책발표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혁신은 기업, 정부, 연구소, 대학 등의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여 이루어진다. 그리고 법․제도적 뒷받침이 있을 때 혁신이 활성화된다는 것 또한 쉽게 이해가 된다. 이와 같이 혁신을 보다 큰 틀에서 설명하는 논의는 혁신 체계(system of innovations) 이론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설명한 4차 산업혁명을 비롯한 혁신의 상당 부분은 과학기술의 발달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경제학계에서는 경제 전체(거시경제)의 발전이 새로운 과학기술을 만들어 내고 이를 활용함으로써 나온다는 것을 일찍이 주목하고 있었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가지는 독특한 특성, 즉 비경합성(non-rivalry) 때문에 과학기술이 시장경제 내에서 지속적으로 발달하는 방식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와 같은 기업이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지출하면서 신제품을 만들어 내더라도, 이 기술을 삼성전자도 쓸 수 있고, 경쟁사인 애플(Apple)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이 같은 현상을 비경합성이라고 한다), 이 같은 투자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바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특허권과 같은 지적재산권이다. 즉 고정비용을 들여 개발한 기술이나 디자인에 대한 일시적 독점권을 부여하여 불완전하지만 그 개발자에게 이익을 가져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를 불완전 전유성(incomplete appropriation)이라고 한다. 바로 이 같은 과학기술이 가지는 비경합성과 불완전 전유성의 특성을 반영한 거시경제 성장 이론을 미국의 로머(Romer) 교수가 정립하여, 혁신이 경제 전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메카니즘을 이해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요약하면, 혁신의 기반이 되는 새로운 과학기술에 대해 일시적이지만 독점적 이윤이 보장되기 때문에 민간의 경제주체에 의해 과학기술이 의식적으로 개발되고, 이는 다시 지식이 가지는 비경합성 때문에 다른 경제주체에게 파급효과(knowledge spillover)를 미치면서 경제가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로머 교수의 설명은 시장의 재산권 제도가 확립된 근대 이후에 왜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했는지를 보여주는 최신의 이론으로 평가되고 있다.

혁신의 부작용
혁신은 우리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혁신으로 인해 쓸모가 없게 된 기업이나 근로자들은 시장 퇴출과 실업이라는 고통을 겪게 된다. 19세기 초 영국에서 일어난 기계파괴운동(러다이트 운동, Luddite Movement)은 이러한 혁신의 파괴적 영향을 역사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우리 해운․항만 업계에서도 이러한 혁신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큰 것이 사실이다. 자율운항선박 개발에 따른 선원 실직 문제, 자동화 터미널 확대에 따른 항만 근로자의 실업 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유효수요이론으로 유명한 케인즈(Keynes)도 이러한 문제를 깊이 고민했다. 그는 우리가 노동의 새로운 사용처를 발견하는 속도보다 노동력을 절감하는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빨라서 생기는 실업을 기술적 실업(technological unemployment)이라고 불렀다. 그가 1936년에 발표한 대작(大作) 「일반이론」에서 왜 자신이 한 국가 내에서 유효수요창출을 통한 불황 타개책을 제시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당시는 2차 산업혁명으로 선진국의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시기였다. 쏟아지는 상품을 판매할 시장을 찾지 못한 각 국가들은 제국주의를 통해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고 보호무역으로 자국 시장을 지키는 서로 공멸의 게임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케인즈는 바로 자신의 일반이론을 통해 “각 국가가 국내 정책을 이용해 완전고용을 스스로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운다면, … 자국 상품을 타국에 강매하거나 이웃나라의 매출을 격퇴시켜야 할 절박한 동기는 …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즉 비약적 기술 발전에 따른 실업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제국주의적 시장 확대를 대신하여 국내 정책을 통해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국내 유효수요 확대를 통한 완전고용 처방과는 달리 리프킨(Rifkin)은 「노동의 종말」에서 다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바로 시장과 정부 부문과는 다른 시민사회단체의 제3부문의 영역을 확대하여 기술발전으로 야기되는 실업 인구를 흡수하자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가 지난 2월 28일 주 52시간으로의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처럼, 리프킨도 노동시간 단축을 산업혁명에 따른 실업 문제 극복을 위한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대안의 제안 : 혁신성과 포용성의 상보적 종합(synthesis)으로서 유연안정성
인류가 지속가능한 발전과 보다 여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4차 산업혁명과 같은 경제적 혁신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술적 실업’과 같은 문제점을 완화하기 위한 공동체의 노력도 필요하다. 즉 경제의 혁신성을 보완할 수 있는 포용성이 필요한 것이다. 문제인 정부의 경제정책 패러다임을 소개한 「포용국가」에서는 이 같은 포용성과 혁신성에 더해 유연안정성까지 우리 경제의 운영원리로서 제안하고 있다. 유연안정성은 혁신에 따른 구조조정은 받아들이지만(유연성), 국민의 소득을 보장해 주고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통해 실업 등의 문제에 대처하자는 것이다(안정성).

현대 물리학의 양대 이론 중 하나인 양자역학에서는 실재(實在) 물리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서로 상충되는 개념이 동시에 사용되어야 하는 상보성(相補性, complementarity)의 원리가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가 사는 경제적 세계도 이와 유사하다. 우리 삶의 조건을 바꾸는 혁신은 포용성과 상보적 관계에 있다. 철학자 칸트의 어법을 빌리면, 혁신성만 있고 포용성이 없으면 그러한 혁신은 공허하다. 그러나 혁신성은 없고 포용성만 있으면 지속 가능성이 떨어질 것이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 전도사,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이 강조하는 것처럼, “4차 산업혁명이 제공할 기회와 도전의 기틀을 형성하고 일관성을 갖춘, 긍정적이고 보편적인 담론(談論, narrative)”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분명 이 담론에는 혁신성과 포용성이 상보적으로 역할할 것이다. 유럽의 유연안정성은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에게 모범 사례로서 큰 가치를 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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