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선주될 인재’도 양성해야 한다”

 

1984년 필리핀서 창업, 종합물류회사 유니그룹으로 성장시켜
“해운은 시작과 끝이 분명한 시간장사로 한국인에 적합한 산업”


장재중 사장.
장재중 사장.
우리나라 근대해운의 역사에서 해양대학교 출신 해운인들의 역할은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일 게다. 해상에서는 해기인력으로, 육상에서도 해운산업계의 요소요소에서 제 역할을 하는 해양대학 출신들의 활약은 최근들어 더욱 두드러진다. 특히 승선생활 경험에 육상근무, 그리고 소규모 창업으로 시작해 국내 해운산업계의 대들보가 된 중견 해운기업을 이끌어가는 최고경영인도 많이 배출되었다. 가히 ‘해대출신 해운기업인들의 전성기’라 할만하다. 이들은 기업을 성장시켜 해운산업계 발전에 한 몫을 담당하는 것은 물론 이익의 사회환원 차원에서 다양한 사회활동에도 관심을 보이며 조금씩 실행해나가고 있다. 


이렇듯 주목할만한 해대 출신의 기업인은 한국내만이 아닌 해외에도 존재한다. 성공의 꿈을 해외 현지에서 이룬 기업인도 있다. 24년전 필리핀에 성공의 꿈을 심었던 장재중 유니그룹 사장도 그런 기업인 중의 한 사람이다.


1975년 한국해양대학교 항해학과를 졸업하고 대한선박에서 승선생활을 거쳐 80년에 (주)삼미에서 육상근무를 시작했다. 당시 싱가폴 주재원으로 근무하면서 국내에서의 ‘사다리식 승진’에 대한 꿈을 접고 84년 필리핀행 이민을 결행했다. 이후 그곳에서 해운대리점과, 챠터링 브로커, 항만하역, 육상운송, 포워더 등 해운관련산업의 종합물류회사인 유니그룹을 창업해 키웠다. 유니그룹은 200여명의 직원이 종사하고 전체 매출이 3,000만불 정도되는 중견 물류회사이다.       


재외교포로서 필리핀에서 해운기업을 성공시킨 장재중 사장은 현지의 사회사업 활동을 적극 펼치는 한편 ‘좋은 이웃 한국인’운동을 통해 한국인에 대한 잘못된 인상을 바로잡는데도 앞장서고 있다. 필리핀 한인상공회의소 회장이자 한일회장인 그는 우리나라의 나병환자 정착촌 운영시스템을 벤치마킹해 필리핀 나환자들의 유토피아를 조성할 목적아래 우리의 음성 소록도 이름을 그대로 딴 필리핀의 ‘소록도 나환자 정착촌’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기업인으로서 또한 독실한 종교인으로써 사회사업에도 열심인 그의 행보는 한국내에서도 주목받을 만하다. 


‘마닐라 장씨’의 시조가 되고 싶다는 필리핀의 한인 장재중 사장은 아직까지도 한국인들이 세계로 나갈 꿈을 키우고 도전할 만한 일이 많다면서, 기업의 글로벌화는 물론 세계로 뻗어나가는 개인의 도전정신에 대해 강조했다.


2월 중순 새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받아 방한한 장 사장을 만나, 그의 필리핀 이민생활 성공담과 해외에서 본 우리 해운관련산업의 발전상과 미래, 해기인력의 본산인 해양대학의 미래상 등에 대해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의 해양대학은 이제 해기전승을 위한 기술만 가르칠 것이 아나라 기업의 관리와 경영에 대한 교육을 통해 ‘선주가 될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그의 견해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해양대학이 해운 전문가 리더를 잘 양성한다면 국제해운의 중심을 서울로 옮겨올 수 있다고 여긴다. 시작과 끝이 분명한 특성을 가진 해운이 한국인에게 적합한 사업으로 보기 때문이다. 한국 해운산업계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재외교포와 함께 한국의 현재와 미래를 점쳐본 인터뷰시간이 즐거웠다.


“우리의 해대 계승은 자랑스런 일”

 

◈ 국외에서 본 해양대학의 미래상은 어떤지
“과거 해양대학은 선원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이었다. 한국이 선원국에서 선주국으로 넘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앞으로 해양대학에서는 해기 전승을 위한 교육 뿐만 아니라 선주가 될 사람을 양성하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 그간은 기업의 관리와 경영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도 많은 해대인 CEO가 탄생해 있다. 우리나라의 해대계승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이제 해대는 전문가리더를 양성함으로서 세계 해운의 중심을 서울로 옮겨올 수 있다. 해운은 한국인에 적합한 산업이다. 시작과 끝이 분명한 시간장사다. 부지런히 시간관리를 잘 하면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산업이 해운이다. 한국의 해운전문인력은 어느 정도 갖춰져 있다. 앞으로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2015년까지 해운시장 죽 좋을 것-

FTA로 존재치 않던 시장이 열려 물량증가 당연한 전망”

 

◈해운시황이 몇 년간 계속 좋은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으로 보시는지.
“적어도 2015년까지는 양호할 것으로 본다. 과거 GATT시대에서, WTO시대를 거쳐 FTA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시장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컴퓨터화되어가지만 물류(운송)는 직접해야 하는 산업이다. 지금 중국 한나라의 경제성장만으로도 세계의 선복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FTA 시대에는 그간 무역을 하지 않던 나라들이 교역에 참여하게 된다. 물동량 상승은 이어질 것이고 선박도 꾸준히 증가할 것이다. 선복의 과잉에 대한 우려가 많지만 펀더멘탈은 배가 필요한 상황이다.
물량에서 컨테이너부문은 한계가 있겠지만 벌크부문은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본다. 특히 아시아계에서는 바지선이 부각할 것으로 예상한다. 동력이 크지 않으면서 작은 원자재 수송이 가능한 바지선이 동남아시아 권역에서 뜰 것 같다.”

 

“한국조선은 중국도전 속에서도 강점 커”

 

◈한국의 강점은 무엇으로 보나
“FTA 시대에는 쌀만 생산하는 나라, 배만 만드는 나라, 자동차만 만드는 나라 등 국가별로 대표상품이 나올 것이다. 한국은 조선기술에 강점이 있다. 선박의 기자재 기술까지 갖추고 있는 한국은 조선강국이다. 중국이 추격해 온다고 해도 한국의 조선산업은 앞으로도 강점이 있다. 한국의 배는 엔진부문이 표준화되어 있어서 배값이 일본의 것보다 비싸다. 일본은 표준화되지 않아 중고선의 경우 부속을 어디서나 구할 수 없어 일본회사에서만 구입이 가능하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한국배가 인기 있다.


앞으로도 선박기자재 기술의 전문화와 기술은 지속적으로 향상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조선수출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중공업의 ‘힘센엔진’은 세계적인 브랜드다. 중국의 도전 속에서도 한국은 고부가치선의 중심이 될 것으로 본다.”

 

“타국선 한국식 버리고 그곳방식 관리 필요”

 

◈한국기업인들이 해외에서 실패하는 사례의 경우 원인은 무엇으로 보나
“우리 한국인은 남을 잘 다루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 외국에 가서도 우리식으로 관리하려고 하니 문제가 생긴다. 타민족을 다뤄보지 못한 민족성 때문인 것 같다. 앞으로는 다른 민족을 관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해외에서는 한국식이 아닌 그 나라에 맞는 관리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도 이젠 부자다. 해외에서 남을 다루는 법을 알려면 해운부문에서도 해외 유학을 가서 다양한 문화를 배우고 익혀야 한다.”

 

“필리핀 전세계 서비스인력의 제공처”
“한국도 선사 의 선원확보 노력 필요”

 

◈필리핀은 세계적인 선원 수출국이다. 필리핀의 특성에 대해
“필리핀은 서비스인력을 양성하는데 주력하는 나라다. 전세계 시장에 공급한 서비스인력이 859만명이며 이들은 국내로 송금하는 외화는 연간 200억불 규모다. 연예인, 간호사, 선원, 건설중간관리 인력 등 다양한 서비스인력을 전세계에 공급하는 나라로 보면 된다. 해양관련 대학만 해도 110개가 있다. 엄청난 수의 선원을 배출하고 있다. 그러나 필리핀에는 대학에 실습선이 없다. 따라서 4년 공부하고 1년 실습해야하는데, 개인이 스스로 실습기회를 찾아야 한다. 학력에 관계없이 이들은 어떤 직책으로도 1년간 승선하면 해기사 자격 시험에 응시할 조건을 얻게 된다. 이러한 환경에서 대개가 보통 선원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배에 대한 일은 거의 다 할 수 있다. 일본선사가 전학년 전교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며 선원을 양성하는 학교도 있다. 2010년까지 시장에 나올 배에 탈 사관선원이 1만명 이나 부족하다고 한다. 한국선사들도 기업이 자체적으로 선원확보에 애써야 하는 시대를 맞았다.


한국선주협회의 향후 역점사업은 전문 해기사를 양성해 한국선주들에게 공급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선주가 직접 선원을 확보할 수 있도록 선주협회 차원에서도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야만 한다.”

 

◈필리핀에 가신 배경은
“75년 대학을 졸업하고 대한선박에 취직 승선생활을 하다 이란/이라크 전쟁당시 6개월간 억류되었던 경험이 있다. 이때 귀국한 뒤 배에서 내려 (주)삼미에서 육상근무를 시작했다. 싱가폴 주재원 생활을 하다 83년에 귀국했다가 과장시절(84년 7월) 사표를 내고 필리핀으로 넘어갔다. 이미 해외경험이 있던 터라 임원까지의 승진기간을 기다리기 보다 해외에서 창업을 선택했던 것이다.


필리핀에서 86년 2월의 마르크스 대통령 추방을 통해 민중정권이 들어선 혁명시기를 거쳤다. 당시 외국인들은 거의 본국으로 철수했지만, 필리핀에 계속남아 있다가 혁명후 평온하게 정돈된 정치 속에서 86년 3월 (주) 유니쉽이라는 사명의 해운회사를 설립했다. 당시 유니쉽은 선박을 용선해 정기서비스를 했다. 동남아-지중해 구간에 정기선을 띠우고 필리핀-호주 구간에도 정기선을 운영했다. 동남아시아에서 인도로 들어가는 원목운송시장에서도 활동했다. 그러나 필리핀에는 선박금융 기반이 미흡하기 때문에 유니그룹은 지금도 선주는 아니다. 유니그룹은 챠터링 브로커와 해운대리점, 컨테이너선사 총대리점(Sinotrans, CMA, CNC, C&라인 등), 항만하역사업, 육상운송, 포워더, 합동법률사무소, 환경산업폐기물회사 등의 해운관련 업종들을 영위하는 종합물류회사이다.”

 

한국 나환자촌 벤치마킹한 필리핀 ‘소록마을’ 운영

 

◈ 유니그룹의 계열사 구조와 사회환원사업에 대해
“우리회사는 20년이상 장기근속 직원이 30명 정도된다. 한국인은 나 혼자이고 나머지는 모두 필리핀 현지인이다. 자회사를 설립하면 직원에게 사장자리와 함께 지분을 나눠주었다. 필리핀에서 번 돈은 필리핀에 돌려주겠다는 생각으로 회사를 경영하고 또한 사회활동을 벌여나가고 있다. 한국 나환자촌 운용시스템은 국제적으로 모범적이다. 따라서 한국의 나환자촌을 벤치마킹해 필리핀에 나환자 정착촌 ‘소록 유니마을(1만 5,000평)’과 ‘사마리아 마을(1만평)’을 만들어 운영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250여명이 거주하는 이 나환자촌에서 나환자들이 자활과 농사를 통해 정착하도록 돕고 있다. 기업인으로서 사회책임 경영 측면과 함께 기독교인으로서 ‘구제선교’ 사업으로 여생을 보낼 생각이다. 이들에게는 먹거리가 필요하다. 이들은 한국돈 1만원이면 쌀 20kg를 살 수 있다. 독지가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 한국과는 어떠한 교류를 하시는지, 또한 필리핀한인상공회의소에 대해
“한국회사의 대리점을 맡고 있는 정도이고 상공회의소 측에서의 교류가 더 많다. 현지 상공회의소에는 현대, LG, 삼성, 한진중공업 등 830개의 회사가 가입돼 있다. 한국에서 유입되는 관광객만도 연간 60만명이나 되는 것으로 안다. 2006년부터 한국은 필리핀에 직접투자한 외국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우리 상공회의소는 필리핀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단체이다. 한국인의 투자를 용이하도록 필리핀 정부의 규제와 법개정을 추진하는 한편 한인기업간의 협력과 친목을 도모하고 있다. 한국의 필리핀 진출기업의 길라잡이 역할을 맡고 있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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