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시황분석의 의미

 
 

정보통신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가용한 정보자산이 폭발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자동식별시스템(AIS)을 통해 바다에서 운항 중인 선박에 대한 위치 정보를 파악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양한 장치(사물인터넷 등)를 통해 소위 빅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여건이 크게 개선되고 있다. 또한 볼틱해운거래소, 클락슨 등에서 제공하고 있는 해운시장 정보를 전통적 통계분석방법이 아닌, 비정형 데이터를 포함하는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통해 분석하는 시도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 글에서는 ‘과학적 시황분석’의 의미를 재검토하여 해운산업의 발전방향에 대한 시사점을 도출해 보고자 한다.

먼저 르네상스와 계몽주의를 통해 인류역사에 나타난 ‘과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답할 필요가 있다. 과학철학이라는 분과에서 벌어지는 논쟁에서 알 수 있듯이, 어떤 특징이 과학을 규정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은 우리가 전기電氣를 쓰고,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것은 바로 과학적 지식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은 과거에 우리가 의존했던 점성술과 여타의 전통적 지식체계와는 분명히 다른 어떠한 장점을 지니고 있다.

과학이 전통적 지식체계와 구별되는 가장 중요한 점은 무지를 기꺼이 인정한다는 사실이다(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조현욱 옮김, p. 356 참조). 또한 이러한 무지를 극복하고 현상의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 가설을 세우고, 관찰을 통해 검증해 나가는 방법론이 과학의 중요 특징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과학은 우리에게 일을 보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지식을 주는 것이다. 즉 과학은 현상의 이면에 작용하는 인과관계를 규명하여, 우리가 앞으로 벌어질 사태를 예측하고 합리적인 통제를 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따라서 ‘과학적 시황분석’을 한다는 것은 시황분석을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수행하여 시황의 움직임에 대한 지식을 획득하고 이를 선사, 화주 등의 경제주체들이 이용하자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과학적 시황분석’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반드시 충족해야 하는 전제가 있다. 그 전제란 이러한 ‘과학적 시황분석’의 결과에 영향을 받는 의사결정이 미래의 시황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 이러한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지를 우선 ‘El Farol Bar 문제’(Brian Arthur가 1994년 제기한 문제 상황으로 인터넷 Wikipedia에서 상세한 설명을 볼 수 있다)를 통해 살펴보자. El Farol Bar는 미국 산타페(Santa Fe, 대표적 복잡계 연구소가 위치해 있다)에 위치한 아일랜드풍의 카페(bar)이다. 논의의 편의를 위해 이 카페에 갈 수 있는 사람이 총 100 명이라고 하자. 이들은 특정한 날에 다른 사람들이 이 카페에 갈지 여부를 사전에 알지 못한다. 다만, 100 명 중 60 명 이상이 카페에 갈 경우 너무 혼잡해서 카페의 분위기를 즐기지 못하기 때문에, 60명 미만이 카페에 나타나는 경우에만 카페의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따라서 이들 100 명은 카페에 가기 전에 몇 명의 사람들이 카페에 올 지에 대해 예측을 해야 한다. 이러한 ‘El Farol Bar 문제’가 보여주는 예측 문제의 핵심적 내용은 이들이 동일한 결정적(deterministic) 예측 방법을 모두 같이 사용하면, 어떠한 방법도 이 목적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즉 60 명 미만이 카페에 올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면, 모두가 카페에 나타나서 예측이 실현되지 않고, 반대로 60명 이상이 카페에 올 것이라고 예측하는 경우에는 모두가 카페에 나타나지 않아서 예측이 실현되지 않는 것이다.

바로 ‘El Farol Bar 문제’가 ‘과학적 시황분석’에도 적용이 된다. 예를 들어, 어떤 계량경제학자가 2년 뒤에 10만 톤 벌크선 가격의 현재가치가 현재 신조선 건조가격보다 높을 것이라고 예측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이 예측은 계량경제학자 자신이 시장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실현된다고 가정하자. 이러한 상황에서 만약 어떤 선박 투자자가 이 예측을 믿고, 1척의 10만 톤 벌크선을 신조한다고 생각해 보자. 전체 시장에서 이 선박 1척이 추가되면서 선박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기 때문에 계량경제학자의 예측은 거의 100%에 가깝게 실현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선박 투자자가 100척의 선박을 신조하는 경우는 어떻게 되겠는가? 새로 추가되는 100척으로 인해 2년 뒤에 선박가격은 크게 하락하게 될 것이고, 계량경제학자의 예측은 실현되지 못할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계량경제학자의 예측이 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한다는 가정이 100 척의 선박발주로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해운시장에서도 어떤 결정적 예측 방법도 모든 시장 참여자가 동일하게 이 방법론을 사용할 경우에는 현실에서 그 예측이 실현되지 못한다. 즉 ‘과학적 시황분석’을 통해 특정 해운 투자자가 거둘 수 있는 수익성은 ‘과학적 시황분석’의 공유 수준에 의존하게 된다. 아울러 이러한 예측 정보의 공유 문제는 선박투자 뿐만 아니라, 용선료 및 용선기간 결정, 특정 항로로의 배선 문제 등에도 적용된다. 따라서 ‘과학적 시황분석’이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이로부터 도출된 분석방법론을 실제 영업 현장에서 활용할 때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그렇다면 ‘과학적 시황분석’이라는 화두를 통해 우리 해운산업계는 어떠한 교훈을 배울 수 있는가? 필자는 크게 세 가지의 시사점이 있다고 판단한다. 첫째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자신만의 독창적인 ‘과학적 시황분석’을 통해 시황의 등락을 활용하여 수익을 거두는 것이다. 이를 가장 잘 하는 해운국가가 바로 그리스이다. 다음으로, 앞에서는 ‘과학적 시황분석’에 필요한 모든 자료와 정보가 주어진 것을 암묵적으로 가정했지만 이 가정을 현실적으로 보면 두 번째 시사점이 도출된다. 즉 이러한 복잡한 해운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제도와 정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대표적인 제도로서 운임선도거래(FFA) 시장과 같은 해운파생시장을 만들어 해운시장 참여자들이 스스로 미래 시황변동위험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클락슨과 같이 고급 해운시장 정보를 기반으로 지식정보서비스 산업을 키우는 것이다. 바로 제도와 정보에 우위를 지니고 있는 국가가 영국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앞의 두 가지 측면은 모두 해운시장의 제로섬(zero-sum) 게임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기 보다는 주어진 수급 상황에서 어느 쪽이 더 큰 파이를 가져갈 지를 결정하는 게임에 초점이 맞춰진 전략이다. 그러나 해운산업은 조선 기술, IT 기술 등을 이용해 근본적으로 해상운임(화주에게는 운송비용)을 절감하는 혁신을 수행할 수 있다. 컨테이너 선박의 대형화와 각종 환경규제에 대응한 에코(eco) 선박이 이에 해당된다. 아쉽게도 세계 1위 조선대국인 우리나라는 이러한 세 번째 부가가치 창출형 혁신전략을 전개할 수 있는 잠재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지만, 화주-선사-조선소 협력 부족으로 이를 실현시키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과학적 시황분석’을 넘어 ‘과학적 기업경영전략’을 통해 해운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화주 중심의 고객만족 경영철학을 확립하고, 글로벌 해운시장의 복잡성을 ‘과학적 방법’으로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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