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발전과 해운발전

 
 

한 나라의 경제발전에 있어서 금융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경제발전에 있어 금융의 역할에 대해 두 가지의 큰 흐름이 있는데, 즉 기술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한 슘페터(Schumpeter) 등 많은 경제학자들이 금융이 경제발전을 견인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합리적 기대가설을 제창한 시카고대의 루카스(Lucas) 등 일부 학자는 실물경제 성장이 금융의 발전을 유발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경제발전단계상 초기에는 금융은 저축의 동원 그리고 재화와 서비스의 교환을 원활하게 하나 성숙기에 접어들면 리스크 관리, 기업 모니터링, 기업통할, 그리고 투자기회 및 자본배분에 관한 정보생산의 역할을 한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한 국가의 금융제도가 은행 중심이냐 아니면 자본시장 중심이냐에 따라 한 나라의 산업발전에 상당히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최근 우리 해운업이 어려움에 처하면서 가장 크게 부각된 것은 자금조달 내지 자금지원 문제였다. 그런데 앞으로도 해운업은 정부에 유동성 위기 극복 등을 위해 지속적으로 손을 내밀 것인지 아니면 금융시장에서 매력적인 투자 대상으로 거듭날 것인지를 한 번 숙고해 보아야 할 시점이라 생각이 들기도 한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독일 이 세 나라에서 첨단산업의 발전과 금융의 역할에 대해 분석한 Black and Gilson의 1998년 논문에 의하면 상당히 흥미로운 결과가 제시되고 있다. 즉 최근 미국은 제조업은 상대적으로 위축되었으나 반면에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각종 첨단 기업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하여 미국의 경제구조를 새롭게 짜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자동차 등 전통적인 제조업이 상대적으로 강한 일본이나 독일은 미국에서 새롭게 등장하여 세계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아마존, 구글 등과 같은  대형첨단혁신기업이 출현하지 않고 있는 점을 주목하고 그 이면에 금융제도의 선택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나름의 연구결과를 제시하였다. 즉 위험을 회피하는 은행이 한 나라의 금융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면 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한 혁신기업의 창업이 어렵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은행은 자금운용을 아주 보수적으로 운용하여 예금자에게 보상규모는 낮으나 확실하게 보장하는 방향으로 영업에 임하고 있다. 따라서 위험이 많은 창업초기의 신생기업에게는 자연히 자금제공을 기피할 수밖에 없는 대출정책을 구사하게 된다. 


한편 자본시장의 역할이 큰 금융제도를 갖고 있는 미국의 경우는 위험이 큰 기술혁신 창업기업에 위험을 감수하고 자금을 제공하는 벤처캐피탈이 발달하여 미국이 IT기반의 많은 세계적 기업을 배출하게 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즉 이들은 미국의 증권시장 발달로 벤처캐피탈리스트들은 투자한 자금을 기업공개(IPO)를 통해 자금을 쉽게 회수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투자원금의 여러 수십 배에 이르는 이익을 실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위험을 감내하고서라도 창업기업에 자금을 제공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벤처캐피탈리스트들은 10건의 투자에서 50% 이상은 손해를 보더라도 10~20%에서 큰 수익을 남길 수 있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투자에 임하고 있다. Allen은 자본시장 중심의 금융시스템은 정보가 공개되는 대기업이나 신기술에 대한 평가가 시장가격 메키니즘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는 혁신산업의 자금조달에 유리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첨단혁신산업의 발전에는 자본시장 중심의 금융시스템이 더 바람직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처럼 첨단산업의 발전과 금융시스템의 관계를 분석한 Black and Gilson, Allen 외에도 다수의 학자들이 경제발전과 금융시스템 사이의 연관성을 연구하였다. 세계은행의 Demirguc-Kunt 등의 연구에 의하면 경제발전 수준이 낮을 때는 은행 중심의 금융시스템이 작동하나, 경제발전 정도가 나아질수록 자본시장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 일부 학자는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에서는 자본시장 중심의 금융시스템이 경제성장에 더 유리하나, 중소기업의 비중이 크면 은행 중심의 금융시스템이 경제발전에 더 기여할 수 있다고 하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이러한 연구의 결과들을 볼 때 세계은행 등에서도 한 나라의 경제발전에 부응하는 금융시스템을 구축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 나타나고 있는 경제현황을 볼 때 은행의 역할이 큰 일본이나 독일은 첨단산업분야에서 미국에 상당히 뒤지고 있으나 제조업이 워낙 튼튼하여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경제가 견실하여 부러움을 받고 있어서 과연 어느 금융시스템이 최선인지는 속단하기가 어려운 점도 있다고 생각된다. 특히 경제발전은 금융시스템 외에도 각 나라의 법률제도, 종교, 문화 등과 같은 사회시스템이나 관습 등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IT발달로 금융산업 자체가 크게 변혁하고 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즉 핀테크, 블록체인 등이 금융시장을 크게 변혁시키고 있어 앞으로는 금융업 자체가 IT와는 긴밀한 연관을 갖게 전개될 것으로 판단된다. 


오늘의 주제인 금융발전과 해운발전의 관계를 어떻게 연계해서 짚어보는 것이 앞으로 해운기업의 자금조달에 도움이 될지에 대해 자신에 있게 답을 내놓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 해운이 자주 직면하는 유동성 위기 문제 등을 근본적으로 잘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 금융제도가 어떻게 구성되는 것이 좋은지 한 번 고민해 보았으면 한다.
우선 세계 해운강국인 독일, 일본, 덴마크, 노르웨이 등의 경우 정부 소유의 금융기관이 해운기업에 자금을 적극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의 경우 연방정부 소유 은행인 KfW-IPEX가 해운기업에 많은 자금을 제공하고 있으며, 덴마크는 선박금융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Danish Ship Finance(D
SF)를 중앙은행과 정부재단에서 보유하고 있었으며, 노르웨이의 DnB은행도 정부지분이 상당히 투입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제시스템이 다소 상이한 중국의 경우도 최근 세계해운금융시장에서 해운기업의 선박확보에 필요한 자금을 대대적으로 제공하고 있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중국의 경우도 정부소유인 중국수출입은행이 해운금융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상에서 언급한 주요 은행들인 CEXIM, KfW IPEX, DNB, DSF 등은 [그림 1]에서 보고되고 있는 것처럼 2017년 기준 해운금융을 상대적으로 많이 제공한 금융기관의 리그에 올라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해운강국이 정부소유의 금융기관을 통해 해운자금을 적극 지원하고 있는데, 이러한 형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앞에서 살펴본 금융발전과 경제발전의 연관성을 볼 때 우리나라도 경제발전이 상당한 수준에 달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자본시장 중심의 금융시스템이 더 우리 경제성장에 유리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 해운기업의 자금조달도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금융시장에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특히 해운기업의 재무적 안정 측면에서 자본시장에서 자기자본을 적극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은 매우 중요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경제가 발전할수록 은행 중심의 금융시스템보다는 자본시장 중심의 금융시스템이 더 좋다는 주장이 있으나, 시장 중심의 금융제도를 택하고 있는 영미의 경우 은행 중심의 금융시스템을 취하고 있는 독일이나 일본에 비해 해운업이 상대적으로 덜 발달하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이는 해운업이 가족 중심의 경영을 하는 관계로 은행과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하며 자금을 조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으로 사료된다. 그러다 보니 해운기업이 상대적으로 타인자본 사용 비율이 높게 나타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전통적으로 해운업은 기업공개를 꺼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가족 중심으로 해운업을 영위하다 보니 영업 노하우를 외부로 알리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선박의 대형화 등으로 선박확보에 소요되는 자금이 대규모이다 보니 자금조달의 원활화 등을 위해 그리스, 노르웨이 등의 국가에서 주요 해운기업이 증권시장에 상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우리 해운이 은행에 의존해 자금을 계속 조달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는 재고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해운업이 유동성 위기로 여러 번의 위기에 직면하여 해운계가 크게 요동을 치고 홍역을 치룬 것을 생각한다면 보다 안정적이고 장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자금조달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상에서 간단히 살펴본 것처럼 금융과 해운의 관계에 있어서 명확하게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주장할 수 있는 연구결과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즉 여러 학자들이 경제 수준이 나아질수록 은행보다는 시장 중심의 금융시스템이 더 잘 작동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해운업이 발달한 그리스, 일본, 독일 등은 오히려 은행이 금융시장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운업이 장기적으로 불황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타인자본에 의존한 자금조달이 최선인지는 한 번 재고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의하면, 조사대상 전체기업의 부채비율이 2018년 6월말 현재 75.6%로 전년도의 76.7%에 비해 다소 줄어들었다. 이 보고서에서 분석대상이 된 기업은 증권시장에 상장된 1,778개사 그리고 증시에 상장되지 않은 293개사로 총 2,071개 기업이다.

 

[그림 2]에서 나타나고 있듯이 서비스업이 제조업에 비해 부채비율이 상당히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건설, 철강, 해운 등 주요 업종별 부채비율을 보면 해운업이 다른 업종에 비해 많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즉 2018년 해운업의 부채비율은 279.2%로 전년도의 248.5%에 비해 30%포인트 이상 증가하여 재무구조가 더 악화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지표에 의하더라도 해운업이 상대적으로 더 높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해운계도 자본비용이 다소 비쌀지라도 안정적이고 장기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기자본의 비중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해운업도 증권시장을 적극 이용하여 자기자본을 조달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접근에는 우선 해운기업의 신규공모주발행을 통한 기업공개 및 증시 상장이 활발하게 추진될 수 있는 방안을 정책당국에서 고려하였으면 한다. 


이 논고에서는 해운발전을 위해 어떤 금융의 형태가 좋은지에 대한 초보적인 접근을 시도해 보았다. 이러한 시도를 위해 경제발전과 금융시스템의 관계를 간략히 살펴보았는데 여러 연구에서 한 국가의 경제수준이 높을수록 자본시장 중심의 금융시스템이 더 잘 작동하는 것으로 실증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런데 자본시장이 발달한 미국이나 영국의 경우 유수한 해운기업을 보유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반면에 은행 중심의 금융제도가 운용되고 있는 일본이나 독일은 세계 유수의 해운기업을 보유하고 있으며 선대규모가 세계 상위 5위에 안에 드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드러난 사실을 고려해 우리 해운이 은행에 의존해 자금을 계속 조달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는 재고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해운업이 유동성 위기로 여러 번의 위기에 직면하여 해운계가 크게 요동을 치고 홍역을 치룬 것을 생각한다면 보다 안정적이고 장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자금조달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본다면 증권시장에서 주식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의 비중을 지금보다는 더 높이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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