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이 원하면 A부터 Z까지. 차별성이 있다면 겁날 것이 없다”
선박 에이전시로 시작, 인니 전역에 24개 브랜치 확대, 토탈 물류 서비스 제공

올해 1월 페나스콥 마리타임 인도네시아(Penascop Maritime Indonesia)는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해운대리점 및 화물하역업을 영위하는 뻐린띠스 짜하야 띠무르(PT. Perintis Cahaya Timur)와 함께 합작회사를 출범했다.

페나스콥 인도네시아의 이시현 대표는 이번 합작법인의 설립이 인도네시아의 잠재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말한다.

“합작법인을 설립하자고 제안을 한 이유는 인도네시아가 가진 잠재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의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향후 인프라가 구축되면 물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은 자명하다. 페나스콥 인도네시아도 석탄하역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여기에 뻐린띠스 짜하야 띠무르가 보유하고 있는 철제, 프로젝트 카고를 더함으로써 물동량 및 시장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다.”

“그림을 그려 보여주었다. 기존의 업체들이 하던 데로, 영업을 해서 물건을 따내고, 로컬 업체에 넘겨서 중간 마진을 남기는 방법이 그 동안의 비즈니스의 형태였다면, 더 이상 그런 방식은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지 말고 A부터 Z까지 다 해보자. 우리가 장비를 사고, 직원을 고용하고, 오퍼레이션도 하고 영업도 하면 하나의 채널, 하나의 플로우로 다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런 그림을 그렸고 보여주었다.”

이시현 대표는 언제나 그림을 그려왔다.

인도네시아에서 사업을 하겠다는 그림을, 동남아시아에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그림을, 인도네시아 물류시장에 지배자가 되겠다는 그림을 그렸고, 보여주었고, 사람들을 설득시켰다.

캐리어 하나 들고 인도네시아를 찾아온 20대의 젊은 청년은 15년이 지난 지금, 인도네시아 전역에 네트워크를 확보한 전문 기업의 오너로 성장했다.

인도네시아와의 인연과 운명

이시현 대표가 인도네시아와 연을 맺은 시기는 막 군대를 제대한 2004년이었다.

“2004년 군에서 제대하고 인도네시아에서 벌크선 운송사업을 영위하는 K선사에 입사했다. 당시 K사는 인도네시아에 29k 벌크선을 투입해 도메스틱 석탄 물류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그때 감독으로 인도네시아 땅을 처음 밟았다.”

“처음에는 주재원 파견이었지만 주재원 같은 생활을 하지 못했다. 주거지가 주어지고 출퇴근하는 것이 아니라 캐리어 하나 들고, 석탄 로딩포트 갔다가 선적 끝나면 비행기 타고 넘어와서 하역포트로 가는 생활을 계속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20대의 청년이었던 이시현 대표를 괴롭힌 것은 육체적인 피로만은 아니었다.

“체력적인 환경보다 더욱 힘들었던 것은 파트너사와의 관계였다. 한국회사에서 배를 투입했는데, 현지에서 문제가 있었다. 서울에서 감독으로 내려보낸 나와 트러블이 자꾸 발생했다.”

“8개월차에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다. 반려가 되고, 서울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는데 인도네시아에서 사고가 터졌다. 인도네시아 파트너사와 파트너쉽이 깨져버렸다. 그때 회사에서 다시 인도네시아 들어가서 세팅을 다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2개월, 딱 2개월만 세팅하고 다시 한국에 들어온다는 약속을 받고 다시 인도네시아로 향했다. 세팅이 다 끝나고 다시 들어가려고 하니까 지시가 있을 때 까지 기다리라는 말을 듣는데, 이건 운명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마음을 바꿔먹었다. 좋다. 운명이라면, 이곳에서 살아야 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런 고민을 하자. 그렇게 생각했고,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그저 일만 하기 위해서 왔다갔다 하는 것이 전부였는데, 이제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러다 D해운에서 오신 분을 만나게 되었고 이직 제의를 받았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이직을 하면서 안정을 찾았다. 자카르타에서 근무하면서 한 곳에 정착하게 되었고 어느정도 안정을 찾게 되었다. 그러던 중 2007년 카보타지가 시행되면서 한국국적의 선박이 전부 다 빠져버렸다. 한국 본사에서 들어오라고 했는데, 거절하고 남았다.”

왜 한국으로 들어가지 않았냐는 질문에 이 대표는 용납할 수 없었다고 답한다.

“초창기에 그 고생을 하면서 버텨 냈고, 이제 여기서 살겠다고 결정을 내렸고, 결정을 내리고서 4년을 버텼는데, 포기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마침 이시현 대표에게 새로운 제안이 들어온다, 자원 트레이딩을 하던 S사 석탄 사업부에서 석탄 트레이딩 관련 일을 해보자는 제안이 들어온 것.

“마침 다른 것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S사에서 석탄 트레이딩을 같이 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석탄 트레이딩 업무를 배우게 된 것이다.”

2013년 석탄 마켓이 위기를 겪게 되면서 이 대표는 또 한번의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변화를 맞이한 이시현 대표는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한다.

페나스콥의 창업이 그것이었다.

“우리만의 차별화가 필요했다.”

사업을 시작하는데 겁나지 않았냐는 질문에 이시현 대표는 전혀 겁날 것이 없었다고 답한다.

“인도네시아에 남아서 무조건 해내겠다고 이미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두려울 것은 없었다. 나는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한국에 돌아갔을 때, 나보다 더 똑똑하고 뛰어난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은데, 그 사람들하고 경쟁하는 것이 더 두려웠다. 반면에 여기에서 경쟁한다면 나만의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도 들었다.”

“사업을 시작해야 겠다고 결심을 했을 때, 이미 결혼도 했고, 아이도 둘이나 있었다. 그 상황에서 아내와 상의를 했다. 이런 상황이다. 그래서 이렇게 해야 할 것 같다고. 아내는 흔쾌히 알겠다고 해줬다. 작은 아파트를 한 채 가지고 있었는데, 그걸 팔아서 사업을 시작했다.”

이 대표가 한번 결정을 내리면 말릴수 없다는 성격이라는 것을 알기에 아내가 허락해 준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차별성이었다. 우리만의 차별화가 필요했다. 2013년 ‘페나스콥 마리타임 인도네시아’를 설립하고 2014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기존의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기존업체들 처럼 중간에서 중개만 하면서 Fee만 받는 방식으로는 레드오션이 된 해운시장에서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인도네시아에 있는 대부분의 쉬핑에이전시는 단순한 제네럴 에이전트에 불과했다. 우리가 만약 같은 전략을 추구했다면? 우리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영업을 나갔을 때, 선사를 방문해 페나스콥이라는 회사입니다 하고 인사를 했을 때, 선사에서 그럼 당신네 회사는 다른게 뭡니까 하고 물어본다면, 저희는 이 부분이 다릅니다 하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기존 업체와 다르게 공격적인 경영전략을 수립했다. 수익이 나는 족족 브랜치를 오픈했다. 2014년에 2개, 2015년에 5개, 이런식으로 계속 브랜치를 오픈하고 네트워크를 확장했다. 그리고 지금 인도네시아 전역에 24개 브랜치를 보유하고 있다. 현재 인도네시아 내 쉬핑 에이전시 중 20개 이상의 브랜치를 가지고 있는 회사는 열 개도 되지 않고, 그 중 하나가 바로 우리 페나스콥 마리타임 인도네시아다.”

“예를 들어 어떤 지역에 고객들의 수요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인도네시아 어디 지역에 서비스 가능합니까?’하고 문의가 들어오면 우리도 경제성을 따져본다. 그리고 손해만 아니라고 판단이 되면 들어간다. 확신이 있었다. 한국계로서 로컬을 가지고 있다. 직접 운영을 한다. 서비스 품질 개선이 가능하다는 신뢰를 준다면 수익은 극대화 된다는 확신을 했고, 그게 주효했다.”

“언제까지 구멍가게에 머물 것인가?”

현재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 전역에 토탈 서비스를 제공하는 페나스콥 유나이티드를 구상하고 지금의 페나스콥 유나이티드를 구축한 사람도 이시현 대표다.

한국해양대 항해과 54기인 이시현대표는 동남아시아에서 각국에서 개별적으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한국해양대 선배들을 찾아가 브랜드 마케팅의 가능성에 대해서 설득한다.

“동남아시아 전역에 우리 해양대 선배들을 찾아가 설득했다. 언제까지 구멍가게로 머물 것인가? 각자 회사가 가지고 있는 포션은 작지만, 그 포션을 모으면 그 규모는 커진다. 하나의 브랜드로 마케팅을 하자.”

이 대표가 그린 그림은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나 설득력이 있다고 해서 모두 다 그의 손을 잡은 것은 아니었다. 가능성은 공감하지만 이미 각 국가에서 자신들의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던 다른 동문들은 쉽사리 그 손을 잡지 못한다.

페나스콥 유나이티드의 가치는 단순한 통합브랜드와 외형 성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나의 브랜드 안에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업무적 효율성을 이끌어 내는 것이 페나스콥 유나이티드의 진정한 통합 의의와 효과라는 것.

“어느나라에서 어떠한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할 때, 페나스콥 유나이티드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신뢰를 고객에게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대표는 원브랜드 마케팅의 경쟁력을 설명하고, 주저하는 동문들을 설득하느라 초창기에는 1년 중 200일을 해외에 나가있어야 했다고 회고한다. 그런 그의 노력은 결실을 맺게 된다.

이 대표의 제안에 따라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그리고 한국이 2014년 5월 처음 하나의 깃발 아래 항해를 시작한 페나스콥 유나이티드는 현재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를 넘어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등 아시아 12개국에 총 14개의 회원사를 두고 있다.

지난 해 11월 인도네시아에서 이틀동안 열린 페나스콥 유나이티드 10차 정기총회에는 각국의 회원사 관계자는 물론 인도네시아 선·화주, 물류업계 관계자와 각국 상사 주재원 등 약 260여명이 참석하는 대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10일 개최된 페나스콥 커스트머 개더링(Custmer Gathering) 행사에서 축배를 들고 있는 이시현 대표(좌측). 페나스콥은 광산기업, 트레이더, 선사 등 고객들을 초청해 페나스콥 후원에 대한 감사와 고객사 상호간의 만남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커스터머 개더링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10일 개최된 페나스콥 커스트머 개더링(Custmer Gathering) 행사에서 축배를 들고 있는 이시현 대표(좌측). 페나스콥은 광산기업, 트레이더, 선사 등 고객들을 초청해 페나스콥 후원에 대한 감사와 고객사 상호간의 만남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커스터머 개더링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남들이 안하는 것을 찾아서 하는 DNA”

이시현 대표의 모험과 투쟁은 계속된다. 사업 영역을 계속 확장해왔고, 하고 있고, 할 예정이다.

“2015년에 로지스틱스 분야를 오픈했고, 16년에는 하역사업, 17년에는 언더워터도 개시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원스톱 서비스이다. 우리에게만 맡기면 고객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다 해줄 수 있다. 단순히 로컬업체에게 재하청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A부터 Z까지 다 해줄 수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에 있는 한국계 로지스틱스 회사들의 영업형태는 획일적이었다. 인도네시아에 들어와 있는 봉제기업들을 대상으로 부자재나 생산품을 핸들링 하는 것이 주 수입원이었다. 인도네시아의 한인 사회가 그렇게 만들어 진 것이다. 물류회사에 있던 사람이 나와서 새로운 회사를 차리고, 또 나와서 새로운 회사를 차리고 하면서 인도네시아에 한국계 물류회사만 100여개가 넘었다.”

이시현 대표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기고 결정한다.

“처음부터 봉제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우리는 그곳에 포커스를 두지 않았다. 이미 기득권이 다 장악되어 있었고, 우리가 들어가려면 운임을 쳐서 들어가야 하는데, 더 이상 칠 수 없는 운임 수준이었다. 그런데 먹고 살려면 뭐라도 찾아서 해야 했다.”

“우리는 남들이 안하는 것을 찾아서 하려는 DNA가 있다. 내가 항상 후배들에게 말하는 부분이 그것이다. 남들과 똑같이 하면 안된다. 안 하는 것을 찾아봐야 한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사업이 스페어파트 딜리버리(Spareparts delivery)였다.”

“대리점을 하다 보니까, 선박들이 인도네시아에 들어와서 고장이 나거나 스페어파트가 필요하면 대리점을 통해서 문의가 오곤 했다. 그런데 대리점은 로지스틱스 관련된 걸 잘 모르니 제3자 로지스틱스 회사를 찾아 서브를 준다. 여기에서 올라오는 인폼이 늦으니 자연적으로 가는 인폼이 늦게 된다. 체계적으로 일이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선사나 외국 선사가 제일 꺼려하는 곳이 인도네시아라고 했다. 정말 급하지 않으면 안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유럽에는 선박용 스페어파트만 전문적으로 하는 포워더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규모도 엄청나게 크다. 인도네시아에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2015년부터 2년 동안 그 분야를 지켜본 다음 2017년부터 서비스를 개시했다.”

“첫 해에는 한 달에 한 건, 두 건 정도 처리 하는데 불과했지만, 지금은 많이 커졌다. 이번 달(2019년 2월)에만 15건을 처리했다. 스페어파트 딜리버리 한 건이 컨테이너 20개를 핸들링 한 것 만큼의 가치가 있다.”

“직원을 위해주면, 직원이 회사를 위해준다”

페나스콥 마리타임 인도네시아의 사령부인 본사 사옥은 자카르타 남부 외곽 부촌에 위치해 있다.

2016년 8월에 착공에 들어가 2017년 9월에 입주한 페나스콥 사옥은 천정이 높은 4층 건물로, 설계단계에서부터 이 대표의 생각이 들어가 있다.

“내 모든 열정을 다 쏟아부은 첫 사옥이다. 의도적으로 기둥이 없는 디자인을 채택했으며, 지하에서부터 옥상까지 직원들의 편의시설을 설치했다.”

페나스콥 사옥 인근에는 직원들을 위한 기숙사도 마련되어 있다. 이시현 대표가 추구하는 차별성은 직원복지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처음 회사를 시작할 때 주주들과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자고 이야기했다. 동남아시아의 특성 상 사람이 들어오고 나가는 일이 자주 발생하는데, 사직서를 내면 아무리 일을 잘해도 내보낸다고 방침을 정했다. 인도네시아 직원들의 경우 조금 더 높은 임금을 받기 위해 사직서를 내는 경우가 있었다. 한국 기업주들의 경우 귀찮고 피곤하니까 임금을 올려주는 방식으로 해결하고는 했는데, 우리는 들어오는 사직서는 바로 다 수리해버렸다. 주변에 뽑을 수 있는 인력이 많다는 우리만의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직원이 나가지 않는 것이 더 좋다. 그래서 우리는 직원들을 위한 복지 시설에 신경을 많이 썼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사무실에 신경을 많이 썼다. 일하기 편한 환경을 제공했다. 초창기에는 직원들에게 매달 100만루피아씩 상품권도 지급했다. 수익을 주주들만이 영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사설보험도 제공했다. 인도네시아도 한국과 같은 의료보험제도가 있지만 보장하는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 그래서 우리가 직원들은 물론 직원들 가족까지 사설보험의 보장을 받도록 해 주었다. 인도네시아 회사 중 이런 회사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 본사로 옮기고 직원들에게 아침과 점심식사를 제공한다. 직원 기숙사도 제공하고 있다. 임금도 동종 경쟁업체에 비해 30%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 상여금도 많이 지급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우리의 생각을 직원들이 이해하기 때문에 이직률이 낮다. 실제로 회사에 돈을 벌어오는 직원들은 붙박이로 오랜 기간 같이 일을 하고 있다.”

“5대양을 하나의 이름 아래 두겠다”

이시현 대표는 페나스콥 마리타임 인도네시아를 단순히 한국계 회사, 또는 인도네시아 기업이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굳이 성격을 부여하자면 국경에 구애받지 않는 인터내셔널 기업이라고 봐달라고 말한다.

“직원 구성원을 살펴보면 인도네시아 직원, 한국 직원 뿐만 아니라 중국 직원, 인도 직원도 있다. 권역별로 영업팀을 다 나누어 놓았다. 동남아시아와 동북아는 물론 인도, 서남아시아, 유럽 등 권역으로 계속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페나스콥이라는 사명은 라틴어로 다섯을 의미하는 Penta, 하나를 의미하는 Uno, 목표를 의미하는 Scopus를 조합해 만들어졌다.

오대양을 페나스콥이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두겠다는 목표가 사명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인도네시아의 물류 시장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이해가 빠르다. 반둥에서 자카르타로 물건을 보내는 물류비용보다 자카르타에서 싱가포르로 물건을 보내는 물류비용이 더 싸다. 자카르타와 반둥간은 내륙임에도 해외 물류비보다 더 비싸다. 내륙 물류비융이 어마어마하게 높다. 물류가 잘 안된다는 이야기다. 몇 업체들이 독과점 체제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 같은 상황을 타파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고속도로를 닦고 도서지역마다 터미널을 지어 선박이 접안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중이다. 인도네시아 시장은 엄청나게 커질 것이다.”

페나스콥 인도네시아는 3월 13일 사마린다 지역 내륙운송을 위한 LCT선(자가추진 바지선) 취항식을 개최한다. LCT PENASCOP SAMARINDA호 취항식을 개최하고 인도네시아 칼리만탄티무르 주 사마린다 지역에 본격적인 영업에 들어간다.

이시현 대표는 이번 LCT 취항이 인도네시아 물류시장에 끝없이 도전하는 페나스콥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말한다.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필요한 물류설비는 선박이다. 내항 물류운송을 하기 위한 선박이 부족하다. 아주 많이 부족하다. 그 말은 우리에게 기회가 있다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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