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렌더 선하증권(Surrendered B/L)과 선박대리점의 운송물 인도상 주의의무

- 대법원 2019. 4. 11. 선고 2016다276719 판결 -
 

 
 

1. 서론
선하증권이 발행된 경우에 소지인은 이와 상환하지 아니하면 운송물의 인도를 청구할 수 없다(상법 제861조, 제129조). 이를 선하증권의 상환증권성相換證券性이라고 한다. 운송인은 선하증권의 제시가 없는 운송물의 인도청구를 거절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선하증권과 상환하지 아니하고 운송물을 인도하지 않아야 할 주의의무를 부담한다.1) 운송인이 선하증권과 상환하지 아니하고 운송물을 인도하면 선하증권의 소지인에 대하여 채무불이행책임2) 및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불법행위책임3)을 지는 것이 원칙이다. 

한편 1950년대 이후 등장한 컨테이너선에 의한 해상운송은 선박의 고속화와 하역작업시간의 단축 등으로 인해 근거리 운송에서는 신용장(Letter of Credit, L/C)에 의한 거래4)를 위해 은행을 경유하는 선하증권이 도착하기 전에 운송물이 양하항에 도착하는 경우가 발생하였다. 이러한 경우 한시라도 급하게 운송물을 찾아서 현금화하여야 하는 수하인의 입장에서 선하증권의 상환증권성은 원만한 운송물의 수령에 방해가 될 뿐이다.5) 한편 송하인의 입장에서도 송하인과 수하인 사이에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거나 송금방식으로 물품대금을 결제하기로 하는 등으로 신용장 거래가 불필요한 경우에는, 굳이 선하증권을 통한 운송물의 유통가능성을 열어둘 필요가 없다. 이에 송하인과 수하인이 선하증권의 상환증권성을 제거하기로 합의하여 수하인이 양하항에서 선하증권 원본 없이 즉시 운송품을 인도받을 수 있도록 하는 데서 이른바 ‘서렌더 선하증권(Surrender B/L)’이 유래하였다.6)

이러한 서렌더 선하증권은 정식의 선하증권은 아니고 무역실무상 사용되는 일종의 증거증권으로서, 지역적으로 우리나라나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무역실무에서 송하인이 대금을 회수하는 데 위험성이 없는 경우에 수하인이 선하증권과 상환하지 않고도 운송물을 인도받을 수 있도록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7) 송하인과 수하인의 ‘서렌더 합의’는 원본 선하증권이나 선하증권 양식의 사본에 “서렌더 됨(SURRENDERED)”8)이라는 표시를 하여야 효력이 있다.9) 서렌더 선하증권은 해상화물운송장과 달리 법률이나 국제조약에서 명문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무역실무상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관행으로서 그 취급용도와 사용에 따른 권리의무 및 책임관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서 그 효력에 다툼의 여지가 많다.10) 
최근 선고된 대법원 2019. 4. 11. 선고 2016다276719 판결(이하 ‘대상판결’이라고 한다)은 운송인의 이행보조자인 선박대리점의 운송물 인도상의 주의의무 위반이 문제된 사건에서, 서렌더 선하증권의 본질과 그에 따른 법적 효과를 정면으로 다룬 최초의 대법원 판결로서 그 의미가 크다.    

 
2. 사실관계

가. 국내의 수입업자인 A 회사는 2014. 8. 1. 중국 수출업자인 B 회사와 사이에 A 회사가 B 회사로부터 중국산 냉동고추(이하 ‘이 사건 화물’이라고 한다)를 미화 226,800달러에 수입하되, 대금결제방식은 신용장(L/C) 방식으로 하는 매매계약(이하 ‘이 사건 매매계약’이라고 한다)을 체결하였다. 
나. A 회사는 신용장을 이용하여 물품대금을 지급하기 위하여 원고와 외국환거래약정, 여신거래약정, 양도담보약정 등을 각 체결한 후 원고에게 신용장의 개설을 의뢰하였고, 원고는 2014. 8. 5. 신용장(이하 ‘이 사건 신용장’이라고 한다)을 발행하였다(위 외국환거래약정에 의하면, A 회사는 원고에게 부담하는 채무를 담보하기 위하여 수입거래에 수반하는 물품 및 관련서류를 담보로서 원고에게 양도하기로 되어 있다).
다. A 회사는 이 사건 신용장 개설 이후인 2014. 8. 18. A 회사와 사이에 이 사건 매매계약의 대금결제방식을 신용장에서 전신환송금(Telegraphic Transfer, T/T) 방식으로 변경하는 계약을 체결하였다. A 회사는 원고에게 전신환송금 방식으로 대금결제방식을 변경하였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라. 한편, B 회사는 A 회사에 수출하기로 한 이 사건 화물의 운송을 운송주선인인  YINKOU INT. FREIGHT AGENT CO.(이하 ‘잉코우’라고 한다)에 의뢰하였다. 잉코우는 개입권을 행사하여 실제 해상운송인인 C 회사에 위 화물의 운송을 의뢰하면서 송하인 ‘B 회사’, 수하인 ‘A 회사’, 통지처 ‘A 회사’로 된 하우스 선하증권 3부를 각 발행하였는데, 위 선하증권은 표면에 “SURRENDERED" 스탬프가 날인된 서렌더 선하증권이었다(이하 ‘이 사건 각 서렌더 선하증권’이라고 한다). 위 각 서렌더 선하증권 중 일부에는 수하인이 ‘원고’로 기재되는 등 전신환송금 거래방식에 완벽하게 부합하지 않는 기재가 있었다.  
마. 피고는 국제물류주선업을 하는 회사로서 잉코우로부터 이 사건 화물의 국내 인도대리업무를 위임받았다. 피고는 잉코우로부터 이 사건 매매계약의 대금결제방식이 신용장 방식에서 전신환송금 방식으로 변경되었고, 이 사건 화물의 운송과 관련하여 발행된 선하증권은 모두 서렌더 선하증권임을 통지받았다. 피고는 잉코우의 직원에게 직접 위와 같은 사실을 다시 확인하기도 하였다.
(아래 ‘3. 사건의 경과’에서 보겠지만, 위 라.항, 마.항의 사실은 이 사건 항소심에 이르러 비로소 드러난 사실이다.)


바. 피고는 2014. 10. 1.부터 같은 달 16.까지 사이에 A 회사에게, 국내에 입항하여 보세창고업자들에 의해 보관되고 있던 이 사건 화물에 대한 화물인도지시서(D/O, Delivery Order, 이하 ‘이 사건 화물인도지시서’라고 한다)를 발행해 주었고, A 회사는 위 화물인도지시서를 이용하여 이 사건 화물을 반출하였다. 
사. A 회사는 B 회사에게 이 사건 매매대금을 지급하지 못하고 2014. 10. 20. 부도가 났다. 
아. 원고는 이 사건 화물 반출 이후에 신용장 매입은행에 이 사건 신용장 대금 합계 253,312,920원을 결제하고, 이 사건 선하증권과 번호가 동일한 선하증권을 교부받았다(이하 ‘원고 소지 선하증권’이라고 한다). 원고 소지 선하증권은 이 사건 선하증권과는 달리 수하인이 ‘원고의 지시인’으로, 통지처가 ‘A 회사’로 기재되어 있고, 사용된 양식도 이 사건 선하증권과 별개의 양식이다. 

 

3. 사건의 경과 
가. 원고는 피고와 A 회사를 상대로, 피고와 A 회사가 공동하여 원고에게 위 신용장 대금 상당액을 지급할 것을 구하는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원고는 A 회사에 대해서는, B 회사와 이 사건 매매계약의 대금결제방식을 신용장 방식에서 전신환송금 방식으로 변경한 후 이를 원고에게 통지하지 않음으로써 원고로 하여금 이 사건 신용장 대금을 지급하게 하였고, 원고 소지 선하증권의 교부 없이 이 사건 화물을 인도받아 감으로써 원고의 이 사건 화물에 대한 인도청구권 및 양도담보권을 침해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원고는 피고에 대해서는, 운송인의 국내 선박대리점인 피고는 원고 소지 선하증권이 발행된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A 회사로부터 원고 소지 선하증권을 제시·상환받지 않은 채 A 회사에 화물인도지시서를 발행하였고 이는 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인 원고에 대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주장하였다.


나. 제1심 법원은 원고 소지 선하증권이 잉코우가 발행한 원본 선하증권(Original B/L)임을 전제로, 원고의 A 회사와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를 받아들였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전신환송금 방식에 의하여 무역거래를 하는 경우 원본 선하증권의 회수 없이 화물을 인도해 주는 것이 통상적인 업무처리 관행이다’라고 주장하였으나, 제1심 법원은 그러한 업무처리 관행을 인정할 수 없고, 다만 예외적으로 송하인으로부터 선하증권에 대한 권리 포기(Surrender) 요청을 받은 운송인이 송하인으로부터 원본 선하증권을 회수하여 그 위에 ‘권리 포기를 표시하는 스탬프를 날인’하고, 선박회사의 대리점 등에 권리 포기 사실을 전신 등의 방법으로 통지한 경우, 선박회사의 대리점 등은 원본 선하증권의 회수 없이 화물을 인도할 수 있다고 할 것인데, 피고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이 사건 화물인도지시서 발행 당시 운송인으로부터 송하인의 이 사건 각 선하증권에 대한 권리포기 사실을 통지받았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피고의 주장을 배척하였다.11) 


다. 피고는 제1심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였는데,12) 항소심 법원은 제1심 판결 중 피고 패소부분13)을 취소하고 그 취소부분에 해당하는 원고의 피고에 대한 청구를 기각하여, 결국 원고의 피고에 대한 청구를 전부 기각하였다. 항소심 법원은 증거조사를 통해 위 ‘2. 사실관계’의 라.항, 마.항과 같은 사실을 새롭게 인정하였다. 즉 피고는 잉코우로부터 이 사건 각 서렌더 선하증권이 발행되었음을 통지받고 잉코우의 직원에게 직접 그 사실을 확인한 후 A 회사에 이 사건 화물인도지시서를 발행하여 준 것임이 항소심에 이르러 새롭게 드러났다. 또한 항소심은 서렌더 선하증권의 법적 성질 내지 효력에 관하여, “서렌더 선하증권은 정식의 선하증권은 아니다. 따라서 권리증권성, 문언증권성, 상환증권성을 가지지 않는다. 다만, 운송물 수령증으로서 운송계약관계를 증명하는 서류가 된다. 상환증권성이 없기 때문에 소지인에게 운송물을 인도하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동 선하증권에 수하인으로 표시된 자에게 인도하여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항소심은 위와 같은 법리와 사실관계를 토대로, ① 원고 소지 선하증권은 잉코우가 이중으로 발행하여 C 회사나 피고에게 알리지 않은 선하증권으로 보이고, 원고 소지 선하증권이 이 사건 화물에 관한 원본 선하증권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이상, 피고로서는 A 회사에 이 사건 화물인도지시서를 발행할 당시 이 사건 각 서렌더 선하증권 사본 이외에 이중으로 발행된 원본 선하증권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확인하여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볼 수 없고, ② 이 사건 각 서렌더 선하증권 중 일부에 수하인이 ‘원고’로 기재되는 등 전신환송금 거래방식에 완벽하게 부합하지 않는 기재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운송인의 이행보조자인 피고가 운송인이 선하증권을 위조하였는지 여부 및 운송인이 피고에게 이 사건 매매계약의 거래방식을 허위로 고지한 것은 아닌지를 조사할 의무가 있다고 볼 수도 없다고 판단하여, 이 사건 화물의 인도에 대한 피고의 고의 또는 과실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였다.”14)  
라. 원고는 이에 불복하여 대법원에 상고하였으나, 대법원은 항소심 판결의 정당성을 수긍하여 상고를 기각하였다. 

 

4. 대법원의 판시사항
대법원은 서렌더 선하증권이 발행된 경우 운송인의 이행보조자인 선박대리점이 운송계약상의 수하인에게 화물인도지시서를 발행함에 있어서 부담하는 주의의무에 관하여, 아래와 같은 법리를 판시하였다.


[판시사항]
가. 선박대리점은 해상운송사업을 영위하는 자를 위하여 그 사업에 속하는 거래의 대리를 업무로 하는 자로서 운송인과의 계약에 따라 화물의 교부와 관련한 일체의 업무를 수행한다(대법원 2007. 4. 27. 선고 2007다4943 판결 등 참조). 따라서 해상운송인의 요청에 따라 운송인이 부담하는 운송업무의 일부를 그의 보조자로서 수행하는 선박대리점은 운송계약상 운송인의 이행보조자라고 할 수 있다. 
나. 운송계약에 따른 도착지의 선박대리점은 운송인의 이행보조자로서 수입화물에 대한 통관절차가 끝날 때까지 수입화물을 보관하고 해상운송의 정당한 수령인인 수하인 또는 수하인이 지정하는 자에게 화물을 인도할 의무를 부담한다. 해상운송화물은 선하증권과 상환으로 그 소지인에게 인도되어야 하므로, 선박대리점이 운송물을 선하증권 소지인이 아닌 자에게 인도하여 선하증권 소지인에게 운송물을 인도하지 못하게 된 경우에는 선하증권 소지인의 운송물에 대한 권리를 위법하게 침해한 것으로 불법행위가 된다(대법원 1999. 4. 23. 선고 98다13211 판결, 대법원 2005. 1. 27. 선고 2004다12394 판결 등 참조). 


다. 그러나 무역실무상 필요에 따라 출발지에서 선하증권 원본을 이미 회수된 것으로 처리함으로써 선하증권의 상환증권성을 소멸시켜 수하인이 양륙항에서 선하증권 원본 없이 즉시 운송품을 인도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송하인은 운송인으로부터 선하증권 원본을 발행받은 후 운송인에게 선하증권에 의한 상환청구 포기(영문으로 ‘surrender’이며, 이하 ‘서렌더’라 한다)를 요청하고, 운송인은 선하증권 원본을 회수하여 그 위에 '서렌더(SURRENDERED)' 스탬프를 찍고 선박대리점 등에 전신으로 선하증권 원본의 회수 없이 운송품을 수하인에게 인도하라는 서렌더 통지(surrender notice)를 보내게 된다(대법원 2016. 9. 28. 선고 2016다213237 판결 참조). 이처럼 서렌더 선하증권(Surrender B/L)이 발행된 경우 선박대리점은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선하증권 원본의 회수 없이 운송인의 지시에 따라 운송계약상의 수하인에게 화물인도지시서(Delivery Order)를 발행하여 수하인이 이를 이용하여 화물을 반출하도록 할 수 있다. 


5. 검토
가. 무역대금의 결제방식과 선하증권의 담보적 기능

무역대금의 결제방식은 수입자가 수입대금을 송금하여 주는 송금방식(remittance basis)과 수출자가 수출대금을 추심하는 추심방식(collection basis)로 크게 나뉜다. 송금방식은 그 수단에 따라 우편환송금(mail transfer, M/T), 전신환송금(telegraphic transfer, T/T), 송금소액환(demand draft, D/D) 방식 등이 쓰이고 있다. 이와 같은 송금방식에 의한 거래는 선송금(advance payment)의 경우에는 수입자에게 매매목적물을 확보하기 못할 위험을, 후송금(deferred payment)의 경우에는 수출자에게 대금을 회수하지 못할 위험을 각각 부담시키므로 수출자와 수입자 간의 높은 신용이 있는 경우(예: 모회사와 자회사 사이의 거래)나 소액거래 등에 예외적으로 이루어진다. 다만, 전신환송금의 경우 신용장 발행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과 지급의 확실성 때문에 최근 중국 상인들과의 거래에서 그 이용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15) 이 방법에 의할 때에는 선하증권 등 선적서류가 갖는 기능(유통이 가능한 지시증권성)이 필요 없게 된다. 한편, 추심방식은 수출자가 매매대금을 액면액으로 발행한 환어음을 은행을 통하여 수입자로부터 추심하여 결제받는 방식으로, 주로 신용장(L/C) 방식이 이용된다.16) 이 사건에서 A 회사와 B 회사는 대금결제방식에 관하여 당초 추심방식 중 신용장 방식으로 합의하였다가, 송금방식 중 전신환송금 방식으로 변경하였다. 


한편 선하증권 운송물인도청구권을 표창하는 유가증권으로서, 선하증권에 의하여 운송물을 받을 수 있는 자에게 선하증권을 교부한 때에는 운송물 위에 행사하는 권리의 취득에 관하여 운송물을 인도한 것과 동일한 효력이 인정된다(물권적 효력, 상법 제861조). 선하증권의 이러한 기능에 의해 송하인은 운송물 자체의 인도 없이도 선하증권의 배서양도 혹은 교부에 의하여 운송 중인 운송물을 매도하거나 담보로 제공할 수 있다. 이처럼 선하증권에 의해 운송물을 담보로 제공하는 기능은 신용장 제도와 결부되어 오늘날 국제무역거래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즉 국제무역거래에서 물품대금의 결제는 주로 신용장 방식을 이용하는데 신용장의 결제서류 중 가장 중요한 것이 화환어음(documentary bill of exchange)과 선하증권이고, 선하증권은 화환어음을 담보하는 기능을 한다.17) 이 사건에서 원고가 A 회사와 체결한 외국환거래약정에는, A 회사가 원고에게 부담하는 채무를 담보하기 위하여 수입거래에 수반하는 물품 및 관련서류를 담보로서 원고에게 양도한다는 양도담보 약정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러한 선하증권의 담보적 기능은 신용장 거래에서 일반적으로 활용된다.18) 

 

나. 서렌더 선하증권(Surrender B/L)의 법적 효과
서렌더 선하증권의 정의와 그 등장 배경은 앞서 서론에서 본 바와 같다. 서렌더 선하증권은 송하인(수출업자)과 수하인(수입업자)의 합의에 의해 선하증권의 상환증권성을 제거한다는 것을 본질로 한다. 다만 서렌더 선하증권은 무역실무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난 것으로서, 서렌더 선하증권이 발행됨으로 인하여 국제물품매매, 그와 관련된 금융, 그리고 해상운송에 관여하는 당사자들 사이에 구체적으로 어떠한 법적 효과가 발생하는지에 관한 사항은 학설과 판례에 맡겨져 있다.
우선 학설상으로는 서렌더 선하증권은 권리증권성(권원증권성)과 상환증권성이 없고, 증거증권성이 인정되는 서류라는 것이 통설로 보인다. 대법원도 “이른바 서렌더 선하증권은 유가증권으로서의 성질이 없고 단지 운송계약과 화물인수사실을 증명하는 일종의 증거증권으로 기능하는데, 이러한 효과는 송하인과 운송인 사이에 선하증권의 상환증권성을 소멸시키는 의사가 합치됨에 따른 것이다.”라고 하여 같은 접근을 취하고 있다(대법원 2016. 9. 28. 선고 2016다213237 판결).  


지금까지 국내의 판례상 주로 문제된 것은 서렌더 선하증권의 이면약관이 운송계약에 편입되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는 서렌더 선하증권이 선하증권의 ‘문언증권성’까지 포기하는 것으로 이해될 것인가의 문제로 설명되기도 한다.19) 서렌더 선하증권은 대개 표면(전면)에 “SURRENDERED”20) 스탬프가 찍히고 이면(뒷면)의 내용이 없다.21) 서렌더 선하증권 실무상 운송인이 서명과 이면약관 없이 선하증권양식의 사본에 서렌더 화물(surrender cargo)임을 표시하여 송하인에게 교부하거나(원본 선하증권이 발행되지 않는 경우), 운송인이 원본 선하증권 표면에 “SURRENDERED” 표시를 하면, 송하인은 그 표면의 사본을 수하인에게 팩스 등으로 전송하고 수하인은 그 사본을 운송인 측으로부터 화물인도지시서를 받는 데에 사용하기 때문이다(원본 선하증권이 발행된 경우). 서렌더 선하증권의 이면약관이 운송계약에 편입되는가는 기본적으로 송하인과 수하인의 의사해석 문제이나, 일반적으로 서렌더 선하증권의 발행 양태에 따라 두 경우로 나누어 설명된다. 우선 ① 원본 선하증권이 발행된 이후 송하인이 운송인에게 선하증권의 서렌더를 요청하여 이루어지는 서렌더 선하증권의 경우에는 당사자 사이에 다른 의사표시가 없다면 상환증권성의 소멸 외에 선하증권에 기재된 내용에 따른 운송에 관한 책임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 통설22)·판례23)이고, 이는 타당하다.

 

이와 달리 ② 원본 선하증권이 발행되기 전에 송하인이 서렌더 화물(Surrender Cargo)로 처리해줄 것을 요청하여 운송인이 원본 선하증권을 발행하지 않고 서명이나 이면약관도 없이 선하증권양식의 사본에다가 서렌더 화물임을 표시하여 송하인에게 교부하는 서렌더 선하증권의 경우에는 당사자에게 이면약관도 적용하지 않으려는 의사가 있었다고 볼 것이라는 견해24)와 이면약관을 배제한다는 명시적인 합의나 특별한 문언이 없는 이상 이면약관의 내용이 운송계약에 편입된다는 견해25)로 나뉘며, 판례26)는 앞의 견해를 따라 서렌더 화물로 처리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져 선하증권이 발행되지 않은 이상 당해 운송계약에 선하증권의 이면약관에 포함된 책임제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선하증권의 원본이 발행되지 않았던 이상 당사자 사이에 선하증권의 이면약관에 관한 어떤 합의가 있었다고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앞의 견해에 찬성한다.

 

다. 대상판결의 검토
대상판결은 서렌더 선하증권에 대한 학설과 판례에 따르면 비교적 자명한 법리를 확인·선언하였다. 이 사건의 제1심과 항소심의 결론이 달랐지만, 이는 사실인정의 차이에 기초했던 것으로, 두 판결이 전제하고 있는 법리 역시 대상판결의 그것과 같았다. 즉 서렌더 선하증권이 발행된 경우 선박대리점은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선하증권 원본의 회수 없이 운송인의 지시에 따라 운송계약상의 수하인에게 화물인도지시서를 발행하여 수하인이 이를 이용하여 화물을 반출하도록 할 수 있다. 이는 송하인과 수하인의 합의에 의하여 선하증권의 상환증권성을 포기한 데 따른 자연스런 결과이다. 


대상판결은 선행쟁점으로, 피고는 운송인인 잉코우의 도착지 선박대리점으로서 잉코우의 이행보조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잉코우는 이를테면 국제적인 복합운송주선을 인수하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 경우 그에 관여하는 도착지 선박대리점, 보세창고업자 등은 그의 이행보조자가 된다.27) 따라서 도착지의 선박대리점인 피고는 운송인 잉코우의 이행보조자로서 수입화물에 대한 통관절차가 끝날 때까지 수입화물을 보관하고 해상운송의 정당한 수령인인 수하인 또는 수하인이 지정하는 자에게 화물을 인도할 의무를 부담한다. 
A 회사는 B 회사와 당초 대금결제방식을 신용장 방식으로 합의하여 원고로 하여금 이 사건 신용장을 발행하게 하였다. 따라서 A 회사로서는 이후 전신환송금으로 대금결제방식을 바꾸고 서렌더 선하증권의 발행에 관한 합의를 하였을 때에는 마땅히 원고에게 이를 통지하여 신용장 발행에 관한 법률관계를 정리하였어야 한다. 그러나 A 회사는 이를 하지 않은 채 이 사건 화물을 인도받은 뒤 부도를 내고 말았다. 원고는 운송인인 잉코우가 이중으로 발행한 것으로 보이는 원고 소지 선하증권의 담보적 기능을 신뢰하고 이 사건 신용장 대금을 결제하였으나, 이 사건에서는 원고 소지 선하증권이 원본 선하증권임을 확인할 자료가 없었다. 만약 A 회사가 이 사건 화물을 인도받은 뒤 부도를 내자, 잉코우가 물품대금을 확보하기를 원하는 B 회사의 요청에 의하여 뒤늦게 원고 소지 선하증권을 발행하였던 것이라면, 그 선하증권은 선하증권의 원인과 요건을 구비하지 못한 것으로서 무효이다.28) 원고는 A 회사로부터 손해를 전보받지 못한다면, 원고 소지 선하증권을 이중으로 발행한 잉코우와 그 선하증권을 이용하여 신용장 대금을 지급받은 B 회사를 상대로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소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29)


만약 이 사건의 사실관계와 달리 원고 소지 선하증권이 원본 선하증권임이 증명되었다면 그 법률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① 우선 서렌더 선하증권의 효력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원본 선하증권 전통(全通, full set)이 회수되어야 하고, 만약 서렌더된 선하증권 외에 다른 원본 선하증권을 선의의 제3자가 소지하고 있다면 위 서렌더 합의가 선의의 제3자의 지위에 영향을 미칠 수 없으며, 운송인 및 운송인의 이행보조자인 도착지의 선박대리점으로서는 선의의 제3자에게 서렌더 항변으로 대항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30) 다만 이미 송하인과 수하인 사이에 서렌더 화물로 합의가 되거나 선하증권 원본이 서렌더 된 후에 선하증권 원본이 다시 발행된 경우에는, 운송물에 대한 인도청구권은 이미 수하인에게 귀속되었다고 할 것이므로, 이후 송하인이 다른 이유를 들어 운송인으로부터 선하증권을 다시 발행받는다고 하더라도 화물에 대한 처분권한이 다시 송하인에게 회복된다고 보기는 어렵다.31) 따라서 위와 같은 사정이 밝혀진 경우에는 선하증권의 소지인이 아닌 수하인이 운송물의 인도청구권을 가진다고 할 것이다.

 

② 운송인이나 운송인의 이행보조자가 서렌더 선하증권에 기하여 수하인에게 운송물을 이미 인도하였는데, 이후에 선하증권의 원본의 소지자가 나타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먼저 운송인의 경우, 자신이 발행한 원본 선하증권 전통을 회수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렌더 합의를 승인하고 수하인에게 운송물을 인도하였다면, 선하증권의 소지인에 대한 관계에서 불법행위책임을 면하기 힘들다. 도착지의 선박대리점과 같은 운송인의 이행보조자인 경우에는 구체적으로 운송인으로부터 어떻게 통지를 받았는지 사실관계를 더 살펴보아야 할 것이지만, 통상적인 업무처리 절차를 통해 운송인으로부터 선하증권이 서렌더 된 것을 확인하였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과실은 인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③ 만약 운송인이 도착지의 선박대리점에 서렌더 통지를 하는 등 위조된 서렌더 선하증권의 행사에 관여한 경우라면 어떠한가? 이 경우에도 도착지의 선박대리점 등 운송인의 이행보조자에 불과한 자로서는 운송인과 공모하지 않은 한, 운송인으로부터 통지받은 내용에 기초하여 통상의 업무처리절차를 거쳤다면 불법행위에 관한 과실이 인정된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 사건에서는 원고 소지 선하증권이 원본 선하증권임이 증명되지 않았고, 원본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수하인인 A 회사에 이 사건 화물이 인도되었다. 대상판결은 ‘원고 소지 선하증권이 원본 선하증권이라고 단정할 자료가 없는 이상, 피고에게 화물인도지시서 발행 당시 이 사건 각 서렌더 선하증권 외에 이중으로 발행된 원본 선하증권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화물인도지시서를 발행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볼 수 없고, … 운송인의 이행보조자인 피고가 운송인이 선하증권을 위조하였는지 여부 및 운송인이 피고에게 이 사건 매매계약의 거래방식을 허위로 고지한 것은 아닌지를 조사하였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하여 피고의 주의의무 위반이 없다고 본 항소심 판결을 수긍하였다. 피고가 A 회사에 화물인도지시서를 발행하기 전에 서렌더되지 않은 다른 원본 선하증권이 발행된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경우가 아닌 한, 피고에게 위와 같이 적극적으로 조사를 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요컨대 대상판결에 의하면,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운송인으로부터 서렌더 통지를 받고 수하인으로부터 서렌더 선하증권을 제시받은 도착지의 선박대리점은 그 운송인의 통지를 신뢰하고 수하인에게 화물인도지시서를 발행한 것으로서, 원칙적으로 운송인이 수 통의 선하증권 원본을 발행하거나 혹은 위조된 서렌더 선하증권의 행사에 관여하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으로부터 비롯하는 법률상 위험을 부담하지 않는다. 도착지의 선박대리점이 그러한 특별한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는 점은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원고에게 증명책임이 있다. 이는 서렌더 선하증권을 이용한 거래구조의 현실에 적합한 해석으로 보이고, 거래에 관여하는 당사자들의 합리적인 의사에도 부합한다.  

 

6. 결론
대상판결은 서렌더 선하증권의 본질상 자명하지만 대법원 판결을 통해서는 한 번도 분명하게 선언된 적 없었던 서렌더 선하증권의 상환증권성 포기에 따른 법적 효과를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도착지 선박대리점의 주의의무의 범위에 관한 기준은 합리적이고 타당하다. 한편, 서렌더 선하증권과 기능적으로 유사한 것으로 해상화물운송장(Sea Waybill)이 있다. 해상화물운송장은 해상물건운송계약에 기해서 운송인이 운송물을 수령 또는 선적하였음을 확인하고 그 증권에 기재된 수하인에게 그 운송물을 인도할 것을 약정하는 해상물건운송계약의 비유통성 증거증권이다(상법 제863조, 제864조). 해상화물운송장과 서렌더 선하증권은 운송인이 그 서류를 상환받지 않더라도 수하인에게 화물을 인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같은 효과를 가진다.32) 서렌더 선하증권과 해상화물운송장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은 무엇인지, 양자의 실무상 활용을 장래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는 앞으로 검토되어야 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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