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의 유형과 그 법적 성질

 

- 대법원 2019. 12. 27. 선고 2017다208232(본소), 2017다208249(반소) 판결 -

 

 
 

1. 서론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bareboat charter with hire purchase, BBCHP)1)의 법적 성질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에 관한 논의가 최근 실무계와 학계의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이러한 논의는 주로 한진해운의 회생 및 파산 사건에서 한진해운이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의 방식으로 운용하고 있던 특수목적법인(SPC) 소유의 선박에 대하여 개별적인 강제집행을 허용할 수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이루어졌다. 선박금융을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 즉 대주단(금융기관, 이하 같다)이 특수목적법인을 통하여 선박을 소유하면서 그에 대한 담보권을 보유하고, 해상기업은 위 특수목적법인으로부터 선박을 장기로 용선하여 용선료를 지불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대주단에 대한 차입금을 상환하는 형태의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에서는 그 법적 성질을 어떻게 파악하는가에 따라서 회생절차에서 관련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달라진다. 회생절차에 들어간 해상기업이 안정적으로 선박을 보유하여 계속 기업활동을 할 회생의 이익을 중시하는 관점에서는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이 ‘소유권유보부매매’의 실질을 가진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견해는 특수목적법인과 대주단이 실질적으로 하나의 실체로서 해운회사에 대하여 회생담보권을 가진 것으로 취급하고,2) 해당 선박에 대한 개별적인 강제집행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본다(회생담보권설).3) 이와 달리 대주단이 특수목적법인을 통하여 도산절연효과를 누리고자 한 의사(당사자의 사적자치)를 보장하고 이를 통해 선박금융의 거래안정성을 증대시킬 이익을 중시하는 관점에서는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이 용선자와 특수목적법인 사이의 쌍방미이행 쌍무계약4)에 해당한다고 본다. 따라서 특수목적법인 소유인 해당 선박에 대한 개별적인 강제집행이 허용되고, 특수목적법인이 선박에 대한 환취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미이행쌍무계약설).5)6) 우리 하급심 판결례 중에는 미이행쌍무계약설을 취한 것이 있다.7)


그런데 최근의 대법원 2019. 12. 27. 선고 2017다208232(본소), 2017다208249(반소) 판결(이하 ‘대상판결’이라 한다)은 앞서 본 것과 다른 유형의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계약과 거기서 문제 되는 다른 국면의 이해관계 충돌을 보여준다. 대상판결은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계약의 법적 성질에 관한 쟁점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우리나라에서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계약에 관한 이론을 정립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판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2. 사실관계
가. 해상운송업 등을 목적으로 하는 대한민국 법인인 원고는 2008. 4. 13. 선박보유회사로서 파나마 법인인 피고와 사이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계약을 체결하였다(이하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이라 한다).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선박명: ‘이 사건 선박’
선주: 피고
용선자: 원고
1. 수취인: 원고
2. 운행구간: 원고 선택사항
3. 용선기간: 50개월(2008. 4. 13.부터 2012. 6. 12.까지)
4. 선박인수(Delivery): 2008. 4. 13. 대한민국 부산항
5. 선박반선(Re-delivery): 용선기간 만료 후 피고는 원고에게 소유권을 이전한다.
6. 화물: 강설, 철강제품과 그 밖에 무해한 합법적인 화물
7.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료 : 1일당 일화 130,000엔,*
   선박 인도금 38,000,000엔
8. 지불금액
  1) 용선료는 선박인도일 한 달 후에 지불한다.
  2) 1일당 일화 130,000엔의 용선료를 피고에게 지급한다.
  3) 원고는 용선기간이 종료한 후 인도대금 38,000,000엔을 피고에게 지급한다.
9. 보험: 모든 보험은 원고 부담으로 한다.
17. 용선계약 세부사항은 뉴욕프로듀스서식 1993(NYPE 1993)을 기본으로 적용하되, 논리적 수정만 가능하다.
18. 공동해손 분쟁은 서울에서 중재로 해결하고, 대한민국 법을 적용한다.

*50개월의 용선기간에 대한 용선료 총액이 197,730,000엔(1,521×130,000엔)이라는 점에 대하여는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다.

 

나. 원고는 2008. 4. 13. 피고로부터 이 사건 선박을 인도받은 후 41회차(2008. 4. 13.~2011. 9. 12.분)까지는 용선료를 제대로 납부하였으나, 42회차~45회차(2011. 9. 13.~2012. 1. 12.분)의 용선료는 2~4개월 지연하여 분할 납부하였고, 그 후 2012. 6.부터(46회차분 이후부터)는 원·피고 사이의 합의에 따라 매월 3,000,000엔씩을 지급하였다. 원고가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 체결 이후 2013. 6. 27.까지 피고에게 지급한 용선료 총액은 217,100,000엔이다.


다. 원고가 위와 같이 용선료를 제대로 지급하지 아니하고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에서 정한 용선기간 만료일(2012. 6. 12.) 이후 이 사건 선박을 계속 사용하였음에도 피고는 이 사건 선박을 회수하지 않았다.
라. 그러던 중 이 사건 선박은 2013. 7. 12. 쇳가루를 싣고 인천항에서 일본 와카야마 항으로 항해하다가 통영시 백도 인근 해상에서 화물창 폭발 사고로 침몰하였다. 위 사고에 대한 조사결과, 원고 측의 별다른 귀책사유는 발견되지 않았다.
마. 한편 이 사건 선박에 관하여 2013. 7. 6. 보험자 A 회사, 보험금 미화 1,350,000달러(이하 ‘미화’는 생략한다), 보험기간 2013. 7. 8.부터 1년, 보험료율 4.104%로 하고, 보험사고를 이 사건 선박의 멸실 또는 훼손으로 하는 보험계약이 체결되었다(이하 ‘이 사건 보험계약’이라 한다). 위 보험계약은 원고로부터 이 사건 선박관리를 위탁받은 B 회사가 체결하였고, 그 보험료는 원고가 납입하였다. 이 사건 보험증권에는 피보험자로 ‘소유자(owner) 피고, 관리자(manager) B 회사’가 기재되어 있고, 그 밖에 영국 협회기간약관(1983년)이 적용된다는 기재와 ‘운항자(operator) 원고’라는 기재가 있다.


종전에 이 사건 선박에 관하여, ① 2011. 7. 6. 보험자 C 회사, 보험기간 1년, 보험료율 3.9815%로 하고, 보험사고를 이 사건 선박의 멸실 및 훼손으로 하는 보험계약이 체결되었고, ② 2012. 7. 6. 보험자 A 회사, 보험기간 1년, 보험료율 4.104%로 하고, 보험사고를 이 사건 선박의 멸실 및 훼손으로 하는 보험계약이 체결된 바 있었다. 위 2011. 7. 6.자 보험계약의 보험증권에는 피보험자로 ‘소유자 B 회사, 관리자 B 회사’가 기재되어 있었고, 위 2012. 7. 6.자 보험계약의 보험증권에는 피보험자로 ‘소유자 원고, 관리자 B 회사’가 기재되어 있었다.
바. 이 사건 선박의 침몰사고 직후 원고는 A 회사에 자신이 피보험자라고 주장하며 보험금의 지급을 청구하였고, B 회사는 2013. 7. 19. 자신의 보험금청구권을 원고에게 양도하였다. 한편, 피고는 A 회사에 이 사건 선박의 소유자인 자신이 정당한 보험금청구권자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A 회사는 2014. 3. 31. 채권자 불확지를 이유로 피공탁자를 원고 또는 피고로 하여 이 사건 보험금 1,430,390,619원8)을 변제공탁하였다(이하 ‘이 사건 공탁금’이라 한다).

 

3. 사건의 경과
가.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A 회사는 원고가 실질적인 피보험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원고가 피고에게 이 사건 선체용선 계약에 의한 용선료 대부분을 지급하여 사실상 이 사건 선박의 소유자와 마찬가지의 지위에 있으므로 이 사건 보험계약의 피보험이익이 원고에게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 사건 공탁금의 출급청구권자가 원고라는 확인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본소).9) 이에 대하여 피고는, ① 원고가 용선료 및 선박인도대금을 전액 납입하지 않은 이상 이 사건 선박의 소유권은 여전히 피고에게 있고, 보험증권에 피보험자로 기재된 자도 피고이므로 이 사건 보험계약의 피보험이익은 피고에게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 사건 공탁금의 출급권자가 피고라는 확인을 구하고, ② 2013. 2. 13.부터 2013. 7. 12.까지의 미지급 용선료 15,000,000엔의 지급을 구하는 반소를 제기하였다(반소).
 

나. 제1심법원은 원고의 본소청구를 기각하고, 피고의 반소청구를 전부 인용하였다. 제1심법원은 우선 원고와 피고 쌍방의 공탁금출급권 확인청구에 대하여, 이 사건 보험증권에는 피보험자가 ‘소유자 피고, 관리자 B 회사’로 기재되어 있고, 원고는 이 사건 선박의 ‘운항자’로만 기재되어 있을 뿐인바, 위와 같은 보험증권의 명문의 기재에도 불구하고 원고가 이 사건 선박에 관하여 피보험이익을 가지는 피보험자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① 이 사건 보험계약 체결 당시 당사자 사이에 보험증권의 기재와 상관없이 원고를 피보험자로 하는 합의가 존재하였거나, ② 그와 같은 합의가 인정되지 않더라도 이 사건 보험계약의 준거법인 영국법상 ‘현명(顯名)되지 않은 본인의 법리(unnamed principal)’ 또는 ‘노출되지 않은 본인의 법리(undisclosed principal)’에 의하여 원고를 피보험자로 인정할 수 있거나, ③ 이마저도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는 이 사건 보험계약 체결 이후 원고가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에 의한 용선료를 대부분 납입하는 등으로 사실상 소유자로서의 지위를 취득하여 보험금지급청구권을 가진다고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전제하였다. 제1심법원은 ① 원고, A 회사, B 회사 사이에 보험증권의 명문의 기재에도 불구하고 원고를 피보험자로 하는 합의가 존재하였다고 인정되지 않고, ② 영국법상 ‘현명(顯名)되지 않은 본인의 법리(unnamed principal)’ 또는 ‘노출되지 않은 본인의 법리(undisclosed principal)’에 의하여 원고를 이 사건 보험계약의 피보험자로 인정할 수도 없으며, ③ 원고는 약정 용선료와 선박인도대금을 완납하기 전에는 이 사건 선박의 소유권을 취득하지 못하는바, 원고가 피고에게 이 사건 선박의 소유권을 취득하기 위하여 지급해야 하는 총 금액인 270,100,000엔(= 45회차분까지의 용선료 178,100,000엔 + 46회차분 이후부터 2013. 7. 12.까지 월 3,000,000엔씩 18개월분 용선료 54,000,000엔 + 선박인도대금 38,000,000엔)에 미치지 못하는 217,100,000엔만을 지급하였으므로, 원고가 이 사건 선박의 소유권을 사실상 취득하였다거나 위와 같이 지급한 금액에 비례하여 이 사건 보험금지급청구권의 일부를 취득할 수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이 사건 공탁금출급청구권이 이 사건 보험증권상 피보험자인 피고에게 있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제1심법원은 원고가 피고에게 5개월분의 미지급 용선료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였다.10)
 

다. 원고는 제1심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였다. 원고는 항소심에서 ①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이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계약으로서 원고가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상 용선료 및 선박인도금 합계 235,730,000엔 중 원고의 지급금 217,100,000엔의 비율에 해당하는 92.0968% 지분에 해당하는 물권적 기대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종전의 공탁금출급청구권 확인청구를 위 지분권 부분에 대한 공탁금출급청구권 확인청구로 감축하고(주위적 청구), ② 선체용선계약에 관하여 국제적 양식으로 널리 사용되는 ‘BARECON 2001’ 제13조11)를 근거로, 피고에게 원고의 위 물권적 기대권에 상응하는 이익의 비율에 상당한 보험금 정산을 위하여 이 사건 공탁금출급청구권 중 92.0968% 지분권을 양도할 것을 구하는 한편(제1 예비적 청구), ③ 원고가 피고에게 지급한 용선료 중에는 ‘소유권 이전의 대가 상당의 금액’이 함께 포함되어 있고, 만약 피고가 이 사건 보험금 전부에 대한 권리자라면 원고로부터 지급받은 용선료 중 소유권 이전의 대가 상당의 금액은 이중이득을 한 셈이므로 그 상당액 1,390,283,460원의 지급을 구하였다(제2 예비적 청구). 항소심 법원은 ① 본소 중 주위적 청구와 반소 중 공탁금출급청구권 확인청구 부분에 관하여는,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의 법적 성격은 소유권유보부 매매라기보다는 용선기간 종료 후 소유권취득 조건이 부가된 선박임대차에 해당하므로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이 소유권유보부 매매임을 전제로 원고가 이 사건 선박에 대하여 물권적 기대권(피보험이익)을 가진다는 원고의 주장은 이유 없고, 원고가 주장하는 ‘현명되지 않은 본인의 법리’ 또는 ‘노출되지 않은 본인의 법리’에 의하여 원고가 이 사건 보험계약의 피보험자가 된다고 보기 위해서는 적어도 B 회사가 이 사건 보험계약 체결 당시 원고의 대리인으로서 이 사건 보험증권에 피보험자로 기재되었다는 점이 인정되어야 하나 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원고의 공탁금출급권 확인청구 부분을 기각하고 피고의 공탁금출급권 확인청구 부분을 인용하였다. 또한 항소심 법원은 ② 본소 중 제1 예비적 청구에 관하여는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에 BARECON 2001 서식이 계약의 내용으로 편입되었다고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하였으나,12) ③ 본소 중 제2 예비적 청구에 관하여는 원고가 50개월간의 용선료 197,730,000엔을 초과하여 지급한 19,370,000엔은 이 사건 선박 소유권 이전의 대가로 지급된 것이고, 그 후 이 사건 선박이 멸실되어 피고가 그 소유권을 이전하여줄 수 없게 되었을 뿐 아니라 위 멸실로 인한 이 사건 보험금 전액이 피고에게 귀속되었으므로, 피고가 원고에게 위 19,370,000엔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하여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다만 항소심 법원은 위 50개월간의 용선료 197,730,000엔에도 이 사건 선박 소유권 이전의 대가가 포함되어 있다는 원고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항소심 법원은 ④ 피고의 반소 중 5개월분의 용선료 청구 부분에 대하여는, ‘원고와 피고는 용선기간 연장에 따른 추가 용선료 발생 없이 당초 이 사건 용선계약에서 정한 용선료 등 합계 235,730,000엔(= 용선료 197,730
,000엔 + 선박인도금 38,000,000엔) 중 미납액을 매월 3,000,000엔씩 분할 지급하기로 합의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하여 이를 기각하였다.13)
라. 원고는 이에 불복하여 대법원에 상고하였으나, 대법원은 원고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대법원은 뚜렷하게 법리를 선언하지는 않았으나, 항소심 법원 판단이 정당함을 수긍함으로써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의 법적 성질 등에 관한 대법원의 입장을 밝혔다.

 

4. 대법원의 판시사항
대상판결은 대체로 항소심 법원의 판단을 원용하여 이를 수긍하는 취지의 판단을 하였다.  

 

[판시사항]
1. 원고가 이 사건 보험계약의 피보험자인지 여부

가. 이 사건 보험계약에는 선박의 멸실 또는 훼손을 보험사고로 하는 선체보험계약이 포함되는데, 그 보험목적물인 이 사건 선박은 캄보디아에 등록되어 있고, 선박의 소유자로서 피보험자로 지정된 피고는 파나마 법인이므로 이 사건 보험계약은 외국적 요소가 있어 국제사법에 따라 준거법을 정하여야 한다. 국제사법 제25조 제1항 본문은 ‘계약은 당사자가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선택한 법에 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이 사건 보험계약에 적용되는 영국 협회선박기간보험약관은 그 첫머리에 ‘이 보험은 영국의 법률과 관습에 따른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이 사건 보험계약의 해석이 문제될 때에는 영국법이 준거법이 된다.
나. 영국법상 보험계약서에 피보험자로 기재되어 있지 않은 자도 피보험자로 인정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즉, 본인으로부터 보험계약 체결의 대리권을 수여받은 대리인이 상대방에게 본인의 신원을 현명하지는 않았으나 본인의 존재를 노출하여 상대방이 본인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경우에는 현명되지 않은 본인(unnamed/unidentified principal)이 보험계약상 권리·의무를 부담할 수 있다. 또한 대리인과 보험계약을 체결한 상대방이 본인의 존재를 알지 못한 경우에도, 대리인이 그 노출되지 않은 본인(undisclosed principal)으로부터 보험계약 체결에 관한 대리권을 수여받아 보험계약 체결 당시 본인을 위하여 보험계약을 체결한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고, 보험계약의 내용상 노출되지 않은 본인이 계약의 당사자가 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 없다면 노출되지 않은 본인이 보험계약상 권리·의무를 부담할 수 있다(이른바 ‘현명되지 않은 본인 또는 노출되지 않은 본인의 법리’).

 

2.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의 해석 및 피고의 부당이득반환의 범위
원심은 판시와 같은 이유로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의 법적 성격은 용선기간이 종료된 후에 소유권취득조건이 부가되기는 하였으나 그 실질은 선박임대차라는 전제에서, 이 사건 보험계약에 따른 보험금 전액이 피고에게 귀속됨에 따라 피고가 원고에게 반환하여야 할 부당이득의 범위는 원고가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에 따라 지급한 금원 중 선박인도금에 해당하는 19,370,000엔에 한정되고, 그 이외에 원고가 50개월의 용선료로 지급한 금원 중에도 소유권 이전의 대가 내지 할부매매대금이 포함되어 있어 그에 상응하는 금액도 부당이득으로 반환되어야 한다는 원고의 주장을 배척하였다. 원심판결 이유를 관련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처분문서의 해석, 준거법의 해석, 증거 법칙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이유모순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

 

5. 검토
가.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계약
1) 선체용선계약의 다양한 형태

순수한 선체용선계약은 용선기간이 종료되면 용선자가 당연히 선박소유자에게 반선(反船, redelivery)할 것을 예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무상 선체용선계약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중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BBCHP)’14)은 용선계약이 종료될 때 용선자가 선박의 소유권을 취득할 것을 예정한다. 이는 연불방식에 의한 선박의 구입으로서, 선박의 수요자가 일시에 선박대금을 지급할 수 없는 경우에 운항수익으로 선박의 원리금을 정기적으로 상환하는 방식을 의미한다.15) 이 유형의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계약은 주로 해상기업이 중고선을 도입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용선료의 합계액은 선박의 선가와 동일하게 되며, 용선계약기간 만료 시점에 용선자가 선박의 소유권을 취득하게 된다.16)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의 경우 용선기간의 종료시점이 가까워질수록 소유권이 용선자에게 가까워진다.17) 연불매매조항(Hire/Purchase Agreement)이 삽입된 BARECON 2001 선체용선계약양식18)에 의하면, 용선기간이 종료되고 용선자가 계약상의 의무를 모두 이행한 경우에는 최종 용선료의 지급에 의하여 용선자는 선박의 소유권을 취득한다.19)


또한 해상기업이 선박금융의 목적으로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하여 이를 선박소유자로 하여 대주단으로부터 금융을 받아 선박을 건조한 다음 자신이 선체용선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오늘날 보다 빈번하게 행하여지는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계약으로서, 앞서 서론에서 살펴본 유형의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선체용선에 대하여는, 대주단이 특수목적회사를 통하여 선박에 대한 소유권을 사실상 보유하거나 지배하는 것은 금융의 담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고 선체용선자가 지급하는 용선료는 금융을 얻은 금액의 분할 상환의 성격을 가지므로, 결국 일종의 물적 금융으로서 리스계약에 유사하다는 평가가 유력하다.20)
우리 상법 제484조 제2항은 ‘용선기간이 종료된 후에 용선자가 선박을 매수 또는 인수할 권리를 가지는 경우 및 금융의 담보를 목적으로 채권자를 선박소유자로 하여 선체용선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도 용선기간 중에는 당사자 사이에서는 이 절의 규정에 따라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여 위 두 유형의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계약에 대하여도 용선기간 중에는 당사자들이 상법상 선체용선에 관한 규정에 따른 권리의무를 부담하도록 정하고 있다.

 

2) 이 사건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계약
고유한 의미의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계약, 즉 연불방식에 의한 선박의 구입은 소유권유보부매매로서의 법적 성질을 가진다. 선박금융을 목적으로 하는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계약에 대하여는 이를 소유권유보부매매(회생담보권설)로 볼 것인지 아니면 특수한 형태의 금융리스계약으로 볼 것인지(미이행쌍무계약설)에 관하여 견해가 나뉘고 있음은 서론에서 본 바와 같다.
그런데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은 위 두 가지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계약과 내용을 달리한다.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은 용선기간 중에는 일반 선체용선계약과 같이 용선자가 용선료를 지급하고, 마지막 날에 남은 선가를 지급하여 소유권을 취득하는 옵션을 가지는 형태이다.21)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은 선박금융을 목적으로 하는 유형의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계약과는 거리가 멀고, 용선자가 기존의 선박을 매수한다는 점에서 고유한 의미의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계약에 가깝다. 그러나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은 용선료의 합계가 선가에 미치지 못하고, 용선자가 선박의 소유권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선박소유자에게 별도로 상당한 수준의 선박인도금을 지급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고유한 의미의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계약과 다르다. 결국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은 제3유형의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계약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의 법적성질은 무엇이고, 용선료의 내용은 무엇인지가 문제된다. 대상판결은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이 소유권유보부매매에 해당하지 않고, 그 실질은 ‘용선기간 종료 후 소유권취득 조건이 부가된 선박임대차’라는 항소심 법원의 판단을 수긍하였다. 항소심 법원은 그러한 판단의 근거로 ① 상법 제848조 제2항, 제1항에 의하면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계약의 경우에 용선자와 선박소유자 사이의 관계는 우선적으로 선체용선계약에 따라 규율되고, 보충적으로 그 성질에 반하지 않는 한 민법상 임대차 규정이 준용되는 점, ②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에 의하면 용선기간이 만료될 경우 자동적으로 이 사건 선박의 소유권이 원고에게 이전되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소유권 이전행위가 요구되는 점, ③ 이 사건 선박과 같은 20톤 이상의 선박의 경우 매수인에게 등기를 하지 않음으로써 대금채권에 대한 담보의 기능을 유지할 수 있으므로 소유권유보부매매의 개념을 원용할 필요성이 별로 없는 점, ④ 원고로서는 용선기간 종료 후 용선료 총액 197,730,000엔의 약 20% 정도에 이르는 선박인도금을 추가로 지급하여야만 이 사건 선박의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는데, 이는 일반적인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계약의 경우 용선료 외에 추가적인 인도금이 없거나 형식적 수준의 금액으로 책정되는 것과 다른 점 등을 들었다. 위 ①의 사유는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계약에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고, 위 ③의 사유는 고유한 의미의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계약의 법적 성질이 소유권유보부매매로 인정된다는 점과 선박의 등기가 대항요건에 불과하다(상법 제743조)는 점에서 항소심 법원의 판단을 뒷받침하는 강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이 고유한 의미의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계약과 다른 핵심 사유는 위 ②, ④의 사유이다. 결국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은 순수한 선체용선계약과 용선자의 소유권취득에 관한 선택권이 결합된 특수한 형태의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계약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유형의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의 경한편 이러한 유형의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의 경우 소유권 취득조건을 고려하여 순수한 선박의 용선료보다는 용선료가 높게 책정될 가능성이 높다. 용선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지출하는 용선료에는 선박에 대한 사용대가 외에 ‘소유권 이전의 대가 상당의 금액’이 포함되어 있다고 여기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선박이 멸실되는 경우에 용선자가 기지급한 용선료 중 ‘소유권 이전의 대가 상당의 금액’에 대하여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는 본소 중 제2 예비적 청구의 쟁점이 되었다. 원고가 지급한 용선료에 ‘소유권 이전의 대가 상당의 금액’이 포함되어 있고 그 부분이 순수한 용선료 부분과 명확하게 구별되어 지급됨으로써 이를 분할·특정할 수 있다면 해당 부분을 부당이득으로 인정할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을 소유권유보부매매가 아니라 ‘용선기간 종료 후 소유권취득 조건이 부가된 선박임대차’라고 보는 논리적 귀결에 따라 위 용선료는 순수한 용선료의 성질을 가진다고 평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원고가 지급한 용선료 중 ‘소유권 이전의 대가 상당의 금액’이 증명되지 않는 한 이 사건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계약의 용선료는 순수한 용선료라고 보게 되는 것이다.22)


대상판결은 이러한 관점에서 원고의 제2 예비적 본소청구를 기각한 항소심 판결을 정당한 것으로 수긍하였다. 만약 원고와 피고가 BARECON 2001 선체용선계약양식을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에 편입하였다면, 원고로서는 이 사건 용선료의 법적 성질과는 무관하게 피고에게 일부의 정산을 구할 수 있었을 여지가 크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BARECON 2001 선체용선계약양식이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의 내용으로 편입되었다고 볼 아무런 근거가 없었다. 대상판결은 이러한 이유로 원고의 제1 예비적 본소청구를 기각한 항소심 판결을 정당한 것으로 수긍하였다. 
 
 3) 이 사건 선박에 대한 피보험이익의 귀속
고유한 의미의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계약에서 용선자는 선박이 침몰하게 되면 그동안 자신이 선박소유자에게 지급한 선가에 대하여 손해를 입게 된다. 따라서 그는 피보험이익을 가지고, 선박보험에서 피보험자가 될 수 있다.23)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에서도 원고가 피고에게 지급한 용선료에 소유권 이전의 대가 상당의 금액이 포함되어 있었음이 증명된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원고가 피보험이익을 가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유권 이전의 대가 상당의 금액’에 해당하는 부분이 증명되지 않았고,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의 법적 성질이 소유권유보부매매에 해당하지도 않으므로, 원고에게 이 사건 선박에 대한 피보험이익이 귀속된다고 할 수 없다. 이 사건에서 원고는 소유권취득조건을 고려하여 단순 선체용선료에 비하여 높은 용선료를 책정하여 모든 용선료를 지급하였음에도 이 사건 선박에 대한 피보험이익을 전혀 누리지 못하였으므로 이 사건 보험계약에 따라 자신에게 귀속될 피보험이익이 부당하게 박탈되었다고 여길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결과는 이러한 유형의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계약을 체결하는 용선자가 어떻게 거래구조를 설계해야 하는지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용선자로서는 만약 순수한 용선료 외에 선박의 소유권 이전의 대가 상당의 금액이 포함되어 있다면 그 부분을 명확히 분할 및 특정함으로써 선박의 소유권 취득을 위해 자신이 지출한 비용과 자신이 선박에 대하여 피보험이익을 가지는 부분이 상응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적어도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선체용선계약양식을 계약에 편입함으로써 선박이 멸실되는 경우 자신이 가지는 소유권에 관한 기대를 보상받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둘 필요가 있다. 이러한 거래구조를 설계함으로써 당사자들은 거래의 실질에 더 부합하는 결과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영미법상 대리의 효과
우리 민법 제114조 제1항은 ‘대리인이 그 권한내에서 본인을 위한 것임을 표시한 의사표시는 직접 본인에게 대하여 효력이 생긴다’고 규정하여 대리행위에 있어서 본인의 현명(顯名)을 요구하고 있다(현명주의). 이와 달리 상법 제48조는 ‘상행위의 대리인이 본인을 위한 것임을 표시하지 아니하여도 그 행위는 본인에 대하여 효력이 있다. 그러나 상대방이 본인을 위한 것임을 알지 못한 때에는 대리인에 대하여도 이행의 청구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본인의 현명을 요구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차이에서 볼 수 있듯이 현명주의는 대리에 있어서 당연히 전제되는 요소가 아니고, 입법정책의 문제이다.24)


영미법상 대리인의 대리행위에 의하여 본인은 계약의 당사자로서 계약상의 권리를 취득하고 의무를 부담하게 된다. 이는 ‘타인을 통하여 행위하는 자는 자기 자신이 행위하는 자이다(Qui facit per alium, facit per se)’라는 법언으로 표현된다.25) 그러나 이러한 효과는 본인의 ‘계약상 권리의 취득 및 행사’가 문제되는 경우에 본인의 존재와 이름에 대한 상대방의 인식 여부에 따라 다음의 세 단계로 나뉘어 달리 취급될 수 있다. 이와 달리 본인은 자신의 노출(露出)이나 현명(顯名) 여부와 무관하게 상대방에 대하여 계약상 의무를 부담한다.26)
우선 어떠한 행위가 대리행위임이 상대방에게 노출(露出)되고, 그 본인의 이름도 현명(顯名)된 경우에는, 전형적인 대리의 효과가 발생하여 본인이 계약의 당사자가 되어 계약상의 권리를 취득하게 된다. 어떠한 행위가 대리행위임이 상대방에게 노출되기는 하였으나 본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경우, 즉 현명되지 않은 본인의 경우에도, 상대방은 계약 당시부터 대리인이 아니라 본인과 계약상 권리의무관계를 맺는다고 인식하였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본인이 계약상 권리를 취득하게 된다.27) 이러한 점에서 영미법은 현명주의를 취하지 않는다고도 설명된다.28) 대상판결이 ‘본인으로부터 보험계약 체결의 대리권을 수여받은 대리인이 상대방에게 본인의 신원을 현명하지는 않았으나 본인의 존재를 노출하여 상대방이 본인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경우에는 현명되지 않은 본인이 보험계약상 권리·의무를 부담할 수 있다’고 판시한 것은 이러한 법리를 정리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어떠한 행위가 대리행위라는 것 자체가 상대방에게 노출되지 않은 경우, 상대방은 대리인과 거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본인 등 다른 사람과 거래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숨겨졌던 본인이 개입하여 권리를 행사하는 경우 상대방에게 뜻밖의 불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 따라서 대리인이 계약상의 당사자가 되고, 본인은 계약상 권리를 행사하지 못함이 원칙이다. 그러나 대리인과 거래하느냐 본인과 거래하느냐가 상대방의 관심사가 아니었던 경우에까지 이를 관철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따라서 영국의 판례법리는 다음의 두 가지 인적인 요소의 고려(personal considerations)가 계약에 포함되는 경우, 즉 ① 상대방이 대리인과의 거래를 원하고 다른 사람과의 거래를 원하지 않는 경우29) 또는 ② 상대방이 대리인 아닌 자와 거래를 할 의향을 가지고는 있지만 노출되지 않은 본인 바로 그 사람과는 거래를 할 의사가 없는 경우30)에는 대리인이,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본인이 계약상 권리를 취득한다고 본다. 대상판결이 노출되지 않은 본인의 법리에 관하여 “대리인이 그 노출되지 않은 본인(undisclosed principal)으로부터 보험계약 체결에 관한 대리권을 수여받아 보험계약 체결 당시 본인을 위하여 보험계약을 체결한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고, 보험계약의 내용상 노출되지 않은 본인이 계약의 당사자가 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 없다면 노출되지 않은 본인이 보험계약상 권리·의무를 부담할 수 있다”고 설시한 것은 이러한 법리를 정리한 것으로 이해된다.31)  


요컨대 ‘현명되지 않은 본인의 법리’와 ‘노출되지 않은 본인의 법리’는 대리행위에 관한 현명주의를 요구하지 않는 영국법하에서 본인에 대하여 대리행위로 인한 권리의 귀속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조건에 관한 법리이다. 이러한 법리를 적용은 적어도 어떠한 행위가 ‘본인을 위하여’ 행하여진 대리행위일 것임을 전제로 한다. 이 사건에서 원고가 ‘B 회사’라고 표시된 피보험자란의 기재로써 이 사건 보험계약의 피보험자가 된다고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이 사건 보험증서의 ‘B 회사’라는 기재가 원고를 대리한 B 회사의 행위로 이루어진 것임이 증명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B 회사가 원고를 대리인으로서 이 사건 보험증권에 피보험자로 기재되었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았다. 오히려 증거들에 의하면, 이 사건 보험증권 피보험자란의 ‘소유자’를 원고에서 피고로 변경한 것은 이 사건 선박의 소유자인 피고의 피보험이익을 보호해주기 위해서였고, ‘관리자’를 B 회사로 한 것은 보험료 절감 등을 위하여 B 회사가 원고의 대리인 자격이 아니라 이 사건 선박의 관리자 자격으로 피보험자가 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영국법상 ‘현명되지 않은 본인의 법리’와 ‘노출되지 않은 본인의 법리’에 기초하여 자신이 이 사건 보험계약의 피보험자에 해당함을 주장하는 원고의 주장은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32)

 

6. 결론
이 사건은 실무에서 행하여지는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계약의 한 유형과 그 법적 성질 등에 관한 선례를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사건이 대상판결을 통해 최종 확정되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이는 이 사건이 그만큼 복잡하고 그 문제의 해결이 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후적인 관점에서는 대상판결을 토대로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의 법적 성질과 용선료의 성격이 어떻다고 나름대로 정리를 할 수 있지만, 이 사건은 특히 어떠한 결론이 더 합당한지에 관한 양측 대리인들의 치열한 공방과 법원의 고심을 느낄 수 있는 사건이다.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과 같은 유형의 선체용선계약을 체결하여 거래하는 해상기업으로서는 이 사건이 보여주는 시사점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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