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계절은 어김없어 봄꽃들이 만발하며 자태를 뽐냈지만, 느끼고 찬미해야 할 사람들의 마음은 그저 삭막할 뿐이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단지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감염병에게 자연을 향한 경외심과 마음의 여유마저 빼앗겼다. 인간의 자긍심이 극히 작은 병균에 의해 여지없이 무너졌다. 코로나-19를 너무 우습게 봤다는 자성의 소리도 나오나 상황은 이미 국가와 사회의 시스템을 붕괴시키고 기본적인 인간의 삶을 억압하고 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과 거리를 두어야 하고 이웃을 피해 다녀야 하는 비정한 현실에 절망한다. 언제 다시 그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유대인의 지혜서 미드라쉬에 나오는 구절이 문뜩 떠오른다. 이스라엘 다윗왕이 반지 세공사에게 승리의 기쁨 중에도 교만하지 않고 절망과 시련에 처해도 용기를 줄 수 있는 글귀를 찾아 쓰라고 했더니, 이 말을 반지에 새겨 넣었다고 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


21대 총선이 집권여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제1 야당 미래통합당은 당초 과반 확보를 호언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참담한 패배였다. 당대표를 비롯한 당직자들이 전멸하여 당의 운영과 존립 자체를 걱정하게 됐다. 유권자에게 당명처럼 미래를 제시하거나 진정한 통합을 이루어내지 못했고, 과거에 사로잡혀 변하는 시대를 담아내지도 못했다. 보수의 품격과 가치는 실력과 경험 그리고 진중함이다. 발언 하나 행동 하나 신중하고 의미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신뢰하고 정권을 맡긴다. 패배의 원인으로 남 탓하거나 코로나-19로 돌리지 말고 뼈를 깎는 노력과 함께 변화와 개혁 그리고 외연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지금까지 국정 난맥을 국회와 야당 탓으로만 돌리던 정부 여당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압승했더라도 언제든 역전될 수 있는 게 선거다. 그리고 41%의 반대도 있었음을 기억하여 편 가르기, 일방독주, 이상에 치우친 현실감 없는 정책이나 포퓰리즘을 남발해서는 안될 것이다. 경쟁상대는 밖에 있다. 시급한 경제회복과 국제경쟁력 강화로 냉혹한 글로벌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책임있는 수권정당으로서 최선을 다해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실현하기 바란다.
4월 콤파스도 코로나-19에 밀려 취소됐다. 매월 첫 번째(금년부터 두 번째) 금요일 아침 일찍 모여 해운현안과 사회적 이슈를 나누던 때가 그립다.

 

‘도덕경제학’
작업현장의 민주적 통제, 미국 자본주의의 축적체제 등 좌파적 주제를 경제학 이론으로 분석한 새뮤얼 보울스(Samuel Bowles) 교수의 ‘도덕경제학(Moral Economy)’을 읽었다. 보울스는 진화, 제도, 불평등을 연구한 세계적인 경제학자로서 ‘자본주의 이해하기’, ‘자본주의 미국에서의 학교교육’, ‘미시경제학-행동, 제도 그리고 진화’ 등의 저서를 남겼다. 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학자에게 주는 레온티에프상을 수상했다.
보울스는 ‘도덕경제학’의 서론에서 이타적 인간 본성을 무시한 정책과 제도는 실패한다고 전제하고, “왜 경제적 인센티브는 선한 시민을 대체할 수 없는가”고 묻는다. 그리고 화두로 자유주의의 종말을 선포한다. 경제주체를 경제인이 아닌 사회인으로 본 난해한 책이었다.


자유주의는 단순히 무역장벽의 축소로만 이해될 수 없다. 현재 자유주의는 곤경에 놓여 있다. 개인의 권리와 관용을 잘 운용하는 사회의 상징으로 내세우며 등장했던 가치집합으로서의 자유주의가 지금은 그 가치들을 위험에 빠트렸다. 자유주의가 자유방임 경제모델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자유주의는 자신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은 목표를 상실했다. 이종차별적 불관용은 자유주의가 방향을 잃고 현실의 문제점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자유주의가 추구하는 목적에는 종교적 소수자를 보호하고 강자로부터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1926년 존 케인스는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가 어떻게 운명적으로 맺어졌는지를 “17세기 말 군주의 신권은 자연권에 자리를 내어주었고, 교회의 신권은 종교적 관용의 원칙에 자리를 내주었다. 그 결과 계약에 새로운 윤리적 중요성이 부여되었고 이를 통해 재산권의 옹호가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케인스에 따르면, 재산상의 불평등 심화에 대한 대응으로서 사회주의와 민주적 평등주의가 등장했지만, 이 이념들은 사적 교환과 공공선의 신적인 조화라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적절한 순간 전면에 등장한 경제학자들의 주장대로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 사이에 바로 그 기적적인 결합이 이루어지면서 억제되었다. 그리하여 19세기 자유주의는 광범위한 자유방임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 20세기 전반 자유주의가 민주주의라는 근대적 개념을 받아들인 이유는 부가 점점 소수에게 편중되는 추세에 대응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경제적 엘리트들은 자유주의적 민주화를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좋은 거버넌스의 자유주의적 특징에는 관용, 사적 소유권, 경쟁시장 뿐 아니라 보편적 선거권이 새로 추가되었다.
 

자유주의적 위기는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자유방임의 결과로 경제적 불평등이 증대되었고, 과거 자부심이 강한 제조업의 몰락이 초래되었다. 지구적 자유방임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준비된 희생양이었다. 보편적 선거권이 도입된 이후 자유주의적 가치의 운명은 광범위한 유권자들의 손에 달려 있다. 이전 세대의 유권자들은 대부분 자유주의가 표방한 자유의 열렬한 옹호자들이었다. 재산권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까지 투표권이 확대된 일을 비롯해 19세기와 20세기 민주주의 발전을 이끌어 온 것은 노동자와 소농, 도시 빈민의 운동이었다. 오늘날 자유주의가 표방하는 자유를 유지하고 강화하는데 이러한 평범한 사람들의 지지가 다시 명료해졌다. 자유주의가 불평등을 심화하는 경제모델과 결합해버린 이상, 이제는 그런 일이 일어나기 어려워졌다. 그러나 자유무역을 보호주의로 대체하려는 시도는 그저 지역 중심적 사고방식만을 확산시킬 뿐이다.
초기 자유주의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약자와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사회, 급격한 기술변화와 세계화에 불가피하게 뒤따르는 경제적 불안정성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려는 사회에서라면 사라질 위험에 처한 정치적 자유주의의 가치들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 자유주의가 되살아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경제모델이 필요하다. ‘도덕경제학’에서 제시된 여러 증거들은 새로운 경제가 어떤 모습일 수 있는지를 가늠해줄 지침이 될 것이다. 정치적 가치들은 단지 물려내려 오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의 사회 경제적 경험을 통해 재생산된다. 경제모델이 평등한 존엄, 진정한 자유, 그리고 관용 등의 가치를 추구할 수 있으려면 노동현장과 공동체 내에서 그리고 정부의 노력 아래 이러한 도덕적 원칙들이 배양되고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적절한 환경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현재 미국 자본주의를 특징짓는 경제적 불평등, 정치적 계층화, 그리고 불안정성은 정치적 자유주의의 도덕적 기초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여러 조건을 해치는 요인들이다. 자본주의가 지향하는 도덕적 임무를 수행해낼 수 있는 체제가 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열려있는 문이다.


 
호모 이코노미쿠스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즉 경제인의 문제점은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놓고 “법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고려해야 한다”는 장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 드러난다. 즉, 사회를 잘 통치하려면 거버넌스를 구성하는 법이나 경제적 유인, 나아가 정보나 도덕적 호소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을 이해해야 하며, 이때 사람들의 반응은 그들 행동에 동기를 부여하고 제약하기도 하는 욕망이나 목표, 습관, 믿음 그리고 도덕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오늘날 법학자나 경제학자 그리고 이들에게 영향을 받은 정책입안자들 사이에서는 공공정책을 수립하거나 법체계를 설계할 때, 또는 기업을 비롯한 민간조직을 구성할 때, 사람들은 이기적이며 도덕에 무관심하다고 가정해야 한다는 견해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다양한 금전적 인센티브가 제공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패러다임에 따라 정책을 펴면 무관심과 이기심이라는 가정을 점점 사실로 만들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사람들은 유인이 없을 때보다 있을 때 훨씬 더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벌금이나 보상 같은 물질적 인센티브가 때로는 잘 작동하지 않는다. 부정직한 사람의 탐욕을 이용할 수 있도록 아무리 정교하게 인센티브를 설계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좋은 거버넌스가 확립될 수 없다. 사적 재산권의 확립, 시장경제의 강화, 금전적 인센티브를 통한 개인행동의 유도 등 경제학자들이 선호하는 정책은 좋은 거버넌스에 필요한 윤리적 동기나 그밖의 사회적 동기를 해치는 의도치 않은 문화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시장경제가 올바르게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이런 정책들이 이기심을 부추길 뿐 아니라 협력적이고 관대한 시민문화를 견고하게 유지해주는 사회적 수단을 훼손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부정직한 자들을 전제로 한 법질서
부정직한 사람들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는 군주론의 마키아벨리를 위시한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의 주된 관심사였지만, 그들이 경제행위자들과 시민들이 실제로도 도덕에 무관심하다고 본 것은 아니었다. 국부론의 애덤 스미스 역시 ‘도덕감정론’에서 “사람들이 아무리 이기적이라 가정하더라도, 그의 본성에는 명백한 원리가 있어 타인의 운명에 관심을 갖고 바라보는 즐거움 외에 아무것도 얻지 못하더라도 타인의 행복을 자신에게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만든다”고 주장했다. 고전학자들은 정책이 이익을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윤리적이고 타인을 고려하는 동기에 대한 호소를 간과하지 않았다.
호모 이코노미쿠스 패러다임을 받아들인 20세기 법사상가들은 인간이 철저하게 이기적이라는 가정과 인간의 동기가 그보다는 복잡하고 고상하다는 경험적 사실 간의 긴장관계에 별로 고민하지 않았다. 법학자 홈스도 법대생에게 악인의 관점에서 법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지만, “법이란 우리의 도덕적 삶의 목격자이자 외부저장소”라고 주장하였다. 오늘날 법률관행은 고전학자들의 정책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단순히 악인으로 간주해 그들이 이기적이라고 가정하기보다는 다양한 사회적 성향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시장을 규제할 때는 법률위반에 대해 벌금만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비난받을 일을 했다는 것에 수치심을 느끼도록 잘못한 바를 공개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인센티브 제도를 영리하게 설계하면 도덕에 무관심하고 이기적인 시민이 공익에 이바지하도록 행동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윤리적이고 타인을 고려하는 동기는 사회가 잘 유지되는데 필수적 역할을 할 것이고 점차 그 역할은 더욱 커질 것이다. 이런 사실을 무시한 채, 사람의 행동을 결정하는 선호가 어떤지를 고려하지 않고 정책을 수립하는 사람은 인센티브를 제공했을 때 오히려 사람이 비도덕적으로 행동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어떤 사회든 인센티브와 제약은 필수적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나아가 인센티브와 제약이 윤리적 동기에 의도치 않은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도덕감정과 물질적 이해관계
사회적 선호와 인센티브가 분리 가능하다면, 시민들을 호모 이코노미쿠스보다는 호모 소시알리스(Homo socialis) 즉 사회인으로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 보조금 같은 인센티브가 없으면 비이기적으로 행동할 사람이 보조금이 지급되자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사례가 카르데나스 연구팀이 콜롬비아 농촌마을에서 실시한 공공자원 게임이라 불리는 ‘공공 비재화(public bads)’이다. 골자는 인센티브 제공이 마을 주민의 사회적 선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와, 인센티브 제공으로 그들의 행동이 완벽하게 이기적인 사람의 선택과 얼마나 달라지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인센티브가 제공되지 않았던 단계에서 이기적인 선택을 하지 않던 사람들이 돌변한 것이다. 벌금이라는 인센티브의 제공은 일시적으로 효과를 봤지만, 인센티브가 제공되지 않았던 첫 단계에서 보인 사회적 선호는 거의 사라져버렸다. 즉, 벌금의 도입은 이미 존재하던 마을 주민들의 사회적 선호를 대체해버린 것이다. 또 하나의 사례를 소개하면, 하이파 어린이집에서 부모지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벌금을 도입하자 이전보다 더 많은 부모들이 지각하는 최악의 결과가 나왔다. 비록 지각하더라도 벌금을 물면 되고 벌금을 낸 후에는 미안함이나 수치심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정치경제학을 ‘단지 부를 소유하는 존재’로서의 개인에 대한 연구로 국한시킴으로써 정치경제학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었다. 실제로 윤리적 동기나 타인을 고려하는 동기가 존재하지 않거나 인센티브의 효과가 이런 동기의 효과에 단순히 더해지는 것이라면, 밀이 이런 윤리적 동기나 타인을 고려하는 동기를 배제한 것은 정당화 할 수 없다.

 

정보로서의 인센티브
마키아벨리는 이기적인 사람도 선한 사람처럼 행동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정책을 고안하려 했다. 흄은 부정직한 자들의 탐욕을 잘 인도하여 공공의 이익에 봉사하도록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부정직한 자들을 전제로 법을 만들면, 그 법이 사람들을 부정직하게 만든다. 그래서 선한 사람도 나쁜 사람처럼 행동하게 될 수 있다. 인센티브가 가져오는 프레이밍 효과 중의 하나는 시장 친화적 인센티브는 심리학자들이 ‘도덕적 거리두기(moral disengagement)’라고 하는 현상을 일으킨다. 도덕적 거리두기란 사람들이 자신들의 윤리적 스위치를 필요에 따라 켰다 껐다 할 수 있기에 나타난다. 인센티브가 사회적 선호를 몰아내게 되는 이유는 사람들이 인센티브가 자신들을 통제하려는 의도에서 도입되었다는 게 분명할 때 정치적 본질에 대해 부정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인센티브나 제약조건이 사람들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사람들의 내재적 동기를 감소시킨다. 여기서 중요한 심리적 메커니즘은 내재적으로 동기 부여된 행동을 할 때 생겨나는 ‘역량감과 자기결정권’이라는 욕구이다. 다만, 몰아냄의 효과를 잘못 이해하거나 과장했을 수 있고, 시장과 인센티브가 사회적 선호를 잠식하는 효과는 분명 존재하지만, 많은 사회에서 이런 효과가 견고한 시민문화를 가능케 하고 번성시키는 또 다른 사회적 가정들에 의해 상쇄되어왔다고도 볼 수 있다.


 
자유주의 시민문화
인센티브가 때로는 윤리적 고려, 타인을 도우려는 바람, 내재적 동기를 몰아내고, 시장을 도덕으로부터 해방된 영역으로 간주한다면, 자본주의 문화에 대한 칼 마르크스의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즉, “마침내 사람들에게 양도 불가능하다고 여겨왔던 모든 것이 교환의 대상이 되어 양도 가능해진 시대가 도래했다. 서로 주고받거나 결코 사고파는 게 아니던 것, 예를 들어 미덕이나 사랑, 지식, 양심 같은 것도 상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시대가 왔다. 이런 시대는 전반적인 부패와 금전적 타락의 시대이다.” 따라서 인센티브가 있을 경우 집단 내에서 관대한 행동이 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과 사람들이 보편화 된 행동방식을 채택하는 경향이 생긴다는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존 롤스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폈다. “다른 사람들이 법을 지키지 않는 상태에서 혼자 법을 지키는 것이 위험할 때, 공적 제도들은 배반자를 처벌함으로써 배반자의 수를 줄여준다. 그렇게 되면 협력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배반자로부터 착취당할 가능성은 작아지고, 착취당할 위험을 줄이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잠재적 협조자들이 선제적으로 배반을 택할 동기도 줄어든다.” 시장에 기초한 사회에서 생동감 넘치는 시민문화가 조성된다는 퍼즐은 지리적 직업적 이동성과 법치 자유주의 사회의 여러 측면이 시민적 덕성을 유지하고 사회질서를 보존하는 데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주의 깊게 살펴봄으로써 풀 수 있다. 자유주의적이고 민주적이며 시장을 기반으로 한 사회에서 사람들이 직면하는 그런 종류의 인센티브와 제약조건은 사회적 선호를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끌어들이는 것이다. 인센티브와 제약조건이 사람들의 윤리적이고 타인을 고려하는 성향과 대치되기보다 시너지 효과를 내며 작동하도록 공공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입법자의 딜레마
경제학자 로버트 루카스는 간단한 관찰 하나로 경제학계를 뒤흔들어놨다. 만일 정부가 세금이나 다른 정책수단을 통해 민간경제에 개입하면, 시민들의 행동에 따른 비용과 편익뿐 아니라 정부와 다른 주체들이 미래에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한 시민들의 믿음도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탈세에 대해 더 엄격한 처벌을 하겠다고 공표하면 세금을 납부할 유인이 늘어나지만, 한편으로 시민들에게 탈세가 만연하다는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정직하게 납세했던 시민들이 탈세할 수도 있다. 루카스는 “정책입안자가 시민들의 반응을 예상하려면, 이 구조 자체의 변화를 고려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루카스의 비판(Luas Critique)이라는 이 아이디어의 영향력은 엄청나서 경제학자들의 ‘Critique’ 첫 자를 대문자로 쓸 정도로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도 누리지 못한 영예를 누리고 있다. 입법자의 딜레마는 명확히 규정된 사적 재산권, 경쟁, 유연성과 이동성 등의 조건은 계약이 완전할 때 시장이 잘 작동할 수 있게 해주는 조건들이다. 계약이 완전하지 않을 때에는 이런 조건들을 갖추려는 시도가 상호 이익이 되는 교환을 가능케 하는 사회규범을 손상시킬 수 있다. 반대로 이런 사회규범을 장려하는 경제적 사회적 제도는 시장의 기능을 저해한다. 왜냐하면 그런 제도들은 그 경제와 보이지 않는 손의 이상적 경제 사이의 간극을 넓히기 때문이다.

 

좋은 정책과 법질서
다양한 친사회적 동기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입법자는 바람직한 모든 것을 동시에 달성할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입법자는 이기적인 개인들이 공익에 이바지하도록 유도하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과는 정반대 상황에 직면한다. 다양한 사회적 선호들, 예컨대 호혜성과 이타주의를 가진 집단에서는 잘못된 연금술이 좋은 동기들을 원하지 않는 사회적 결과로 전환시킬 수도 있다. 좋은 정책과 법질서는 사람들의 이기심을 이용하면서도 공적인 동기를 유발함으로써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목표를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전염병, 기후변화, 개인정보 보안과 지식기반 경제의 관리 등 세계가 직면한 가장 큰 어려움은 사람들의 상호교류가 전 지구적으로 혹은 대규모로 이루어지기에 나타난다. 전적으로 이기적인 시민을 전제로 만들어지는 사적 계약이나 정부의 인센티브 또는 벌칙을 통해 바른 행동을 유도하는 방식으로는 이러한 교류들이 성공적으로 관리될 수 없다는 사실로도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이런 새로운 도전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법질서와 인센티브 그리고 규제에 대한 분석방법이 개발될 수 있기 바란다.    

저작권자 © 해양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