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선 충돌사고 방지를 위한 상대선의 예방조치

우리나라 연안에서 발생하는 어선 해양사고는 충돌사고가 기관손상사고 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충돌사고의 주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 중 견시불량, 항행과실 등 인적과실이 가장 큰 이유로 알려져 있다. 정부에서는 이런 인적과실의 해양사고 예방을 위해 선원 및 종사자의 교육 강화, 근로환경 개선 등 선박종사자의 안전역량 제고를 위해 여러 가지 정책을 수립하여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어선 충돌사고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정책이 실효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므로 그 실효성이 나타날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호에서는 어선과 상대선이 조우하였을 때 충돌 방지를 위한 상대선의 적극적 예방조치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해양사고 발생현황

지난 10년간(2007-2016)의 해양사고 통계자료를 분석한 연구보고서1)에 의하면 어선 해양사고는 기관손상사고가 4,059척(33%)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충돌사고 2,481척(20%), 화재폭발사고 686척(5%), 좌초사고 686척(5%), 기타사고3,495척(28%)순으로 분석되었다. 해역별로는 영해 내에서 남해안이 3,496척으로 44%를, 총톤수별로는 5톤 미만이 4,537척으로 무려 전체 등록톤수의 36%를 차지하고 있고, 시간대별로는 야간보다는 주간 시간대에, 특히 연근해 어업의 경우 일반적으로 어선이 조업을 위해 출항 또는 조업을 마치고 입항하는 시간대에 해양사고가 더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재결이 이루어진 해양사고는 충돌사고가 994건으로 전체 재결건수의 65%를 차지하고 있다. 

1972년 국제해상충돌예방규칙 

1972년 국제해상충돌예방규칙(‘COLREG’)은 조종성능이 다른 선박이 서로 시야 내에서 항행 관계가 성립하였을 때 조종이 쉬운 선박이 조종성능에 제약이 있는 선박을 먼저 적극적으로 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조종성능에 제약이 있는 선박들은 ‘어로에 종사하고 있는 선박’으로 어망, 낚시줄, 트롤망 또는 기타 어구를 사용하여 어로하고 있는 선박을 말한다. 이 경우 조종성능에 제약이 있는 선박은 해상에서 분별이 쉽도록 주간에는 지정된 형상물을 야간에는 특정 등화를 주위에서 잘 볼 수 있도록 표시할 의무를 가진다. 또한 어로에 종사하고 있는 선박이라도 견시 의무는 예외로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적절한 견시를 유지해야 할 의무도 부담한다. 

그러나 충돌예방 규칙의 항법은 국제조약, 해사안전법, 선박입출항법 등 여러 법률이 동시에 적용되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어선원들은 충돌을 피하기 위한 항법을 잘 모르거나 이를 지키기 않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대부분의 경우 체계적인 교육 없이 단편적인 지식의 습득이나 관행적인 노하우에 의존하여 어선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어선을 조우한 상대선은 이러한 사실을 미리 인지하여 적극적으로 방어 운항을 해야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적극적인 방어 운항을 위해서는 어선 작업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어선 작업에 대한 이해 

가. 어선원의 작업 환경
국제노동기구(ILO)는 가장 위험한 직군으로 어업을 꼽았고 고용노동부가 산정하는 산업 재해율도 어선원 재해율이 제일 높다. 이는 어선원들의 작업현장이 안전을 담보하기에는 너무 열악한 공간이라는 지표로 볼 수 있다. 어선은 5톤 미만의 소형선박이 전체등록톤수의 36%를 넘어설 정도로 영세하고 어선원은 어선작업, 어획물 작업, 설비 유지보수 등으로 인하여 24시간 이상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 경우도 빈번히 발생한다. 또한 피로한 작업환경으로 선원들 거의 대부분이 특정 시간대에 잠을 자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상황은 어선원의 피로와 집중력 상실을 유발시키며, 다른 선박에 대한 적절한 견시 유지를 힘들게 한다. 

나. 어선 작업의 특징  
통상 어선원들은 선박의 안전보다 어획물 수확에 더욱 집중한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어선 작업 시 어획물 획득에 몰두하여 선교가 무인상태로 놓일 수도 있고 어장확보를 위해 최고 속도로 이동하면서 사고위험에 직면할 수도 있다. 또한 항해 및 조업 중 경계 소홀과 어획물 분리작업 중 조타실 자리 비움, 선장의 졸음 등에 기인한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한편 조업을 나가기 전에 각종 항해 장비, 전기설비 등의 작동상태를 사전 점검하고 노후 설비를 교체해야 하나 이를 소홀히 하여 조업과 항해의 안전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 다국적 선원의 증가추세도 언어소통의 어려움 등으로 사고율을 높이는 또 다른 이유가 될 수 있다.

다. 등화 및 형상물 표시
등화 및 형상물 표시는 선박의 현재 상태가 어디 있는지 알리는데 목적이 있다. 그러나 어획을 위하여 또는 어획물 작업을 위하여 야간에 항해용 등화, 형상물 표시 이외에도 수많은 등화를 켜고 있는 경우도 많다. 야간 등화가 켜져 있을 경우 어선의 상태와 후속 조치를 알기 어렵거나 오인할 수 있다.

라. 조업의 방식
우리나라 연근해에서 행해지고 있는 어선의 조업형태는 목적이 되는 어획물에 따라 통발, 자망, 연승어업, 채낚기, 트롤, 저인망, 선망어업, 기선권현망, 안강망 어업 등 다양하다. 또한 지역과 성수기철에 따라 성행하는 어선의 조업형태도 다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인천~군산지역은 안강망, 군산~목초지역은 자망, 목포~완도지역은 김양식장, 광양과 여수는 정치망, 남해~통영은 멍게, 굴, 홍합 양식장, 부산~ 속초지역은 정치망 등이 성행한다. 성수기철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4월~6월은 병어 잡이를 위한 유자망어업, 9월~11월은 김양식장, 11월~4월은 김, 파래 양식장, 연중 조업으로 안강망, 정치망, 멍게, 굴, 홍합 양식장이 성행한다. 

몇몇 지침들에서는 사고 예방을 위하여 각각의 조업형태에 따른 특성을 숙지시키도록 어선원을 교육할 것을 권고한다. 일례로 연승이나 통발어업에서는 약 10노트에 가까운 속도로 항해하면서 투승을 한다. 이러한 사항은 조업 특징을 알지 못하고는 대응이 어렵다. 하지만 조업형태를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주간과 야간을 구분하지 않고 해상에서 실제로 보았을 때 식별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고 예방 조치

상술한 어선 작업의 특징을 고려했을 때 어선과 조우한 상대선은 사고 예방을 위하여 누가 피항선이고 유지선인지 고려하지 말고 적극적인 방어 운항을 하도록 요구된다. 따라서 조기에 이러한 피항 조치를 통하여 항법 관계가 성립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어선이 항법과 다른 행동을 취하는 우발적인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최대한 근접상태는 피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예방조치를 들 수 있다.

가. 적극적인 조기 피항 조치
첫째 사정이 허락되는 한 항법관계 상 피항선 또는 유지선으로서의 지위 여하에 관계없이 상대선은 충분한 거리를 유지하여 과감한 변침 및 감속 등을 통하여 적극적인 사전 피항 조치를 해야 한다. 

둘째 어선원은 안전항해보다 어획물 수확에 더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어선이 상대선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고 가정하여 미리 대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셋째 어선은 야간에 갑판에서의 작업을 위하여 서로 다른 종류 및 다수의 등을 사용할 수 있다. 이 경우 어선이 어떤 조치를 취하는지 확인이 어렵고, 오해할 수 있기 때문에 미리 피항 조치를 취해야 한다.

넷째 항행 계획 시 어선이 많은 구역은 해도에 표시를 하고 가능한 피할 수 있는 항로를 선택한다.

나. 근접상태의 회피 
첫째 어선과 조우할 경우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예상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여 근접상황은 반드시 피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어선이 수면에 설치되어 있는 어망을 보호하기 위하여 충돌 위험으로 인지하여 오히려 상대선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유념한다.

다. 대형선망 접촉의 예방조치
고등어, 전갱이, 정어리, 말쥐치, 부새, 조기 등 어류는 망선, 등선, 운반선 등 선단을 구성하여 조업을 진행한다. 이 작업에 투입되는 대형선망은 길이가 수 킬로미터에 달할 수 있는데, 수면 아래 설치되어 있고 야간의 경우 더욱 식별이 어렵기 때문에 주위 항해 시 특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또한 사고 예방 측면에서 살펴보면, 어선이 선단을 이루어 작업하는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수면아래 수 킬로미터 길이의 대형선망이 있을 수 있음을 인지하고, 반드시 선단을 가로질러 항해하지 않고, 선단으로부터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우회해야한다.

어선 충돌사고는 어선과 어선간의 충돌사고보다는 어선과 상선과의 충돌사고가 많다. 어선은 일반적으로 재질이 FRB(플라스틱)로 만들어지고, 크기에 비하여 많은 인원이 승선하기 때문에 충돌사고 발생 시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한다. 따라서 상대선의 적극적인 방어운항이 요구된다. 특히, 해양안전심판원의 재결 건수는 어선 충돌사고가 다른 사고에 비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충돌사고가 어선과 상대선 간 다툼이 다분히 내재하는 사고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일부 선주 및 선장은 선박의 정시성을 안전운항보다 더 우위에 두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태도는 항해사의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결국 충돌사고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어선 충돌사고는 항시 인명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점을 감안하면, 선주와 선장은 항해사에게 선박의 정시성보다 안전항해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인지시켜야 하고, 선박의 항해사는 항시 방어운항을 통하여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또한 충돌사고는 해상의 특수성 때문에 책임소재 여부를 명백히 판단하기 어렵고, 책임이 명백하게 판단되더라도 어느 일방에 무조건적인 책임이 부과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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