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인정한 ‘유류오염 감정인’ 40여년 검정업 외길

김석기 (주)한국해사감정 회장
김석기 (주)한국해사감정 회장

 

태안의 유류오염사고가 발생한 지 어언 8개월이 지나간다. 방제작업은 마무리되었고, 방제비용에 대한 청구가 처리 중이며 어업피해 보상도 내년에는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최대의 유류오염사고로 기록된 ‘허베이 스피릿’호의 기름유출 사고에 따른 피해보상은 선주보험사인 Skuld P&I와 IOPC 펀드(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를 통해 이루어진다. 특히 국내에서 산정한 방제비용 청구내용과 어업피해 청구내용은 ITOPF(국제유조선선주오염조사기구)로부터 검증과정을 거쳐 승인받아야 하는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한다. 


 

사고의 피해도 컸지만, 피해의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객관적이고 정확한 피해규모를 산정해야 보상청구가 이루어지고, 이를 ITOPF가 승인해야 P&I와 IOPC에서 보상금을 내준다. 따라서 국제적으로 유류오염사고가 발생하면 그 피해의 산정을 위해 전문 산정인에게 피해규모를 조사하고 보상규모를 청구하도록 위임한다.

 

 

‘세계 제일의’ 감정인 위해 신변위협에도 꿋꿋
이번 태안 유류오염사고 처리를 위한 전문 감정인으로 (주)한국해사감정의 김석기 회장이 선정되었다. 김석기 회장은 1961년 한국해양대학교 항해학과를 졸업하고 65년 감정원 자격증을 얻은 이후 40여년을 검량·검정업에 종사해왔다. 그는 당시로서는 세인의 관심에서는 벗어나 있던 해양오염 감정을 특화시키며 감정인의 인생을 선택했다. 그 결과 지금 유류오염 방제와 피해규모 산정분야에서 세계가 인정하는 전문 감정인이 되어 있다. 특히 태안사고의 방제 및 피해사정 전문가로 지목되어 이를 처리함으로써 김 회장은 유류오염사고 피해의 전문 사정인으로써 국제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다.


보통의 해운인이 선택하지 않은 특수한 분야를 걸어오는 동안 그는 수많은 시련을 겪어야 했다. 해양오염 감정이라는 업무가 중립적인 입장에서 전문식견을 가지고 현장에 기초한 조사와 합리적인 평가 내리기가 생명이기에 피해당사자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 사고 처리시 폭력을 당하는 등 힘든 때도 많았지만 그는 ‘세계적인 전문가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꿋꿋하게 극복해왔다.


이번 태안사고를 처리하는 중에도 그는 사무소에 ‘방칼복’을 준비해놓았을 정도의 신변위협을 느끼고 있다. 피해자의 보상기대에 못미치는 평가가 나올 경우 그에 대한 폭력적인 반응이 나오기도 하기 때문. 전문성은 물론 왠만한 의지와 배포로는 감당하기 힘든 일을 김 회장은 40여년간 계속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좀 특이한 해운인’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태안 유류오염사고 처리와 관련, 김석기 회장이 맡은 일은 △방제작업 감리 △방제작업 사정 △어업피해 조사 △어업피해 조사사정. 태안사고의 피해조사와 보상청구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 어선업, 관광, 맨손업 관련 피해조사와 사정을 제외한 모든 사고처리와 보상업무를 한국해사감정이 맡아하고 있다.


이로써 김석기 회장과 한국해사감정의 직원들은 사고발생 후 지난해 12월 9일부터 9개월 가까이 태안에서 사고처리를 위해 뛰고 있다. 태안읍 동문리의 한 빌라에 사무소를 차려놓고 20여명이 사고처리에 여념이 없다. 기자가 찾아간 태안의 사무소에는 그동안 처리한 많은 서류철들과 서류상자들로 사무소의 한편이 메워져 있었고, 영국의 ITOPF에서 직접 파견되어 현장조사를 감사하는 외국인도 함께 일을 하고 있었다. 김 회장도 별도의 방이 없이 사무소의 한편에서 파티션만으로 공간을 나누어 직원들과 함께 유니폼 차림으로 근무 중이었다.

 

피해조사내용 토대로 직접 ITOPF 보고서 작성
김석기 회장은 기자가 방문한 날도 ITOPF에 전달할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방제와 피해조사는 회사의 직원들이 함께 공동작업하지만 보고서는 그가 직접 작성한다. 전문적인 식견이 있어야 조사된 사실을 바탕으로 합당한 청구액을 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들어놓은 보고서가 8월 14일 현재 건수로 349건, 파일로 10권에 이른다. 태안사고 보상처리는 이제 시작되었다고 보고 보상청구건이 수만건으로 예상한다면, 앞으로 그가 작성하게 될 보고서의 양을 짐작할 수 있다.


그의 보고서는 40여년간 쌓아온 전문성과 3,000여권의 국내외 해운·수산관련 장서의 내용을 토대로 작성된다. 피해자가 청구한 보상금을 1차적으로 검증하는 것이 그의 일이라고 보면 된다. 따라서 그는 손해보상 비용의 지불사나 피해당사자, 관계당국 등으로부터 중립적이고 독립적으로 존재해야 한다. 그 어느 쪽으로도 편향되어서는 그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수십년간 관련업무를 하며 국제적으로 신뢰할만한 해상오염방제 및 보상 규모 산정인으로써 인정을 받았기에 태안의 사고처리도 가능했다.


그러나 그의 객관적인 사정은 피해당사자들에게는 쉽게 원망의 대상이 되곤 한다. 자신의 손익에 대해 합리적일 수 없는 게 인지상정이다. 피해당사자가 청구한 내용이 축소 조정되었을 경우 그 원망은 감정인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김석기 회장은 숱한 협박과 폭력을 당하기도 했지만, 그 와중에도 타협하지 않고 가능한 한 합리적인 기준을 잣대로 피해보상 산정에 인생을 걸었다. 그렇게 불편부당을 원칙으로 수십년간 해상오염 감정인의 정도를 걸어온 결과, 까다롭다는 소문과 함께 국제적으로 신뢰받는 감정인으로서 신뢰의 폭을 넓혀왔다.


태안사고의 방제감리·사정, 어업피해조사·사정업무 총괄 
방제비용 청구는 마무리 단계, 어업피해보상은 이제 시작

 

김석기 회장이 유류오염 감정에 올인하기로 한 작심에는 일본 친구들의 영향이 컸다. 30여년전인 76년 일본으로 검정교육을 받으러 갔다가 그들의 조언을 통해 세계적인 감정인을 꿈꾸게 되었다. “일반검정으로는 세계제일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이후 유류오염에 대한 공부에 파고 들었다. 해외출장 때마다 관련 전문서적을 사들여 독학을 시작했고, 그렇게해서 소장하게 된 3,000여권의 관련도서는 지금그의 이력을 있게 한 소중한 자산이다.

‘세계적 감정인’을 위한 그의 꿈은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국제사회에서 홀대를 받았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한건 한건 처리하다보니 어느 순간 유럽의 클럽들이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이 일을 한지 10여년이 지난 1984년경부터 합리적이고 까다로운 유럽사회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전문가로서 국제적인 인정을 받으면서 그는 1988년에 부인과 단둘이 작은 사무실에서 한국해사감정을 설립했고, 그 회사가 지금은 30명이 넘는 직원이 함께하는 회사로 커 있다.


40여년 감정인의 생활을 회고해달라는 기자의 주문에 김 회장은 “공정하고 합리적인 조사와 산정을 해왔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또한 주먹질에 움찔하고 타협하거나 일을 못했다면 국제적인 전문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검정업이 작은 분야이지만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감정인의 인생을 개척한 것은 만족스럽다.”면서 “칠순이 넘은 이 나이에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것 또한 축복이라 여긴다. 이제 자식과 직원으로부터 존경받는 기업인으로서 선배로서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이 해야할 중요한 일”이라고 답했다. 


은퇴 업무가 될 수도 있는 태안 유류오염 보상처리의 감정에 혼신의 노력을 쏟아붓고 있는 칠순의 김석기 회장이 현장을 지키고 있는 모습은 멋졌다.  


 

◈ 현재 사고처리 현황은 어떠한 지요?  
“방제작업은 다 끝났다. 이제 방제비용 청구와 어업피해조사 및 보상청구 작업이 남았다. 방제비용 사정은 섬과 일부지역을 제외하고 6월말에 끝났다. 올해안에는 마칠 수 있을 것이다. 방제비용 산정을 통해 청구한 액수는 8월 13일 기준으로 1,070억원 규모이다. 어업피해 청구액은 140억에 불과하다. 아직 시작단계이기 때문에 내년에 본격적인 어업피해 보상청구가 들어가게 된다. 내년이 가장 골치아픈 시기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해상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처리비용은 보험사와 국제기구에서 지불한다. 특히 ‘허베이 스피릿’호는 외국 P&I클럽에 가입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피해보상금이 외국에서 지불된다.
따라서 사고의 피해와 처리현황을 잘 설명하고 합리적인 사고비용이 정산되고 있음을 기록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이를 통해 보험자나 기금에서 안심하고 청구된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피해청구를 받는 것조차 어려워진다. 지금까지 작성된 보고서는 349건이며 이를 정리한 파일은 10권이다. 이제 시작이며 앞으로 몇건을 더 할지는 알 수 없다. 일단 피해당사자로부터 청구요청이 들어와야 감정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 피해청구가 요청된 건은 어느 정도인가요?
“아직 초기단계이다. 피해당사자들이 자체적으로 피해규모와 비용을 산정하기는 쉽지 않다.  손해사정 브로커들이 도움을 주고 있는 것 같은데, 이로인해 청구 자체가 늦어졌다. 지금까지 접수된 피해보상 청구건을 처리한 보고서가 349건이다. 직원들은 접수된 건에 대한 조사작업을 하고 있고 본인은 조사결과를 토대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보고서 작성은 전문성이 총동원돼야 하므로 힘든 작업이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모든 일을 문서로 해야지 구두로 해서는 안된다. 분명하게 문서로 남겨야 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다.”         

 

◈ 어업인들에게서 원성도 들리는데, 어려운 점이 있다면?
“피해자가 과다하게 피해보상액을 청구한 경우 이를 피해사실에 근거해 정확한 보상액을 산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직접 피해현장이 있는 경우는 수월하지만 사고로 인한 예상어업의 손실이나 관광계의 예상손실을 산출하는 것은 참 힘든 작업이다.
피해자가 청구한 금액이 합당하냐 부당하냐를 가리는 일이니 원성을 살 수 밖에 없다. 특히 본인은 그 동안 리베이트같은 부당한 거래없이 해상오염사고 처리를 수행해왔고, 지금도 현실과 사실에 근거해 사고피해의 보상청구액의 적정성을 까다롭게 평가하기 때문에 과다 신고자들에게 미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 피해를 객관적으로 산정한다는 것이 참 어려울 텐데, 어떻게 판단하는지?
“사고 당시 수온까지 감안해서 피해규모를 조사한다. 해운과 수산 관련 국내외 전문서적 3,000여권을 소장하고 있다. 이 책들을 통해 전문성을 확보해왔고 지금도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해서 청구권에 대한 진실과 거짓을 가린다. 내가 잘못하면 ITOPF에서 검증할 때 문제가 생겨서 결국 보상청구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피해자들 입장에서 못마땅한 것은 이해가지만 적정한 청구를 받기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정이다. 그렇지 않고 과다청구와 거짓 보고서가 제출되면 피해보상은 진전될 수 없다.”

 

◈ 기금과 ITOPF에서 신뢰할만한 사람만 감정인으로 위임하겠네요.
“그렇다. 보험자 기금을 받아내는 데는 정확한 보고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뢰가 중요하다. 유류오염 감정을 시작할 때는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해서 어려움이 많았다. 그 속에서도 한건 한건 처리해 나가다 보니 인정해주더라.  지금까지 국내 유류오염사고의 90% 정도를 처리해왔다. 태안사고는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드문 대규모 사건이었다. 개인적으로는 큰 영광으로 여기고 있다. 다른 사고 처리때와 같이, 때론 피해자들의 협박과 폭력도 있지만 신뢰할만한 검증을 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나이도 있으니 이번 태안사건은 ‘은퇴처리사건’이라고 할만하다.”

 

◈ 현장사무소의 인력구조와 업무, 사고처리 기간은?
“지금 20명이 태안 사무소에서 근무한다. 서울에서 저를 비롯한 상무이하 팀장들이 내려와 방제팀과 감리팀, 사정팀, 어업피해 조사팀으로 나뉘어 일한다.
지금으로서는 사고처리 문제가 언제 끝날 것인지 알 수 없다. 아직 피해보상 청구건이 다 접수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접수된 건마다 조사하고 사정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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