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은 다른 동남아 국가와 달리 우리나라와 인연이 깊다. 1970년대 우리나라는 월남전에 참전함으로써 경제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하였고, 일부 군인들의 양민학살은 지금도 슬픈 역사로서 기록되어있다. 또 베트남은 세계에서 가장 경제발전이 빠른 나라 중의 하나이며, 2017년 이후에는 우리나라의 3대 교역국이 되었다. 베트남은 국제결혼을 통하여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신부를 제공하는 나라이기도 하고, 한류가 가장 깊게 대중 속에 뿌리내린 국가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필자는 2016년 9월부터 2020년 1월까지 총 5학기 동안 하이퐁(Hai Phong)에 있는 베트남 해양대학(Vietnam Maritime University. VMU)에서 초빙교수로 국제법과 국제 해사 조약을 가르쳤다. 이 기간은 무더위와 각종 생활의 불편 때문에 개인적으로 다소 힘든 기간이지만 자원봉사를 하는 민간외교관으로서 국위를 선양하는 한편, 베트남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게 된 뜻깊은 시간이었다. 현재는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당분간 방문할 수 없는 곳이 되었지만, 현지에 살며 강의를 하였던 기억을 되살려 VMU의 소개를 하고자 한다.

 

일반적인 학교 소개
VMU는 베트남 교통부에 소속된 국립대학으로서 하이퐁시 중심부에서 가까운 락짜이길(Lach Tray Street)에 있다. 이 대학은 다른 대학에 비하여 비교적 역사가 길며, 국립이라서 학비가 싸며, 하이퐁에서는 가장 좋은 대학으로 알려져 있다.

VMU는 1956년에 항해를 가르치는 직업기술학교로 출발하여, 1975년 남북 베트남이 통일된 이후 1976년 정식으로 대학으로 설립되었다. 그러나 오랜 전쟁으로 제대로 자격을 갖춘 교수와 시설의 부족으로 대학으로의 기능은 미미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본 대학 산하의 2년제 대학, 항해기술훈련원 등의 부속기관까지 합하여 총 1만 4,000명이 교육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 대학에는 별도의 단과대학이 없으며, 대략 14개의 학과가 있다. 대표적인 학과로는 이 대학의 모태가 된 항해학과(Faculty of Navigation)와 기관학과(Faculty of Marine Engineering)가 있다. 이 밖에도 전기전자학과, 조선과, 재무경영학과, 경제학과, IT학과, 외국어학과 등이 있다. 특히 이 대학에는 모든 강의를 영어로 수업하는 국제교육학교(International School of Education. ISE)가 있다. ISE에는 해사 산업(Maritime Business), 국제물류(International Logistics) 및 마케팅(Business & Marketing)의 세부 전공이 나누어져 있다. 이외에도 전공과목을 영어로 강의하는 SEE(School of Excellent Education)도 있다.

우리나라의 한국해양대학에서는 항해학과와 기관학과가 설치된 해사대학의 입시성적이 가장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베트남에서는 젊은이들의 승선 기피 현상으로 인하여 항해학과, 기관학과의 입시성적은 다른 학과에 비하여 떨어지는 형편이라고 한다. 최근 베트남은 꾸준한 경제성장을 이루어 일자리가 계속 늘어나기 때문에 다른 학과를 나와도 육상에서 취직이 잘 되는데 굳이 가족과 떨어져 승선할 이유가 없기 때문인 듯하다.

 
 

최근에는 제2외국어로서 중국, 일본어에 이어 한국어가 추가되었다. 한류열풍에 따라 한국어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높아졌으며, 한국어를 잘하는 학생은 졸업 후 취업이 잘되는 현실을 대학 당국이 수용한 결과이다. 다만,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학생은 많으나 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한국인 강사의 확보는 쉽지 않은 형편이다.

일반적으로 베트남 건물이 그렇듯이 VMU 건물은 겉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내부는 대체로 낡은 상태이며, 일부 건물에는 곳곳에 금이 간 곳도 있다. 학교 시설은 겨우 강의실만 있는 형편이며, 교수연구실, 학생 휴게실 등의 보조 시설은 매우 부족하다. 수업시간에 갑자기 정전되어 PPT 설명이 중단되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나 2017년에는 일본의 도움으로 체육관을 건립하였고, 계속해서 새 건물을 짓고 있다. 대학 내에 도서관이 있기는 하나 시설이 열악하고, 운영시간이 직원 출퇴근 시간과 같아 학생들의 이용이 어렵다. 따라서 시험 기간이 되면 도서관이 불야성이 되는 한국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VMU의 가장 큰 문제는 교수가 부족한 것이다. 우선 대학 교육과 대학원 교육이 부실하며, 박사학위를 받은 교수가 별로 없다. 특히 베트남 대학에서는 과거 우리나라의 1970년대처럼 박사학위를 쉽게 내주지 않는다고 한다. 학위과정도 오래 걸리고, 어느 정도 나이가 되지 않으면 학위를 주지 않으며, 학위 수여에 상당한 부정부패의 소지가 있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VMU에서는 많은 강사를 세계 각국에 유학을 보내 학위를 따오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미 목포해양대학에는 매년 1명이 박사과정에 진학하고 있으며, 2019년에 체결된 양해각서에 따라 한국해양대학에도 점차 많은 유학생이 올 것이 예상된다.

 

해사대학 학생들에 대한 인상
가.  순박하고 질문을 하지 않는다
우리의 70, 80년대와 비슷하게 학생들이 순박하며, 교수에 대한 공경심이 높다. 항해학과의 경우 교수가 교실에 들어가면 전원이 기립하여 인사를 하고 착석을 한다. 그러나 교수를 지나치게 어려워하여 수업시간에 조용히 듣기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수업 중 교수에게 질문하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궁금하면 자기들끼리 베트남어로 묻고 답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도 처음에는 학생들이 나의 수업내용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인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나. 영어 실력이 부족하다
베트남 길거리에서는 거의 영어가 통하지 않으며, 대학에서도 영어를 잘하는 학생은 흔하지 않다. 따라서 학생 간에 영어 실력의 편차가 심하여 성적도 마찬가지다. 필자가 가르치는 반은 영어로 수업하는 특수반임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영어 실력이 별로 좋지 않았다. 특히 일부 학생들은 영어를 교과서로만 배워서 그런지 문장은 읽고 이해하지만, 듣고 말하는 데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었다. 또 일부 학생들의 발음에는 독특한 베트남식 억양이 있어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베트남어에는 6성의 성조가 있어 성조가 없는 우리는 배우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학생들끼리 그런 성조가 있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을 보면 너무 신기하였다.

 

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집중하여 듣는 자세가 부족하다. 수업 중에 휴대전화로 딴짓하거나 옆의 학생과 잡담으로 수업 분위기를 깨는 경우가 많다. 과제물이나 준비 물품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는 학생도 많다. 이들은 대학을 졸업하면 LG 등 좋은 외국계 회사에 취업이 쉬우므로 굳이 열심히 공부할 필요가 없기 때문으로 이해가 가기도 한다. 그래도 학점은 학점인지라 필자는 시험에서 성적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학생에 대하여는 과락처리 하였다. 반면에 다른 교수들은 학점에 매우 관대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라. 부정행위에 대하여 관대하다
처음 필자에게 이상했던 것은 많은 학생이 시험 때 부정행위를 시도하는 것이었다. 물론 필자는 이를 적발하여 학교 당국에 알렸으나 계속해서 부정행위자가 적발되었다. 그러나 알아보니 이 나라에서는 부정행위에 대하여 비교적 관대하며, 학생들끼리 서로 답안지를 보여주는 것이 일종의 의리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았다. 심지어 일부 시험감독은 시험 중 먼 산을 바라보거나 교실을 비워두고 딴짓을 하기도 하였다. 이 대학 학칙에는 부정행위가 있으면 해당 시험만 0점으로 처리하도록 한다고 하여, 설사 적발되어도 다음 시험에서 잘 보면 해당 과목을 통과할 수 있게 되어있다. 돌이켜 생각하니 필자는 너무 엄격하게 시험감독을 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이 대학은 아직 많은 면에서 한국의 대학과는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수준이 낮은 상태에 있지만, 경제발전과 국제협력에 힘입어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새로운 건물들이 계속 들어서고 있으며, 외국에서 선진교육을 받은 강사진이 속속 돌아오고 있다. 또 외국인 강사를 활용한 영어교육도 강화하고 있다. 물론 아직은 시작단계라서 대단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개선될 것이다. 영어교육을 중요시하는 VMU의 교육 방향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거의 모든 해운 용어는 영어이며, 선박을 타고 외국의 항만을 방문하려면 영어는 필수적이다. 현재 우리나라 해양대학 졸업생들은 영어 실력 부족으로 필리핀 선원보다도 낮은 처우를 받고 있다고 한다.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가지려면 우리나라 해양대학도 주요 전공과목을 100% 영어로 강의하는 등 영어교육 강화에 매진할 필요가 있다.


VMU의 가장 큰 당면과제는 실습선의 도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학교에는 실습선이 없어 항해, 기관학과 학생들이 승선실습을 할 수 없어 졸업 후 사관으로 근무할 수 없었다. 다행히 2019년 가을 한국 정부는 한국해양대학에서 퇴역한 한나라호(총톤수 3,738톤, 길이 103미터, 폭 14미터)를 이 대학에 기증하기로 하였다. 물론 이 선박은 1993년에 건조되어 다소 낡은 것은 사실이지만 수리를 거쳐 인도되면 학생들의 실습에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선박은 애초 2020년 상반기에 하이퐁항으로 입항할 것으로 예상하였으나 아쉽게도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계속 지연되고 있다. 아직 마무리되지는 않았지만, 이 선박의 베트남 기증 과정에 필자가 다소나마 이바지하게 된 것은 큰 보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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