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화물 운송과 사고 예방

서론
작년 한해 부산항에서만 2,000만TEU 이상의 컨테이너가 수·출입 혹은 환적되었다. 단순 계산으로도 하루에 5만TEU 이상의 컨테이너가 부산항에서 처리되었다는 의미다. 이들 컨테이너에는 다양한 물품들이 선적되어 있었을 것이고, 그중에는 위험한 화물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지난 9월 부산에서 선적되어 중국에서 양하 예정이던 화물이 선상에서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조사 결과 해당 화물은 위험화물로 신고되어 적절하게 선적되었지만, 내품 고박 불량으로 화물이 유출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2019년 5월 25일 태국 람차방에 정박된 선박에서 발생한 폭발사고도 미신고된 위험화물이 폭발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처럼 해상에서는 신고가 되었든, 신고가 되지 않았든 위험화물로 인한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정식 신고여부를 불문하고 위험화물로 인한 사고의 피해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유출된 화물이 선박, 주변 화물, 해양환경을 오염시켰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화물의 폭발로 인근 지역 주민까지 큰 피해를 입었다. 사실 국제사회에서는 이와 같은 위험화물 운송의 위험성을 고려하여 1965년 국제해상위험물규칙(Internatio
nal Maritime Dangerous Goods Code, 이하 IMDG Code)를 제정하여 널리 시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규칙을 회피하고자 위험화물을 위험화물로 신고하지 않거나(undeclared) 다른 화물로 신고한(mis-declared) 경우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아래에서는 바로 미신고 혹은 잘못 신고된 위험화물(아래에서는 미신고 위험화물로 통칭한다)에 대해서 다루고자 한다.

 

위험화물 운송 현황
모든 미신고 위험화물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아님으로 이와 관련된 정확한 현황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그러한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 국가의 화물 취급 단체 모임인 ICHCA International(I
nternational Cargo Handling Co-ordination Association)에 따르면 매년 자신들이 취급하는 컨테이너 6,000만개 중 10%인 600만개가 위험화물로 신고되었고 이중 20%인 120만개는 포장이 불량하거나 잘못 신고된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또한 TT Club은 60일에 한 번꼴로 컨테이너 선박에서 화재 사고가 발생한다고 추정하고 있다.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화물국(National Cargo Bureau, 이하 NCB)이 최근 발표한 자료가 흥미롭다. NCB에서는 작년 한해 위험화물 검사를 32,387건 수행하였고, 그중 7.9%(컨테이너 2,569개)에서 부적절한 적부 혹은 미신고 문제를 발견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검사대상이 아니었던 송하인들의 컨테이너까지 포함시켜 총 500개의 컨테이너(위험화물 263개/비위험화물 237개)에 대한 집중 검사를 실시하였고, 위험화물의 56%(149개)가 관련 규정을 위반한 것을 확인되었다고 한다. 특히 전체 화물의 6%인 17개는 미신고 위험화물 컨테이너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수치를 2019년 부산(북항 및 신항)에서 처리된 위험화물 1,026,646TEU에 단순 적용하면, 60,00
0TEU 이상이 미신고 위험화물이라는 뜻이다. 이와 같은 수치들은 조사 방식, 기간, 기관 등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겠으나 위험화물 운송에 따른 위험성이 결코 낮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다. 


 
위험화물 미신고 원인
관련 규정이 마련되어 있고 미신고에 따른 위험성이 낮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위험화물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1) 시간과 비용의 문제
위험화물이 미신고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시간과 비용의 절약 때문일 것이다. 위험화물에는 특수 처리 및 특수 포장이 필요하고, 포장재의 크기, 재질, 수량 등에도 제한이 따른다. 더구나 위험화물을 운송할 수 있는 선복도 넉넉하지 않고 추가 요금도 부담하여야 한다. 위험화물을 선적하기 위해서는 물질 안전보건 자료(Material safety Data Sheet. 이하 MSDS)을 제출하여야 하고 화물에 맞는 UN Number 등도 제공되어야 한다. 한마디로 위험화물 운송에는 추가적인 시간과 비용이 따른다. 그러나 위험화물이 일반화물(non-Dangerous Goods)로 신고된다면 추가 시간 및 비용이 필요하지 않게 된다.

 

2) 복잡한 규정들
위험화물을 운송하기 위해서는 국제협약, 개별국가의 법체계, 운송인이 제정하는 규칙 등이 준수되어야 한다. 위험화물을 운송하고자 하는 업체의 입장에서는 적용되는 규정 모두를 파악하기 어렵고, 때로는 이들 규정 모두를 준수하는 것이 여의치 않은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더구나 규정들에서 규율하는 내용이 복잡하거나 상이할 경우는 더욱 요원하다. 예를 들어 국내의 위험물안전관리법과 화학물질관리법은 서로 각자의 기준에 따라 위험물을 분류함으로 이들 화물을 수출·입하려는 업자들 입장에서는 어떠한 규정을 준수하여야 하는지가 혼란스러울 수 있다. 또한 일본은 IMDG Code 준수를 의무화한 SOLAS 협약 비준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만의 분류법에 따라서 위험화물을 분류하고 있다. 이와 같이 통일되지 않거나 일관되지 않은 규칙은 그 준수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될 수 있다.

 
3) 공동운항 및 공급망의 확대

미신고 위험화물을 적발하는 시스템이 잘 갖춰진 선사라 하더라도 안심할 수는 없다. 선사별로 시행 중인 시스템이 상이하거나 적용강도 등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선사들의 공동운항 혹은 해운 얼라이언스의 확대는 곧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위험화물 관리 시스템이 작동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일부 선사에서는 공동운항선박이라 하더라도 자신들의 관리기준을 적용하기도 한다.
일부 선사들은 해상 운송뿐만 아니라 육상 운송 및 보관 등 통합물류서비스의 제공을 지향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영업적인 압박과 빠른 운송에 대한 부담은 위험화물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 약점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고, 이로 인해 위험화물 관리가 소흘해질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4) 위험화물의 이동 제한
일부에서는 선사들의 위험화물 운송 거부가 오히려 위험화물의 미신고를 부추긴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위험화물인 치아염소산 칼슘(Calcium Hypochlorite)의 경우 지난 몇 년간 폭발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일부 선사에서는 해당화물의 운송 자체를 금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해당 화물에 대한 수요는 계속 증가하고 있어 결국 화물은 표백제(bleaching agents), 소독제(disinfectant) 등과 같은 유사 명칭으로 신고되어(mis-declared) 운송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항만에서 위험화물의 입항을 금지하는 것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2015년 8월 15일에 발생한 텐진항 폭발사고와 2020년 8월 4일에 있었던 레바논 베이루트 폭발 사고의 여파로 항만당국은 위험화물에 대한 통제를 한층 강화하고 있고, 일부에서는 위험화물의 반입 자체를 금지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위험화물의 이동 기회 제한이 역설적으로 해당화물의 미신고를 유발한다는 주장이다.

 

미신고 위험화물을 줄이기 위한 노력
미신고 위험화물을 줄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수출·입업자들이 관련 규정에 맞게 신고하거나 모든 컨테이너를 조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성이 떨어진다. 최근 해양수산부와 관세청은 미신고 위험화물 컨테이너를 근절하기 위하여 지난 8월 ‘의심 미신고 위험물컨테이너 식별시스템’을 구축하였다. 이 시스템은 위험물을 국내 항만구역으로 반입할 때 해양수산부에 의무적으로 신고하는 위험물 정보와 관세청에 신고한 수입 통관 화물 정보를 비교해 미신고 위험화물 컨테이너로 의심되는 경우, 이를 자동으로 식별한다고 한다. 그러나 미신고 위험화물 사고는 수입뿐만 아니라 수출·해상운송·환적 과정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다양한 접근이 요구된다.

 

1) 선사들의 대응 노력
미신고 위험화물로 인한 사고는 선원, 선박 및 적재된 화물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이를 사전에 탐지하거나 근절시키기 위한 여러 대안이 도입되고 있다. 대표적인 방법이 벌금의 부과다. 이미 일부 선사들은 위험화물을 미신고 혹은 잘못 신고한 주체에게 벌금을 물리는 방안을 고려하거나 시행 중에 있다. Maersk는 지역별로 차등하여 벌금을 부과하고 있으며, Evergreen은 최대 USD35,000의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Hapag-Lloyd는 모든 곳에서 고의로 미신고 혹은 잘못신고된 위험화물(purposely undeclared or misdeclared hazadous cargoes)에 대하여 컨테이너당 USD15,000의 비용(fee)을 부과한다고 발표하였다.
IT기술이 접목되기도 한다. 이스라엘의 국적 선사인 Zim Line은 자연어 처리(natural language processi
ng) 및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이 가능한 인공지능 ZIMguard 시스템을 개발하여 제출된 서류들을 분석하고 관련 담당자에게 실시간으로 위험화물에 관한 정보 누락 및 은폐 가능성을 경고한다고 한다. Hapag-Lloyd도 Cargo Patrol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하루에 천 건이상의 의심사례들을 걸러낸다고 한다. 또한 투명성이 장점인 블록체인(block chain) 기술도 곧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2) 거래상대방에 대한 정보 확인(Know your customer)
선사들은 하루에도 수많은 거래처와 거래를 진행한다. 그 중에는 신규업체들도 있고 오랫동안 거래관계를 유지해온 업체들도 존재한다. 미신고 위험화물을 선적하려는 업체들은 신규 업체일수도 있고, 오랫동안 거래관계를 유지해온 곳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들은 상대적으로 관리가 허술한 선사를 타켓으로 미신고 위험화물의 수출입 활로를 확보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사들은 거래상대방의 정보를 가급적이면 자세하고 정확하게 파악하여야 한다.
또한 신뢰할만한 기존 거래처라 하더라도 타인 소유 화물의 운송을 대리하는 운송주선인 혹은 슬롯 차터러(Slot Charterer)의 경우 이들이 대리하는 업체에 대한 정보도 반드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실제 선하증권상에는 드러나지 않는 실송하인, 실수하인, 실제 운송주선인 등이 미신고 위험화물 운송에 연류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례들이 확인된 바 있으며, 이 사례에서 House B/L상의 송하인은 사고 직후 폐업하였다. 만약 확인된 거래처의 정보가 불명확하거나 의심스러운 점이 발견된다면 이들과의 거래는 중단하거나 불가피할 경우 더더욱 신중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3) 화물 선적 예약 시스템(Booking Process)의 점검 및 개선
기존의 선적 예약 시스템만 점검하여도 미신고 위험화물의 선적은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 미신고 위험화물을 선적하려는 업체는 종종 출항 시간이 임박하여 선하증권상의 화물 명세를 정상화물에서 위험화물로 수정을 요청한다. 따라서 먼저 선적 예정 화물과 관련된 자료 제출 시한 및 자료의 수정 시한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예약이 언제 어느 곳에서 이루어지더라도 관련 자료에 대한 검토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기존 거래처의 요청으로 제출 혹은 자료 수정 시한을 미룰 수는 있겠으나, 신규 고객이나 위험화물과 관련된 사례에서는 이러한 요청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제출된 서류도 꼼꼼하게 점검되어야 한다. 위험화물로 신고된 화물의 경우 UN Number, HS Code, MSDS 등 제출된 자료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설사 화물이 일반화물(non-Dangerous Cargo)로 신고되었다고 하더라도 일부자료가 누락되거나 유사 명칭의 사용과 같이 위험화물로 의심될 경우도 추가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치아염소산 칼슘(Calcium Hypochlorite)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표백제 등으로 신고될 수 있고, 전기제품(electronics)이라고 신고된 화물에는 폭발 가능성이 있는 리튬배터리 등이 포함되었을 수도 있다.
화물 선적이 승인되었다고 하더라도 발행된 선하증권이 기존에 제공된 자료와 일치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악의를 갖고 화물을 선적하려는 송하인은 마지막 순간에 화물 명세를 수정하려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일부에서는 화물 양하항에서 현지 관행을 이유로 화물 명세 변경이 이루어지기도 함으로 화물 선적 예약 단계에서부터 실제 화물이 수하인에게 인도되기까지 전 과정이 면밀하게 모니터링되어야 한다.

 

4) 교육
위와 같은 조치들이 취해지기 위해서는 결국 관련 인원들에 대한 교육이 필수적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와 장비가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활용하는 사람들의 지식이 제도와 장비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그 효과는 반감되기 때문이다. 교육은 위험화물을 담당자뿐만 아니라 화물을 취급하는 본사 및 현지의 모든 직원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어느 누가 화물을 취급하든 관련 위험을 탐지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 IMDG Code에서도 위험화물을 취급하는 인원에 대한 의무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결론
2018년 3월 컨테이너선 Maersk Honam호의 3번 화물창에서 화재가 발생하였다. 이 사고로 선원 4명이 사망하고 1명이 실종되었다. 최근 싱가포르 교통안전조사국(Transport Safety Investigation Bureau)은 해당 사고의 원인이 미신고 위험화물이 아닌, 관련 규정에 따라 신고되고 선적된 위험화물(이염화아이소사이아누르산나트륨 이수산기화합물)의 블록적재(Block Stowage)에 있었다고 잠정적으로 결론 내렸다. 다시 말해 화물이 현행 규정(IMDG Code)에 따라 처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불의의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이는 현행의 규정들이 여전히 불완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현행의 규정들은 시간과 비용 낭비를 초래하는 거추장스러운 짐이 아니라 인명, 선박, 화물 및 환경 등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는 것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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