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 코로나19로 암담했던 2020년을 보내고 소처럼 묵묵히 걸어야 할 신축년 원단이다. 올핸 눈이 자주 내려 세상이 온통 은빛으로 바뀌었다. 정월 초하루에 모든 직원이 세배드리기 위해 눈길을 걸어 이사장댁에 가던 일이 생각난다. 살기가 퍽퍽했지만, 정겨운 시절이었다. 해마다 1월 콤파스와 함께 행한 신년교례회도 사회적 거리두기 연장으로 취소되어 인사하며 덕담을 나누지 못해 안타깝다. 1월 20일 미국 46대 대통령으로 조 바이든이 취임했다. 민주주의 위기라는 시위대의 의사당 점거 사태와 끝까지 몽니를 부린 트럼프 시대가 막을 내리고 단결과 국민통합의 과제를 안은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지금 암흑기를 지나고 있지만, 빛은 있다”며 “미국의 새날이 밝았다”고 선포하였다.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위(America First)로 인해 실추된 동맹의 신뢰를 복원하고 세계 민주주의를 이끌어가는 자유와 정의의 나라 미국의 이미지와 위상을 회복하는 책무가 바이든에게 부여됐다. 세계인이 그를 지켜보고 있다.


정초에 눈길을 끈 책은 진중권의 ‘보수를 말하다’와 프릿 바라라의 ‘정의는 어떻게 실현되는가(Doing Justice)’였다. ‘한국 보수를 향한 바깥의 시선’과 ‘사회정의와 공정함의 실천에 관한 한 검사의 고뇌’라는 부제에 마음이 움직였다. 프릿 바라라는 뉴욕남부지검 지검장으로 테러, 마약, 금융사기, 공직자부패, 조직범죄, 시민권침해 사건들을 해결하여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검사다. 그는 권력자에 대한 감시에 철저했고, 엄청난 에너지를 투입하여 노련하고 진정성 있게 범법자들을 추적한 최고의 검사였다. “법이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사고가 공정함을 좇는 열정과 만날 때, 우리의 일상에서도 진실을 찾고 정의를 이룰 수 있다”고 답변했다. 그리고 사회정의와 공정함을 실천하려면, “올바른 일을, 올바른 방법으로, 올바른 이유를 위해”라는 다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학자로서 좋은 책을 내는 것이 삶의 궁극적 목표’라는 진중권은 시대의 부조리에 독설을 날리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 논객이다. 그는 “합리적인 보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화두를 던지고 ‘시대정신을 놓친 보수’ ‘잃어버린 보수의 품격을 되찾으려면’ ‘보수는 어떻게 리모델링할 것인가’   ‘싸움의 기술, 어떻게 싸울 것인가’라는 방법을 제시했다.

 

정의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정의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요즘 법치지배, 적법절차, 무죄추정과 같은 표현과 개념이 기본원칙보다 정치슬로건으로 쓰이고 있다. 특정 규범들은 분명 중요한 가치를 담고 있다. 법은 정치적 무기가 아니고, 개관적 진실은 엄연히 존재하며, 공정한 절차는 문명사회에서 필수다. 우리는 법을 통해 진실과 존엄과 정의를 배운다. 의견충돌과 논쟁을 해결하되, 조롱과 인신공격이 아닌 이성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배운다. “공정하고 편견 없는 태도는 무엇이며, 독립성에는 어떤 조건이 필요하고, 진실을 어떻게 밝히고, 정의는 어떻게 실현되며, 재량권은 어떻게 현명하게 발휘할 수 있는가”라는 기본적인 물음은 결함 있는 인간을 통해 이상적 가치를 실현해야 하는 세상이 던지는 질문이다. 정의는 포괄적이고 막연한 주제다. 정의는 매우 모호하여 그 의미를 둘러싼 논쟁이 수많은 혁명과 종교와 내전을 낳았다. 저자는 정의실현이라는 임무와 정의라는 대의명분 그리고 정의의 철학을 정립하는데 그의 인생을 걸었다고 말했다. 진정성과 리더십, 의사결정과 도덕적 논거가 정의의 의미와 본질에서 결정적인 요소이며, 정의는 머리 못지않게 가슴에서 나온다. 과정은 투명하고 결과는 공정해야 한다. 올바른 일을, 올바른 방법으로, 올바른 이유가 필요하다. 정의를 실현하지 않으면 정의가 존재하지 아니하듯, 자유를 사랑하지 않으면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는 법과 제도보다 인간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수사
진실은 정의가 핵심이고, 진실을 밝히려면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형사사법에서는 이를 수사라고 하는데, 이는 진실로 통하는 길일뿐 아니라 죄에 대한 책임을 묻는 방법이다. 어떤 수사든 공정성, 효율성, 엄밀성, 진정성, 신속성이 형사사건이나 여러 사건에서 정의가 실현될지 여부를 결정한다. 수사의 기법으로 ‘그냥 점들을 연결하라’와 ‘돈을 좇아라’가 있으나 이보다 더욱 복잡한 사례가 많다. ‘숨겨진 의도’를 퍼즐을 맞추듯 풀어야 한다. 어떤 범죄사건이든 수사관의 성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수사관의 태도와 적극성이 수사를 좌우한다. 수사관에게는 진실을 반드시 밝히겠다는 의지와 사태를 바로잡겠다는 굳은 결의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열린 자세가 중요하다. 어떤 수사에 임하든 계속 새로운 가능성과 사실에 열려있지 않으면, 수사의 명백한 원칙들이 그저 통속적인 문구로 전락한다. 열린 자세로 대하라, 예단하지 말라, 넘겨짚지 말라, 속단하지 말라, 편견에 빠지지 말라. 속도는 수사의 약이자 독이다. 로마 원로 타키투스는 “진실은 조사와 기다림으로 확인되고, 거짓은 성급함과 불확실성으로 확인된다”고 말했다.


유죄가 확정될 때까지 형사 피고인을 무죄로 보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보편적으로 옳다. 그러나 수사관은 모든 사람의 유죄 가능성에 대해 열린 자세를 보여야 한다. 수사요원은 긍정적 편견 때문에 용의자를 놓칠 수 있고, 일반인이 긍정적 편견에 빠지면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뚜렷하게 나쁜 신호를 감지했을 때 위기상황임을 다른 이들에게 알릴 정도의 경계심은 가져야 한다. 합리적인 의심은 아무런 통제 없이 자주 벌어지는 악질적인 행동을 간파하고 단속하는데 실용적이다. 수사에는 파트너십이 매우 중요하다. 홀로 일하는 리더가 없기 때문이다. 사기꾼들은 적절한 질문을 하지 않는 세련된 사람들에게 거듭 사기를 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신중한 망설임이 행동의 마비를 일으키고, 책임 있는 적극성이 무모함으로 변질되지 않아야 한다. 정의를 실현하려면 어떤 수사단계든 균형잡힌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수사력은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갈 때 늘어난다. 사람들은 잘하는 방법을 터득하기 전에 위대해지려 한다. 정의를 추구할 때 초기단계에서 가장 힘든 일은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충분히 재고하지 않아 무고한 사람이 엉뚱한 혐의를 받고 평생 잊지 못할 상처를 입는다. 재고는 어려운 반면 확증은 쉽다.

 

지휘계통에 있는 사람이 결론을 내놓았거나 이미 내린 결론이 있는 경우에 열린 자세를 유지하기란 매우 힘들다. 진실을 추구하며 정당하고 공정한 책임을 묻기 위해 노력하는 수사관이라면, 사건의 어떤 국면에서든 결론을 검토하고 재검토하는 일을 절대로 멈춰선 안 된다. 확증편향을 불식시키기 위해 검사실 입구에 “오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라”는 문구를 새겨놓아야 한다. 공소시효에는 만료만 있고 기장 연장은 없기에 검사는 도덕적으로 깨어 있어야 하며, 믿을만한 증거가 나오면 오랜 시간이 경과했어도 이를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한다. 유죄를 입증하려고 애쓰는 만큼 무고한 사람의 결백을 밝히는 일에도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의무감, 정의감, 오류 가능성에 대한 열린 태도와 상황을 바로잡겠다는 사명감이 필요하다. 법만으로는 정의를 실현하기 어려우며, 정의를 실현하는 주체는 바로 사람이다. 자신의 책무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책임져야 한다. 누군가의 인생이 그들의 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형법의 세계에서는 한 사건에 대해 수많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 낭패와 실수, 오심을 피하는데 도움이 된다. 사건은 증거를 배제할 때보다 질문을 배제하는 경우 더욱 손상되기 쉽다. 어떤 사실이든 제대로 이해하려면 기본적인 질문이 반드시 필요하다. 질문은 현재 상황을 숙고하고, 호기심을 키우고, 비판적 사고를 하며, 도전정신이 살아있는 문화를 조성한다. 질문이 없는 기계적인 수용은 강한 조직을 무너뜨린다. 피의자를 신문할 때 사전준비와 학습으로 자신감을 갖추면 정보의 빈틈을 파고들 수 있다. 일례로 이름을 밝히지 않고 허위로 대답하는 테러용의자에게 그의 어린 시절 엄마가 붙여준 애칭으로 부르자 신문의 흐름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범죄자에게도 어딘가 인간적 내면이 있으므로 교감을 통해 수사관이 인간적인 모습을 보일수록 피의자의 인간적인 약점은 선명해진다.
정의로 가는 길은 쉽지도 심지어 순수하지도 않다. 그 과정에는 방해물이 있고 우회로가 있고 주고받는 거래도 있으며, 선택권이 없는 경우도 있다. 도처에 함정과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는 위험한 그 길을 헤쳐 나가려면 강인함과 용기, 섬세한 판단력이 필요하다.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성실함과 헌신 그 이상인 창의력과 혁신, 새로운 접근법 그리고 늘 해오던 것을 재고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혁신을 이루려면 어떤 천재적 발상이 필요한 게 아니라, 해법을 찾고 개선하기 위해 지금껏 해오던 관행을 찬찬히 뜯어보며 재평가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잠시 멈춰 되새겨보고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며 새로운 방법이 없는지 고민하는 것이다.

 

기소
기소 단계에서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한 전제조건은 신중히 고민하며 어떤 예단도 배제하는 것이다. 이렇게 심사숙고하는 것이 정의의 핵심이다. 누군가를 어떤 혐의로 기소하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을 산산조각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검사활동을 자동차에 빗대어 설명하면, 자동차로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액셀과 브레이크가 필요하듯 기소도 마찬가지다. 걸핏하면 방아쇠를 당기는 검사도 경계해야 하지만, 총 쏘기를 주저하여 브레이크만 밟는 검사도 조심해야 한다. 어떤 행동에 대한 폭로를 염두에 두고 수사를 맡았다면 방아쇠를 당길 줄 알아야 하며, 그것도 적시에 당겨야 한다. 기소는 구체적이고, 명확하고 냉혹하고 공개적으로 하는 선전포고다. 검사가 사실관계와 법과 양심에 따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음에도 대중의 거센 항의를 받기도 한다. 대중의 비판뿐 아니라 법정 안팎에서 자행되는 개인적인 공격, 위협, 살인협박 등도 받는다. 정의가 승리보다 값지고, 올바른 것이 편하고 쉬운 것보다 중요하다. 처벌과 책임은 정의에서 핵심적인 부분이지만, 수사단계에서 최종심판을 미리 단정하는 것은 일의 순서를 뒤바꾸는 위험한 행동이다. 악행이라고 다 범죄가 아닌 이유는 법이 범죄구성 요건을 까다롭게 규정해놓았기 때문이다.


검사들이 가장 내리기 힘든 결정은 불기소다. 지혜를 적절히 발휘하지 못하면 정의에서 멀어지고, 재량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면 공허한 개념이 된다. 직무상 권한은 그냥 휘두르는 게 아니라, 공정성과 비례성의 원칙에 따라 발휘해야 한다. 치안활동에서의 ‘깨진 창문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사소한 범죄가 넘치면 사회가 무질서해지고 지역사회가 붕괴될 수 있어 경미한 범죄를 단속하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기소를 결정할 때 검사는 유죄평결 가능성과 기소결정의 정당성을 분리해서 사고해야 한다. 기소 여부를 기소의 타당성으로 고민해야 한다. 피고인이 유죄라는 사실에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으면, 기소를 진행해선 안 된다. 국가와 기업을 막론하고 모든 조직에는 변치 않는 제1원칙이 있어야 한다. 잡다한 관료주의적 규정과 요건만으로는 올바른 조직문화를 만들기에 역부족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올바른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두려움, 나약함, 편견, 인간적 결함과 약점이 무엇인지도 파악해야 한다. 문화는 조직의 발전에 결정적 요인이다. 건전한 문화가 있는가 하면, 유해한 문화도 있다. 어떤 경우든 병든 문화를 고치려면 윗선부터 솔선수범해야 하나 문제를 손보길 꺼려하는 리더가 의외로 많다. 각종 범죄와 기소로부터 조직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은 건강한 조직문화가 조성돼야 한다. 검사라는 직책은 대중의 기대와 함께 평생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다만, 필요한 비판에만 귀를 열고 천박한 비판들은 자중하며 흘려버려야 한다.

 

정확한 비판과 어리석은 비판을 구분하는 것이다. 비판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비판에 대한 분별력을 기르는 것이다. 검사와 수사관들이 피의자에게 공격을 받는 것은 일상적이므로 여기에 잘 대처해야 한다. 상황을 혼란스럽게 하거나 독설을 퍼붓고 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노골적인 사법방해를 시작하면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다. 그러나 이러한 공격이 머지않아 법정에서 모두 녹아 없어질 것이라는 사실에서 위안을 삼아야 한다. 형사재판이 대통령의 최측근을 겨냥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 나라의 최고수장은 스스로 독립적이라고 생각하고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고 믿는 성가시고 거슬리며 파렴치한 훼방꾼을 어떻게 다루는가? 검찰보다 큰 확성기를 가진 사람은 수사를 흔들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할 것이다. 대통령이나 국가를 이끄는 사람들이 검사를 공격하고 독설을 내뱉고, 정의를 추구하는 자들을 적으로 몰아붙이면 정의는 위태로워지고 정의에 대한 신념도 파괴된다. 이렇듯 피고인이 검사를 공격하는 일은 흔하다. 이러한 비난을 감당하지 못하는 검사라면 이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그러나 대중은 정의를 갈망하고, 정의가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그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고, 권력과 특권이 있다고 해서 책임과 처벌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부패에 맞서 싸울 수 있다는 기대 그리고 불의에 맞서 용감히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믿음과 희망으로 우리는 살아간다. 사람들은 검사에게 과도한 기대를 품을 수 있다. 그러나 검사도 구세주가 아니라 법을 집행하는 사람일 뿐이라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판결
판결단계에서는 의혹이나 혐의를 심판하는데, 기본적으로 네 가지로 귀결된다. 혐의인정(유죄시인), 공소취소(공소기각), 혐의입증(유죄평결), 증거불충분(유죄 아님 평결)이다. 이 외에도 일부유죄나 일부무죄를 선고하거나 피고인이 도망가서 재판 자체를 받지 않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들 가운데 하나로 결정이 내려진다. 재판에서는 고도의 의사소통 능력, 다른 사람의 사고에 대한 고차원적인 이해력, 증거를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표현력 등이 필요하다. 형사재판이 진실을 밝히는 효과적이고 공정한 절차가 되도록 만들어주는 것은 모범적으로 논쟁하는 자세와 더불어 법정 밖에서도 진실을 추구하는 태도다. 공공광장에서 벌어지는 논쟁에서 결핍된 요소들을 채워준다. 검사로 일하면서 가장 뿌듯한 순간은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조금이나마 그들의 상처가 아물도록 해줄 때이다. 피해자를 고통받고 괴로워하며 현실과 싸우는 인간주체로 계속 인식하지 않으면, 그를 법정에 세울지 고민할 때 적당히 타협할 소지가 있다. 검사라면 약점이 많은 피해자, 법정에서 변론할 기회도 얻기 힘든 피해자를 위해 싸우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가끔 피해자를 잊는다. 그들을 의심하고 재단한다. 궁극적으로 형사법체계는 그들에게 봉사해야 하고, 그들에게 법정에서 발언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것이 정의 요건에 부합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판사는 편견이나 편애,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 없이 진실을 밝히면서 동시에 원고와 피고 양쪽 모두를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 판사도 정의추구보다 자기안위를 위해 행동할 때도 있고, 자기 분야에서 성공하기를 바라는 인간이기에 오점을 두려워한다. 따라서 항소법원에서 판결파기를 받으면 경력에 오점이 생긴다고 믿어 그런 상황을 피하려 할 것이다. 세간의 이목을 끈 국가안보와 관련된 사건에서 부장판사가 일부 증거배제와 역신뢰성 판결을 내렸다. 그 증거배제 판결은 항소해도 끄떡없는 일명 어필 프루프(appeal proof)로, 고의성이 짙었다. 1심 판사가 내리는 신뢰성 판결은 존중받기 때문에 항소심 판사들은 이를 뒤집기를 주저한다. 따라서 그 판사는 증거배제에 대한 합리적 근거를 제시한 다음, 이에 대한 방어막을 두르기 위해 역신뢰성 판결을 끼어 넣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이 사건은 결국 원칙에서는 벗어나지만, 항소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역신뢰성 판결을 철회시켰다. 판사가 법정의 주인이자 지휘자이나 주고받는 거래에 늘 초연한 사람은 아니다. 특정 판사가 파기환송에 신경을 쓴다는 사실을 알면 검사에게는 유용한 카드가 하나 생긴 셈이다. 판사가 행여 기억에 오류가 있고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려 해도 검사로서 묵묵히 본분에 충실하고 원칙대로 행동하면 정당하고 올바른 결과를 끌어낼 수 있다. 이것이 사법체계의 힘이다.


재판은 정의로운 판결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공공담론과 정치논쟁에서 정의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 위기는 상스럽고 야비하며 국민의 정서에 둔감하다. 진실은 사리사욕과 극단적인 당파주의에 희생되고 예의와 배려 역시 실종됐다. 사람들은 자기와 뜻이 맞는 목소리, 듣기 편한 견해만 찾고, 이의제기와 논쟁, 불편한 진실을 피한다. 상대에 대한 욕설, 빈정거림, 인신공격이 정당한 논리와 합리성보다 전술적으로 더 선호된다. 법정을 지배하는 것은 엄격한 규칙이다. 규범(norm)이 아니라 규칙(rule)이다. 그 규칙들을 판사가 집행할 수 있고 이를 위반할 경우 모욕죄 적용, 변호활동 제재, 불리한 판결 등의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법정의 내부규칙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고안됐다. 법정에는 반드시 끝이 있다. 판결이나 평결이 늘 등장하며, 이렇게 판단이 내려지면 사건이 완결된다. 법정에서 승리하는 핵심은 만반의 사전준비, 유창한 언변, 설득력이 필수이나 무엇보다 신뢰성이다. 약점을 인정하는 것이 상대방에게 지적당해 드러나는 경우보다 낫다. 재판은 정의가 실현돼야 할 뿐 아니라 그 과정이 투명하게 드러나야 한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기억하라. 양쪽 주장을 전부 들을 때까지, 모든 사실이 다 제시될 때까지, 모든 타당한 주장이 전개될 때까지 열린 자세를 보이라. 제대로 숙고하지 않은 채 결정을 내리고, 모든 논쟁에서 눈과 귀를 닫으며, 토론 자리에 빠지면, 그 사건에 판단을 내릴 자격이 없다.


 검사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뿐만 아니라 범죄를 예방해야 한다. 검사들이 사건을 직접 설명하는 것은 대중을 안심시키고 정확하게 상황 설명을 하며 정보를 주기 위함이다. 공직자부패는 대중의 공분을 자아내는데, 검사는 대중의 분노를 이용하거나 군중심리를 조장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정의는 실현해야 할 뿐 아니라, 그 과정이 눈에 보여야 한다. 아울러 동일한 범죄를 다른 사람이 저지르지 않도록 차단하는 범죄억제도 중요하다. 판결의 불확실성은 어떤 사태가 확정되지 않았고 조작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선거결과의 불확실성이 민주주의를 신뢰하게 하듯, 이러한 불확실성이 재판결과에 신뢰성을 준다.    

     

처벌
정의의 마지막 단계인 형벌은 아무리 수치로 환산하려 해도 도덕적, 정서적, 심지어 종교적인 색채를 짙게 띨 수밖에 없다. 성서에 나오는 ‘눈에는 눈’이라는 형벌법도 법률체계에서 거부된 지 오래다. 어떤 형량을 선고해야 정의로운 사회가 추구하는 바를 충족하되 필요한 선을 넘지 않을까? 양형은 처벌의 핵심인 만큼 깊은 고뇌를 낳는다. 양형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과 각 사건에 맞는 개별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이룰 것인가? 범죄행위에만 주목해야 하는가, 아니면 가정환경, 양육과정, 범행동기 등 범인의 특수한 상황까지 고려해야 하는가? 사실 그 답은 아무도 모른다. 인종, 종교, 여타 차이를 고려해 공정한 잣대를 마련하고 일관성을 유지하는 한에서, 계량화 집착은 정의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충분하되 필요한 선을 넘지 않는 것’은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골디락스(Goldilocks)의 상태로, 이는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형량이 선고되면 사건이 완성되고 종결된 기분이 든다. 하지만 교도소에 가둘 만큼 위험하거나 타락했다고 보는 인간을 어떻게 다룰지 고민하는 것은 검사를 비롯한 모두의 도덕적 의무다. 정책적 차원에서 징역기간, 최소의무형량, 양형재량권, 현금보석 등 많은 것을 재고해야 한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도 인간애와 희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검사가 범죄 피해자에게 공감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적절한가, 아니면 편향되고 위험한 것인가? 정의를 열정적으로 추구하되, 특정 사건에서 냉철하고 공정한 태도를 보여야 하기에 선뜻 선택하기 어렵고 부담스러운 주제다. 정당한 형벌에는 피해자에 대한 공감뿐 아니라, 그 방식과 정도에 차이가 있으나 가해자에 대한 공감도 필요하다. 정당한 형벌은 범죄를 저지른 동기도 헤아려야 하며, 감형이든 가중처벌이든 간에 피고인에 대한 모든 것을 고려하고 감안하고 두루 살핀 후에 결정되어야 한다. 이렇게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지만,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판사의 직무이다.


나치의 집단학살을 추적한 후 악의 평범성에 관해 논한 한나 아렌트의 견해와 법학자 스탠리 밀그램 교수의 연구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장 근본적인 교훈은 단지 자기가 맡은 일을 했을 뿐 특별한 적의가 없는 평범한 사람도 끔찍한 파괴적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선량한 사람도 폐쇄되고 긴장이 고조된 감옥 같은 환경에서 비인간적인 규율에 따라 움직일 경우, 같은 인간에게 매우 잔인하게 굴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흉악범의 최종변론을 맡은 어느 검사는 이메일에 이런 문구를 써 보냈다. “이 세상은 복잡한 문제로 가득 차 있지만, 솔직히 가끔은 모두 정의가 불가능하다고 여긴 곳에서도 정의가 실현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습니다”


법적 개념에서 그리고 형사정의라는 공식적 개념에서, 신이나 은총을 찾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정 가치와 이상은 정의의 영역을 넘어선다. 여기에 해당하는 이상은 자비, 용서, 구원, 존엄성 그리고 사랑이다. 증오와 살의로 가득했던, 그래서 법정에서도 피해자들에 대한 연민과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성을 전혀 보이지 않던 흉악범도 죄를 미워해도 사람은 용서한 사람들 덕분에 서서히 변화되어 사형집행 전날 이런 말을 남겼다. “모두에게 좋은 일이 있길 바랍니다. 세상에 증오는 사라져야 합니다. 증오는 평생 고통을 낳습니다” 법의 체계성과 엄밀성에 존경심을 표하지만, 증오범죄의 피해자가 대중에게 관용을 가르친 모습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가해자를 변화시킨 사실에 훨씬 더 경이를 느낀다.


“법은 놀라운 도구지만 한계가 있다. 반면 선량한 사람들에게는 한계가 없다. 법은 용서나 구원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법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거나 존경하도록 강제하지 못한다. 법은 증오를 없애지도 악을 정복하지도 못한다. 은총을 가르치거나 격정이 사라지게 하지도 못한다. 법 그 자체로는 이런 것들을 이루지 못한다. 이것을 이루는 것은 인간이다. 용감하고 강인하며 보기 드문 인간들이 이것을 이루어낸다” 


‘보수를 말하다’
오늘날 보수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그동안 한국 사회의 정치적 문화적 지형이 어떻게 변화했는가? 보수는 어쩌다 그 도도한 시대 흐름에 뒤처지고 말았나? 그리하여 지금은 어떤 상황에 놓여 있고, 국민은 그런 보수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가? 보수는 과거의 반성 위에서 새 출발 해야 한다. 반성에는 냉철한 자기 인식이 필요하다. 문제는 자신을 객관화할 능력이 없어 보인다는 데에 있다. 보수는 여전히 저만의 좁은 세계에 갇혀 자기들의 모습이 국민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 모른다. 이 사회 주류였을 때, 자기들의 생각이 곧 사회의 지배적 생각이었을 때는 굳이 남의 눈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 좋은 시절은 이미 오래전에 지났다. 이를 깨닫지 못하고 보수는 다수이자 주류인 시절에 가졌던 낡은 습속을 고집하다가 대중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되었다.


합리적 보수가 되는 길은 비판만으로는 부족하고, 공감능력을 키워 대중의 니즈(needs)를 충족시킬 대안이 있어야 한다. 보수의 세대교체를 위해 새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사회적 관심을 끄는 사안과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당의 중요한 정책이나 결정을 널리 알려야 한다, 보수개혁이 성공하려면 합리적 보수가 극우로부터 지지층을 찾아와 그들을 보수진영에서 주변화해야 한다. 그 첫걸음은 합리적 보수의 입장을 견지하는 정치적 소통의 대중 채널을 마련하는 것이다. 여기서 합리적이라 함은 구체적 진영 울타리에서 벗어나 보수의 주장을 중도 시각에서 개진하는 능력을 가리킨다. 이념적 경직성을 벗어버리고 보수만이 아니라 중도와 진보까지 담을 수 있는 정치적 유연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럴 때 보수는 자신을 혁신하는 동시에 중도와 진보를 향해 외연을 확장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의 한국 보수는 보수의 가치를 신자유주의에 권위주의를 결합한 것으로 축소했다. 보수가 과거로 눈을 돌리는 것을 의미해서는 안 된다. 보수는 어둠을 향해 앞으로(pro) 빛을 던지는(ject) 전조등, 즉 기획(project)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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