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은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4차 산업혁명(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이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등장한 해이다. 2016년 1월 스위스의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 연례총회는 4차 산업혁명(Mastering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었고, WEF의 창시자이자 회장인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은 같은 해 ‘4차 산업혁명(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이후 지금까지 4차 산업혁명은 적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변화의 키워드가 되었고 우리의 삶도 크게 달라졌다. 우버나 에어비앤비 같은 공유경제, 비트코인, 대체불가능 토큰(NFT), 메타버스 등 불과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존재하지 않거나 상상할 수도 없었던 ‘메커니즘’이 우리 일상을 흔들고 있다. 해운과 물류도 예외가 아니어서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인공지능, 블록체인 등의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이 스마트 항만, 디지털 트윈, 자율운항선박, 인공지능 기반 시황예측 그리고 머스크의 트레이드 렌즈나 GSBN과 같은 블록체인 기반 플랫폼 등 많은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진 2016년은 공교롭게도 한진해운의 법정관리가 개시된 해이다. 한진해운의 파산이 원양 컨테이너 해운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 전반의 관심을 촉발하였고, 원양 컨테이너 해운을 유지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consensus)를 이끌어낸 계기가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해운재건’이 원양 컨테이너 해운에 집중됨으로써 시선을 매몰시키는 측면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2018년에 관계부처 합동으로 마련된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은 안정적 화물확보, 저비용·고효율 선박확충, 선사의 경영안정이라는 3대 추진방향 하에 실행에 옮겨졌다. 이 계획에 따라 초대형 컨테이너 20척이 확보됨으로써 HMM이 3대 얼라이언스 중 하나에 올라타고 최근의 호황을 향유하는 결과를 낳았으니 계획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선대에 대한 ‘추격투자’에 주력하는 동안 세상은 다른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딱 들어맞는 비유는 아니겠지만 축구장에서 열심히 훈련해서 프리미어 리그에 올라갔더니 게임이 미식축구로 바뀌고 있는 것과 같은 모양새이다.


지금까지 컨테이너 해운은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가 주된 경쟁우위요소로 작용해 왔다. 규모의 경제란 고정비가 높은 산업에서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단위당 비용이 감소하는 현상을 말한다. 컨테이너 해운은 정기적으로 운항되기 때문에 자본비(CAPEX, Capital Expenses)와 유지비(OPEX, Operating Expenses)는 물론이고 벌크선 해운에서는 변동비로 취급되는 연료비와 항비까지 고정비의 성격을 가진다. 이 고정비용은 컨테이너를 수송하든 수송하지 않든 들어가는 비용이고 컨테이너당 비용(unit cost)은 수송하는 컨테이너의 양에 반비례하게 된다. 컨테이너 선사들은 수송하는 컨테이너의 단위당 비용을 줄이기 위하여 선박건조 기술과 항만여건이 허용하는 한 최대의 선박을 투입해왔다. 그 결과 1980년에 4,000TEU급이었던 선형은 현재 24,000TEU로 커져 40년 간에 선박의 크기가 6배나 증가했다.


선박의 대형화에 다른 경쟁우위 확보는 유효한 전략이기는 하나 진입장벽(barrier)이 매우 낮은 것이어서 남들이 쉽게 따라했고 결과적으로 우위가 지속되지 않는 결과를 낳았다. 컨테이너 업계가 선형의 대형화와 병행하여 장기적으로 꾸준히 진행한 전략이 ‘깐부’와 손을 잡고 경쟁우위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해운업계는 19세기에 정기선 시장이 출현한 이래 해운동맹(shipping conference)이라는 일종의 국제 카르텔을 통해 과당경쟁을 피하고 이익을 보호해왔다. 하지만 운임담합이 가능했던 해운동맹은 미국과 유럽에서 독점금지(antitrust)에 대한 예외가 부정됨으로써 느슨한 제휴형태인 얼라이언스로 전환되었다.


기업 간의 제휴 또는 연대를 ‘경쟁우위’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이러한 ‘협력’이 범위의 경제(eco
nomies of scope)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범위의 경제는 기업이 생산범위를 늘릴 때 비용이 절감되는 효과를 의미하는데 정기선 해운에서는 서비스의 범위 즉, 항로가 확대되는 것에 수반되는 긍정적인 효과로 설명될 수 있다. 2000년대 초 4개로 운영되던 해운 얼라이언스는 정기선사의 인수합병 등으로 많은 변화를 거쳐 현재는 2017년에 재편된 디 얼라이언스, 2M, 오션 얼라이언스 3대 얼라이언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의 시장점유율은 전체의 80%선에 달하고 있다.


지속적인 규모의 경제 추구와 동맹 또는 제휴를 통해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이익을 실현하는 것은 성공적이었을까? 정기선사의 잦은 실패와 그에 따른 인수합병의 역사, 과거 컨테이너 해운시장의 불안정성 등으로 판단할 때 선박이라는 수송모드(transportation mode)를 운영하는 컨테이너 해운이 장기적인 성장성과 수익성을 확보하는 데에는 한계를 노출한 것으로 보인다. 컨테이너 해운업은 다른 해운분야와 마찬가지로 무역의 파생산업이고 시황의 변동에 따른 손익의 민감도를 조절하기 극히 어려운 ‘시황노출형’ 사업이다. 일단 원가수준이 정해지면 개별선사가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운임의 변동성에 따라 경영성과가 출렁인다는 의미이다.


1990년대부터 지속적이고 선도적으로 규모의 경제를 추구해 온 세계 1위의 컨테이너 선사인 머스크가 가장 먼저 자신이 컨테이너 정기선사임을 부정한 것은 가벼이 볼 일이 아니다. 한진해운이 사라지고 4차 산업혁명이 대두된 그 2016년에 머스크 CEO인 Soren Skou는 한 투자자회의에서 머스크를 ‘글로벌 컨테이너물류 통합자(global integrator of container logistics)’로 선언하였다. 물류통합자가 명확히 정의되어 있지는 않지만 머스크의 트레이드렌즈(TradeLens)나 업사이드(Upside)를 통해 그들이 컨테이너를 이용하여 해상으로 화물을 운송하는 해상운송업에서 항공까지 포함하는 일관 물류플랫폼으로 이행하고자 함을 알 수 있다. 최근 머스크는 보잉 777형 화물기를 구입했으며 화물기 3대를 리스하는 한편 항공운송을 주력으로 하는 포워더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컨테이너 물류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이해하기에 앞서 우선 파이프라인 비즈니스와 플랫폼 비즈니스를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파이프라인 비즈니스는 파이프의 한쪽에 생산자(공급자)가 있고 다른 한 쪽에는 소비자(사용자)가 있는 구조로서 전통적인 상품과 서비스의 공급체인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다. 파이프라인은 내부의 자원을 최적화해서 비용을 줄이고 매출을 증가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한편 플랫폼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네트워크와 정보를 기반으로 그들 간의 상호작용에서 가치를 만들어낸다. 플랫폼 비즈니스의 핵심은 네트워크 효과(network effect)인데 이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치나 효용이 같은 상품과 서비스 사용자의 숫자에 의존하는 현상을 말한다. 플랫폼과 파이프라인을 널리 알려진 사례로 대비해 보자면 애플의 아이팟(음악유통 플랫폼)과 아이리버(MP3 플레이어 제조), 애플(통합정보 플랫폼)과 폭스콘(IT장비 제조), 우버와 택시회사, 에어비앤비와 호텔 등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컨테이너 물류를 파이프라인의 관점에서 선박운영을 통한 이윤의 창출에 초점을 맞추어 보아왔고 이를 위해서 선대 확충, 금융비용 인하 등에 노력해왔다. 플랫폼경제 시대에 컨테이너 물류가 어디로 갈 것인지 가늠하기 위해 컨테이너 물류를 우버에 투영해보자. 우버가 택시를 보유하지 않듯이 컨테이너 물류 플랫폼 운영자는 컨테이너선을 직접 운항하지 않을 것이다. 컨테이너 운송서비스의 공급자와 수요자는 플랫폼을 통해 효율적으로 매칭될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컨테이너 서비스는 택시의 단일모드(single-mode) 서비스가 아닌 복합운송(inter-modal) 서비스이기 때문에 플랫폼을 통해 일관운송(through transportation) 서비스를 제공받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네트워크 효과로 인해 플랫폼 참여자는 독점 즉, 플랫폼의 대규모화가 창출하는 가치를 누릴 것이다.

 

출처: 저자 작성
출처: 저자 작성

 

플랫폼은 온라인으로도 오프라인으로도 실현될 수 있다. 우버에 투영된 모습에서 마지막을 제외하면 컨테이너 물류플랫폼에서 NVOCC(Non-Vessel-Operating Common Carrier)라는 형태로 이미 오프라인 플랫폼이 실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컨테이너 물류의 미래는 기존의 오프라인 플랫폼 즉, NVOCC의 대규모화로 귀결될 것인가? 블록체인 기반의 플랫폼이 산업 전반에 적용되면서 다양한 창조적 혁신(radical innovation)과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 이루어지는 사례를 경험하고 있는 우리 대다수는 이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될 것이다. 조금 더 체계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아래 도표를 활용해보기로 한다. 현재의 컨테이너 물류체계는 독립적인 기능(single mode)을 담당하는 파이프라인 기업과 오프라인 플랫폼에 해당하는 NVOCC로 이루어져 있고 일부 해운기업이 터미널, 육상운송 등 다른 모드를 수직적으로 통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모드통합자는 해운기업이 터미널, 육상운송, 창고, 통관 등의 분야로 수직적으로 통합함으로써 이룰 수 있는 형태이다. HMM이 스페인의 알헤시라스 터미널에 투자한다든지 CMA CGM이 유럽의 철도운송사를 인수하는 것이 이러한 형태이다. 하지만 단일모드의 운영자가 수직적인 통합을 통하여 일관물류체계를 완성하는 것이 컨테이너 물류의 미래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나의 주체가 다양한 물류모드를 결합하는 것도 어렵고, 지역적 범위가 너무 커서 현실적으로 이를 구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파이프라인으로서 해운기업이 ‘비용의 최적화’라는 관점에서 핵심적인 전후방 모드를 통합하는 것은 타당성이 있을 것으로 본다.


모드운영 오프라인 플랫폼은 플랫폼이 비용과 서비스 최적화를 위해서 필요한 모드를 직접 운영하는 형태인데 항공물류에서 좋은 사례를 찾을 수 있다. IATA 화물항공사 순위로 1위는 항공기 약 670대를 운영하고 있는 FedEx Express이고 3위는 270대가 넘는 항공기를 운항하는 UPS Airline이다. 참고로 대한항공은 화물항공기 약 170대를 운항하고 있다. 항공물류기업이 화물의 트래픽을 먼저 확보한 후 이를 기반으로 수송모드를 운영하는 것인데 해운에서는 이런 사례를 찾기 어렵다. 구체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연구가 필요하지만 Kuehne+Nagel이나 DB Shenker가 비용통제나 서비스 효율화를 위하여 컨테이너 선사를 운영하지는 않는다.


머스크가 선언한 물류통합자(logistics integrator)는 아직 학문적으로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개념이나 블록체인 기반의 온라인 거래 및 정보(지원)플랫폼으로1) 정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머스크가 선언한 형태는 ‘컨테이너물류 통합자’이나 그들의 행보를 보면 모드운영 온라인 플랫폼을 지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온라인 플랫폼으로 이행하되 비용과 서비스 최적화에 필요한 모드는 운영하는 형태이다. 화물에서 출발하여 모드 운영으로 이행한 항공과 달리 모드 운영에서 플랫폼으로 이행하는 것이 특이한 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의 모드 운영사업이 수익창출을 목표로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플랫폼에서 이익이 나기만 한다면 원가수준, 심지어는 원가 이하에서도 모드를 운영할 수 있어 단일 모드를 운영하는 컨테이너 선사(파이프라인)는 큰 압박을 받을 수 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질 컨테이너 물류의 ‘변화’에 대해서 살펴보자. 1)HMM이 터미널, 창고, 육상운송 등을 수직적으로 연결하여 미래 컨테이너 물류의 강자가 된다 2)밸류링크 유와 같은 신생 온라인 플랫폼기업이 성장하여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고 컨테이너 일관운송 서비스를 제공한다 3)HMM이 오프라인 플랫폼을 인수하여 규모의 성장을 이룬 후 온라인 플랫폼으로 전환한다. 이런 몇 가지 경로를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어느 하나도 쉬워 보이지 않는다.


세계적인 추이를 볼 때 글로벌 NVOCC가 블록체인 기반의 온라인 거래 및 정보플랫폼으로 이행하는 데는 적극적이지 않은 것 같다. 한편 대형선사들은 전방위적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어 한편으로는 오프라인 플랫폼(NVOCC)을 인수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수직적 연결을 위한 이종 모드의 인수도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 아마존과 알리바바 같은 상거래 플랫폼이 확보된 화물(captive cargo)을 기반으로 모드운영 유통플랫폼으로 성장하고 있다.
우리 해운은 지금까지 규모의 경제, 비용절감, 화물확보 등을 통해 한진해운의 상실을 회복하는 데 주력해 왔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의 진전으로 컨테이너 물류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 기업의 전략이나 정부의 정책 측면에서 대응을 더 이상 늦추기 어렵게 되었다. 위에서 제시된 우리의 선택대안을 보면 만만한 것이 없다. 노력과 지혜의 결집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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