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도 콤파스를 열지 않기로 했다. 코로나19 오미크론의 전파속도가 매우 빨라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무증상 감염도 많아서다. 오미크론에 감염되더라도 비교적 가볍게 앓고 지나간다고 알려졌으나 고령자와 기저질환자, 일부 사람에겐 여전히 위험하여 위중증으로 가기 쉽다. 이젠 한시름 놓으려나 했으나 물거품이 됐다. 요즘 정신적으로 우울해하며 코로나 팬데믹 이전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거리두기가 완화하고 일상이 회복되어 평온을 되찾을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막연한 두려움과 편견을 이기는 팩트! 세상의 무지에 맞설 강력한 도구’라는 ‘팩트풀니스’는 세계적 석학이자 의사인 한스 로슬링이 쓴 책이다. 팩트풀리스(Factfulness)란 사실충실성이라는 의미로, 팩트 즉, 사실에 근거하여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태도와 관점을 뜻한다. 빌 게이츠는 자신이 읽은 가장 중요한 책이라며, 미국의 모든 대학과 대학원 졸업생에게 선물한 화제의 책이다. 로슬링은 스웨덴에서 태어나 웁살라대학에서 통계학과 의학을, 인도 성요한의대에서 공중보건학을 공부했다. 그는 아프리카 모잠비크에서 지역보건 담당자로 일하면서 콘조라는 마비증세를 일으키는 질병을 발견했으며, 스톡홀름의대 세계보건담당 교수로 근무하며 경제발전, 농업, 가난과 건강 사이의 연관성을 연구한 세계보건 관련 교재도 집필했다. 또한 스웨덴 국경없는의사회를 설립하고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니세프 등 구호기구에서 활동하였다.

 

사람의 잘못된 인식을 바꾸기 위해 평생 힘써온 그는 이 책을 집필하는 도중에 홀연 세상을 떠났으나 그의 동역자인 아들과 며느리가 완성하여 출간했다. “아버지와 우리 부부는 함께 책을 쓰기로 했다. 그런데 1년후 아버지는 치료가 불가능한 췌장암 진단을 받았고 예후가 좋지 않았다” 그의 아들 올라의 회고다. “이런 상황에서 이를 견딜 수 있게 해준 것은 딱 하나, 책이었다. 절망적인 진단을 받은 와중에도 한 가지 보람찬 일은 집필로, 무거운 짐이던 그 작업이 아버지의 지적 자극과 기쁨의 원천이 되었다” 병상에 누운 채 아들과 토론하며 원고를 써나가던 어느날 한스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하였고 이내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전 세계의 지인과 동료 그리고 그를 존경하던 사람들의 애도가 쏟아졌다. 한스 로슬링의 추모식은 그가 생전에 힘차게 부른 프랭크 시내트라의 ‘마이 웨이(My way)’ 노래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장례를 마쳤다. “아버지는 늘 아버지 방식대로 밀고 나가셨다.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이라는 아버지의 꿈이 우리와 독자들에게 그대로 전달됐으면 좋겠다”는 것이 아들 부부의 소망이다.

 

간극 본능
인간에겐 편향 성향이 있다. 매스컴을 보면, 세상은 온통 전쟁, 폭력, 자연재해, 인재, 부패, 질병 등이 범람하여 상황이 악화하고 문제는 심각해지는 것만 같다. 이러한 보도를 수없이 접하는 사람들은 평소 머릿속에 담아둔 그림을 그린다. 이로 인해 과도한 극적 세계관을 가지게 되고, 그런 경도된 세계관은 스트레스와 오해를 불러온다. 우리는 극단적인 예에 끌리게 마련이다. 서로 반대되는 이야기는 흥미롭고 도발적이며 솔깃해서 간극 본능을 쉽게 촉발하지만, 상황을 이해하는 데는 그다지 도움 되지 않는다. 세상은 겉보기만큼 그렇게 극적이지 않다. 사실충실성은 건강한 식이요법이나 규칙적 운동처럼 일상이 될 수 있으며, 건강한 사고방식을 위해 더욱 필요하다.


인간에게 있는 10가지 극적인 본능 중에 간극 본능(gap instinct)을 먼저 다룬다. 우리에겐 모든 것을 서로 다른 상충하는 집단으로 나누고,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본능이 있다. 이러한 거대 오해로 인해 사람들은 세상을 잘못 인식한다. 하지만 세상은 더는 예전처럼 둘로 나뉘지 않는다. 강자와 약자, 부자와 빈자,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의 간극 즉, 틈새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간극을 암시하는 이쪽 또는 저쪽이라는 이분법적 단순 분류는 쓰지 않는 게 좋다. 통계에 의하면, 저소득 국가는 대다수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발전했고, 그런 나라에 사는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적다. 세계 인구 다수는 저소득이나 고소득 국가가 아닌 중간소득 국가에 산다. 단순히 소득 기준으로 나누면, 사람들은 1단계에선 하루 1달러로 살고, 2단계는 4달러, 3단계 16달러, 4단계 32달러를 벌어서 산다.

 

인간의 역사는 1단계에서 출발했다. 10만년 넘도록 누구도 1단계를 넘지 못했고, 200년 전만 해도 세계 인구의 85%가 여전히 극도로 빈곤한 1단계에 머물러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절대다수가 중간층인 2단계와 3단계에 분산되어있다. 인간에겐 간극 본능 즉, 이분법적 사고를 추구하는 강력한 본능이 있다. 어떤 대상을 뚜렷이 구별되는 두 집단으로 나누는데, 실제로 두 집단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실체 없는 간극뿐이다. 간극 본능은 분할을 연상케 하지만 알고 보면 완만한 다양성에 불과하고 수렴하는 차이다. 갈등을 빚기도 하나 이는 합의에 이르는 과정의 절충이다. 높은 건물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건물들의 높이 차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이러한 간극 본능을 억제하려면 다수를 보아야 하고, 3가지를 조심해야 한다. 첫째 평균 비교다. 분산을 살펴보면 겹치는 부분을 발견할 것이다. 둘째는 극단 비교로, 어느 집단이든 상위와 하위 계층은 있게 마련이다. 셋째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각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시야가 왜곡된다.

 

부정 본능
“상황이 점점 나빠진다”는 말은 세상에 관한 이야기 중에 가장 흔히 듣는 말이다. 인간에게는 좋은 것보다 나쁜 것에 주목하는 성향이 있다. 부정 본능(negative instinct)이다. 이로 인해 세계는 점점 나빠진다는 거대한 오해가 발생한다. 지구촌이 재정 안정과 평화를 이루고 천연자원 보호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이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국제사회가 협력하는 일이다. 현대의 가장 큰 문제는 세계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세상이 생각보다 훨씬 더 괜찮다는 사실을 하나 소개하면, 지난 20년간 세계 인구에서 극빈층 비율이 절반으로 줄었다, 그러나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10%도 안 된다. 예나 지금이나 나이든 사람은 유년시절을 미화하며 세상이 예전 같지 않다고 푸념한다. 하지만 예전엔 대부분 더 좋았던 게 아니라 더 나빴다. 그러나 사람들은 옛날 진짜 모습을 너무 쉽게 잊는다. 어떤 이유에선지 사람들은 과거의 비참함과 잔혹함을 상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전쟁, 기근, 자연재해, 정치적 실책, 부패, 예산 삭감, 질병, 대량 해고, 테러 등 지구촌에 끊임없이 쏟아지는 부정적 뉴스를 접하고 산다. 낙천주의자가 아니더라도 가능성 옹호자는 돼야한다. 이유 없이 희망을 품거나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고, 과도한 극단적 세계관엔 저항해야 한다. 어리석은 오해로 희망을 버리지 말라. 희망 포기와 절망은 부정 본능과 그에 따른 무지가 가져오는 최악의 결과다. 장밋빛 과거를 조심하라. 사람들은 유년의 경험을, 국가는 자국 역사를 곧잘 미화한다. 오늘날 우리가 가진 것을 제대로 평가하고, 과거 세대가 걸어온 것처럼 미래 세대도 일시적 난관을 극복하고 장기적으로 평화와 번영 그리고 세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디딤돌이 돼야 한다.

 

직선 본능
통계도 무서울 수 있다. 사무실 책상 앞에 있는 도표를 보고 더럭 겁이 났다. 서아프리카에 출현한 에볼라로 인해 라이베리아 수도 몬로비아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는 참상을 수치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세계보건기구 WHO의 연구논문에 나온 그래프를 보고 더욱 놀랐다. 이제까지 본 가장 섬뜩한 통계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에볼라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니, 감염자가 1, 2, 3, 4, 5처럼 직선을 따라 증가하지 않고 1, 2, 4, 6, 8처럼 2배씩 증가했고, 감염자 1명이 사망 전에 평균 2명 이상에게 병을 옮겼다. 라이베리아는 얼마 전 끝난 내전보다 더 심각한 파국으로 치달아 그 위기가 전 세계로 퍼질게 확실했다. 에볼라는 말라리아와 달리 어떤 기후에서든 빠르게 퍼지고, 자신도 모르게 감염되어 비행기를 타고 국경과 바다를 건널 것이다. 우선 서아프리카 상황이 이내 절박해져 사람들은 이미 거리에서 죽어가기 시작했다. 세계 모든 사람은 에볼라 위기의 규모와 위급함을 너무 늦게 알았다. 상황 악화가 직선으로 진행되려니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2배로 빨라지고 있었다.


사태를 좀 더 빨리 파악하고 더 빨리 행동을 취했어야 했다. 요즘 각종 학술회의에 지속 가능성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지속 가능성 방정식의 오류 가운데 하나는 단지 증가할 뿐이라는 직선 본능(straight line instinct)이다. 대표적인 것이 계속 그것도 빠르게 늘어날 것이라는 세계 인구다. 그러나 최근 통계에 의하면, 세계 인구의 증가속도는 떨어지고 있어 곧 감소를 걱정해야 할 시점이 올 것이다. 감염병이든 인구증가든 직선을 상상하는 본능을 억제하는 최선의 방안은 세상엔 여러 형태의 곡선이 있음을 기억하는 것이다. 직선이 아니라 S자 형태, 미끄럼틀, 낙타 혹 같은 형태의 곡선으로 나타날 수 있다. 어떤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걸 표시하는 곡선이 어떤 형태인지 확실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어떤 곡선이 눈에 보이는 부분 너머로 어떻게 연장될지 경험적으로 예단하면,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여 엉터리 해법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직선 본능을 억제하려면 세상에는 다양한 곡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공포 본능
“머릿속이 공포에 사로잡혀 있으면 사실이 들어올 틈이 없다” 세상의 온갖 정보를 모두 흡수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단지 우리가 지금 어떤 부분을 받아들이고 또 어떻게 선택하고 무시하는가뿐이다.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워하는 것을 물어보면, 불, 폭풍, 어둠, 낯선 사람, 맹수, 질병, 테러 등 다양하다. 이러한 두려움이 우리 뇌에 각인되어 있는데, 여기엔 진화와 관련한 명백한 이유가 있다. 우리 조상은 신체손상, 감금, 폭력, 자연재해에 대한 두려움 덕분에 생존율이 높아졌다. 이렇듯 우리를 보호하도록 진화한 두려움이 이제 해가 되고 있다. 언론이 이를 부추겨 남용하고 있다. 관심을 모아야 하는 언론은 사람들의 공포 본능(fear instinct)을 이용하고 싶은 욕구를 억제하기 어렵다. 주의를 사로잡는 데는 공포만 한 게 없기 때문이다.


1930년대에 비행기를 탄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사고가 잦아 승객이 겁을 먹곤 했다. 해결책을 모색하던 세계 항공당국은 1944년 시카고에 모여 공통규칙에 합의하고, 중요한 부속조항 Annex 13에 서명했다. 항공사고 보고양식을 통일하여 공유하며 교훈으로 삼자는 약속이었다. 이때부터 세계 각처에서 항공기 사고가 날 때마다 자세히 조사해 보고하고, 위험요소를 조직적으로 찾아내 안전조치를 취했다. 이 시카고조약이야말로 인간협력의 눈부신 사례로, 이로써 사람들은 비행기 탑승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공포 본능은 강력하지만, 지구촌이 서로 협력하면 이를 극복하고 위대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해안 근처 태평양 해저에서 지진단층 파열현상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일본 본토가 약 2.5미터 동쪽으로 이동했고, 이때 발생한 쓰나미가 해안을 덮쳐 1만 8,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더욱이 쓰나미는 후쿠시마 핵발전소를 보호하기 위해 세워놓은 장벽을 넘어서 온통 물로 넘쳐났고, 세계는 신체손상과 방사능 오염 공포에 떨었다. 사람들은 재빨리 후쿠시마를 탈출했지만, 이후 1,600명이 더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방사능 피폭이 아니라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인 방사능 공포였다. 대중이 화학물질 오염에 느끼는 공포는 거의 과대망상 수준으로 이를 ‘화학물질 공포증’이라 부른다. 아동 예방접종, 원자력, 살충제 같은 불충분한 규제를 기억하다 보니 저절로 불신과 공포가 생겼고, 이 때문에 데이터에 근거한 주장에도 귀를 기울이는 능력이 마비됐다. 물론 공포가 유용할 수 있다. 공포는 무섭지만 위험하지 않은 것에 주목하게 하고, 실제로 위험한 것은 회피하도록 돕는다. 공포와 위험은 엄연히 다르다. 무서운 것은 위험해 보인다. 그러나 진짜 위험한 것보다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에 지나치게 주목하면 힘을 엉뚱한 곳에 써버릴 수 있다. 공포 본능을 억제하려면 위험성을 먼저 계산해야 한다. 두려움을 느끼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공포가 진정될 때까지 되도록 결정을 유보하라.

 

크기 본능
1980년대의 모잠비크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인구 30만명 도시 나칼라에 의사는 오직 한 명이었고, 그 후에 두 번째 의사가 합류했을 뿐이다. 스웨덴 같으면 의사 100명이 맡았을 환자를 둘이 돌봤기에 의사 50명의 몫을 해야 했다. 해마다 상태가 심각한 아이들 1,000명이 작은 병원 한 곳에 입원했다. 모두 설사, 폐렴, 말라리아 같은 심각한 질병에다가 대부분 빈혈과 영양실조도 함께 나타났다. 의료진은 이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20명에 1명꼴로 목숨을 잃었다. 인력과 자원이 더 많았다면 거의 다 치료할 수 있는 아이들이었다. 따라서 한정된 인력과 자원을 고려해 아이들 치료의 우선순위를 정할 수밖에 없었다. 인구 다수가 기본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형편과 죽어가는 아이의 98.7%가 병원에 와보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병원에서 자원을 모두 쏟는 것은 비윤리적이었다. 콩고와 탄자니아에서 선교하며 간호사로 일한 잉게르드 로트의 말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상황에서는 모두 완벽하게 할 수 없다. 그것은 더 좋은 곳에 쓸 자원을 훔치는 꼴이다” 수치보다 눈에 보이는 피해자 개개인에 지나치게 주목하면 한정된 자원을 일부에만 모두 쏟아부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훨씬 적은 목숨을 구할 뿐이다. 이런 원칙은 부족한 자원을 어디에 쓸지 우선순위를 정하는 경우 모두 해당한다. 많은 수를 비교해야 할 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을 골라야 할 때 가장 쉬운 방법은 가장 큰 수를 찾는 것이다. 이것이 ‘80/20 법칙’이다.


2007년 1월 다보스 포럼에서 기후변화 토론자로 참석한 유럽연합 소속 국가 환경부장관의 발언이다. “중국, 인도, 그외 신흥경제국이 위험한 기후변화를 초래할 정도의 속도로 점점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것으로 예상한다. 실제로 중국은 이미 이산화탄소를 미국보다 많이 배출하고, 인도는 독일보다 많이 배출하고 있다” 이 말에 인도 대표가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다. “우리를 힘든 상황에 내몬 건 제일 잘 사는 나라들이다. 당신들은 한 세기가 넘도록 많은 석탄과 석유를 사용해왔다. 우리를 기후변화의 벼랑까지 몰고 간 것은 바로 여러분이다. 이제부터는 이산화탄소를 1인당 배출량으로 계산하자” 이 말에 많은 사람이 공감했다. 국가별 배출량을 문제 삼는 것은 인구가 다르다는 것을 감안하면 말도 안 된다. 국가별 총배출량을 해당 국가의 인구로 나눠야 의미가 있고, 비교 가능한 수치가 된다. 크든 작든 그 수가 인상적으로 보이지만 달랑 하나뿐인지를 알아봐야 하고, 관련있는 다른 수와 비교하거나 나눴을 때 정반대 인상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총량과 비율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비율이 의미가 더 크다. 크기가 다른 집단을 비교할 때는 더욱 그렇다. 특히 국가, 지역간 비교에는 1인당 수치를 구해보라. 이렇듯 크기 본능(size instinct)을 벗어나려면 비율을 고려해야 한다.

 

일반화 본능
사람은 끊임없이 범주화하고 일반화하는 경향 즉, 일반화 본능(generalization instinct)이 있다. 이는 무의식중에 나오는 성향이지 편견이나 자각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우리 사고가 제 기능을 하려면 범주화는 필수다. 범주화는 생각의 틀을 잡는 작업이다. 실제로는 매우 다른 사물이나 사람 또는 집단을 같은 범주로 잘못 묶을 수 있고, 같은 범주에 속한 대상을 모두 비슷하다고 단정할 수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소수를 가지고 심지어 매우 드문 단 하나의 사례를 가지고 그것이 속한 범주 전체를 속단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이 인정한 문제 있는 일반화를 고정관념이라고 한다. 간극 본능은 세상을 우리와 저들로 나누고, 일반화 본능은 저들을 모두 똑같은 사람으로 생각하게 한다. 그렇다면 일반화 본능을 어떻게 억제할까? 첫째 더 나은 범주를 찾는 것이고, 둘째는 자신의 범주에 의문을 품는 것이다. 그 범주가 오판을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내부의 차이점과 집단 간의 유사점을 찾아보고, 다수에 유의하고 예외 사례에 주의하며, 자신은 평범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하나의 집단을 다른 집단으로 일반화할 때 주의해야 한다. 다수에는 51%가 있고 99%도 있으며, 생생한 이미지는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지만, 일반 사례가 아닌 예외일 수 있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어떤 방법이 이상해 보이면 어떤 해결책이 담겨 있는지 세심히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가 어설프게 일반화해도 다른 사람이 쉽게 눈치채기 어렵고 얼핏 논리 전개도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빈틈없는 논리에다 좋은 의도까지 합쳐지면 일반화 오류를 찾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비교 불가능한 여러 집단을 일반화하지 말고, 논리에 숨은 광범위한 일반화를 찾아내야 한다.

 

운명 본능
운명 본능(destiny instinct)은 타고난 특성이 사람, 국가, 종교, 문화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생각이다. 역사적으로 인간이 살아온 환경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따라서 어떤 대상이 작동하는 방식을 터득한 뒤 이를 재평가하기보다 끊임없이 지속하리라 생각하는 게 생존전략이다. 다만 어떤 대상을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보는 본능, 지식을 업데이트하지 않는 본능은 오늘날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회의 혁신적 변화를 보지 못하게 만든다. 운명 본능의 가장 흔한 사례는 아프리카가 무기력하여 유럽을 따라잡지 못한다거나 이슬람 사회는 기독교 사회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생각이다. 또한, 종교와 국가, 문화는 전통적인 불변의 가치가 있어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사회와 문화는 끊임없이 움직인다.

 

사소하고 더뎌 보이는 변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축적된다. 연간 1%의 성장이 더뎌 보여도 70년간 축적되면 2배 성장이 되고, 2%는 35년 만에 2배, 3%는 24년에 2배 성장한다. 운명 본능을 억제하려면, 더딘 변화를 불변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운명 본능을 탈피하려면, 늘 새로운 데이터를 받아들여 지식을 신선하게 유지해야 한다. 스웨덴을 사회주의국가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가치는 변할 수 있다. 몇 십 년전 스웨덴은 공립학교를 대상으로 극적인 탈규제를 단행했고, 지금은 과감한 자본주의 실험으로 영리목적 학교를 허가하여 경쟁과 이윤을 허용하고 있다. 국민, 국가, 종교, 문화를 포함하여 많은 것이 변화가 느린 탓에 똑같아 보일 뿐이다. 이런 운명 본능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더딘 변화도 변화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작은 변화라는 점진적 개선을 추적하고, 유통기한이 짧은 지식을 업데이트하고, 가치관이 어떻게 변했는지 할아버지와 이야기해보고, 문화가 변한 사례도 수집해야 한다. 지금의 문화는 어제의 문화였고, 다시 내일의 문화가 될 것이라는 관념을 바꿔라.

 

단일 관점 본능
우리는 단순한 생각에 크게 끌리는 경향이 있다. 통찰력의 순간을 즐기고, 무언가 잘 알거나 이해한다는 느낌을 즐긴다. 단일 관점 본능(single perspective instinct)이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생각에 허점이 없는지 꾸준히 점검해보라. 전문성의 한계를 늘 의식하며, 내 생각과 맞지 않는 각종 정보와 다른 분야의 새로운 정보에 호기심을 가져라. 생각이 같은 사람하고만 이야기하거나 생각과 일치하는 사례만 수집하지 말고 반박하는 사람이나 의견이 다른 사람과도 만나 그들의 생각을 세상을 이해하는 좋은 자원으로 생각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 전문가 꼭 필요하다. 그러나 그의 한계는 자기 분야에서만 전문가라는 점이다. “아이에게 망치를 주면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는 말이 있다.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전문성을 활용할 곳을 찾고 싶어 그들의 지식과 기술을 본래의 영역을 넘어선 곳에서도 적용할 방법을 고민한다. 훌륭한 지식은 해결책을 찾는 전문가의 능력을 방해할 수 있다. 여러 해법이 나름대로 특정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겠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해법은 없다. 따라서 세계를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원대한 생각은 사람들을 결속시키는 힘이 강하고, 우리가 꿈꾸는 사회를 건설하게 한다. 이념은 우리에게 자유민주주의와 공공 의료보험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이념은 전문가나 활동가처럼 한 가지 생각이나 해결책에 매몰되게 하고, 그러다 보면 해로운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자유시장이나 평등 같은 단일한 생각에 과도하게 집중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는 쿠바와 미국의 현실을 오래 지켜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모든 발전을 가늠하는 단 하나의 척도는 없다. 1인당 GDP도, 쿠바의 아동 사망률도, 미국에서의 개인 자유도, 심지어 민주주의도 단일한 척도가 될 수 없다. 한 국가의 발전을 측정하는 단일한 척도는 없다.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좋은 사회에서 나온 척도라도 그 단일 척도가 모든 사회의 발전을 이끌 수는 없다. 역사는 단순한 유토피아적 시각으로 끔찍한 행동을 정당화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복잡함을 끌어안아라. 여러 생각을 섞고 절충하여 문제를 하나씩 사안별로 해결하라.

 

비난 본능
비난 본능(blame instinct)은 안 좋은 일이 왜 일어났는지 명확하고 단순한 이유를 찾으려는 본능이다. 뭔가 잘못되면 나쁜 사람이 나쁜 의도로 그랬으려니 생각하는 것을 무척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비난 본능은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중요성을 과장한다. 사고가 났을 때 누군가를 손가락질하는 단순 해법에 갇히면 복잡한 진실은 보려 하지 않거니와 힘을 적절한 곳에 집중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항공기가 추락했을 때 잠깐 졸았던 기장만 탓한다면 재발 방지에 도움이 안 된다. 왜 기장이 졸았는지, 앞으로 졸지 않으려면 어떤 규제가 필요한지 물어야 한다. 세상을 정말로 바꾸고 싶다면, 세상을 이해해야지 비난 본능에 좌우돼서는 안 된다. 2015년 난민 4,000명이 고무보트를 타고 유럽으로 가려다가 지중해에서 익사했다. 휴양지 해변에 떠내려온 죽은 아이들 모습은 공포와 연민을 불러일으켰다. 어떻게 저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누굴 비난해야 하나? 무엇 때문에 그렇게 위험한 배를 타야 했을까? 사실은 유럽연합의 정책과 관련된다. 유럽연합에 도착한 난민의 배는 무조건 압수하게 되어 있다. 어선처럼 안전한 배에 난민을 태우고 싶어도 그럴 형편이 못 된다.


유럽의 여러 정부는 전쟁에 짓밟힌 난민에게 망명 자격을 신청 획득할 자격을 주도록 정한 제네바협약을 존중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이민 정책은 그런 주장을 웃음거리로 만들어 밀입국 알선자가 암약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인간은 비난할 대상을 찾는 본능이 있지만, 거울을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는다. 난민 익사 사고가 이민 정책에 있다는 사실은 외면하고 주변만 맴돈다. 아울러 비난 본능 때문에 나쁜 쪽이든 좋은 쪽으로든 상응한 힘과 영향력을 개인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특히 정치 지도자나 최고경영자는 자신의 영향력을 실제보다 과장해서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어떤 일이 잘못되었을 때는 비난할 사람 즉, 희생양을 찾기보다 시스템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리고 혹시 일이 잘 풀린다면 운영 시스템에 더 많은 공을 돌려야 한다. 진정한 영웅은 제도나 체계 같은 사회기반, 시스템 그리고 기술이다.

 

다급함 본능
다급함 본능(urgency instinct)은 위험이 임박했다고 느낄 때 즉각 행동하게 만든다. 우리는 불충분한 정보로 빠르게 결정하고 행동하는 사람의 후손이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다급함 본능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어디선가 느닷없이 자동차가 나타나면 본능적으로 피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본능이 체질이 되면 혼란을 불러온다. 다른 본능을 자극해 억제하기 힘들게 만들고, 분석적 사고를 가로막고, 너무 빨리 결심하도록 유도하며, 충분히 고민하지 않고, 극적인 행동을 부추긴다. 우리에게 에볼라 위기의 심각성을 알려준 것은 데이터였다. 데이터가 절대적인 열쇠였다. 앞으로도 어떤 일이 터졌을 때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기에 데이터의 신뢰성과 그 데이터 생산자의 신뢰성을 보호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데이터는 진실을 말하는데 써야지,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행동을 촉발하기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인류가 정말로 걱정해야 할 세계적 위험 5가지는 세계를 휩쓰는 유행병, 금융위기, 세계대전, 기후변화, 극도의 빈곤이다. 이 문제들이 가장 걱정되는 이유는 일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독감처럼 매우 빠른 전파력을 갖고 공중에 떠다니는 질병은 에볼라나 에이즈 같은 질병보다 인류에게 더 큰 위협이다. 지구촌 시대에 금융 거품의 영향은 치명적이다. 3차 세계대전은 인류 공멸로 가는 길이다. 세계평화 없이는 우리의 지속 가능성 목표는 어느 것도 달성할 수 없다. 기후변화의 거대한 위협에 대처하고 지구가 공유하는 자원을 제대로 관리하려면 세계가 존중하는 권위가 있어야 한다. 아울러 국제적 기준을 준수하는 평화로운 세계라야 한다. 극도의 빈곤은 가능성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당장 날마다 일어나는 고통이다. 이러한 다급함 본능을 억제하려면, 심호흡하고, 데이터를 고집하며, 불확실한 예측을 조심하고, 극적 조치를 경계하는 것이다.

 

사실충실성 실천하기
팩트풀리스의 목표는 사실충실성 실천(factfulness in practice)이다. 그렇다면 일상에서 어떻게 사실충실성을 활용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 우선, 아이들에게 사실에 근거한 사고의 기본 틀을 가르치고, 사실과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하는 법을 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겸손과 호기심을 가르쳐야 한다. 겸손이란 본능적으로 사실을 올바르게 파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지식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다. ‘모른다’고 말하는 걸 꺼리지 않고,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을 때 기존 의견을 기꺼이 바꾸는 것이다. 호기심이란 새로운 정보를 마다하지 않고 적극 받아들이는 자세를 말하며, 나의 세계관에 맞지 않는 사실도 수용하고 그것이 내포하는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실수를 부끄러워하기보다 실수에서 호기심을 이끌어야 한다. 누구나 하루아침에 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볼 수 있을까? 큰 변화는 언제나 상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는 분명히 가능하며, 두 가지 이유에서 그러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첫째 정확한 GPS가 길 찾기에 유용하듯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은 인생을 항해하는데 매우 유용하다. 부정적이고 사람을 겁주는 극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보면 스트레스와 절망감을 극복할 수 있다. 그런 시각으로 바라보면 세계는 생각만큼 그다지 나쁘지 않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하나의 세계, 하나의 가족!’이라는 주제 아래 열린 눈과 얼음의 잔치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17일간의 열전을 마치고 이탈리아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2월 20일 끝났다. 팬데믹 상황에서도 중국몽을 과시하기 위해 야심차게 준비한 중국인들의 의도가 엿보였다. 편파판정과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선전한 우리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봄이 시작되는 3월이다. 특히 9일은 향후 5년간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20대 대통령을 뽑는 날이다. 분열과 갈등으로 골이 깊어진 우리나라. 국민의 마음과 생각을 헤아려 치유 봉합하고, 합리적이고 미래지향적이며, 통일한국의 비전과 의지가 확고한 인물이 뽑혔으면 좋겠다.
콤파스 회원 김종길 전 부산지방해운항만청장이 향년 86세로 타계했다. 평소 글쓰기와 고전음악을 좋아하고 평생 선비처럼 고고하게 살았던 고인을 생각하니 그리움이 솟구치며 눈물이 핑 돈다. 삼가 고인을 추모하며 부디 하늘나라에서 안식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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