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주업은 왜 필요한가?
필자는 해사클러스터 관점에서 우리나라에 꼭 필요하지만 해사산업분야에서 결락된 부문이 선주업이라는 주장을 2010년도부터 계속해왔다. 필자가 유학했던 1990년대 후반 일본해운은 엔고, 일본제조업체의 해외이전으로 인한 물동량 감소, 일본조선업은 우리나라의 강력한 도전 앞에 대형선 건조에 대한 경쟁력을 상실하는 위기에 봉착하였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도입된 개념이 해사클러스터론이었다. 해사클러스터란 관점에서 그때까지는 해운조선정책의 틀 밖에 있던 지역의 중소조선소와 지방선주들의 소중함이 두드러졌다. 노동집약산업인 조선업이 고임금 선진국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강력한 해운업이 존재해야 하고 그 해운업을 지탱하는 근간이 되는 것이 선주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필자는 한국형선주업 육성의 필요성을 해사클러스터론과 함께 적극적으로 주장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외국에서는 선박의 소유와 운항을 분리해서 운항사가 부담하게 되는 재무적 위험을 분산시키고 선박의 수명주기에 걸친 적절한 투자수익을 향유할 수 있게 하는 선주업이 일반화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다행이 해양진흥공사가 주축이 되어 2021년부터 한국형선주사업을 시범 실시하는 등 분위기는 무르익고 있다.

 

무엇이 한국형 선주업인가?
해양진흥공사의 한국형 선주사업은 선박펀드 구조를 활용해 해운사가 보유한 선박을 매입 후 해운사에 BBC 형태로 임대 공급하는 방식이다. 새롭게 실시하는 선주업의 쟁점은 위험부담을 누가 지느냐에 대한 것인데, 선박 매입 부담이나 선박 자산 가치 변동에 대한 위험을 해진공이 부담하는 것으로 지금까지의 민간 선주사들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을 금융적인 측면에서 해결책을 제시하는 진일보한 형태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해양진흥공사가 실시하고자 하는 한국형 선주사업은 기본 주장은 외국사례와 유사하지만 실행 맥락에서 몇 가지 의문이 있다. 가장 기본적인 의문은 운항과 소유의 분리를 통한 비운항 선주업 육성이 기존 해운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보완하는 형태인가? 아니면 운항사는 운항만 하고 소유는 선주사만 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인가를 명확히 하고 있는지 여부이다. 선주업의 성공에서 중요한 요인은 선박매입에 필요한 자금조달이긴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적정매각시점 파악이 가능한 해운경기 분석력, 매각시점까지 선박가치를 최고로 유지시킬 수 있는 선박관리능력, 그리고 적절한 용선료를 제공하는 운항사를 확보할 수 있는 영업력 또한 중요하다. 한국형 선주업은 선주사 경영에 필요한 이러한 역량을 어떻게 갖추고 지속가능한 선주업을 영위하려고 하는가 의문이다.


따라서 두 번째 의문은 이러한 다양한 형태의 선주업이 존재함을 인식하고 한국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하는 것이다. 선주업의 형태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본의 이마바리조선이나 쯔네이시조선 등이 영위하는 조선소 자회사 형태, 그리스 선주들이나 일본의 중소선주들이 영위하는 선박관리 경험을 기반으로 한 선주사, 중국에서 볼 수 있는 리스사의 계열사 등 선주사에도 다양한 유형이 존재한다. 한국형이란 명칭을 사용할 경우에는 기존의 선주업과는 어떤 차이가 있고 어떤 특장점이 존재하는지 산업계 전반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 무리하게 한국형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자칫 자가당착에 빠질 수 있고 정부의 조선업에 대한 우회지원으로 OECD를 비롯한 외국의 오해를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성공한 선주사의 특징
성공한 선주사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로 오랜 해운시장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운항사와 선주사를 상호 연결해주는 런던 그리크, 뉴욕 그리크, 멜번 그리크 등과 같이 영국, 미국, 호주 등 다양한 국가에 존재하는 그리스계 이민커뮤니티를 배경으로 둔 글로벌 네트워크(그리스 선주) 유무, 둘째로 해운업에 대한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경제의 중심사업이라는 인식하에 화주-조선-지역 금융기관-운항-선주-선박관리를 연결하는 중간자 역할을 하는 종합상사와 같은 기관의 존재(일본 이마바리형)여부, 셋째로 중앙정부의 강력한 자국화 자국선 주의 정책을 뒷받침하는 금융기관 계열사(중국 리스사)의 존재 등이 있다. 중요한 것은 선주업과 운항사, 그리고 금융기관을 연결하는 중간자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의 존재여부이다. 우리는 무엇이 있고 누가 중간자 역할을 할 것인가 이해가 필요하다.
따라서 그리스 선주가 글로벌 네트워크를 강점으로, 중국선주사는 조선소 살리기라는 국책사업을 바탕으로 하는 리스사, 일본 선주사는 종합상사라는 뛰어난 중간자가 존재하는데 이들을 제대로 벤치마킹하여 우리는 어떤 강점을 가진 선주를 육성하려는지 분석이 필요하다.


해운업에 정통하지 않은 선주사가 성공한 사례는 없다. 독일의 선박투자회사들이나 오랜 경험을 가진 일본의 대형도시은행조차도 실패한 사례가 있다. 해양진흥공사는 선주업 진출에 앞서 이들과 비교하여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외국선주사보다 한국선주가 유리한 자금조달 및 담보제공능력이 있는지? 20년에 걸친 선박의 라이프사이클을 감안하여 적정 매각타이밍을 판별하기 위한 장기 해운시황 예측 능력을 어떻게 갖출 것인지? 해운시황변동에 따른 리스크헷지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 정교한 프레임 설계가 필요하다.

 

한국형 선주업을 위한 3가지 대안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형 선주업을 하고자 한다면 세가지 정도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는 선주업에서 이미 성공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는 시도상선과 같은 순수민간선주업이 있다. 시도상선은 여러가지 문제로 손발이 묶이고 제대로 활동을 못하고 있다. 한국형 선주사를 육성하고자 한다면 시도상선과 같은 사례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정책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애로요인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서 민간이 더 잘할 수 있다면 굳이 해양진흥공사가 나서지 않아도 될 것이다.
두 번째는 2016년 세제혜택이 줄어들므로 유명무실화된 선박펀드를 활용하여 민간금융자본이 선주역할을 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것이다. 선박펀드에 대한 세제혜택을 지역일자리창출이라는 명목으로 다시 부여하고 이를 지렛대로 국내 중소조선소에 지역상생발전기금을 활용하여 발주하면  중소조선업과 중소해운업계간의 연결고리를 만들 수도 있다.


세 번째는 부산항의 선박관리회사와 부산으로 이전한 선박금융기관, 부산의 지역금융기관이 상호협력하고 선박관리와 선박소유를 연계하는 방식이다. 이는 부산이 가진 해양수도라는 지역적인 강점을 활용한 방식이다.
해양진흥공사가 선주업 육성을 위하여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국내화주들이 국내 운항사를 활용하여 운송계약을 체결할 때 필요한 선박조달을 국내선주사를 통하도록 유도하는 화주-운항사-선주사 연결고리 만들기, 선주사들이 매입 및 매각타이밍을 적절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정교한 해운시황 예측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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