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8일~11일 한국해운물류학회 선상포럼 개최
적산법화원에 장보고의 기상과 숨결 그대로 남아
QQCT의 방대한 규모는 중국 내에서도 3번째

지난 10월 8일부터 11일까지 한국해운물류학회가 주최하는 ‘2005 선상 해운물류포럼’에 참가해 선상에서 이루어진 세미나와 중국 웨이하이~적산법화원~석도 봉래각~칭다오항(황도항)으로 이루어진 답사를 동행취재했다.
해운물류학회 회원과 가족, 기자단 등 49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이번 행사는 선상에서의 세미나와 함께 산동성의 대표적 항만인 웨이하이와 칭다오항을 둘러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또한 최근 드라마로 제작된 바 있는 장보고가 직접 지었다는 적산법화원과 그당시 관무역의 중심지였던 석도 봉래각 등지를 지나는 등 3박 4일간의 길지 않은 여정을 알차게 보냈다. 선상포럼의 내용은 별도 편집했다.

 

전날의 국감 취재일정으로 출발 당일 선상포럼의 준비는 무척이나 소홀했다. 오후 출국이기에 아침부터 부랴부랴 옷가지 등의 준비물을 챙기고 언제부터인가 내 보물이 되어버린 카메라 밧데리도 확인하고....
인천행 지하철을 타고 다시한번 이번 답사 일정을 챙겨보았다. 넓은 중국땅에 실제로 머무르는 시간은 1박 2일. 넉넉지 않은 시간에 바쁜 일정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선상에서 이루어지는 포럼과 청도항 답사에 무게를 두리라 생각했다.

 

카페리만의 특이한
화물적재방식 생소

여유를 두고 도착한 인천 제2여객터미널에는 이미 해운물류학회 임원과 일부 회원가족, 동행 기자가 도착해 있었다. 겉보기와는 달리 터미널 내부는 출국수속을 대기하는 인파로 북적였으며, 인산인해를 이루는 여행객 수에도 불구하고 여객 편의를 위한 환전시설 등이 갖추어져 있지 않아 편의시설이 미흡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카페리가 정박해 있는 부두에 가기 위해 일행은 약 3분여가 걸리는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했다. 이 또한 이용객에게 불편을 주는 요소 중의 하나이고 이러한 상황은 웨이하이항에서도 마찬가지였으며 향후 개선되어야 할 부분으로 보인다.


인천~웨이하이간 주 3회 정기 카페리서비스를 하고 있는 위동항운의 ‘뉴골든브릿지 2호’는 순톤수만 2만 6,400여톤, 전장만 186m에 이르며 656명의 여객정원과 250teu의 화물을 적재할 수 있다. 실제로 화물운반은 카페리 운영수입의 60% 이상을 차지한다고 관계자는 이야기 하고 있으며 화물창을 드나들며 컨테이너를 싣는 모습은 무척이나 분주해 보였다.


이중 특이한 것은 컨테이너 적재방식이었다. 기자가 갖고 있던 예상과는 달리 야드트랙터에 적재된 섀시 통째로 화물창에 보관하고 트랙터만 빠져나오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물론 웨이하이항에 도착하면 그곳에 대기하는 트랙터가 섀시만 연결해서 나오는 방식이다.

 

위동항운, 한중교역 초석 다져
객실 내에는 일명 보따리 무역을 행하는 개인무역업자들의 수가 상당히 많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중국의 값싼 물건을 가져와 한국에 파는 등의 천편일률적인 무역형태를 벗어나 최근에는 한국산 웰빙식품을 중국에 반입해 비싼 값에 판매하는 이도 있다고 하니 이것이 바로 상식을 뛰어 넘는 블루오션이 아닌가 한다. 그에 의하면 이 시장은 아직도 누가 섣불리 끼어들 수 없는 미개척 분야이며 다년간의 노하우가 아니면 운영하기 위험한 사업이라고 한다.


황해의 석양과 함께 식사를 마치고, 해운물류학회 공식 일정인 선상포럼이 개최되었다. 이 자리에서 위동항운 이종순 사장은 ‘한중 카페리 항로의 회고와 전망’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한중 카페리항로의 개설배경 및 과정과 위동항운의 경영사례, 한중카페리항로의 존속 필요성과 당면문제 등을 지적했다. 특히, 충남대 구종순 교수는 갈수록 줄어드는 소규모 무역상의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이종순 사장은 “한때 무분별하게 늘어나는 소규모 무역상을 조정하기 위해 정부의 규제가 있었다. 이에 대한 위동의 운영전략은 점차 순수 여행객을 위주로 한 여객서비스를 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세미나를 마치고 이어진 다과시간은 이 행사에 참가한 학회 회원들간의 친목교류와 다양한 의견교환의 자리가 되었다. 이날의 일정을 마치고 드는 잠자리는 예상과는 달리 편안했다. 침실도 물론 흠잡을데 없이 쾌적했지만 다과와 곁들인 술이 크게 한 몫을 한 것 같다.

 

△첫 중국 도착지 웨이항의 모습
△첫 중국 도착지 웨이항의 모습

카페리 활성화의 중심지 웨이하이
이틀째, 아침은 갈매기가 나는 모습을 보며 일어났다. 비로소 육지다. 선상에서의 하룻밤이지만 어느새 땅이 그리워지는 마음은 어쩔수 없다. 배타는 체질은 아닌가보다. 그리고 한국시간보다 한시간이 늦은 중국의 시간체계로 인한 시차적응(?)도 감수해야만 했다.
가까워지는 웨이하이항은 그리 이국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멀리서 보기에는 오히려 분주함보다는 휴일의 평온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하선 후 입국수속을 하기까지 또한번의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했다.


터미널을 빠져나와 대기하는 버스를 타며 상당히 비좁은 공간 인테리어에 놀래야 했다. 한국의 표준 45인승 버스 크기에 55인을 태우는 놀라운 기적을 보이고 있었던 것.
장보고가 세웠다는 적산법화원으로 향하기 위해 통과한 웨이하이 시내의 모습을 보며 중국은 비교적 낙후된 나라라는 편견은 버려야 했다. 한중간의 가장 가까운 카페리항로이며 카페리의 활성화를 이루게 된 중심항이다보니 소규모 무역상과 관광인파가 수시로 드나드는 곳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신라시대 한중
사무역의 중심지 적산법화원

중국 산둥(山東)성 룽청(榮成)시 석도진 부근의 적산법화원은 장보고가 828년 이곳에 거주하는 신라인들을 위해 세운 절이다. 이곳 인근의 부두에서 배를 띄우면 만 하루만에 경기도 쪽 해안에 도착할 수 있어 신라인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이러한 지역적 특성상 신라와 중국간 사무역의 중심지로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장보고 영정이 모셔져 있는 적산법화원은 룽청시가 1990년과 2000년에 건물을 증축했으며 바로 옆에 장보고 기념비까지 세워져 있는 등 중국 내에서 장보고 유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적산 연화정에 세워져 있는 장보고 기념비는 장보고를 기리기 위해 건립된 것으로서 15m에 이르는 탑신은 큰 기둥 두개가 한 조를 이루어 구성되어 있으며 이 두 기둥은 한중간의 영원한 우의를 상징한다고 한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복원한 절의 모습은 한국의 여느 사찰과는 조금은 다른 무엇인가가 느껴졌다. 그 이유는 ‘옌닌의 일기’에서도 보듯이 장보고의 도움을 받은 일본 승려 옌닌이 수년간 이곳에 은신하며 중국을 기행했다는 사실을 가지고 일본인이 먼저 나서서 복원계획을 세우고 추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좌측부터 적산법화원의 장보고 기념탑, 장보고 동상, 석도 봉래각
◁좌측부터 적산법화원의 장보고 기념탑, 장보고 동상, 석도 봉래각

도로 수준에 못미치는 교통의식
바쁜 일정으로 인해 여유롭게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음 행선지인 봉래각을 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중국의 개혁개방 당시 덩 샤오핑은 “중국은 개혁하려면 길부터 닦아야 한다”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듯 2008년 북경올림픽 준비를 위해서인지 이동간 도로상태는 우려와는 달리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장거리 운행(이곳에서는 3~4시간 이동은 단거리라고 한단다) 중 쉬어갈 만한 곳이 절대 부족했으며 편의시설 또한 전무했다. 이 부분은 앞으로도 개선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중국인 특유의 사고방식인지는 모르겠으나 도로에서의 무질서함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을 정도였으며 1분에 한번씩은 경적을 울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멀쩡한 고속 주행도로에서 있으나마나 한 신호등, 사람의 무단횡단, 막무가내식 역주행 등.... 각별히 조심해야 할 중국의 교통환경이었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카페리가 지나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업하는 중국 소형어선도 아주 볼만했다.

 

고선박물관의 등주선
역사적 의의 커
이어 도착한 봉래는 과거 등주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중국 공무역의 중심지였다. 당시 신라와 발해의 사신이 이곳에 설치된 신라관, 발해관에서 머물다 수도인 장안으로 가게 되어 있었다.
중국의 4대 명루에 속하는 봉래각은 일종의 도교사원이다. 옛날에 8명의 신선이 바다를 건너갔다는 전설이 있는 해상전각으로서 성문안까지 바다물이 들어와 배가 성안으로 바로 정박할 수 있었다고 한다. 북송때부터 명, 청을 거쳐오면서 때로는 무역항으로 때로는 일본군을 막는 포대의 주둔지로서 역할을 해왔다. ‘소동파’가 5일간 머무르면서 당시의 문인들과 시를 나누던 곳이기도 하며 지금은 비석에 탁본된 어렴풋한 자취만이 남아있다. 이곳은 비온 후 다음날이 인파가 더욱 붐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비온 다음날 봉래각 위에 신기루 현상이 생겨 장관을 연출하는 것 때문이라고 한다.


또 한가지, 이곳이 우리 답사팀에게 중요한 의의를 갖는 것은 고선(古船)박물관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발견된 고선은 이 지역의 이름을 따 등주선이라고도 하며 격벽이 있는 것이 특징적이며 큰 의의를 갖는다고 한다.
옌타이 시를 찾는 관광객은 거의 모두 이곳을 방문하는데 1년간 관광수입이 150억 정도라고 하니 중국인의 대단한 사업수완이 엿보인다.


봉래각 답사를 마치고 청도로 이동하는 것으로 이날의 공식적인 일정은 마무리 되었다. 호텔 도착 후 젊은 혈기의 기자들과 일부 학회 회원은 마냥 잠자리에 들 수가 없었다. 그 지방에 가면 그곳의 술을 맛보아야 하는 법. 그러나 호텔 밖의 사정은 여의치 않았다. 썰렁한 거리엔 가로등만 환하게 비추고 있어 마땅히 갈 곳이라고는 호텔 바로 앞의 노상 술집이었다. 가벼운 술자리로 마감해야겠다는 생각과는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이 노점은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이 곳에서는 꽤 유명한 곳이었나보다. 한개의 차로를 막고 장사를 벌이는 그들에게 주문하기도 쉬웠다. 아저씨~~ 하면 바로 달려오는 주인, 아차 조선족이었다. 한국인에게 의사소통의 한계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이곳은 조선족과 한국 유학생이 많은 곳이라고 한다.

△황도 QQCT(청도전만컨테이너터미널)의 CY모습과 이를 설명하는QQCT john mao 주임
△황도 QQCT(청도전만컨테이너터미널)의 CY모습과 이를 설명하는QQCT john mao 주임

중국 3위 항만 청도컨터미널
사흘째 되는 날, 전날 저녁의 이벤트(?)로 인해 미처 느끼지 못했으나 맑은 날의 칭다오는 어딘지 모를 이국적인 풍취가 느껴졌다. 과거 독일에게 점령 당했던 역사가 있는 도시인 만큼, 아직까지 독일 양식의 건물이 곳곳에 남아있어 그 당시의 자취를 느낄 수 있었다. 칭다오는 역사적으로 보면 옌타이보다는 오래되지는 않았으나 개방의 속도가 빨라 현재는 오히려 옌타이보다 더 큰 국제도시가 되었다.


연안여객선을 이용해 15분여에 걸쳐 교주만을 지나 칭다오항을 대체하는 황도항에 도착했다. 이곳의 연안여객 사정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금은 영세해보이는 듯한 터미널 규모와 선박, 그러나 교주만을 통과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2000년 7월 11개 선석 완공으로 개장한 황도항은 ‘청도전만컨테이너터미널(QQCT)'로 지칭되며 2,200여명의 직원이 1년에 약 650만teu를 처리하는 중국 내에서도 상하이, 천진에 이어 3번째로 꼽히는 항만이다.


QQCT의 마오쥔(John Mao) 주임은 “안벽수심 17.5m인 11개의 선석이 3.4Km에 걸쳐 있으며 태풍의 영향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천혜의 자연환경까지 갖추고 있다. 또한 4조 3교대 근무로 24시간 하역체계를 갖추어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현재 세계 10여개국에서 주당 98척의 컨테이너선이 드나들고 있으며 이중 한국과 일본의 물량이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QQCT는 현재 캐퍼로서도 물량처리가 충분해 향후 추가적인 개발계획은 구체적으로 세운 상황은 아니며 장래 추이를 지켜본 후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며 QQCT의 현황을 설명했다.


이곳의 CY는 컨테이너를 최대 10만개까지 장치할 수 있는 면적으로서 단일 터미널 면적으로는 중국 최대규모다. 현재 60톤의 하중까지 견디는 갠트리크레인(GC) 26개가 운용중이며 평균적으로 15열까지 처리가 가능하다고 한다. 설계상으로는 최대 25열까지 처리가 가능하며 이는 1만teu급 선박에 해당하는 크기다. 트랜스퍼 크레인(RTGC) 77기가 활발히 움직이고 있었다.


기존의 칭다오항은 현재 GC 6기가 설치되어 내륙화물을 중심으로 연간 100만teu를 처리하고 있다고 한다. 황도항 주변에는 일본계 물류기업이 주로 상주해 있으며 한국기업이 많은 곳은 교주만(구항만)지역이라고 한다.

△황도 QQCT(정도전만컨테이너터미널)의 크레인(좌)과 청도항에서 '골드브릿지V'호 화물창에 컨테이너 선적을 위해 야드트랙터가 드나드는 모습(우)
△황도 QQCT(정도전만컨테이너터미널)의 크레인(좌)과 청도항에서 '골드브릿지V'호 화물창에 컨테이너 선적을 위해 야드트랙터가 드나드는 모습(우)

카페리 브릿지와
웅대한 기관실은 인상적

이번 답사에서 둘러본 웨이하이와 칭다오, 옌타이 등지는 산동성의 교동반도에 속하는 지역이다. 이 세 도시가 교동반도의 대표적인 도시이며 개발되기 전의 웨이하이는 옌타이에 속한 작은 어촌에 불과했으나 큰 도시로 성장하며 옌타이에서 별도 독립해 현재는 교동반도의 3대 도시가 된 것.


칭다오항을 둘러본 후 답사일행은 중국해양대학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칭다오여객터미널로 향했다. 지루한 출국수속을 마치고 배에 승선, 저녁식사를 마치고 창명해운 이경재 사장의 ‘부정기선 시황과 전망’이라는 주제의 선상포럼에 참가했다.
이경재 사장은 지금의 창명해운이 있기까지의 우여곡절을 설명하며 “3일 밤낮을 고민하는 신중함과 결단에 대한 과감한 추진력이 큰 도움이 되었다. 국내 해운업의 성장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적인 뒷받침이 필수적이며 이어서 투자환경에 대한 개선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고 당부했다.


포럼을 마친 후 이경재 사장의 든든한 후원으로 브릿지(선교)와 기관실을 둘러볼 수 있었다. 특히 기관실의 엄청난 소음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기관실 선원들의 모습은 마치 대형 공장을 통째로 옮겨놓은 듯 여겨졌다. 또한 이날 저녁에는 우연히 선박 항행 중 도선사가 하선하는 진귀한 광경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좌정관천에서 벗어나는 계기 평가
나흘째 아침, 멀리 인천항을 바라보며 시계의 바늘을 한바퀴 앞으로 돌리자 한국 도착을 비로소 실감했다. 인천항을 눈앞에 두었으나 터미널에 도착하기까지 우리에겐 갑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유롭지 못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포럼에 참가한 회원들은 서로 작별인사를 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기자도 3박 4일의 일정 동안, 포럼에 참가한 해운물류학회 회원들과 깊고 유익한 대화를 그다지 많이 가지지 못한 것에 후회하며 여정을 마쳤다. 지난 6월의 일본항만시찰에 이어 가진 이번 중국 칭다오항만 시찰을 통해 제한된 현실경험과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국내 항만과 경쟁하는 지역의 실태를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는 데 큰 의의를 두고 싶다. 
  <중국현지=안성종>


2005 선상해운물류포럼

‘한중카페리항로의 회고와 전망’              
 

 한국해운물류학회의 2005 선상포럼에서 발표된 위동항운 이종순 대표의 세미나 내용.

한중간 경제교류는 1987년 경부터 중국의 대내외 경제개혁 및 개방정책에 따라 급진전되어왔다. 한중간 수출입 규모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일본, 싱가폴 등을 중개지로 하는 간접교역 방식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운송수단도 제 3국적선에 전적으로 의존했으므로 환적에 따른 부수적 수송비용도 매우 컸다.

 

최초 한중 카페리 선사 위동항운
이후 한국기업의 대중국 투자가 활성화 되는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로 한중간의 인적·물적교류를 위한 양국간 정기항로 개설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한중 양국 정부는 1989년 비공식 합의과정에서 한중 합작선사 설립에 대해 합의하고 컨테이너 정기항로가 개설되었다.

 

그러나 컨테이너 항로로서는 갈수록 증가되는 여객 및 화물의 수송수요에 적절한 대응을 할 수가 없었다. 이에 한국과 중국은 1990년 민간차원의 협의를 통해 최초의 한중간 카페리 선사로서 위동항운 유한공사를 양국간 공동합작으로 설립하고 영업범위를 ‘한국과 중국 산동성간의 여객 및 화물수송’으로 정하고 ‘GOLDEN BRIDGE 호’를 투입해 영업을 개시했다.


현재 한중 카페리항로는 총 14개 선사에서 15개 카페리항로에 15척의 선박을 투입하고 있으며 컨테이너 항로는 총 60개사가 68척을 투입하고 있다. 한중 카페리의 주요 한국 기한지는 인천항이며 평택, 군산, 목포, 속초 등이 소규모로 기항하고 있으며 중국측 주요 기항지는 웨이하이, 칭다오, 옌타이, 다롄, 톈진 등 대부분 중국의 동부지역이다.

화물증가 불구하고 공급과잉 폐단
한편 카페리선 수입원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컨화물은 2004년까지 연평균 12.6%가 증가하고 있으며 올 8월까지는 전년동기대비 29.9%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인천, 평택과 중국간 카페리 항로들은 공급과잉 등으로 인한 경쟁으로 소석률이 유지 또는 감소되는 가운데 화물운임 수입은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자 최근 한중 양국 정부는 ‘제 12차 한중해운협의회’를 개최하고 당분간 카페리 항로에 영향을 주는 인천항과 평택항에서의 컨테이너선 추가 기항을 제한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제 3국 컨테이너선에 대한 한중항로 투입제한도 한계에 다다르고 카페리 전용부두의 부족, 중국인의 한국 비자 제한 정책 등 한중 카페리항로 발전을 위한 제도적 여건이 뒷받침되어 있지 않아 장래 발전은 아직도 불투명하다.

 

카페리 사업 아직은 희망적
한국기업의 대중국 투자는 계속해서 확대될 전망이며 이에 따른 카페리항로에 대한 화물수요 또한 지속적으로 증대될 전망이다. 정시성과 신속성 면에서 컨테이너선보다 비교우위에 있으며 가격경쟁력 또한 갖추고 있어 국제여객전용부두 및 배후시설 등의 인프라 보완이 이루어진다면 높은 운항원가에도 불구하고 경쟁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WTO의 개방논리 및 지역이기주의와 정치적 압력에 의한 항로운영정책의 안정성 훼손이 한중 카페리사업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투자의욕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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