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속 챙기는 대만인의 근성과 대만경제 위상 한눈에 볼 수 있는 곳

대만의 카오슝(高雄, Kaoshiung)은 12월에서 2월까지 3달을 제외하고는 연중 후덥지근하다. 그래서인가 도시 전체가 활력이 없어 보일만큼 위축되고 조용하다. 그러나 도심을 벗어나 항만으로 오면 사정이 다르다. 전세계 유명 선사의 전용터미널마다 컨테이너 화물이 빼곡하고, 수십 척의 선박이 연신 화물을 쏟아내며, 화물을 실은 트레일러가 길을 메우며 오고간다.


항만의 입지, 시스템, 화물처리량 모두 최고수준을 자랑하는 카오슝항. 실속을 챙기는 대만인들의 근성과 대만경제의 위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카오슝항이다.  


카오슝항은 대만의 최대 항만이자 세계적인 환적항으로 유명하다. 1863년 청조시대에 영국·프랑스·독일 등 수교 국가들의 상선이 기항하여 商館을 짓고 토지를 임대하여 창고를 건설하면서 국제적인 무역항으로 태동을 시작했다.

 

69년 컨선 입항, 72년 항만민영화 시작


1969년 11월 컨테이너선이 입항한 이래 이듬해 컨테이너만 처리하는 터미널이 처음 지정된다. 이후 홍콩의 OOCL이 1972년 전용터미널을 임차해 사용하면서 본격적으로 항만의 민영화 단계에 접어든다.

 

현재는 우리나라의 현대상선, 한진해운을 비롯 10여개의 세계적인 컨테이너 선사가 22개 선석을 빌려서 사용할 만큼 세계적인 허브항만으로 발돋움했다.


 

카오슝항은 지리적으로 천혜의 조건을 타고 났다. 면적 26.8평방km에 항구수심은 최대 16미터, 조수간만의 차 0.75미터로 언제든지 초대형 선박의 입출항이 가능하다. 대만 동쪽의 높은 산맥이 보호막 구실을 하고 암석지반으로 구성되어 동쪽으로부터 발생하는 태풍과 빈번한 지진에도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 8㎞에 이르는 뱀꼬리 형태의 육지가 부두 앞뒤로 길게 항만을 감싸주고 있어서 천연 방파제 역할을 해준다.


모든 면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편하고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한 흔적이 곳곳에 배여 있다. 마치 버스 터미널을 옮겨놓은 듯 가지런하고 반듯해서 보기에도 안정감을 준다. 멀리는 미주와 유럽을 잇고, 극동과 동남아, 중국 본토 등에서도 가까운 요충지로 허브항만으로서 최적의 조건을 구비하고 있다.

 

145개 선석 갖춘 다목적항, 컨터미널 5개 26선석


카오슝항은 컨테이너, 벌크 등 각종 선박이 기항할 수 있는 145개의 선석을 갖춘 다목적 항만이다. 컨테이너 터미널만 5개에 26선석을 갖추고 있다.


지난해 컨테이너 처리물동량은 947만TEU로 2004년의 971만TEU에 비해 2.5% 감소했다. 싱가폴, 홍콩, 상하이, 선전, 부산에 이은 세계 6위의 기록이다.


카오슝항이 다른 항만과 구별되는 점은 자국화물보다 환적화물이 더 많다는 것이다. 전체 처리량의 절반 이상이 환적화물이다. 동남아 국가에다 중국의 화물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2000년대 초반까지 환적화물 비중이 높아졌다.


카오슝항은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으로 일찍부터 수요자인 선사들에게 어필해 왔다. 항만당국은 안벽, 부지조성 등과 같은 기본 시설을 조성한 후 임대하고 하역장비를 포함한 대부분의 시설은 임차자가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항만당국 입장에서는 개발비용 절감을, 선사는 자신에게 적합한 하역방식, 야드장치의 시스템 등을 결정하고 구축할 수 있어 운영효율을 높일 수 있었다.


또 하나의 강점은 항운노조를 민영화한 것이다. 그동안에는 갠트리 크레인 등 주요작업 인력은 항무국 소속으로 되어 있고 나머지는 모두 인력회사에서 파견되는 방식이었으나, 항무국 소속의 운항노조를 1998년 전원 민영화한 이후 이들을 기존 또는 신규근로자 파견회사에 소속시켰다. 이에 따라 전용터미널 운영선사들은 10-20%의 생산성 향상을 가져왔으며, 연간 30%정도의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98년 항운노조 전원 민영화 실현


카오슝은 항만배후에 수출가공지역(Export Processing Zone)과 특별지역(Special Zone)을 두고 있다. 수출가공구는 1995년부터 대만의 경제부가 수출산업 육성을 위하여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수속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수출입을 자유화하고, 수입관세를 면제한 생산거점으로 활용하여 왔으며, 아시아태평양 경제 및 무역특별지역으로 지정하여 항만구역내에 첨단사업, 부가가치 산업외에 창고나 물류센터의 기능을 강화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수출되는 상품과 서비스는 상품세가 면제되고, 화물자동통관시스템(CCAS: Cargo Clearance Automation System)으로 통관관리를 함으로써 절차가 간편하고 신속하다.


카오슝항의 수출자유지역은 2개소가 있는데, 수입하여 가공 수출할 경우 비지니스세, 항만개발세, 무역촉진세, 소득세(25%) 등의 감면혜택을 주고 있다. 입주업체에게는 필요할 경우 토지를 분양 또는 임대해주고 있으며 필요하면 공장까지 건립해주고 있다.
이처럼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모든면에서 경쟁력이 뛰어난 카오슝항이 예전만 못하다는 데는 이의가 없다.


한때 세계 3위로 고속성장을 거듭하던 카오슝항이 이제는 홍콩, 싱가폴과는 경쟁 자체가 불가능하고, 상해, 선전 등 인근 중국 항만의 급성장과 부산항에 조차 밀리면서 6위까지 추락한 것이다.


지난해 당초 1,000만 TEU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으나 14년만에 처음으로 컨테이너 물동량이 감소하는 결과로 나타나면서 카오슝항의 위기의식은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의 암울한 경험 때문에 카오슝항은 올해 목표치를 994만TEU로 지난해보다 5% 정도 증가하는 정도로 잡았다. 1,000만TEU 고지를 오르기가 쉽지 않다는 현실을 인정한 셈이다. 

 

작년 컨 처리실적 14년만에 감소해


가장 큰 이유중 하나가 유럽과 미주로 가는 대형선들이 종전과 달리 대만해협을 두고 대만과 마주하고 있는 샤먼항으로 직기항 하면서 카오슝을 기점으로 하던 중국의 환적화물이 크게 줄고 있기 때문이다. 5-6개의 원양항로 노선이 최근 카오슝을 벗어나 샤먼항으로 옮겨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욱이 샤먼항은 현재 안벽길이 1,240미터에 수심 17미터로 초대형 컨테이너선 기항이 가능한 3선석 규모의 터미널을 올해말에 완공해 내년부터 운영에 들어갈 예정이어서 카오슝 터미널에 미치는 직접적 위협은 더 커질 전망이다. 연간 60-70만TEU의 물량이 이탈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최근 타이베이해운대리점협회 마오언민(毛恩民) 이사장은 중국 본토의 무역량 확대와 함께 현대식 항만이 잇따라 완공됨에 따라 원양 간선 선박이 중국 항만으로 직항하는 추세가 계속되며 카오슝항이 피더항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고 경고하고 있다.


한때 ‘아시아의 4龍’으로 수출물량을 쏟아내던 대만이 이제는 값싼 노동력과 강력한 경제 정책으로 팽창하는 중국경제의 물량공세 때문에 자국 경제는 물론 항만의 경쟁력 마저 걱정하는 처지가 돼버린 셈이다. 카오슝과 이웃하는 홍콩은 물론 중국정부의 항만개발에 따라 상해와 선전항의 물동량이 폭증하면서 결국 카오슝항으로 집중되던 중국의 환적화물 증가가 한계상황을 맞은 것이다. 문제는 두고두고 이러한 현상이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카오슝항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온통 우울하기만 하다. 대만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1년간 세계 6대 컨테이너항만의 화물점유율은 홍콩 24%, 싱가폴 22%, 상하이 16%, 선전 15%, 부산 12%, 카오슝 11% 순이었다. 문제는 현재의 추세가 지속될 경우 2008년경이면 상하이와 선전이 각각 1.2위를 차지하고 카오슝항은 2010년이면 점유율이 8% 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는 것이다.

 

교통부 카오슝항 경쟁력 강화 조치 마련
고심 끝에 대만 교통부는 고효율, 고품질 서비스를 골자로 하는 카오슝항의 경쟁력 강화 조치를 마련했다.


▲ 우선 올해부터 항만 요율에 대한 특혜 조치 및 컨테이너 물동량 성장 장려조치 등 인센티브 제도를 실시해 선사와 하주의 비용부담을 낮추고, 포트 세일즈를 강화하고 ▲ 카오슝항의 자유무역 지역규모를 확대하고 컨테이너 장치장 부지를 최대한 확보하기로 했다. ▲ 또한 항만 부지이용 현황을 재검토해 토지 이용율을 향상시키고, ‘무역항법’에 근거해 민간업체와의 협력 매커니즘을 구축하며 민간업체들이 항만개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 2006년 7월부터는 카오슝 무역항 시설의 임대 및 건설요건 규정을 수정해 민간업체의 운영에 정부의 관여를 최소화화고 각종 규제완화 조치를 취할 방침이다. ▲ 나아가 교통부의 항만정보시스템과 연계해 해운업계에 단일 정보창구를 제공하고 지속적으로 전자화 정보화를 추진하며 ▲ 6단계 신규 터미널 건설을 가속화 하는 한편 ▲ 하역장비 교체 등 시설개선과 항로준설 등으로 통해 선박 대형화에 부응하고 터미널 운영효율을 향상시킨다는 것 등이다. 


이 가운데, 주목을 끄는 부분이 6단계 신규 터미널 공사. 대만정부가 국가개발전략의 일환으로 추진중인 국제컨테이너기지화 사업의 1단계 사업으로 2010년까지 BOT방식으로 안벽길이 1,500미터, 수심 17.6의 선석 4개를 완공한다. 이 터미널이 완공되면 연간 200만TEU 가량 처리능력이 늘어나게 된다.

 

국제 컨기지화 관련 6단계 신규터미널 공사 ‘주목’
카오슝항은 숙명적이게도 항만의 미래를 기댈 곳은 중국뿐이라고 믿고 있다. 중국과의 인적교류와 서신교환, 물자교류 등이 확대되면 오는 2010년경 화물량이 지금의 2배에 달할 것으로 희망적인 전망도 내놓았다.


정치적으로 중국과 대만 관계가 해결된다면 양안 직기항이 가능하고 남중국의 수출입 및 환적물들이 자유롭게 더 많이 왕래하여 카오슝항 활성화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카오슝항은 세계 각지에서 항만을 견학오는 사람들을 위해 별도로 보트를 마련해 전체 시설을 둘러볼 수 있도록 하는 등 항만 세일즈에 적극적이다. 가만히 있어도 화물이 몰려오던 시기는 까마득한 옛일이 되었고 이젠 혼신을 다해 화물을 모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옛영광의 재현을 위해 몸부림치는 카오슝항의 모습은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으려는 고육지책이지만, 카오슝과 경쟁하는 부산항으로서도 그냥 남의 일로만 치부할 일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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