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판결 : 대법원 2005. 3. 24. 선고 2003다5535 판결,

대법원 2008. 2. 14. 선고 2006다47585 판결

 

한국해법학회가 지난 1월 28일 제 8회 판례연구회를 개최했다. 이날 발표된 내용 가운데 김재환 변호사의 <공 선하증권 일반에 대한 법리-->를 필자의 수정작업을 거쳐 게재했다.      -편집자 주-

 

Ⅰ. 머리말

김재환 변호사
김재환 변호사
운송물의 수령 없이 선하증권이 발행된 경우나, 운송물과 상이한 내용의 선하증권이 발행된 경우에 법률관계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를 두고 선하증권의 문언증권성을 중시하는 입장과 요인증권성을 중시하는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1982. 9. 14. 선고 80다1325 판결을 통해 이미 그 입장을 밝힌바 있으나, 1991년 상법개정 이후에는 개정된 상법에 따라 기존 대법원 판례에도 변경이 있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05. 3. 24. 선고 2003다5535 판결, 2008. 2. 14. 선고 2006다47585 판결을 통해 1991년 개정된 상법하에서 운송물의 수령 없이 선하증권이 발행된 경우의 법률관계에 대하여 종전의 대법원 1982. 9. 14. 선고 80다1325 판결과 유지한 취지의 판시를 하였다. 여기서는 위 대법원 판결들을 살펴봄으로써 운송물의 수령 없이 선하증권이 발행된 경우나, 운송물과 상이한 내용의 선하증권이 발행된 경우의 법률관계를 검토해보도록 하겠다.


Ⅱ. 사안의 개요
대법원 2005. 3. 24. 선고 2003다5535 판결과 대법원 2008. 2. 14. 선고 2006다47585 판결은 모두 수출보험제도를 운영하는 한국수출보험공사가 운송물을 수령, 선적하지 않은 상태에서 선하증권을 발행한 운송인을 상대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를 하였던 사안으로서, 그 기본적인 사실관계가 매우 흡사하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① 우리나라의 수출업체인 갑은 외국 소재 수입자 을과 수출계약을 체결하였다고 하면서, 그 수출대금에 관하여 환어음을 발행하였다. 나아가, 갑은 운송인인 피고에게 요청하여 운송물을 선적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선하증권을 발행·교부받았다. 이후 ② 갑은 우리나라에서 수출보험제도를 운영하는 원고에게 수출신용보증서의 발급을 요청하였고, 원고는 갑이 발행하는 환어음의 어음금이 지급되지 않을 경우 그 상환채무에 대하여 연대보증하는 내용의 수출신용보증서를 발급하였다.


③ 갑은 원고로부터 받은 수출신용보증서를 첨부하여 우리나라의 금융기관인 병에게 환어음과 선하증권 등 선적서류의 매입을 의뢰하였고, 병은 원고 명의의 수출신용보증서를 신뢰하여 이를 매입하였다. ④ 환어음과 선하증권을 매입한 병이 을에게 수출대금의 지급을 요구하였으나, 을은 수출대금의 지급을 거절하였고, 이에 ⑤ 병은 원고에게 사고발생을 통지하면서 보증채무의 이행을 청구하여 원고로부터 수출대금 상당액을 지급받았다.


그러자 원고는 피고가 운송물을 수령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선하증권을 발행하였고, 그로 인해 병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병을 대위하여 피고에게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다만, 대법원 2005. 3. 24. 선고 2003다5535 판결의 사안에서는 을이 수출계약체결사실을 부인하면서 수출대금지급을 거절한데 반하여, 대법원 2008. 2. 14. 선고 2006다47585 판결의 사안에서는 수출계약이 체결되었고 을도 갑이 발행한 환어음을 인수하였으나, 끝내 수출품이 도착하지 않아 수출대금 지급이 거절될 것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

 

Ⅲ. 대법원 판결의 요지
1.대법원 2005. 3. 24. 선고 2003다5535 판결
대법원 2005. 3. 24. 선고 2003다5535 판결의 원심에서는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는데, 그 판결이유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1)원고가 대위하고 있는 병의 손해는 수입자인 을이 수출대금의 지급을 거절한 것에 기인한 것이다. 그런데 을이 대금지급을 거절한 이유는 갑과 을간 수출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설령 피고가 적법하게 선하증권을 발행하였다고 하여도, 병은 을로부터 수출대금을 지급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병의 손해와 피고가 운송물을 수령하지 아니한 채 선하증권을 발행하였다는 사실은 인과관계가 없다.


반면에 대법원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선하증권은 유인증권으로 운송물을 수령 또는 선적하지 아니하였는데도 발행된 선하증권은 원인과 요건을 구비하지 못하여 목적물의 흠결이 있는 것으로서 무효라고 봄이 상당하고, 이러한 경우 선하증권의 소지인은 운송물을 수령하지 않고 선하증권을 발행한 운송인에 대하여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할 것이다.


이 사건 선하증권은 운송물을 수령하지 않고 발행된 것으로 볼 여지가 있으므로 원심으로서는 피고가 선하증권을 발행할 때에 운송물인 이 사건 컨테이너를 인도받았는지에 관하여 심리·판단하여야 함에도 이를 심리하지 아니한 채 피고가 이 사건 선하증권을 발행한 데에 아무런 과실이 없다고 판단하였는바, 원심은 심리를 다하지 아니하였거나 채증법칙에 위배하여 사실을 오인함으로써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선하증권이 무효인 경우 선하증권의 소지인으로서 입은 손해는 반드시 그 수출환어음의 지급거절로 인하여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선하증권이 담보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으로 됨으로써 발생할 수도 있다.”

 

2.대법원 2008. 2. 14. 선고 2006다47585 판결
한편 대법원 2008. 2. 14. 선고 2006다47585 판결에서도 대법원 2005. 3. 24. 선고 2003다5535 판결을 인용하면서 같은 이유로 운송물을 수령 또는 선적하지 아니하였는데도 발행된 선하증권을 무효라고 보았다.


나아가 병이 매입하였던 환어음의 지급인이 사후에 이를 인수하였다고 하더라도 위 불법행위와 그로 인한 손해의 발생과 사이의 인과관계가 단절된다고 할 수는 없고, 또한 현실적으로 위 수출환어음의 지급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는 한 위 불법행위로 인한 은행의 손해가 전보되어 소멸하게 되는 것도 아니라고 판시하였다.

 

Ⅳ. 대법원 판례들에 대한 분석
1.공선하증권(공권) 또는 선(先)선하증권의 정의

위 대법원 판례들의 사안에 적용되는, 2007. 8. 3. 법률 제8581호로 개정되기 전의 상법(이하 ‘상법’이라고만 한다2)) 제813조 제1항에서는 “운송인은 운송물을 수령한 후 송하인의 청구에 의하여 1통 또는 수통의 선하증권을 교부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었다(현행 상법 제852조 제1항에서도 동일한 규정을 두고 있다).


위와 같은 상법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실무에서는 운송물을 수령하기 전에 선하증권을 발행, 교부하는 경우가 있는데, 학자들은 이러한 선하증권을 공(空)권3) 또는 공(空)선하증권4), 선(先)선하증권5) 등으로 부르고 있다(이하에서는 편의상 ‘공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토록 하겠다).6)이처럼 운송물의 수령전에 선하증권이 발행되는 이유는 주로 송하인이 운송물의 선적전에 선하증권을 발행 교부받은 후, 이를 금융기관에 매입의뢰를 함으로써 보다 신속하게 자금을 마련하고자 운송인에게 공권의 발행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운송인으로서는 송하인의 공권발행 요청을 거절할 경우 거래관계가 단절되는 등의 불이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공권발행의 위험성을 알고서도 공권 또는 선선하증권을 발행·교부해주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공권이 법적으로 어떠한 효력을 갖는지와 관련해서는 선하증권의 채권적 효력 및 선하증권의 문언증권성, 요인증권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바, 이하에서는 항을 바꾸어 보다 상세히 살펴보도록 한다.

 

2.선하증권의 채권적 효력
상법 제854조 제1항에서는 “①제853조제1항에 따라 선하증권이 발행된 경우 운송인과 송하인 사이에 선하증권에 기재된 대로 개품운송계약이 체결되고 운송물을 수령 또는 선적한 것으로 추정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동조항에 의하여 반증이 없는 한, 선하증권을 취득한 소지인은 운송인과 직접 운송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운송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되는바, 이를 선하증권의 채권적 효력이라고 한다.


이처럼 선하증권의 채권적 효력을 인정하는 취지는 운송인과 송하인간 어떤 계약이 체결되었는지 여부를 불문하고, 운송인에게 오직 선하증권에 기재된 바에 따른 책임을 인정함으로써 선하증권의 유통성을 확보하는 한편, 선의의 선하증권 소지인을 보호하려는데 그 취지가 있다고 한다.

 

3.공권의 효력
가.선하증권의 문언증권성과 요인증권성

1991. 12. 31. 법률 제4470호로 개정되기 전의 상법(이하 ‘구 상법’)에서는 선하증권에 관하여 운송물을 수령한 후 발행하도록 규정하여 선하증권에 요인증권으로서의 성격을 인정하는 한편, 화물상환증의 문언증권성을 규정한 제131조를 준용하도록 하여 문언증권으로서의 성격도 인정하고 있었다. 이로 인하여 선하증권의 요인증권성과 문언증권성이 상충되는 것으로 이해될 여지가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특히 운송물의 수령 없이 선하증권이 발행된 경우나, 운송물과 상이한 내용의 선하증권이 발행된 경우의 법률관계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를 두고 선하증권의 요인증권성을 중시하는 입장, 문언증권성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각기 여러 학설들이 존재하였다. 한편, 대법원은 대법원 1982. 9. 14. 선고 80다1325 판결을 통해 선하증권의 문언증권성 보다는 요인증권성을 중시한 것으로 보이는 취지의 판시를 하였다.


이후 1991. 12. 31. 법률 제4470호로 상법이 개정되면서 상법 제131조의 준용조항을 삭제하고, 제814조의 2로 “선하증권이 발행된 경우에는 운송인이 그 증권에 기재된 대로 운송물을 수령 또는 선적한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운송인은 선하증권을 선의로 취득한 제삼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는 취지의 조항이 신설되었다. 그에 따라 종래의 학설과 판례에도 변경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논의의 실익은 공권이 발행되거나, 선하증권의 요인증권성과 문언증권성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지 여부에 따라 공권이 발행된 경우 또는 운송물이 선하증권과 상이한 경우의 법률관계 구성이 달라진다는 데에 있다.

 

나.구 상법하에서의 논의

(1)요인설
선하증권의 요인증권성을 중시하는 견해로서, 선하증권에 표창된 권리는 증권외의 실질적인 운송계약의 존재라고 하는 원인에 의하여 영향을 받으며, 선하증권의 문언성 또한 그 원인에 의하여 제한을 받는다고 한다.


이 견해에 의하면 공권의 경우 그 원인을 흠결한 것이어서, 선하증권은 무효가 되고, 운송인은 운송물의 인도, 이행의무가 없다. 또한, 실제 운송물과 선하증권의 기재한 상이한 경우에도 운송인은 실제 수령한 운송물을 인도하면 족하게 된다. 다만 운송인은 공권의 발행, 혹은 선하증권의 부실기재에 관하여 불법행위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2)문언설

선하증권의 문언증권성을 중시하는 견해이다. 이 견해에 의하면 선하증권이 법정기재사항을 기재하여 발행된 경우 운송인은 선하증권에 기재된 바에 따른 책임을 지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공권이 발행되거나, 운송물이 선하증권과 상이한 경우에도 운송인은 선하증권에 기재된 물건을 선하증권 소지인에게 인도해야 하는 운송계약상의 의무를 부담하며, 다만 운송물이 멸실된 경우에 준하여 채무불이행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3)절충설
선하증권의 문언증권성과 요인증권성을 절충하려는 견해로 ① 공권의 경우에는 이를 무효로 하고, 실제 운송물과 선하증권의 기재가 상이한 경우에는 유효한 것으로 보아 채무불이행책임으로 처리하려는 견해8), ② 공권은 그 원인을 흠결하였기 때문에 무효이나, 거래의 안전을 위하여 선의의 소지인에 대해서는 증권의 기재에 따른 책임을 진다는 견해(실제 운송물과 선하증권의 기재가 상이한 경우에도 이와 동일하게 해석한다)9) 등이 있다.

 

다.1991년 상법 개정이후의 해석
앞서 살펴본 것처럼, 1991. 12. 31. 법률 제4470호로 상법이 개정되면서 상법 제131조의 준용조항을 삭제하고, 제814조의 2로 “선하증권이 발행된 경우에는 운송인이 그 증권에 기재된 대로 운송물을 수령 또는 선적한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운송인은 선하증권을 선의로 취득한 제삼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는 취지의 조항이 신설되었다.


이처럼 상법이 선하증권의 추정적 효력을 인정하고, 문언증권성을 강조함에 따라 종래의 문언설의 입장에서, 개정된 상법 제814조의 2에서 선하증권의 추정적 효력을 규정하고 있으므로, 공권이라고 하여도 일단 선하증권에 기재된 대로의 효력을 가지며, 다만 송하인과의 관계에서 운송인이 운송물이 수령 또는 선적되지 아니하였음을 증명하거나, 소지인이 스스로 공선하증권의 무효를 주장하는 경우에 비로소 무효로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10)


그러나 위와 같은 견해는 실체법적으로 공권의 효력을 어떻게 볼 것인지 하는 문제와 소송법적인 입증책임의 문제를 혼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상법 제814조의 2 본문은 선하증권이 발행된 경우에는 우선 공권이 아닌 것으로 추정하여, 공권이라는 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을 그 주장자에게 돌린다는 취지에 불과하지, 공권에 어떠한 효력을 부여하겠다는 취지로 해석할 수는 없다. 오히려 상법 제814조의 2의 단서를 보면, 상법이 선하증권을 요인증권으로 보아 공권은 원칙적으로 무효이나, 다만 선의의 제3자에 대하여 요인성을 제한하여 운송인이 공권이어서 무효라는 주장을 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생각된다.11)


따라서 상법 제814조 2의 단서에 의하면 공권이 발행된 경우에도 선의의 소지인은 그 선택에 따라 선하증권의 유효를 주장하면서, 운송인에게 선하증권에 기재된 바에 따른 운송물을 인도할 의무의 불이행(채무불이행)을 이유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도 있고, 반대로 선하증권의 무효를 주장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선하증권의 유, 무효와는 무관하게 선의의 소지인은 운송인에게 불법행위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라.대법원 판례에 대하여
구 상법하에서 대법원은 “선하증권은 운송물의 인도청구권을 포함하는 유가증권인 바, 이는 운송계약에 기하여 작성되는 유인증권인 점, 선하증권은 운송물을  ‘수령한 후’ 또는 ‘선적한 후’에 교부하도록 되어 있는 상법 제813조1, 2항, 선하증권에 운송물의 종류, 중량, 용적 등을 기재하도록 되어 있는 상법 제814조, 선하증권의 처분증권성, 그 교부의 물권적 효력에 관한 상법 제820조, 제132조, 제133조의 규정취지로 보아 상법은 운송인이 송하인으로부터 실제로 운송물을 수령 또는 선적하고 있는 것을 유효한 선하증권성립의 전제조건으로 삼고 있다고 보이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위 운송물의 인도청구권은 운송인이 송하인으로부터 실제로 받은 운송물 즉, 특정물에 대한 것이고 따라서 운송물을 수령 또는 선적하지 아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선하증권이 발행된 경우에는 그 선하증권은 원인과 요건을 구비하지 못하여 목적물의 흠결이 있는 것으로 이는 누구에 대하여도 무효라고 봄이 상당하다.”라고 판시하여 요인설의 입장에 서있음을 분명히 하였다(대법원 1982.9.14. 선고 80다1325 판결).


그러나 1991년 상법이 개정된 이후에는 이에 관하여 명확한 입장을 밝힌 대법원 판례를 찾을 수 없다가, 2005년 대법원 2005. 3. 24. 선고 2003다5535 판결이 선고됨으로써 비로소 개정된 상법하에서의 대법원의 입장이 밝혀졌는바, 그 판시이유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구 상법하의 판례와 거의 동일하며, 이러한 대법원의 입장은 대법원 2008. 2. 14. 선고 2006다47585 판결이 선고됨으로써 재확인 되었다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개정된 상법하에서도 선하증권성의 요인증권을 중시하여 공권을 무효로 보는 것이 타당한 것으로 생각되는바, 위와 같은 대법원 판례는 정당한 것으로 생각된다.

 

4.추심결제방식(DA/DP) 거래에서 선하증권의 담보로서의 기능
가.대법원 2005. 3. 24. 선고 2003다5535 판결의 사안

위 대법원 판례들의 사안은 모두 수출자가 신용장을 이용하지 않고 수출환어음을 발행한 후 은행에 매입을 의뢰한 경우로써, 모든 선하증권과 관련된 거래에서 공권의 소지인에게 담보를 상실하는 손해가 인정될 수는 없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위 대법원 판례들의 사안의 거래구조를 간략하게 설명하면, 수출입과정에서는 환어음을 이용한 소위 추심결제방식{D/P(Document against acceptance), D/A(Document against Payment) Base}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우 수출자는 지급인이 수입자로 되어 있는 환어음을 발행한 후, 그 환어음과 선하증권 등의 선적서류를 은행에 매입의뢰함으로써 수출대금을 회수한다. 이후 환어음과 선하증권을 매입한 은행은 수입지의 은행을 통해 수입자에게 환어음과 선하증권을 제시하고, 수입자가 환어음을 인수하거나 어음금을 은행에게 지급하면 은행은 선하증권을 수입자에게 교부하게 된다. 이때 수입자가 환어음을 인수하는 것만으로 은행이 선하증권을 교부하는 조건을 D/A(Document against acceptance)라고 하고(어음금은 선하증권 교부 후 계약된 기한이 도래한 때에 지급된다), 수입자가 어음금을 지급해야만 은행이 선하증권을 교부하는 조건을 D/P(Document against Payment)라고 한다.


이러한 추심결제방식은 수입자의 거래은행에 의한 지급보증이 없으므로 대금회수의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는다. 따라서 끝내 수입자가 어음금의 지급을 거절할 경우, 은행은 수출자에게 환어음과 선하증권을 매입하면서 지급한 금원(실무에서는 ‘매입대전’이라고 부르고 있다)의 반환을 청구하게 된다. 만약 수출자가 은행으로부터 지급받은 금원을 반환할 자력이 없는 경우, 은행은 선하증권을 이용하여 수출품을 회수한 후 이를 매각하여 수출자에게 지급한 매입대전의 일부라도 회수하게 된다.


이처럼 수입자가 환어음의 인수 또는 어음금 지급을 거절하고, 수출자도 지급받은 매입대전의 반환을 할 자력이 없는 경우, 은행은 최종적으로 선하증권을 이용하여 수출품을 회수한 후 매각하게 된다는 점에서, 선하증권은 수입자의 어음금 지급채무, 혹은 수출자의 매입대전 반환채무에 대하여 최종적인 담보로서 기능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추심결제방식에서 선하증권이 무효가 된다면 은행은 담보를 전혀 취득하지 못하는 손해를 입은 셈이 된다.


대법원 2005. 3. 24. 선고 2003다5535 판결에서 “선하증권의 소지인으로서 입은 손해는 반드시 그 수출환어음의 지급거절로 인하여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선하증권이 담보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으로 됨으로써 발생할 수도 있다.”라고 판시한 취지도 이처럼 선하증권이 무효가 됨으로써 은행이 담보를 전혀 취득하지 못하게 된 것이 곧 은행의 손해라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나.대법원 2008. 2. 14. 선고 2006다47585 판결의 사안
한편, 대법원 2008. 2. 14. 선고 2006다47585 판결의 항소심 판결(서울고등법원 2006.7.6. 선고 2005나99987 판결)을 살펴보면, 운송인은 항소심에서 “수입자가 이 사건 환어음을 정상적으로 인수하여 어음금 지급채무를 부담하면서도 재정난으로 어음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것 때문이므로, 이 사건 선하증권 발행과 원고의 손해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없다”는 취지로 주장하고 있다. 이를 볼 때, 위 판례의 사안에서는 수입자가 환어음을 인수하는 것만으로 선하증권이 교부되는 조건, 즉 D/A(Document against acceptance)조건으로 수출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운송인의 주장은 고려해볼 만한 점이 있다. 즉, 추심결제방식의 결재방식에서 언제나 선하증권이 담보로서 기능하는 것은 아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즉 D/A(Document against acceptance)조건에서는 수입자가 어음을 인수하기만 하면 어음금 지급이전에 선하증권이 수입자에게 교부된다. 따라서 수입자가 환어음을 인수한 후 후일 어음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은행으로서는 선하증권을 이용하여 수출품을 회수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기가 매우 어렵다. 결국 D/A조건에서는 선하증권은 담보로서의 기능이 거의 없고, 따라서 운송인이 발행한 선하증권이 무효가 되었다고 하여, 은행이 담보를 상실하는 손해를 입었다고 보기 어려우며, 은행이 손해를 입은 것은 오직 수입자에게 자력이 없기 때문이다라는 취지의 주장을 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D/A조건이라고 하여 언제나 선하증권이 담보로서의 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수입자가 아예 환어음을 인수하지 않을 경우에는 선하증권은 여전히 은행의 수중에 남아있게 되고, 끝내 어음금이 지급되지 않으면 은행은 선하증권을 행사하여 자금을 회수하게 되는바, 선하증권은 여전히 담보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그 때문에 D/A조건하에서 선하증권을 매입하는 경우에도 은행은 선하증권이 담보로서 기능할 것을 기대하기 마련이며, 그 당연한 결론으로 만약 은행이 선하증권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공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D/A조건이라고 하여도 결코 선하증권을 매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대법원이 운송인의 위와 같은 주장에 대하여 “설사 함께 매입되었던 수출환어음의 지급인이 사후에 이를 인수하였다 하더라도 위 불법행위와 그로 인한 손해의 발생과 사이의 인과관계가 단절된다고 할 수는 없고, 또한 현실적으로 위 수출환어음의 지급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는 한 위 불법행위로 인한 은행의 손해가 전보되어 소멸하게 되는 것도 아니라고 할 것이다.”라고 판단함으로써, D/A조건인지 혹은 D/P조건인지 여부를 불문하고 선하증권의 담보적 기능을 인정하였던 것은 매우 적절한 것으로 생각된다.

 

5.공권발행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함에 있어 선하증권 소지 여부
선하증권은 유가증권이자 상환증권이므로 선하증권을 소지, 제시하지 않으면 선하증권상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함이 원칙이다. 이와 관련하여 대법원 2005. 3. 24. 선고 2003다5535 판결의 파기환송심(서울고동법원 2005나32229 손해배상)에서 운송인은 원고가 선하증권을 분실한 상황이므로, 운송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위 사건에서 원고는 선하증권상의 권리를 행사하여 채무불이행 책임을 구한 것이 아니라, 해당 선하증권이 공권이어서 무효임을 전제로, 담보를 상실하게 된 손해의 배상, 즉 불법행위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따라서 선하증권의 상환증권성은 문제되지 않는바, 설령 원고가 소제기 이후 선하증권을 분실하였다고 하더라도, 운송인의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함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파기환송심 법원도 “이 사건 선하증권이 화물의 선적 없이 발행된 무효인 선하증권인 이상 이 사건 선하증권 발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행사에 이 사건 선하증권 원본의 소지를 요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07. 11. 29. 선고 2005나32229 판결).

 

6.공권발행 이후 운송물이 선적되었다면 하자가 치유된다고 볼 것인지 여부
학설들 중에는 공권이 발행된 이후 운송물이 선적되었다면, 공권의 하자가 치유되어 해당 선하증권이 유효한 것이 된다는 취지의 견해도 있고12), 실제로 이러한 견해에 따른 하급심 판결도 발견된다(서울지방법원 1997. 5. 23. 선고 95가합71037 판결).


이와 관련하여, 대법원 2005. 3. 24. 선고 2003다5535 판결의 환송심(서울고동법원 2005나32229 손해배상)에서 운송인은 “공권이 발행된 이후, 운송인은 화물을 수령하여 선적하였다. 다만 실제 운송물이 선하증권에 기재된 바와 상이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선하증권상 부지문구가 기재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 운송물이 선하증권과 상이하다는 점은 운송인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이처럼 공권발행 이후 화물이 실제로 선적되었으므로 운송인은 손해배상책임이 없다”라는 취지로 주장하였다.


그러나 공권발행으로 이미 해당 선하증권이 무효가 된 상황에서, 운송인이 운송물을 수령하였다는 사정만으로 하자가 치유된다는 것은 법리적으로 납득하기 어렵고, 공권발행을 조장하게 됨으로써 거래의 안전을 해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옳다고도 보기 어렵다.


한편, 대법원 2005. 3. 24. 선고 2003다5535 판결의 파기환송심 법원은 위와 같은 운송인의 주장에 대하여 “은행의 손해는 부지문구의 기재 여부와 관계없이 무효인 이 사건 선하증권을 매입함으로써 발생하는 것이므로, 이 사건 선하증권에 부지문구가 기재되어 있었고, 그 후 이 사건 선하증권 기재화물이 적입되었다고 하는 이 사건 컨테이너에 이 사건 원단이 적입되어 있지 않았다는 우연한 사정이 이미 발생한 한빛은행의 손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고 판시함으로써, 무효인 공권이 발행되어 은행이 공권을 매입하는 순간 곧 담보를 취득하지 못하는 손해는 발생하는 것이고, 이후 운송인이 운송물을 수령하였는지 여부는 고려할 사항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07. 11. 29. 선고 2005나32229 판결).


이러한 법원의 판시는 결론적으로는 옳은 것으로 보이나, 공권발행후 은행의 매입전에 운송물이 선적된 경우에 어떻게 볼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따라서 차라리 공권발행으로 이미 해당 선하증권이 무효가 된 상황에서, 운송인이 운송물을 수령하였다는 사정만으로 하자가 치유된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 보다 적절한 판시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일본에서는 화물상환증에 관한 판례로서, 공권을 발행한 후에 운송물을 수령하여도 유효하게 되지 않는다고 하는 대심원 판결이 있다.13)

 

7.상법 제789조의 2 소정의 포장당 책임제한항변이 가능한지 여부
상법 제789조의 2에서는 해상운송인의 손해배상책임을 일정한 한도로 제한하면서, 다만 해상운송인 자신의 고의 또는 손해발생의 염려가 있음을 인식하면서 무모하게 한 작위 또는 부작위로 인하여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이러한 책임제한을 배제하고 있다.


운송인이 공권을 발행한 경우에도 이러한 책임제한 항변이 가능한지 여부와 관련하여, 상법 제789조의 2 소정의 책임제한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먼저 운송계약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공권을 발행한 경우에는 운송계약이 무효이므로 운송인이라고 할 수 없고 따라서 상법 제789조의 2 소정의 책임제한항변을 할 수 없다는 견해도 있고, 상법 제789조의 2 소정의 책임제한 주장이 가능하다는 전제하에서 상법 제789조의 2에 규정된 바에 따라 운송인 자신의 고의 또는 손해발생의 염려가 있음을 인식하면서 무모하게 한 작위 또는 부작위로 인하여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책임제한 항변을 할 수 없다는 견해도 있다.14)


먼저 운송계약은 요물계약이 아니어서 공권이 무효라고 하여 언제나 운송계약까지 무효가 된다고 할 수는 없으며, 오히려 송하인, 수하인간 애초부터 운송물을 선적할 의사도 없이 선하증권을 발행한 경우 등 운송계약체결의 의사가 전혀 없거나, 통정허위표시에 해당하는 경우에 한하여 운송계약도 무효가 된다고 보아야 하는바, 공권이 발행된 경우에 언제나 운송계약이 무효라고 보는 것은 옳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오히려 공권이 발행된 경우 운송인이 상법 제789조의 2 소정의 책임제한 항변을 할 수 있는지 여부는 공권발행으로 인한 손해가 상법 제789조의 2 소정의 손해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즉, 상법 제789조의 2는 해상운송인의 포장당 책임제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①제787조 내지 제789조의 규정에 의한 운송인의 손해배상의 책임은 당해 운송물의 매포장당 또는 선적단위당 500계산단위의 금액을 한도로 이를 제한할 수 있다. 그러나 운송물에 관한 손해가 운송인 자신의 고의 또는 그 손해가 생길 염려가 있음을 인식하면서 무모하게 한 작위 또는 부작위로 인하여 생긴 것인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따라서 상법은 운송인의 모든 책임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상법 제787조(감항능력주의의무 위반으로 인한 운송물의 멸실, 훼손, 연착), 제788조(운송물에 관한 주의의무 위반으로 인한 운송물의 멸실, 훼손 또는 연착), 제789조(전쟁, 폭동 등의 면책사유)와 관련하여 발생하는 일정한 손해배상책임만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운송물이 멸실, 훼손, 연착된 경우 운송인은 제788조에 의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되고, 따라서 제789조의 2에 의하여 그 책임이 제한되는 것이다.


 반면에, 공권발행으로 선하증권이 무효가 됨으로써 수하인이 입는 손해는 상법 제787조, 제789조, 제788조 소정의 운송물의 멸실, 훼손, 연착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따라서 공권발행으로 선하증권이 무효가 됨으로써 발생하는 손해는 상법 제789조의 2에 의해 제한되는 손해배상책임이 아니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8.결론
위 대법원 판결들을 통해 1991년 개정 이후의 상법하에서 공권의 법적효력에 대한 대법원 판례는 분명히 확인된 셈이다. 그러나 2007. 8. 3. 상법개정을 통해 기존의 상법 제814조의 2는 다음과 같이 변경되었다.


제854조 (선하증권 기재의 효력)
①제853조제1항에 따라 선하증권이 발행된 경우 운송인과 송하인 사이에 선하증권에 기재된 대로 개품운송계약이 체결되고 운송물을 수령 또는 선적한 것으로 추정한다.


②제1항의 선하증권을 선의로 취득한 소지인에 대하여 운송인은 선하증권에 기재된 대로 운송물을 수령 혹은 선적한 것으로 보고 선하증권에 기재된 바에 따라 운송인으로서 책임을 진다.


즉, 기존 상법의 제814조의 2 단서의 “그러나 운송인은 선하증권을 선의로 취득한 제삼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라는 부분이 “제1항의 선하증권을 선의로 취득한 소지인에 대하여 운송인은 선하증권에 기재된 대로 운송물을 수령 혹은 선적한 것으로 보고 선하증권에 기재된 바에 따라 운송인으로서 책임을 진다.”라고 변경된 것이다.


따라서 개정된 상법 제854조에 의할 경우 선하증권의 무인증권성과, 요인증권성을 어떻게 조화시킬지 여부가 다시 쟁점이 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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