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경’과 ‘상경’
막바지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 무더위와 휴가로 인해 콤파스도 방학했다. 열대야를 식힐 겸 ‘변경’과 ‘상경’책을 읽었다. 너무 두꺼워 첨엔 질렸지만, 책중의 인물들에게 점차 빨려 들어가 시공을 넘어 교감하며 꾸준히 읽어나갔다. 변경이 정치와 사상을 다룬 책이라면 상경은 경제와 장사에 관한 것이다. .

 

장구한 역사를 지닌 중국에는 기라성 같은 영웅호걸들이 수도 없이 많고, 장사에 관한 한 독특한 DNA를 가진 중국인 중엔 특이한 장사꾼들 또한 넘쳐났다. 그 가운데 귀감이 되거나 교훈이 될 만한 사람들을 골라서 수록한 책이 변경과 상경이다. 이 책을 읽으며 중국인들의 몸속에 흐르는 정치 상업적인 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상경은 스유엔(史源)이 쓴 책으로 14억 중국인들의 상혼이 녹아있다. 일개 전당포 전장의 점원에서 시작하여 중국 역사상 유일한 홍정상인(紅頂商人)에 이른 호설암(胡雪巖)의 생애를 다룬 책이다. 그는 전장과 호경여당(胡慶餘堂)이라는 약방을 운영하며 탁월한 상술과 시대를 앞선 경영을 수행한 인물이다. 그야말로 지인용신(智仁勇信)을 모두 갖춘 상인이었다. 이 책에선 호설암의 행적을 소개하며 상인으로서의 18가지 덕목과 자질에 대해 열거하고 있다.

 

1.지신(砥身) : 자신을 닦아라, 2.진인(盡人) : 사람을 잘 써라, 3.축시(逐時) : 때를 맞춰라, 4.임세(任勢) : 대세를 읽어라, 5.결영(結營) : 힘을 모아라, 6.견신(堅信) : 믿음을 지켜라, 7.독의(篤義) : 의를 좇아라, 8.지인(智仁) : 지혜로우며 어질게, 9.용모(勇謀) : 살핀 후 과감하게, 10.수활(手活) : 손을 부지런히 놀려라, 11.안예(眼銳) : 정확히 파악하라, 12.홍시(?市) : 시장을 키워라, 13.조장(造場) : 터를 닦아라, 14.양명(揚名) : 이름을 알려라, 15.통명(洞明) : 세상 물정에 밝아야, 16.연달(練達) : 경험으로 통달하라, 17.효국(效國) : 나라에 보답하라, 18.어정(御情) : 감정을 다스려라.

 

좋은 말들만 열거하여 이들을 모두 갖춘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으나 하나라도 더 가지고 있는 사람이 호설암과 같은 큰 상인에 접근할 것이다. 장사는 물과 같아 한결같이 흘러야 한다. 그리고 통변(通變) 즉 변화와 개혁을 끊임없이 시도해야 하는데, 그것이 시장에서 살아남는 길이다. 호설암은 장사를 잘 하려면 먹다 남은 두부를 맛있게 먹고, 칼날의 피도 핥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장사를 하며 친구를 많이 사귀되 적은 만들지 말라고 조언한다. 친구는 길과 같아서 목표에 닿는 길을 많이 만들어 주지만, 적은 담장과 같아 언제 어디서든 가는 길을 막아선다는 것이다. 세상을 사는 방법은 원세(圓世) 즉 둥글둥글 원만하게 사는 것과 차고 모나게 사는 방지(方智) 두가지가 있는데, 큰 장사꾼은 이를 모두 적절하게 구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래 즉 장사는 장사이고 감정은 감정이기에 이를 구분하지 못하면 낭패하기 십상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시련이 사람을 성숙하게 만들고 안목을 키워 주기에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하라고 조언한다. 우리네 정서와 참 비슷하다.  


인간의 능력은 선천적인가 아니면 후천적인가. 그도 아니면 선천과 후천이 결합된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변경’에는 무수히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본받을 만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되풀이해서는 안 될 반면교사 같은 인물도 있다. 5천년 중국역사상 최고의 인재활용 경전이라고 불리는 렁청진(冷成金)의 ‘변경(辨經)’에서 인재 즉 사람을 알아보는 식인(識人)의 안목과 사람을 적재적소에 쓰는 용인(用人)의 지략을 배울 수 있었다.

 

 ‘변경’은 위나라 유소의 ‘인물지’를 바탕으로 쓴 것인데, 당태종 이세민을 비롯한 강희제, 왕안석, 안영, 조광윤 등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여기에서는 인재의 특성과 성격, 장단점을 보는 법, 재능에 따른 인재 배치, 능력의 쓰임, 인재 구별법, 인재 감정시 빠지기 쉬운 오류, 인재선발과 추천, 충돌없이 목적을 이루는 비결들이 장강처럼 펼쳐진다. ‘사람을 알아보면 길이 열린다’, ‘잘 찾아 쓰면 모두 인재다’,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군주의 능력과 신하의 재능은 다르다’, ‘권한과 책임의 조화가 필요하다’, ‘인재도 때와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 ‘큰 일을 할 인재는 따로 있다’, ‘단점 뒤에 숨은 장점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한다’, ‘수신하고 겸양과 예의를 갖춘다’를 설명하기 위해 역사 인물을 소개하며 그의 생애와 처신을 통해 교훈을 삼고 있다. 인간은 원래 불완전하게 태어났다. 그래서 부모의 양육과 스승의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하고, 성현들의 서책을 읽으며 심신을 단련한다.


이 책 ‘위연과 마속’ 편에서는 흠결이 없다고 생각하던 공명 제갈량의 과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공명은 선입견에 의해 힘과 지략을 갖춘 위연을  중용하지 않아 화를 자초했고 참모형인 마속을 야전 지휘관으로 삼아 단 한번의 패전 책임을 물어 읍참마속을 단행하여 인재가 부족한 촉한을 더욱 곤경에 빠트렸다. 청렴결백을 끝까지 지킨 관료 청나라의 해서는 어떠한 유혹과 외압에도 청백리의 길을 걸었으나, 같은 청조의 화신은 권력으로 사욕을 채우다가 멸문지화를 당했다. 또한 항우와 유방을 비교하며 인간적인 매력을 가진 우직한 항우는 천하통일에 실패하였으나 깡패 출신이라고까지 표현한 변덕많고 까다로운 유방이 패권을 차지한 연유를 설명했다. 군주를 감동시킨 정직한 신하 안영 편에서는 영공·장공·경공 세 군주를 연이어 보필하며 사리에 맞고 사려 깊은 직언으로 재상의 책무를 다한 그의 성품과 능력이 소개됐다. 이세민도 현무문 정변을 일으켜 형제를 죽이고 제위에 올랐지만, 위징과 방현령 같은 어질고 지혜로운 신하를 가까이 함으로써 태평성대를 이룬 현명한 군주로 칭송을 받고 있으나 진시황은 나라를 훔치려던 여불위의 계략으로 제위에 올라 측근을 잘못 둔 탓에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이사와 조고 같은 인물은 권모술수로 부귀와 권세만을 쫓다가 자신은 물론 섬기던 군주까지 패망하게 만들었다.

 

역사는 순환한다. 시간이 흘러 사람은 바뀌지만 유형은 반복된다. 그래서 선인들은 역사를 거울(通鑑)이라고 불렀다. 사람은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어 거울을 통해 본다. 현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기에 역사라는 거울을 통해 비쳐보며 교훈을 삼아야 한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다. 그것이 현자요 지혜자의 길이다. 삼복더위 속의 독서, 진흙 속에서 진주를 캔 기분이다.
 
광화문과 광복
광화문이 복원됐다. 일제는 경복궁에 총독부 청사를 지면서 그 앞을 가리는 광화문을 헐어, 근정전과 같은 선상인 관악산을 바라보는 곳이 아닌 일본신사가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곳으로 옮겨 버렸다. 망국의 조선인들로선 억장이 무너질 일이었다. 당시로선 엄청난 공사비가 들었다는데,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이 총독부 건물을 보고 기가 질려 다시는 독립을 꿈도 꾸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다고 한다. 일본인들의 악랄함에 기가차고 치가 떨린다.

 

 일제는 식민지 조선에 대한 말살정책을 단행하였는데, 일본어를 쓰게 하고 일본식의 창씨개명을 강제하는 등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들을 서슴없이 저질렀다. 하늘도 무심하지 않아 일제가 항복하여 8.15광복이 되었고, 6.25때 부서진 광화문이 개축되고 없어진 편액도 박정희 전대통령에 의해 한글로 다시 쓰여졌다. 그후 방향이 다르고 콘크리트 건물로 지었다는 이유로 논란이 되어 오다가 이번에 목조건물로 환원되어 재탄생하였다. 편액도 고증을 살려 원래대로 한자로 복원됐다.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은 우리 민족의 영욕의 세월을 지켜본 유서깊은 건물이다. 조선왕조의 개국과 함께 천년 태평성세의 웅지를 품고 건축된 광화문은 참으로 기구한 세월을 살아 왔다. 신도정치를 꿈꾼 정도전의 이상이 왕자의 난에 의해 꺾였어도 그가 품은 뜻은 지금도 광화문과 함께 의연하게 남아있다.


임진왜란 때 성난 백성들에 의해 불타고 중건할 재원이 없어 불에 그슬린 모습으로 300년의 세월을 살다가 왕실의 위엄을 되찾겠다는 대원군의 야심에 의해 다시 정전과 정문으로 재생한 경복궁과 광화문. 그의 수난의 시간이 다하지 않았는지 일제에 의해 철거의 위기를 맞다가 겨우 연명하여 위치도 방향도 틀어진 채 남은 세월을 살았고 동족상잔의 6.25때 또 한번 불에 타 만신창이의 삶을 살아온 참으로 기구한 광화문. 갖은 풍파와 시련을 극복하며 가업을 지켜온 종가집 며느리의 한맺힌 생애를 보는 것 같다. 아아! 광화문이여, 우리 민족의 아픔과 시련을 몸소 당하며 살아온 그대여, 이젠 자손들이 번창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편안히 살기를 바란다.


남산 기슭의 유스호스텔 주변의 오솔길을 걸었다. 이곳이 3공과 5공화국때  안기부 터였고 일제때는 조선총감 저택이 있었다고 하니 괜히 스산하다. 8월엔 광복절과 국치일이 함께 들어 있다. 8월 29일은 나라의 주권을 일제에 빼앗긴 치욕의 날이다. 주권 뿐 아니라 생존권마저 강탈당해 빛을 읽어버린 통분의 날이다. 일제는 이것을 합방이라 우겼지만 우리민족으로선 강탈이요, 망국의 멍에를 메고 죽지 못해 사는 나락으로 떨어져야 했다. 광복절은 빛을 다시 찾은 날이다. 빛의 소중함은 빛을 잃어버린 사람만이 느낄 것이고, 흑암으로 떨어져 본 민족만이 광복의 기쁨을 잘 알 것이다. “흙 다시 만져 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다시는 나라를 빼앗겨 망국인의 한을 안고 살지 않도록 애국과 위국의 삶을 너나 할 것 없이 살아야 할 것이다. 웅장하면서도 멋진 자태의 빛의 문 광화문(光化門)을 바라보며 광복(光復)의 감회에 젖는다.

 

실용과 정의
정의라는 말이 요즘 세간의 화두가 되고 있다.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토론의 불씨를 지피지 않았을까? 정치권에서도 이 책이 널리 읽히고 있다는데,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대표도 이번 여름휴가때 읽었다고 전해진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이 책을 읽게 했을까? 정의(正義, justice)의 사전적 의미는 올바른 도리이며, 지혜 용기 절제가 완전한 조화를 유지하는 일이라고 플라톤은 정의했다. 과연 샌델 교수는 정의를 어떻게 설명하였는지 알고 싶었다.

 

그는 정의를 세 가지로 정의(定義)했다. 첫째는 공리나 행복의 극대화, 즉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 둘째는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 셋째는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첫째와 둘째는 공리주의와 자유지상주의의 주장에 입각한 것이지만, 이들에게 부분적인 오류가 있기 때문에 샌델 교수는 세 번째인 미덕 추구에 동조했다. 즉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공리를 극대화 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만들 수 없으며,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이견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문화가 가꾸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을 소개하며 텔로스(telos, 목적 목표 본질)를 강조했다.

 

 즉, 정의는 목적에 근거해야 하고, 권리를 정의하려면 사회적 행위의 텔로스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행위의 텔로스를 이성적으로 판단하거나 논하는 것은 그 행위가 어떤 미덕에 영광과 포상을 안겨줄 것인가를 추론하거나 논의하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샌델 교수는 어떤 행동의 도덕적 가치는 그 결과가 아니라 동기에 있으며, 옳은 일을 하는 이유는 그것이 옳기 때문이지 그 어떤 숨은 동기 때문이어서는 안된다는 칸트의 말로 정의를 설명했다. 또한 인간은 이성적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존중받을 가치가 있어, 그 어떤 경우에도 수단으로 이용되는 물건이 아니며 인간성을 처분할 권리는 다른 사람은 물론 내게도 없다고 역설했다. 샌델 교수는 특히 미국 정치학자 존 롤스의 이론을 많이 인용하였는데, 롤스는 정의에 관한 질문에 명쾌한 답을 내놓았다.

 

 그는 정의를 고민하는 올바른 방법은 원초적으로 평등한 상황에서 어떤 원칙에 동의해야 하는가를 묻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정의를 다룰 때 그 행위가 반드시 공동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샌델 교수는 이의 구체적인 실천문제로 소수집단우대정책 노예제도 애국심 과거사에 대한 사과, 종교의 자유, 낙태와 줄기세포, 징병제 대리모 동성혼 안락사 같은 까다로운 문제들에 대한 질문과 해결방법을 우리에게 제시했다.       


아울러 정치의 목적은 좋은 삶을 구현하는 것이기에 최고 공직자는 시민의 미덕이 가장 뛰어나고 무엇이 공동선인지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텔로스와 적합성이라는 윤리를 필요로 하는 일터에서 요구하는 정의의 도덕적 기준이 선택과 합의라는 자유주의 윤리의 기준보다 더 엄격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종교적으로든 세속적으로든 특정한 개념을 강조하는 정의론은 자유와 어울리지 않으며, 타인의 가치를 강조함으로써 자기 목표를 선택할 능력이 있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자아를 가진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서도, 역사적 부당행위에 대한 집단적 사죄와 보상은 내 공동체가 아닌 다른 공동체에도 도덕적 책임을 지게 하는 연대의식의 좋은 예로서, 내 나라가 저지른 과거의 잘못을 보상하는 일은 내 나라에 충성을 맹세하는 또 다른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본질적인 도덕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정의와 권리의 문제를 설정할 수 없으며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강조했다.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어떤 판단이 바른 판단이고 어떤 행동이 옳은 행동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요즘 우리가 정신보다 물질이 중시되고 능률과 경쟁이 지나치게 강조되다보니 실용주의와 시장만능주의의 덫에 빠질 수도 있음을 경고하였다. 로버트 케네디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이것이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지 국익에 맞는지를 먼저 살펴보았다고 한다. “공정한지 공평한지 공익에 맞는지”를 스스로 물어야 하는데, 이것이 공인이 행할 정의라는 것이다. 사회적 책임이 있는 그 구성원인 인간 모두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우리 모두 입버릇처럼 불의를 탓하며 사회정의를 부르짖기 때문에...... 


‘부자들은 알고 나는 모르는 53가지 재테크 기술’이라는 부제가 붙은 ‘신정환, 김변에게 부자 되는 법을 배우다’라는 책을 저자인 김병철 변호사로부터 얻었다. 그것도 멋진 사인까지 한 것을. 해양한국의 저작권 문제를 상담하러 갔다가 이 책을 얻어 궁금한 김에 단숨에 읽었다. 그러나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별개이기에 부자가 되기가 쉽지는 않을 성 싶다. 이 책에는 싸움의 기술, 작은 상식 큰 권리, 부동산으로 부자 되는 법, 부자가 되는 법의 화룡점정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자 되세요! 한때 유행하던 인사말이다. 하나 더, 옳게 벌고 바르게 쓰십시오!


<한국해사문제연구소 강영민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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