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 마켓에서 라면 하나 사는 것이나, 어느 회사가 다른 나라의 수입상에게 컴퓨터 만대를 수출하는 것이나, 물품 매매계약이라는 면에서는 법적으로 똑같다. 그러나 라면 하나 사는 것은 특별한 상거래나 법률 지식이 없어도 가능하다.

 

그 이유의 하나가 상품과 그 대금이 동시에 결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무역은 그렇지 못하다. 국제무역은 격지자간의 거래다. 옛날의 무역에서는 무역상인이 선박에 상품을 싣고 가서 팔아서 그 대금으로 그 곳의 상품을 사가지고 와서 파는 방식이었으나, 지금은 수입상과 수출상이 서로 자기 사무실에 앉아서 계약을 하고 상품을 보내고, 대금을 결제한다. 이런 격지자간의 무역거래에서는 언제 어떻게 상품을 셀러가 바이어에게 인도하고 대금을 언제 어떻게 바이어가 셀러에게 지급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리고 가장 바람직한 것은 어떻게 수퍼마켓에서 라면 하나 살 때와 같이 상품의 인도와 대금의 결제가 동시에 이루어지도록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고안된 제도가 신용장과 선하증권이다.

가장 신용있는 기관은 은행이다. 우리가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할 때 보증수표라는 말을 쓴다. 이 말은 은행이 보증한 수표는 절대 부도가 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래서 당사자간의 계약에서 대금의 결제를 은행이 약속하는 것이 신용장이다. 즉 신용장이란 이 계약에 대한 물품을 보내면 우리 은행이 대금을 지급하겠다는 약속이다. 일단 신용장에 의하여 은행이 약속하면 대금 결제는 보증된다.

 

다음에는 상품의 정확한 인도를 약속하는 것이 바로 선하증권이다. 선하증권이란 이러한 상품을 운송을 위하여 운송인이 인수하였음과 동시에 선하증권을 제시하는 사람에게만 운송물을 인도할 것이며, 운송물이 멸실되거나 훼손될 경우, 그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지겠다는 것을 약속하는 유가증권이다. 이 유가증권인 선하증권을 송하인(셀러)이 신용장 관련 은행의 창구에 제시하면 은행은 즉시 신용장에 의하여 약속한 금액을 지급한다. 셀러가 화물을 선적하고 선하증권을 받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원칙대로 한다면 선적완료와 동시에 선하증권이 발행, 교부된다. 이것을 은행에 제시하는 데도 몇 시간도 소요되지 아니한다. 그리고 은행에서는 신용장에 약속된 대로 선하증권을 제시하면 동시에 대금이 결제되므로 바로 상품과 그 대금의 동시결제가 이루어지는 셈이다.

이 방식에 의할 경우 물건을 수출하는 셀러로서는 ① 대금 지급에 대하여 은행이 신용장으로 보증하니 안심할 수 있고, ② 선적과 동시에 수출상품의 소유권을 나타내는 선하증권을 받으니 상품의 점유는 떠났으나, 법적인 소유권을 여전히 셀러가 보유한다. ③ 이 선하증권을 은행에 제시하여 대금과 상환(相換)하니 상품과 그 대금을 동시에 상환하는 수퍼마켓의 라면 거래와 동일하게 된다. ④ 만에 하나 은행이 파산하는 등의 이유로 신용장에서 약속한 대금이 지급되지 아니하는 경우, 선하증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상품의 소유권을 계속 보유한다.

 

바이어로서는 ① 신용장을 개설하지만 선하증권과 상환으로 대금을 결제하도록 되어 있음으로 상품의 인수를 보증받을 수 있다. ② 만약 어떤 사유론가 상품을 인도받지 못할 경우, 선하증권을 통하여 그 손실을 보상받을 수 있다. 은행으로서도 ① 바이어의 요청에 의하여 신용장을 개설하지만 개설시에 일단 담보가 제공되고, 실제 대금의 지급은 선하중권과 상환으로 이루어지고, ② 이 선하증권은 신용장 대금을 바이어가 은행에 가지고 와서 선하증권과 상환한다. ③ 어떤 사유(바이어의 파산 등)로 인하여 바이어가 신용장대금을 지급할 수 없을때에는 선하중권에 의하여 상품의 소유권을 갖게 되어 이의 처분에 의하여 손실을 보상받을 수 있다. 이상에서 본바와 같이 신용장제도와 선하증권제도가 결합된 무역 및 운송제도에 의하면 당사자 모두가 안심하고 거래할 수 있게 된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은행이 상품이나 운송계약, 그리고 선적과 같은 실물 경제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다는 것과 은행업무의 성격상 이러한 것을 은행이 실질적으로 심사하고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방식에 의한 거래에서는 신용장에 구체적으로 선하증권에 기재할 사항을 정하고, 선하증권에는 신용장에서 요구하는 내용을 그대로 기재하여야 한다. 이것을 엄밀일치의 원칙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신용장에서 선하증권에 기재하라고 요구한 내용에 일자 일획도 생략하거나 추가해서는 안되며, 콤마 하나도 정확하게 일치하여야 한다. 심지어는 영문 스펠링에서 대문자와 소문자도 정확하게 일치하여야 한다.

선하증권은 유가 증권이기 때문에 반드시 신용장 결제에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양도의 대상이 되어 거래될 수도 있다. 그런 특성 때문에 일단 운송계약에 의하여 선하증권이 발행되고 나면, 운송인은 운송물을 수하인에게 인도할 때 반드시 선하증권과 상환으로서만 하여야 한다. 만약 운송물을 선하증권과 상환하지 않고 그대로 인도하였을 경우, 선하증권의 선의의 소지인이 나타나서 인도를 요구할 경우, 운송인은 이를 이행할 의무를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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