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상 인천항발전협 회장 금탑훈장

 

박희성 해상노련 위원장 은탑훈장 포상

 

 

5월 26일 코엑스서 기념행사 1,000여명 참석

 

제 11회 ‘바다의 날’을 맞아 ‘깨끗한 바다, 밝은 미래’라는 주제로 5월과 6월 2달에 결쳐 다채로운 바다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특히 5월 26일 치러진 바다의 날 기념행사에는 한명숙 국무총리를 비롯한 해양수산계 인사와 지속가능발전위원회, 해군, 해양경찰청 등 관련 정부기관장과 해양수산유공자 등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강남의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개최됐다.  
해양수산부는 이날 깨끗하고 건강한 해양환경을 조성하고 이를 미래세대에 물려주기 위한 정부의 정책방향과 의지를 표명했다. 그동안 ‘사후처리적’ 해양환경보전정책에서 벗어나 각종 오염원의 바다유입을 사전에 차단하고, 무분별한 연안개발로부터 연안과 서식지를 보호하기 위한 ‘사전 예방적’ 해양환경보전정책으로의 전환을 국민에게 밝혔다.
또한 이날 기념식에서는 산업현장에서 해양수산업 발전에 수고한 기업인들과 어업인 58명에 대한 포상이 있었다. 금탑산업훈장은 이기상 인천항발전협의회 회장에게 돌아갔고 은탑산업훈장은 박희성 전국해상산업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이 받았다.
58명의 포상자중 해운항만 관련 수상자들의 공적내용을 정리했다.

 

<금탑산업훈장>

이기상 (사)인천항발전협의회 회장
인천항만 노사안정에 기여, 상용화 지원 역할

1961년 3월 (주)영진공사를 창업하여 45년간 헌신적이고 투철한 공인정신과 높은 식견의 모범적인 경영으로 지역사회의 귀감이 되었다. 특히 인천항 항만노사안정 및 선화주 등 공감대형성을 통한 정부의 상용화지원 특별법 제정에 앞장서 인천항과 인천항만물류산업의 발전을 이끌어온 인천항의 산증인이다.


 77년 이후 중동 바레인에 진출 건실한 항만하역경영으로 외화 연평균 900만불 획득에 이바지했으며, 최근에는 인천항만물류협회장 및 발전협의회장으로서 남항 및 북항의 민자개발을 선도하여 인천항의 만성적인 체선체화 해소 및 인천항이 동북아 관문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틀 마련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인천 갑문항의 한계와 만성적인 체선체화에 시달리고 있는 인천항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남항 및 북항 등 외항개발이 첩경임을 직시하고 ’02년 북항 목재부두 2개선석 기본 및 실시설계 예산반영이 이루어지도록 함으로써 민자유치에 의한 북항개발이 점화되도록 시금석을 마련하였다. ‘96년 인천남항에 최초로 민간자본투자로 5천톤급 부두에 이어 ‘03년 1만톤급 부두로 보강(200억원 투입)하여 연간 약 30만톤의 물동량을 처리, 인천항의 만성적인 체선체화 해소와 함께 수도권 배후공단에 필요한 원자재 수입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힘을 보탰다.


북중국 항만의 급속한 성장과 국내외 경쟁 내지 대체 항만의 등장에 따라 인천항의 경쟁력 제고를 위하여 항운노조상용화가 시급함을 인식, 지역사회 공감대 형성은 물론 항만물류업계, 화주 및 선사와 공동협의회를 구성, 적극적인 대 국회 활동을 펼쳐 『항만인력 공급체제의 개편을 위한 지원특별법』제정(’05. 12)에 기여했다.


인천 외항부두개장으로 물류업계간 과도한 경쟁이 우려됨에 따라 인천항만물류업계를 설득, 현재「인천내항진단 및 인천항만물류산업의 발전방안」연구용역을 실시하여 남항 및 북항, 송도신항개장에 따른 내항의 정확한 진단으로 인천항만물류산업이 함께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1억원 투입)하였다. 항만 노사정 중 사측 대표인 인천항만물류협회 회장직을 ’98. 9~’06. 3.(8년간) 맡아 인천항을 쟁의없는 평화적 항만으로 정착시키는데 진력하였으며, 인천북항 개발과 인천대교(제2연륙교) 주경간폭 확대를 통한 인전성 확보, 인천남외항(송도신항) 개발의 타당성 역설 등 인천항이 동북아 중심항만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틀 마련에 공헌했다.

 

<은탑산업훈장>

박희성 전국해상산업노동조합연맹 위원장
선원 근로조건 개선 및 복지증진에 기여

12년간 연근해어선 승선경험을 바탕으로 선원노동운동에 투신하여 10만 선원의 근로조건 개선과 복지 향상을 위한 활동에 복무하였다. 특히 선원 근로조건 개선을 위하여 대국회, 대정부 정책활동 및 교섭에 직접 나서는 등 해양산업 발전을 위한 노·사·정 파트너십을 공고히 하는데 기여했다. 적극적인 국제활동으로 우리나라를 ITF에서 중요한 가입국으로 각인시키고, 선원의 정치적 참정권 획득을 위하여 공선법 개정을 요구한 후 동 법안이 본회의에서 부결되자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등 선원의 권익보호를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했다. ITF의 공정실행위원회 집행위원으로 지명될 예정이다. 2006년부터 시행되는 국제선박등록제도 시행을 위하여는 노·사 대타협을 이끌어 내어 해운업계 발전 및 선원고용안정에 크게 이바지했다.


선원 근로조건 개선을 위하여 2004년부터 논의되어 오던 선원법 개정문제에 대하여 노·사 합의를 도출해 냄으로써 어선원의 유급휴가제 실시, 주 40시간 근무제 시행 등을 이루어냈다. 법에 보장된 선원의 참정권 획득을 위하여 직접 국회를 방문 수십명의 국회의원들을 면담하고 설득하여 마침내 국회 본회의에 동 법안이 상정되도록 하였고, 그 과정에 동법안이 안타깝게 부결되자 현행 공선법의 위헌 여부 등을 여론화 하는데 적극 나서는 한편 헌법소원을 제기하여 선원들의 기본적인 시민권 획득을 위한 개선 활동에 최선을 다했다.


2005년 1월 해상산업노동조합연맹 위원장으로 당선된 이후 대정부, 대사용자 교섭에 나서며 선원의 권익을 보호하고 복지를 증진시키는 일에 망설임 없이 나서되 양보와 타협의 정신을 살려 원만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노사정 관계를 형성시켜 그간 노·사간 의견합의를 도출하지 못해 추진하지 못했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기여했다. 우리나라 선원의 고용기회 확대 및 해기전승을 도모하고 국가위기사태 발발시 국가 주요물자의 수송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 1998년 제정된 후 시행되지 못하던 국제선박등록법의 시행이라 믿고 이를 적극 추진하여 노·사간 대타협을 이끌어내 2006년도에 동 제도가 시행되어 30여 척의 선박이 필수선박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과정에서 외국인력 고용조건 완화를 위한 협의에 적극 임함으로써 외항해운업 발전에도 기여했다.

 

<홍조근정훈장>

방희석 중앙대학교 교수
정책평가위원으로서 자체평가의 역량 강화

해양수산부 총괄자문위원겸 정책평가위원장으로서 정책평가의 공정성과 합리성을 제고시킴으로써 자체평가의 역량을 강화시키는데 기여하였다. 30여년간 해운항만분야 논문(69건), 연구보고서(49건)와 번역서(32건) 등을 출간하여 해양산업 발전과 국제화에 기여하였으며, 한국항만경제학회 등 해운항만 관련 주요학회 회장을 역임함으로써 관련 산업발전과 해운·항만분야의 저변확대에 공헌하였다. 평택항 항명조정을 위한 조사위원장직을 수행하며 객관적·합리적 기준에 근거한 『평택·당진항』명칭조정안을 제언함으로써 다년간 지속되어온 지역간 갈등을 해소했다.  또한 평택항 LNG선 취항을 위한 국제수준의 항만규칙 제정과 최초의 부산컨테이너전용부두 운영매뉴얼을 작성하는데 참여해 항만발전에 기여하였다.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사)한국항만경제학회 회장 및 2000년부터 2001년까지 (사)한국국제상학회 회장,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사)한국무역학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정기적으로 발간되는 학회지를 통해 해운·항만물류영역을 확대 발전시킴으로써 범국민적 홍보에 기여하였다.


2002년부터 해양수산부 정책평가위원장으로서 자체평가의 역량을 강화함으로써 정부업무 평가결과 우수기관으로 평가받는데 기여하였고, 동북아 물류중심 업무와 관련된 재정경제부 관세자유지역심의위원 및 경제자유구역위원회 민간위원, 건설교통부의 기업도시위원회 민간위원으로 국가의 주요정책 결정에 참여, 동북아 물류중심지 확보를 위한 기반 마련으로 국가발전에 기여하였다.

 

<녹조근정훈장>

박노식 울산대학교 교수
31년간 공학기술 발전에의 기여

1975년 울산대학교에 부임한 이래, 1984년 국내 처음으로 동 대학교에 해양공학 전공을 신설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를 통해 해양구조물 설계 등 새로운 영역의 개척을 위한 기초기술교육을 강화하는 등 31년 동안 조선해양공학의 발전과 인력 양성에 헌신하였다. 또한 해양공학기술의 체계적인 발전과 기술정보의 공유, 기술의 심화·확산을 위하여 한국해양공학회의 발족을 주도하고, 동 학회 이사, 부회장, 회장을 역임하면서 해양공학회지를 국내 최고 수준의 해양공학 학술지로 성장시켰다. 


해양공학분야 국제학술대회로 가장 규모가 커 500여편의 우수논문이  국내외 전문가에 의해 발표된 ″15th Offshore and Polar Engineering Conference & Exhibition('05.6)″를 우리나라에 유치하였고, 실행위원장으로서 성공적인 대회운영으로 우리나라 해양과학기술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했다.


해양수산부의 정책수립 및 집행을 효율적으로 지원하기 위하여 한국해양공학회, 대한조선학회 등 국내 해양관련 모든 학술단체가 참여하는 해양과학기술협의회 발족을 주도하였다.


 동 협의회에서 부회장 및 회장을 역임하며 각계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워크샵, 세미나, 정책토론회 등으로 정부와 산업계·학계·연구계 간의 교량역할과 협력체제 구축에 기여해 왔다.


울산 등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수립에도 적극 참여, 지역발전에 이바지했다. 경남요트협회장을 역임하면서 친수공간인 해양의 레저인구 저변확대와 국민의 이해의 폭을 넓히는 노력을 기울였다.

 

<철탑산업훈장>

이주상 대림산업(주) 상무
부산신항 남컨테이너부두(2-2) 축조

2006년도 항만 및 어항건설공사 시공·능력 평가에서 소속회사가 우수건설업체 1순위로 선정되는데 공헌하였으며, 부산항 신항 남컨테이너 부두(2-2) 및 북컨테이너 터미널 축조공사에서 공장형 slip form의 도입으로 공기를 단축하는 등 동북아 물류중심국가 건설에 기여했다. 


아산항(1단계) 준설토 투기장 가호안, (2단계) 외곽호안 축조공사에서는 현장대리인으로서 품질, 안전 및 환경 그리고 공정관리에 만전을 기하였다. 부산신항 준설토 투기장 호안(1공구), 남컨테이너부두(2-2단계), 북컨테이너 터미널 축조공사에서는 5,000ton급 대형 케이슨을 적용하고 공장형 slip form을 도입함으로써 안벽의 안정성과 공기단축을 이룩하였다. 또한 제주외항 방파제(1단계) 축조공사에서는 곡면 slit 케이슨 방파제를 도입함으로써 기능성을 물론 경관성을 극대화시켰으며, 포항영일만 신항개발(1-1단계) 민간투자시설 사업에서는 국제항만으로의 육성을 목적으로 민간투자 사업을 의도적으로 추진, 성사시킴으로써 국가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여수구항 정비공사와 광양항 묘도준설토투기장 가호안축조공사(3단계)의 건설을 담당하는 책임자로서 ‘06년도 항만/어항건설공사 시공·능력 평가에서 소속회사가 우수건설업체 1순위로 선정되는데 공헌하였다. 부산신항 준설토 투기장 호안 남컨테이너 부두(2-2간계) 및 북컨테이너 터미널 축조공사에서 5,000톤급 대형 케이슨을 적용하여 안벽시공의 안정성을 제고하고, 공장형 slip form의 도입으로 공기를 단축하는 등 동북아 물류중심국가 건설에 기여했다.

 

<석탑산업훈장>

김성규 (특)선박검사기술협회 이사장
항만운영 효율의 극대화·해운산업 활성화 기여

76년 행정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하여 이사관으로 퇴직시 25년간 재직하면서 성실한 자세와 혼신의 열정으로 우리나라 항만운영과 해운산업 활성화, OECD 해운위원회 가입 및 선진안전관리체제 구축 등에 기여했다. 또한 선박검사기술협회 이사장으로서 탁월한 경영능력과 조직 쇄신으로 해양부 산하기관 경영평가에서 선박검사기술협회가 3년 연속 우수기관으로 선정되도록 하였다.


  우리나라 수출입 컨테이너화물의 대부분을 처리하는 부산항의 항만 운영책임자로 근무하면서 항만운영의 전산화(PORT-MIS)와 문서없는 서류 유통(EDI)체제를 실현하여 물류촉진 및 비용절감에 크게 기여하였다. 외항과장 근무시 도입선박의 무관세화, 외항선대 증강, 인천/대련 항로에 국제카훼리 정기항로 개척, 국적선을 도입하여 일본에서 동남아 지역으로의 삼국간 서비스 제도 도입 등으로 해운산업 활성화 및 외화 가득에 기여했다.


 선박의 위치를 자동적으로 알 수 있어 비상시 신속한 조치가 가능하도록 선박에 자동식별시스템(AIS)를 설치, 항행 선박에게 정밀한 선박위치를 제공하여 안전하게 항행할 수 있도록 기존의 위성으로부터의 위치정보를 보정하는 위성항법시스템의 운영 등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해상교통안전시스템을 도입하여 해양사고 예방에 기여했다.


  2002년 (특)선박검사기술협회 이사장으로 취임, 실적과 능력에 따른 인사, 원칙을 중시하는 합리적인 경영, 경영정보의 공유 및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이해 설득으로 노사화합을 이끌어내 수범적인 조직으로 발전시키고 해양부 산하단체중 최초로 부서장 공모제를 실시하는 등 선박검사기술협회를 최우수혁신기관으로 위상을 정립하였다.

 

최종태 우림해운(주) 대표이사
해외시장 개척 통해 유조선업계 활로 선도

내·외항 해상화물운송사업을 영위하며 국내 송유관 준공에 따른 물량감소에 따른 충격을 해외시장 개척으로 완화하고, 금강산 개발 및 관광사업 추진에 필요한 유류를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지속적으로 운송함으로써 남북 경협 활성화에 기여하였다.


업체의 규모화 및 선대의 경제선화를 통해 연안해운 경쟁력 강화 및 국내 중소형 조선산업의 발전에도 기여하였으며, 선원의 주거시설 개선 등 선원의 복지향상과 내항유조선 업계 최초로 ISO, ISM인증을 획득해 안전관리시스템의 조기정착에 기여했다.


국내 유류는 대부분 연안으로 운송하여 왔으나, ’95년부터 송유관 개설로 인한 운송물량 감소에 따른 충격을 해외시장의 적극 개척을 통해 극복함으로써 영세한 유조선사간의 과당경쟁을 방지하고 새로운 활로를 제시하는 등 선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북한 수송시에는 높은 물류비용과 통신상의 어려움, 클레임 해결 수단의 부재 등 어려운 여건임에도 내항유조선사 최초로 북한 금강산 개발 등에 소요되는 유류를 안정적으로 수송함으로써 정부의 남북 경협사업이 원활히 진행되도록 일조했다. 내항유조선사 최초로 ISO및 ISM 인증을 받아 연안해운업계 품질경영시스템과 안전관리시스템의 조기 정착에 기여했다.

 

<산업포장>
민병우 평택항만(주) 전무
해운항만 발전과 대북교역 활성화에 공헌

1967년 항만하역업체인 대한통운(주)에 입사한 이래 줄곧 40여년을 해운항만 분야에 종사하면서 대북쌀 지원에 동참하여 대북교역의 민간 산파역할을 담당하였고 99년 이후 평택 항만(주)이사로 재직시에는 평택·당진항 최초의 민간 TOC업체로 선정되어 선진기법 운영으로 전국 2위 자동차 수출항만기록으로 타 운영사의 모범이 되었다. 항만에 난립된 항운노조를 이해와 설득으로 평택항운노조로 단일화에 기여했다.


67년 대한통운해운(주) 설립요원으로 해운업에 진출하여 ’97년 컨테이너 피더선(부산호 등)과 중량화물 해송전용인 RO/RO BARGE 코렉스 6000호의 국내건조, ’93년 항만하역사업 합리적인 발전방향에 관한 연구용역 실무위원장으로 참여 항만발전과 부두운영회사제(TOC) 도입의 기초 역할과 ’95년 동해항 현대식 창고와 기계설비 설치 등 하역기계의 현대화에 공헌하였다.


평택·당진항 최초의 TOC업체로 선정됨과 동시에 컨소시엄의 주간사 책임자로서  주주간의 협동심과 애사심을 배양 및 부두운영의 노하우을 전수하였으며 선진기법의 부두운영으로 전국 2위 자동차 수출물량 처리로 타 운영사의 모범은 물론 평택·당진항을 자동차 수출의 중심항으로 부각시키는데 기여했다. 98년 9월 영역권 다툼으로 연일 시위하던 10여개 항운노조 단체를 직접 유관기관과 시민단체 등과 접촉하여 노노갈등을 치유 (가칭)평택항운노조로 통합시키는데 일조했고, 평택항운노동조합의 정식 설립 이후 해양부 중재(안)인 평택항운노동조합과 경인항운노동조합 간의 양노조 통합 및 단일노조 구성하는데 기여했다.

 

설평국 현대건설(주) 상무
국내외 항만건설 공사와 기술발전에 일조
1977년 현대건설 입사이래 국내외 항만건설공사에 일조함으로서 국위선양 및 항만건설 기술 발전에 이바지했으며, 부산신항만, 광양항 컨테이너부두, 울산신항만 등 담당 항만현장의 관리 및 지원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 성공적인 사업수행과 항만건설 기술발전에 공적이 크다. 현대건설에서 수주·시공한 해외 유수의 항만공사의 견적 및 현장지원 관리를 통해 척박한 해외 항만건설 현장에서의 난공사를 성공적으로 완료하는데 일조하여 국위선양과 항만건설 기술발전에 공헌했다.


현재 국내 항만공사의 담당임원으로서 풍부한 실무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국가중요정책사업인 광양항 컨부두, 부산신항만 및 울산신항만 공사 등 성공적인 공사수행을 위해 진력하고 있다. 특히 5,000톤급 초대형 안벽 케이슨의 일괄제작·운반 신기술을 개발 및 활용하도록 했으며, 기존 소파블록(테트라포드)의 일률적인 적용을 대체할 만한 80톤급 대형 소파블록(SEA LOCK)을 국내 최초로 도입, 적용함으로서 공사비 절감과 공기단축은 물론 신기술을 적용해 해외 항만공사를 수주·수행함으로서 외국기술 수입대체 효과는 물론 기술을 수출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박향무 (사)한국선박관리업협회 회장
선박관리업 활성화에 기여

국적선 선박관리분야 신장에 역점을 두어 1998년 이래 사양길을 걷던 선박관리업이 상승으로 반등하는 기틀을 마련하여 협회 회원사소속 선원 및 선박의 수가 대폭 증가하였다. 회원사의 외화수입 또한 미화 354,311달러로서 2002년 대비 18.2%의 신장율을 기록했으며 선박관리업을 조세특례제한법상 법인세 감면업종에 포함시킴으로써 선박관리업자의 자긍심을 고취하는데 공헌했다.


그 외에도 해외취업선원에 대한 복지증진을 위하여 노사협의회 장학생 선발제도를 신설하여 연간 1,000만원씩 출원하는 장학사업을 시행하고, 2005년 4월부터는 해외취업선원이 고용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해외취업선원의 사기진작에 기여했다.


12년간의 승선경험을 바탕으로 26년간 선박관리업을 영위해 오는 등 해운수산 분야의 원로로 1983년 선박관리업의 대표업체인 동국상선(주)을 설립하여 선원의 교육훈련, 인사관리, 선원의 복지향상 등에서 외국선주로부터 두터운 신망을 받고 있다. 케미칼 탱커 선박관리업무를 특화하여 우리나라 선원의 경쟁력을 한층 제고하였을 뿐만 아니라 해외취업선원이 감소하는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동사는 2005년도 외화가득액이 1,650만 달러에 이르고 창립이래 고용창출이 8,000여명에 달하는 등 해운수산업 발전에 공헌했다.

 

마상곤 협운해운(주) 대표이사
국내 최초 시베리아횡단(TSR) 서비스 개시

70년대 국내최초 TSR 서비스개발로 복합운송업위 선구자 역할을 하였고, 78년 중동 정기항로개설 및 케미칼(화학)제품 등 특수화물 수송 및 미국 Interpool사에 컨테이너 박스 20만개이상 국내제품 판매수출등 주도적인 역할로 외화획득에 기여하였다.


또한 42년간 해운업에 헌신한 해운전문인으로 건실한 노사관계유지 및 모범납세자 수상 등 모범경제인이며 미국 죠지아 항만국 한국대표로 민간 외교사절 역할을 수행했다.


1978년 중동항로에 정기선항로를 개설하여 중동지역에 250만톤의 수출입화물(건설기자재, 컨테이너 등)을 수송했으며, 1990년부터 화학제품 수송업무에 화학제품 탱커선박 및 탱크컨테이너를 통한 수송 업무를 개시하여 케미칼 특수화물 1,950만톤을 수송했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을 알리는 크루즈 관광객 유치에도 앞장서 말레이시아의 STAR CRUISES 사의 유람선을 최초로 부산에 기항시켜 크루즈선을 이용한 중국과 일본 관광객 유치에도 기여했다.


1977년부터 콘테이너 임대 업체로 세계2위인 미국 INTERPOOL사의 한국대리점으로 현재까지 약 20만개이상의 국내 제작 생산 컨테이너를 미국 인터풀사에 수출함으로써 외화획득에도 크게 기여했으며, 현재 회원사 237개사인 한국국제해운대리점협회에 1983년부터 이사, 1987년부터 부회장, 2000.02 - 2003.02 협회 회장으로써 21년 동안 업계의 권익보호와 지위 향상 및 발전과 화합 에 기여했다.

 

이혁영 씨월드고속훼리(주) 대표이사
40연년간 해상여객운송 종사하며 모범

지난 40여년간 종사한 해상여객운송사업 분야의 원로로서, 여객선 무재해 운항으로 안전관리우수선박으로 지정(‘02년)되는 한편 고객만족 시비스 종합대상(’05년)을 수상하는 등 타 내항여객운송사업자들의 모범이 되고 있다.


또한 지역사회발전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경로대학 운영, 소년소녀 가장 돕기, 불우청소년 장학금 지급, 소외받고 외로운 노인들에 대한 식사제공 등 사회봉사사업에 공헌하여 왔으며, 성실납세, 청소년 범죄예방활동 등으로 재정경제부장관 표창·법무부장관 표창을 받는 등 모범 기업가이다.


해양가 주관하는 연안여객선 서비스 평가결과 고객만족경영 종합대상을 수상(’05)하는 등 고객중심의 양질의 서비스 제공 및 대고객 신뢰도 향상에 기여했다. 전직원 공동운명체의 인식 아래 상호협력의 노사관계를 공고히 하여 회사 창립이래 현재까지 무분규를 기록하고 있으며, 안전관리에도 최선을 다해 여객선 무재해 운항으로 안전관리우수선박으로 지정(’02)되었다.  또한 목포권과 제주도로의 관광객 유치를 위해 KTX 연계수송협약 체결 및 기획상품 개발 등 각종 전파매체를 통해 양 지역의 우수한 관광자원을 널리 홍보함으로써 관광제주의 대외신인도 향상에도 기여했다.

 

조성훈 한국선무(주) 기관장
36년간 선원으로 근무하며 바다에 헌신

1969년 부원을 시작으로 해상 생활을 시작하여 1974년 선박기관사로서 계속 승선하면서 육상의 경제적 발전으로 타 선원들이 승선을 기피하며 육상으로 이직하는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36년여 기간동안 오직 바다에 몸 바쳐 외곬으로 해상생활을 해온 바다 사람으로서 타의 모범이 되었다.


노후된 선박의 기관장으로서 치밀한 계획에 따른 사전 정비와 선내 교육훈련으로 사고발생을 예방하고, 사고시 초기 비상대응능력을 높였으며, 문제를 최소화하여 항해안전 및 경제적 운항에 기여하는 등 항해안전 및 원가절감에 기여했다. 우리나라 해운과 선원 및 선박업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우수한 해기인력 자원 양성이 필수임을 깨달아 승선 근무중 이론과 몸소 시범을 보이는 교육으로 부하 선원의 자기개발 계도와 해기 전승을 통한 우수 해기사 및 인력 양성에 이바지했다.

 

<근정포장>
박한일 한국해양대학교 교수
해양분야 교직자, 해양전문가로 대정부 활동

22년 동안 대학강단에서 우수한 해양전문가를 교육하는데 노력해 왔으며 해양과학기술대학장, 해양과학기술연구소장 등의 학내 보직을 맡아 대학의 발전 및 연구활동에도 심혈을 기울이면서 중국 해양대학을 비롯한 국외 대학과의 학술교류를 통해 국내 해양분야의 국제화에 기여했다. 


참여정부가 국가균형발전을 달성시키기 위해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추진함에 따라 해양수산공공기관 부산유치추진단의 공동단장을 맡아 부산으로 성공적으로 이전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2004년도부터 정부의 차기연도 연구개발(R&D) 예산 전체를 사전에 종합조정하는 소위원회의 위원으로 참여하면서 해양수산분야 국가 R&D예산을 보다 공정하고 적절하게 배당받는데 기여했다.


해양공학분야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학회 중의 하나인 국제해양공학회(ISOPE)의 기술프로그램위원회(TPC)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이 학회를 2005년도에 서울에 성공적으로 개최하는데 기여하고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The Year of Session Organizer Award을 수상, 한국의 해양분야 위상을 높였다. 국내외에 해양을 홍보하기 위하여 1998부터 2년간에 걸쳐 대대적인 부산사이버해양박물관을 구축하는 사업에 참여하여 콘텐츠구축 총괄책임을 맡아 성공적으로 완료했으며, 박물관운영위원장을 맡아 대국민 해양사상 고취에 기여하고 있다.

 

<대통령표창>
최건식 (주) 한진해운 상무
부산항 감만부두·광양항 1단계 부두 선석통합

국내 항만의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하여 추진된 부산항 감만부두와 광양항 1단계 부두의 선석통합을 자율적으로 주도하여 통합을  성공적으로 완수, 정부가 계획했던 시기보다 약 1년 정도 단축시켜 대형선박  출현 등에 적극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확립했다.


항만물류분야의 전문가로서 대통령 자문 동북아 경제중심 추진 위원회 '물류중심 분과위원회' 전문위원, 해양수산부  '동북아 물류중심 기지' 프로젝트 및 추진 기획단 평가·자문 위원으로 활동해 오면서 한중간 물동량 증가에 대비 인천-중국 간 정기 컨테이너 항로 활성화, 국제 경쟁력을  갖춘 항만 인프라 조기 구축 및 정비, 실수요자 중심의 항만 정책 운영,  민·관·학 공동 물류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 개발 등 현실적이고 실천 가능한  방안들을 중심으로'동북아 물류중심국가 건설을 위한 10대 과제'를 제시함으로써 우리나라 항만경쟁력 강화에 기여했다.


부산항과 광양항이 새로운 환적화물 유치를 통해 동북아중심 항만이 될 수 있도록 해운 공동운항 선사인 CKYH Allance 협의체에 물류담당 총괄 임원으로 참여하면서 공동운항 선대를 부산항과 광양항에 기항 유도를 통하여 고부가 가치 화물인 환적화물 유치에 기여했다.

 

채영길 (주)코리아쉽매니져스 대표이사
선박안전운항 통한 해운경쟁력 확보에 기여

1979년 한국해양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현재까지 줄곧 해운업 및 선박의 안전운항을 위한 일에 정진하고 있는 전문 해운인으로서 19994년 국내 최초로 선진안전괸리기법인 Total Ship Management 제도를 도입하여 선박안전운항을 통한 해운의국제경쟁력 확보에 기여했다.


1998년 우양상선(주) 부사장 및 선박관리 전문회사인(주)코리아쉽매니져스 대표이사로서 선박의 안전운항을 통해 수출 증대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내외 중소선사의 선박, 선원관리 및 안전 업무를 철저하게 대행 관리함으로써 해운업 발전에 일조했다.


선원의 복지 및 사회 발전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천주교 해양사목협의회의 활동 지원, 선원을 위한 친교 행사인 “해양인의 날 행사” 지원, 부산 국제선원센터에 대한 지원 및 영유아 보육시설에 대한 지원을 하고 있으며,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으로 선임되어 전문해운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폭넓고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수출입시 해사관련 문제에 대하여 중재업무를 하고 있다.

 

김학용 세방(주) 상무
부산항 감만부두·광양항 1단계 부두 선석통합

중국과일본의 항만 경쟁력 강화 정책, 선박의 대형화, 세계 주요항만의 다선석 운영체제로의 전환, 단일 선석 운영의 비효율성 및 T/S 비용의 증대 등 급속한 해운기술의 변화 및 항만 환경 변화에 대응하여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 항만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동북아의 중심항만으로의 발전을 위해서 적극 적으로 선석통합을 추진하여 국내 항만의 경쟁력 강화에 기여했다.


 고용유발 효과 등이 큰 미래 선진물류산업의 하나인 LME(런던금속거래소)지정창고를 국내 유치하여 부산항 북항?감천항 및 광양항에 3개의 LME 지정창고를 운영하는 데 크게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나라 항만의 활성화에 하였다. 특히 광양항 LME 지정창고는 단일창고로는 세계 최대의 LME 창고로서 국내 LME 지정창고 사업의 견인차가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 기여한 공로가 지대하다. 물류의 흐름에 대한 개별 사안들을 DATA화 하는 것이 국가 전체의 물류비를 억제하고 개별업체에게는 생산성 향상과 원가절감의 요인임을 간파하여 하역에서부터 운송·보관에 이르는 일련의 물류과정을 전산화하여 하주 및 외국적 선사에 실시간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우리나라 항만의 대외 신인도를 제고함과 동시에 항만물류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홍영태 (주)동방 이사
민간투자에 의한 항만 건설에 적극 참여

1986년 (주)동방에 입사하여 20년간 항만물류산업에 투신하여 국내외 항만물류산업의 선진화와 경쟁력 강화에 헌신하였다. 울산신항 컨테이너터미날, 평택내항 컨테이너터날, 군산 다목적부두 등 항만건설 민간투자사업 참여, 물류인프라 구축 및 울산항 POSCO 물류유통 건립으로 물류비의 획기적 절감에 공헌했다.


2008년 울산신항 컨테이너터미날 운영으로 수출입 물량의 획기적 개선과 09년 평택내항 ‘컨’ 터미날의 운영사로 수도권 적체 물량의 해소 및 대중국 수출입물류의 전초기지 역할 수행은 물론, 국가물류비 절감에도 기여할 수 있게 되었다.


국가 기간산업인 POSCO의 육상물류를 해상운송으로 전환을 위해 울산항 배후에 16,000평 부지를 확보하여 POSCO 측에 철강물류 유통기지 건립을 추진하여 연간 60만톤에 해당하는 기존의 육상운송 물량을 해상운송으로 전환하여 물류비의 획기적인 절감은 물론, 화물연대 파업시에도 안정적인 물류 유통망을 구축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평택내항 컨테이너터미날 민자사업에 출자, 운영사로 참여하여 대 중국 물동량의 적극적인 유치로 수도권 및 충청권의 물류산업 발전은 물론 평택항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최영자 세창해운(주) 대표이사
제주↔육지간 물류체계 개선

탁월한 영업 역량을 발휘하여 연안해송 거점 및 선북량 확대로 제주와 육지간 물류체제 개선에 앞장섰다. 연안화물 운송업계에서는 최초로 RO-RO선을 도입·취항시킴으로써 연안물류를 혁신적으로 개선하여 고객에게 양질의 운송서비스를 제고 등 연안해송물류 분야에 새로운 변화의 전기를 마련하였고 해양환경오염방제 업무에도 공헌했다.


세창해운(주)는 초기 북제주군 애월항을 거점으로 하여 항만하역과 목포를 오가는 소형 화물선 2척을 보유하고 해상운송을 하는 것에 불과하였으나 취임이후 연안해송의 거점을 제주항과 한림항, 부산감천항, 목포항으로 확대시키고 2000톤에 불과하던 선복량을, 선박 4척에 선복량 16,000톤으로 대형화를 이루어 냈다. 정기운항 노선도 확대시켜 매일 운항케 함으로써, 목포항을 중심으로 호남ㆍ충청ㆍ경기권역과, 부산 감천항을 중심으로 영남ㆍ강원권역의 2개 권역으로 확대시켜 항만 물류체계 개선에 노력하였다.


RO-RO선박 도입으로 인하여 항만하역요금표상의 하태별 구분에 없었던 RO-R0선 화물에 대한 별도의 항목 신설이 필요함에 따라 RO-RO선에 대한 하역요금 신설 인가를 받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형철 (사)한국선급 수석검사원
세계적인 정유사로부터 검사권 인정

세계적 정유사인 Shell사가 국내 유일한 세계적인 검사기관인 한국선급의 검사를 인정하지 않는 차별정책에 대하여 4년여에 걸친 쉘사의 실무 담당자 및 부사장 등의 면담을 통하여 우리나라 대형유조선 검사능력을 설명하고 각종 세미나 등을 개최하여 2005년 1월부터 쉘l사로부터 한국선급의 검사권을 인정받음으로써 국적선의 이중 검사로 인한 경제적, 시간적 부담을 해소하고 외국 선급에 검사비 지급에 따른 외화의 해외유출을 예방하였으며 BP, Exxon, Mobil, Chevron, Texaco등 세계적인 정유사로부터 유조선 검사능력을 인정받아 한국의 위상을 제고했다.


1988년 선박검사기관인 한국선급에 입사하여 현재까지 철저한 선박검사를 실시하여 선박이 안전하게 운항하도록 하고 있으며, 런던사무소에서 근무시 국제해사기구의 각종 해양안전 및 환경관련 국제회의에 적극 참여하여 해 해양안전 및 해양환경보호에 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아국의 이익을 대변하는데 노력했다.

 

문충도 일신해운(주) 대표이사
연안해운의 체질 개선에 일조해

적정 선박확충과 대고객중심의 경영체제 전환 및 핵심역량 강화로 창업 당시 자본금 5,000만원에서 현재 30억원과 총 선복량 6척 확보는 물론, 대량의 특수 장비를 보유하는 등 괄목할 성장을 하여 해운산업 발전에 기여하였다. 연안해송 운송방법 개선으로 해송물량 증가와 지역 근로자 고용효과를 창출하였으며, POSCO 철판전용운반 RO-RO선 건조 착수로 운송품질 개선 및 선박 현대화에 주력함과 아울러 해양사고 및 재해에 대한 안전대책 강화로 한국해운조합으로부터 당해 안전관리 우수선박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노후선 대체에도 노력하여 고객으로부터 믿음과 신뢰를 쌓았고,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93년 7월에는  POSCO 대량화물 석회석 국내원료 해송에도 참여, 지금까지 소형선 위주로 운항하던 국내원료 연안해송 패턴을 대형화하여 항만부두 운영의 효율성을 제고했다.
지속적인 신시장 개척에 힘써 2005년도에는 POSCO의 철판전용 RO-RO선 운항 참여권을 획득하여 당해 10월 중국 선박공정유한공사와 총톤수 10,697톤급 1척의 건조계약을 체결하고 현재 건조작업 중이다.

 

모배근 (주)대영엔지니어링 부사장
항만공사 수행으로 동북아물류중심국 건설에 기여

26여년간 항만정책수립 및 항만공사수행으로 동북아 물류중심국가 건설에 기여하였다. 특히 해양수산부 설계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설계용역에 참여하여 새로운 기술도입과 시공성 있고 경제적인 설계서 작성에 전력을 다하고 책임감리 용역시 부실공사방지를 위한 품질관리 개선에 노력함으로써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했다.


1978년 5월 부산항건설사무소에 신규 임용되어 제주, 울산, 목포, 부산지방해양수산청에 2000년 12월까지 23여년 근무하면서 근면 성실한 자세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업무추진으로 항만건설공사의 품질관리, 공사비절감, 태풍  피해방지 등 항만건설 및 방재업무에 남다른 노력을 하였다.신 항만건설 시는 약 1000건의 어업권 보상 시 민원발생 등으로 어려운 난관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자세로 대처하여 사업이 원만히 추진되도록 하였다.

 

김성태 부산신항만(주) 부장
항만개발사업의 설계·사업시행에 참여 공로

주요 항만개발사업의 설계 및 사업시행에 참여하여 해운항만 기술발전과 사회간접자본인 항만시설 확충에 이바지하여 국가경쟁력 제고 및 경제발전에 기여하였다. 특히 부산신항만 개발사업중 부두건설의 기반사업인 준설토투기장조성공사와 초기항로준설공사를 적기에 완공하여 북컨테이너부두축조공사를 계획대로 착수시켜 면밀한 공정및 품질관리로 당초계획보다 1년을 앞당겨 조기준공하므로서 동북아 물류거점항만으로서 경쟁력 강화에 기여한 공로가 크다.


23여년간 공직에 근무하면서 우리나라 주요항만(부산,동해,포항,마산항등)의 개발사업에 참여하여 사업이 원활하게 수행될 수 있도록 설계에서부터 시공관리까지 참여하여 국민편의증진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또한 2001년부터 현재까지 부산신항만(주)에서 근무하면서 부산신항만개발 사업의 기반시설인 준설토투기장과 초기항로준설을 정부수탁공사로 시행하면서 연약지반인 어려운 현장여건하에서도 적기에 준공시켜 북컨테이너부두공사를 계획대로 착공하고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행하는 신공법인 부두하부의 S.C.P지반개량과 매립공사 상부의 V.T.M 다짐공법을 성공적으로 추진, 동북아 물류거점 항만으로서 경쟁관계에 중국항만과 경쟁력을 갖출수 있는 기반마련에 지대한 공로가 있다.

 

김유평 한국해양소년단 광주전남연맹장
해양환경 보호· 해양레져문화 활동 공헌

(주)한려항만의 대표이사로 재임시 총 68대의 최첨단 오염방지 장비와 98명의 우수인력을 바탕으로 광양항과 여수항의 오염원을 사전에 제거하여 쾌적하고 깨끗한 항만 보존과 해양오염방지를 위해 노력하였다.
’97년부터 현재까지 여수, 광양항 및 광양제철지역, 여천화학공단지역 등에  총 271회 무상방역을 실시하여 위생적인 해양환경 가꾸기에 앞장서고 있다.


2001년 한국해양소년단 광주전남연맹이 소재해 있는 여수지역에 조종면허 시험장을 유치하고 운영함으로서 5년간 3,857명이 조종면허 시험을 응시할 수 있는 여건 조성으로 일반인들의 해양레져스포츠 기능향상 및 보편화에 노력하였다.


또한 ’05년 여수에서 열린 제5회 해양수산부장관배 전국해양스포츠제전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여 해양레져문화 창달과 홍보에 기여했다.
2000년 해양관련 청소년단체인 한국해양소년단 광주전남 연맹장으로 취임하여 해양탐사활동, 해양기능훈련, 호국수련활동, 해양사상고취 행사, 해양스포츠학교 등 해양사상고취를 위한 행사를 138회를 추진하여 해양강국의 초석이 될 청소년들에게 해양사상을 고취시키고 해양지킴이 활동을 통한 해양환경보전의 중요성을 일깨우는데 기여했다.

 

전승수 전남대학교 교수
국내 연안습지 보전 위한 학술활동 전개

연안습지보호지역 선정을 위한 갯벌심사단 초기부터 역할을 수행하여 과학적 검증, 지역민에 대한 설명회, 대담 및 공청회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해양수산부의 습지보호지역 지정과 관리방안 제시했다.


국제적으로 국제퇴적학회(IAS), 미국퇴적학회(SEPM), 미국석유지질학회(AAPG), 캐나다지구과학회(GAC), IGCP475의 정회원 및 한국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대한지질학회 편집위원, 한국제4기학회 이사, 한국석유지질학회 편집위원장, 한국관개배수위원회 부회장 등을 역임 또는 현임하고 있는 등 국내외의 관련학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한국 서해안 갯벌의 “계절변화 퇴적모델”을 최초로 제시하여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는 등 한국갯벌의 특성을 국제적으로 알리는 역할을 하였다.


관련 국제학술지(SCI) 논문을 20편, 국내학술지 논문 17편을 게재하고, 12권의 관련서를 저술하였으며, 국내외 학술발표회논문 67편을 발표하는 적극적인 국제학술활동을 벌였다.

 

<총리표창>
박지수 흥아해운(주) 선박기관장
모범적 해기사로서 후배 해기사의 귀감

77년부터 29여년 동안 선박의 통항량이 많은 연안항해가 주된 한일항로 및 동남아 항로에 기항하는 선박에 승선 근무하면서 자신은 물론 동승한 해기사에게 책임감과 안전의식에 대하여 교육을 실시하고 철저한 선박기관 정비 점검으로 승선선박에서 단 1건의 해양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


오랜 해상 생활을 통하여 습득한 지식과 경험을 후배 기관장 및 해기사에게 전수하여 대한민국 해기사들의 자질을 향상하는데 크게 이바지 하는 등 후배 해기사의 귀감이 되고 있다.


선박의 보수책임자(부서장)으로서 항시 점검 및 보수정비가 뛰어나 항해 중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사고에 대한 예방을 철저히 하여 승선 근무중 외국항만에서 중대 결함에 따른 항만국의 통제를 받지 않음으로써 수출입 화물의 적기 운송으로 운송 신뢰도를 높임은 물론 아국선박의 안전관리 수준을 한단계 높이는데 기여했다.

 

고영식 뉴마린엔지니어링(주) 대표이사
국내 최초 해상용 등명기 국산호에 성공

국내 최초로 등대나 부표 등에 사용되는 250mm 해상용 등명기의 국산화에 성공하여 산업자원부 신제품(NEP) 인증을 획득하고 향후 10년간 약 50억원의 수입대체 효과가 기대되며 또한 외국 수출의기반을 조성하였으며, 항로표지 분야의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위하여 “항로표지 부설 연구소”를 설립 운영하고 있다.


등대, 부표 등 해양교통안전시설의 위탁관리업체로 지정받아 전국 항만, 연안항, 항포구에 설치하는 사설항로표지를 철저히 관리하여 해양사고 예방에 기여하였다. 우리나라 항만 중 선박 입출항량이 가장 많은 부산항 조도방파제에 국내 최초로 문자로 표시하는 해상교통 신호등을 제작 설치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고성원 대양해운(주) 대표이사
선복량 확대 및 장비 현대화로 선대구조 개선

지속적인 선복량 확대와 장비의 현대화로 제주라는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고 국내 최상위권의 단일 연안화물선사로 성장시켰으며 선박장비의 자동화시스템 확충으로 항만운송분야의 하역요율 인하를 통하여 물류비용의 절감효과를 시현함으로써 지역경제 안정을 도모하는 등 우리나라 해운산업발전에 기여하였다.


IMF 당시 대양해운(주)의 전무이사로 재직하면서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저비용·고효율의 경영구조를 구축하여 회사의 활로를 찾음으로써 연안해운의 불황을 극복하는데 일조하였다. 또한 대기업집단인 동양시멘트(주)와 공동운항 운영선사 간의 선박운항제도를 혁신하여 우리나라 대종 연안화물인 벌크시멘트와 부자재 원료인 스라그, 크링카, 석고 등의 장기수송계약의 계기를 마련함으로써 연안해운의 체질 강화에 기여했다.


운송사업의 다각화로 육상운송 및 해상수송과 항만운송(하역)을 ONE-STOP화하여 해운과 항만의 일관성을 유지시킴으로써 시너지효과 창출은 물론 고객의 눈높이에 맞춘 서비스를 제공하여 지역 건설경제의 안정과 발전을 도모했다.

 

박해범 한국해운조합 사업본부장
도서민 여객선 운임지원 및 매표 전산화 구현

1978년 1월 한국해운조합 입사이후 맡은 바 임무를 진취적이고 성실히 수행하여 연안해운업계의 비용부담을 경감하고 대외 경쟁력을 갖추는데 일조하여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최선을 다하였으며, 터미널 환경개선 등을 통한 대 여객 서비스 제고 등 공공 이익에도 기여하였다.


도서민에 대한 여객선 운임지원을 위한 정부정책에 적극 협조하고, 연안여객선터미널에 전산매표시스템 및 자동개찰시스템을 도입·운영하는 등 대여객 서비스향상에 공헌했다. 한국해운조합에 선원임금채권보장기금을 설치하여 1만여명의 선원들이 임금채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고, 해운선사들은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선주의 법률적 책임을 이행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했다. 여객선의 운항 중 발생하는 선박소유자의 법률상 배상책임을 담보할 수 있도록 선주배상책임공제(여객)를 신설하여 피해자에 대한 배상능력을 확보하고, 보상한도액을 1억5,000만원으로 현실화하고 재보험시스템을 구축했다.

 

박성용 전국선박관리선원노동조합 국제교섭국장
선원 복지 증진 및 생활안정에 기여

국제선원 노동협약 체결에 따른 복지기금 확보를 통하여 조합의 재정기반을 안정적으로 유지함으로써 조합원들의 복지증진에 기여했고 조합원 자녀 장학사업 확대를 위하여 노사협의회에서 처음으로 1천만원의 장학기금을 확보하는 등 선원생활 안정에 공헌했다.


고용보험 적용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던 해외취업선원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을 위하여 3년간 대 사용주, 정부 및 관련기관들에 대한 정책활동을 벌여 해외취업선원들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고용보험 적용을 이끌어낸 실무책임자로서 해외취업선원들의 사기 진작에 기여했다.


일본 선원노조(AJSU) 및 필리핀노조(AMOSUP)와의 국제선원노동협약을 체결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여 한국인 선주들의 외국인 선원비 절감 및 우리나라 선원들이 외국적선박에 계속 승선할 수 있는 여건 조성에 기여했다. 침몰 등 선박사고 발생시 선사와 가족들간의 분쟁이 원만히 해결되도록 중재하고 선사의 도산으로 체불임금이 발생할 경우, 선사 대표와 외국선주를 설득하여 선원이 체불임금을 받도록 하는데 일조했다.

 

설동정 (주)세일종합기술공사 상무
해운·항만 분야 기본 및 실시설계용역에 기여

20여 년간 항만 및 해안분야의 기본 및 실시설계 용역에 종사하면서 부산항, 인천항, 평택·당진항, 마산항, 울산항, 군산항, 옥계항 등 주요항만 개발에 대한 기본계획 및 실시설계에 참여하여 합리적인 계획수립으로 항만건설 발전에 기여한 공이 크다.


1985년부터 현재까지 항만 및 해안분야에 근무이후, 투철한 사명감과 풍부한 항만공사 경험으로 우리나라 항만 경쟁력 강화와 항만건설 기술력 향상에 기여했다.


평택·당진항 민간투자사업에 대한 경제성 분석을 통하여 민간투자사업 가능성을 검토하였으며, 사업수익성에 대한 정부의 지원방안을 마련하므로서 민간투자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고 동시에 재정투자의 부담을 경감하는데 기여한 공이 있다. 정부의 연안해운법 활성화 대책의 일환으로 추진중인 연안 해운법 구조조정과 관련하여 공재(모래)의 원활한 수송을 위한 골재운반선 전용부두의 확보방안을 강구하여 부산지역의 모래수요에 대비한 후보지를 선정하여 골재 수급에 원활히 대응할 수 있도록 기본계획 수립에 기여했다.

 

김관언 현대건설(주) 부장
국내외 항만공사 참여로 국위선양

현재 국가중요정책사업인 새만금 간척사업의 최종끝막이 공사 책임자로 유사이래 최대 난공사로 불리우는 새만금방조제 끝막이 작업의 성공적인 수행을 위해 기술자로서의 사명을 다하고 있다. 1981년 현대건설에 입사이후 싱가폴 창이 매립공사를 시작으로 싱가폴 브라니섬 컨테이너터미널 공사, 창이 매립공사 2단계 사업, 민자사업인 부산신항만 북측컨테이너부두 건설공사, 오만 준설매립공사, 인천북항 고철부두 건설공사 등 다년간 국내외 유수의 항만공사에 참여하여 국가의 발전과 항만건설 기술발전에 일익을 담당했다.


특히 싱가폴 창이공항 매립공사에서는 준설선의 토출구에 모래 살포시스템을 장착함으로서 연약지반 개량을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함으로서 싱가폴 건설청으로부터 건설대상(BCA Awards) 대상을 수상하여 국위선양과 항만건설 기술 선진화에 일조하였다.

 

최행근 린코마린(주) 대표이사
해양환경보전에 기여

1998년 해양수산부에서 시행한 항만정화사업에 참여하여 첫 작업지인 충남 안흥항에서 해양폐기물을 수거하여 육상에 인양한 결과 완전히 부식되어 악취를 풍기는 갯벌(습지)과 함께 인양되는  폐어구, 폐어망, 폐통발 속에 다량의 물고기가 고기무덤(Ghost-Fishing)을 형성하고 있는 것을 처음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해양폐기물 수거 전용선박을 확보하는 등 본격적으로 해양환경보존 사업에 전념하게 되었으며, 미개척분야인 해양폐기물분야 및 습지정화사업에 많은 투자와 경험을 축적하여 관련업계 선두주자로 해양환경보전에  앞장서고 있다.
5년여에 걸쳐 자본금 및 이익금을 모두 정화선단 구입 및 설비에 투자 한 결과, 우리나라 항포구 및 연근해의 해양 침적폐기물 수거/인양에서 운반에 이르기까지 자체 장비만으로도 장기간 해상 및 습지에서 독자적으로 일관적인 해양정화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인력과 장비를 모두 갖춘 국내 1위의 순수 민간업체로 발돋움했다.

 

김형민 국립해양조사원 남해해양조사사무소 기관장
해양조사선 장비관리·기관업무 수행

1982년 임용되어 24년간 해양조사선의 전기설비, 장비관리업무와 기관업무를 수행하면서 매년 수로측량 및 해양조사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6개월 이상의 장기출장으로 인한 선박에서의 열악한 근무환경 조건 속에서도 항상 솔선수범하여 직원상호간의 화목 및 가족적인 분위기 조성을 위해 노력하였다. 철저한 안전점검과 기관관리로 부여된 임무를 차질 없이 수행하여 안전항해에 기여했다.


전기원으로 임용되어 근무해오면서 근면함과 성실함으로 업무를 충실히 수행함은 물론 능력개발을 위하여 장기간 선상생활을 해야 하는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한국방송통신대학 전자계산학과를 졸업하고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여 업무발전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2001년 5월 기관사로 전직하여 관련지식 및 노하우로 업무에 전념하여 후배들의 모범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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