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거대한 철판 덩어리가 용접과 도색을 거쳐 배의 모양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직접 보지 않는 이상 선박금융의 중요성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2010년 8월 말, 숨이 막힐 정도로 더웠던 올해 여름, 나는 또 다른 비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바로 국토 해양부에서 주관하는‘선박금융 전문인력 양성교육 프로그램’에 지원하는 것이었다. 처음 모집공고와 프로그램의 개요를 신문에서 접하고 난 후,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꼭 13명의 수강생 중 일원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매일의 고된 업무로 심신이 지치는 직장인에게 학업을 병행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현업에서 여성 선박 중개인으로서 활동하면서 고급 지식에 대한 열망은 항상 나를 자극하였고, 이를 적극 체득하여 실무에 활용할 기회를 물색하던 중 이와 같은 프로그램을 접하게 된 것이다. 특히, 전체 수강 인원 중 금융계와 해운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을 동등한 비율로 선발하여 해운시장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고, 선박금융에 대한 의견 교류의 장을 마련한다는 취지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나는 교육참가에 대한 열망이 컸기 때문에 참가 신청서 이외에도 각종 증빙서류를 구비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신청서 이외의 증빙서류는 필수적인 사항이 아니었으나 모든 일에는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을 따라 결국 대학시절 경영대학 교수님의 추천서와 그리스 선주의 추천서까지 받게 되었다. 정성이 듬뿍 담겨서일까, 운이 좋아서일까? 나는 열 세 명의 수강생 중 막내이자 유일한 여성 홍일점으로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었다.


2010년 9월 9일은 프로그램이 개강한 날이다. 설렘에 전날 밤잠을 설치고 새벽부터 일어나 분주히 단장을 하였다. 업계의 중요한 분들, 또한 앞으로 두 달 가량을 함께할 동기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깔끔하고 지적인 첫 인상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삼청동에 소재한 금융연수원 건물은 단아하고 고즈넉한 자태로 신입생들을 맞이하였다.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간 것과 같은 기분으로, 나의 초심을 동여매고 강의실에 들어섰다. 언제나 새로운 시작은 두려움과 설렘을 동반하는 것인가 보다. 금융계와 해운업계에서 선발된 총 열 세 명의 수강생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전문가로서의 경력을 다지고 내공을 쌓아온 분들로서 짧은 자기소개 시간 동안에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남성분들 사이에 둘러싸인 유일한 미혼이자 흔하지 않은 여성 브로커였던 나는 어떻게 자기소개를 할지 곰곰이 궁리를 하다가 내 고향과 직업과의 연관성에서 힌트를 얻었다.


우리 나라 조선산업의 메카인 울산에서 태어나서 자란 나에게 선박은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20년이 더 지났지만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는 것은 여름의 바다 냄새와 오토바이를 타고 출퇴근 하는 긴 노동자들의 행렬이었다. 내가 울산에서 유년과 청소년 시절을 거쳐 성장하는 사이, 우리나라의 중공업 또한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그 기술력을 인정받아 세계시장에서 선두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나는 그 발전의 현장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는 것을 큰 행운으로 여겼고, 이제 글로벌한 시각을 가지고 우리나라 해운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여성 전문인력이 되고픈 포부를 안고 교육 프로그램에 입성하게 되었다고 동기를 밝혔다. 자기 소개가 인상적이었던 것일까? 나는 선박금융 전문인력 양성교육 프로그램 1기의 반장으로 선출되었다. 비록 출석체크와 식비정산이 반장의 주요 표면적인 임무이지만 이날 이후 아직까지 1기의 동기들은 나를 ‘반장님’이라고 부르고, 나는 이 직함을 명예롭게 여긴다. 결국 이해관계와 관점이 다른 두 업계가 한 자리에 모여 공통의 분모를 도출하고 끈끈한 협력관계를 도모할 때는 관련된 사람의 역할이 제일 중요할 것이라 생각된다.

 

금융업과 해운업 모두 사람이 이끄는‘피플 비즈니스’이고 결국 사람이 최종 결정을 내리는 만큼, 사람을 뭉치게 하고 의견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 교육프로그램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판단하였다. 마치 호떡 사이에 녹아있는 꿀의 역할과 같이 말이다.


 

-강의
매주 이틀, 화요일과 목요일 전일제로 강의실에서 운영되는 교육 프로그램은 금융업과 해운업 관계자들이 서로의 업계와 배경지식에 대한 원만한 이해를 도모할 목적으로 조성되었다. 금융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기본적인 사항이나마 해운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 있고, 마찬가지로 해운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자금시장 동향 등 업계의 흐름과 경제 전반을 읽는데 부족함을 느낄 수 있겠다. 달러화로 대규모의 금융을 일으키는 선박금융은 시장 환경에 따라 자금의 공급자와 수요자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할 수도 있다.

 

특히, 2008년 리만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는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세계의 조선업과 해운업에서‘메이저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한 우리나라는 유독 선박금융 분야에서는 외국의 유수 금융기관에 주요 입지를 내어주고 있었고, 이것을 바로잡기 위해 현 상황에 대한 철저한 인식과 대응책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구축된 네트워크 상에서 고급정보를 공유하고 시장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인력집단이 핵심 열쇠인데, 인력집단은 하루 아침에 양성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선박금융이 단순히 금융산업과 해운업에만 연계된 것이 아니라 원자재 시장과 조선업, 국제경제 동향, 보험산업, 그리고 세제와 법률 제도에 상호 영향을 받으며 이루어지는 거래이므로 통합적이면서 분석적인 시각으로 사안을 분석하고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 프로그램은 그 레벨이 점진적으로 심화되면서도 금융과 해운의 제반 세부 분야를 점검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되는데 이러한 면에서 커리큘럼은 짧은 기간 동안에 선박금융과 관련하여 다양한 사안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특히, 금융과 해운의 실무진들이 모인 만큼 강의 주제가 한 쪽으로만 치우치지 않았고, 난이도 또한 적절하게 조절되어서 해운업에 종사하는 사람도 선박금융의 실제 사례에서 적용되는 파생상품을 통한 금융 위험관리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SPC(SPECIAL PURPOSE COMPANY)의 설립을 통해 선박을 취득할 때, 회계와 법률 적인 측면에서 고려해야 할 사항에 대해 초빙된 전문가들의 의견을 직접 접하면서 실무를 진행할 때 전문성을 높이고, 시야 또한 넓힐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이처럼 현장에서 직접 실무를 진두 지휘하는 담당자가 강사로 초빙되었을 때는 틀에 박힌 이론에서 벗어나 실제 사례에 적용되는 지식을 전달함으로써 학습자의 관심을 유도하고 이들이 현업에 복귀하여 습득한 사항을 응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수강생들 또한 매번 배정된 정규 강의시간이 끝난 후, 당일 주제와 관련하여 평소 궁금하게 생각해 왔던 점에 대해 자유롭게 질문하고 이를 통해 강의를 수강하는 여러 학습자들 또한 함께 고민하고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교류의 장이 구축되었다.


한편 상기 교육 프로그램이 처음으로 시행되는 만큼, 커리큘럼 상에서 개선되어야 할 점 또한 지적할 수 있겠다. 먼저, 초빙된 여러 강사가 동일하거나 유사한 주제와 내용을 중첩으로 전달하여 강의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사례가 있었다. 또한 교재에 등장하는 백업 데이터가 최신의 자료가 아닐 경우에는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시장환경에 부합해 분석하는 과정과 결과 자체에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해운업 및 선박 금융과 관련된 고품질의 자료는 여전히 해외의 유명기관을 통해 유료 또는 무료로 획득 및 수집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국내에는 아직 세계 수준의 공신력을 자랑할 수 있는 연구기관이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앞으로도 해운 강국의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 시장의 흐름을 제대로 기록하고 예측할 수 있는 씽크 탱크 (THINK TANK)를 설립하고 전 세계 해운업과 선박금융에 종사하는 전문가 집단이 우리의 자료를 신뢰하고 수집하는 그 날이 도래할 때까지 업계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의식을 느껴야 한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선박금융과 관련된 제반 하위 주제를 약 두어 달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학습하려니 강의의 깊이 측면에서는 그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 10년의 훈련과 실무경력이 필요하다는 일반적인 사실을 고려할 때, 우리가 교육기간 동안에 직면했던 어려움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전술하였듯, 두 달의 교육 과정을 수료하였다고 하여 곧바로 선박 금융 전문가로 거듭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인적 자원 네트워크와 교육에 투자할 수 있는 첫 번째 장을 마련한 것이라 평가할 수 있겠다. 이렇게 매주 이틀씩, 두 달간의 강의는 수강생들에게 선박 금융에 대한 이론적인 토대와 배경 지식을 심어 주었고, 같은 공간에서 함께 고민하고 밥을 먹는 사이 서로에 대한 이해도 더욱 깊어져 가고 있었다.

 

-실습
두 달 간의 강의실 교육에서 벗어나서 체험학습을 한다는 것은 모두에게 뜻 깊은 일이었다. 우리의 일정은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메카이자 나의 고향인 울산의 현대 중공업을 방문하고, 부산으로 건너가서‘MARINE MONEY FORUM’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그 후, 부산항에서 페리에 승선하여 오사카에 도착, 일본 선박 금융계의 기둥인 미즈호 은행의 담당자와 회의를 하는 것이었다. 일주일간 회사와 업무를 제쳐두고 길을 떠난다는 것은 심적으로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동안 친해진 동기들과의 정을 돈독히 하며, 세계적인 무대에서 업계에 직접 종사하는 사람의 경험을 듣고 선박금융이 실제로 성사되는 현장을 직접 목격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나의 고향 울산에 위치한 현대중공업은 그 규모와 위엄으로 우리를 압도하기에 충분하였다. 아버지께서 중공업에 종사하시는 터라, 어렸을 때 회사 구경을 여러 차례 와 본적이 있다. 그러나 선박 중개인이 되고 나서 중공업을 다시 찾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 옛날의 어린 나는 커서 바다와 관련된 일을 하게 될 줄 알고 있었을까? 혼자서 문득 회상에 잠겼다. 현대중공업 내 영빈관에 오르니 그 넓디 넓은 조선소가 내 시야로 성큼 들어온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이 새삼 자랑스럽게 생각되며 근면 성실함으로 중공업 신화를 이룩한 경영진과 노동자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이제는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거대한 철판 덩어리가 용접과 도색을 거쳐 배의 모양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직접 보지 않는 이상 선박금융의 중요성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조선소 견학에 함께 참여했던 우리 모두 벅찬 가슴을 안고 울산을 떠나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에서 열리는 MARINE MONEY FORUM은 세계적인 행사였다. 업계 관계자를 포함한 참가 인원만 해도 200여명을 훌쩍 뛰어넘었는데, 선박금융 전문가 집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업계의 동향을 파악하고자 하는 분주한 움직임을 여기저기서 포착할 수 있었다. 세계 곳곳에서 방문한 사람들인 만큼, 세션 중간의 휴식시간에는 활발히 네트워킹을 하며 서로의 견해를 주고받고 최신 정보를 수집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교통과 통신기술의 발달로 세계가 하나가 되고 세상이 더욱 좁아지는 요즘, 포럼에서 내가 만났던 각국의 사람들은 업계에서 계속 일하는 한 또 다시 만날 기회가 올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이번은 초면이지만, 다음 번에는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만남을 가진다면 이처럼 풍성하고 가시적인 교육의 성과가 어디 있을까’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포럼의 정규 프로그램 중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선종 별 2011년의 시황 분석과 2008년 해운업 위기 이후 고갈된 선박 금융에 대한 지원책이다. 포럼에서 접한 긍정적인 소식처럼 우리 모두 내년 한해는 해운 시황과 선박 금융 마켓에 풍년이 다시 찾아오길 간절히 바랐다.


부산항을 뒤로 하고 오사카로 향하는 팬 스타 드림 호에 탑승하였다. 총 18시간이라는 전체 여정에 한번 놀라고, 배의 규모에 또 한번 놀라게 되었다. 친절한 선장님의 안내와 배려에 따라 직접 조종키를 잡는 행운도 누릴 수 있었다. 선박 중개인으로서 일을 하지만, 배를 조종해 본적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여전히 거대한 무게의 철 덩어리가 바다를 가로질러 18시간 동안 항해를 한다는 것은 신기하다.

 

깜깜한 밤을 지나 동이 트니 일본 해가 한 눈에 들어왔다. 아침 햇살에 바닷물이 반짝반짝 빛나며 고요하고 잔잔한 바다는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다. 해상에서 아침을 맞는다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호텔로 이동하여 간단히 점심 식사를 해결 한 후, 우리는 미즈호 은행의 야시노씨와 회의를 가졌다. 일본 선박 금융의 한 축을 담당하는 미즈호 은행의 독보적인 성공 비결과, 금융위기 이후의 행보에 대해서 구체적인 질문이 쏟아졌다. 일본은 엔화와 달러 조달 금리에 있어서는 우리 금융기관에 비해 경쟁력을 가지고 있으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우리와 마찬가지로 신규 거래를 허용하는데 있어서 여전히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예정된 두 시간이 부족할 만큼 수강생들은 궁금한 점이 많았고, 멀고도 가까운 이웃 나라이자 해운과 조선업에 있어서는 경쟁국을 방문한 만큼 뜻 깊은 결말을 맺고 가길 원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무척이나 나를 들뜨게 했던 여름 프로젝트는 성공리에 끝을 맺었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과 같은 주제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던 분주한 두 달여의 시간은 분명 우리 모두에게 뜻 깊은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선박 금융 1기의 유대감이 깊은 뿌리를 내려 우리나라의 선박금융 시장이 경쟁력을 갖추고 더욱 활성화되는데 일조하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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