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송부매매에서 불일치 서류로 인한
매매계약의 본질적 위반 및 매수인의 계약해제권
-신용장 방식에 대한 CISG의 적용을 중심으로-

 

이 글은 한국해운물류학회가 11월 5일까지 제49회 정기학술발표대회에서 허은숙 건양대학교 전자상거래무역학과 교수가 발표한 논문의 핵심내용 중심으로 요약해서 편집한 내용입니다.
-편집자 주-

 

<해상송부매매에서 매도인의 서류교부 의무>

1. 해상송부매매의 특징과 서류적합성
오늘날 국제물품매매는 격지거래의 특성으로 인해 매도인으로부터 매수인에게 물품과 함께 관련서류1)가 송부되는 구조를 갖는다. 서류가 교부되어야 하는 경우 매도인은 ‘물리적(physical)’인도의무와 함께 ‘서류교부의무’라는 독립적인 두 의무를 부담한다. 이는 각각 물품의 적합성과 서류적합성이라는 의무를 매도인에게 지우는 것이며, 물품이 계약에 적합하더라도 서류가 부적합한 경우 매수인은 매도인의 계약위반을 주장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손해배상을 청구하거나 서류를 거절할 수 있다.2)서류교부의무는 협약의 제34조에 규정되어 있는 서류의 적합성과 교부방식, 장소, 시기 등과 관련된 것으로 서류와 관련하여 전반적인 계약일치성을 의미한다. 신용장거래라면 신용장조건과 제시된 서류의 형식, 내용과의 일치성 등을 의미한다. 이렇게 볼 때 협약의 서류교부의무는 서류적합성과 UCP에서 의미하는 신용장조건과의 일치성 등을 포함하면서 서류교부과정의 적정성을 포괄하는 보다 넓은 개념이다.


대부분의 국제물품매매는 해상송부매매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바, 이는 매매계약이 물품의 해상운송을 포함하는 매매로서 매도인이 매수인에 대하여 또는 매수인이 매도인에 대하여 운송계약체결의무를 부담하는 성격을 지니는 매매임을 의미한다.3) 해상송부매매에서 인도증명서류를 중심으로 하는 매도인의 서류적합의무는 매도인의 완전한 계약이행을 위한 필수요건이 된다.4)특히, 오늘날 원자재상품(commodity)5)을 비롯하여 국제화물량의 90%이상은 해상운송에 의존하고 있는 해상송부매매적 특성을 갖는다. 이러한 국제원자재시장은 당사자간 연속적인 거래가 일반적이고 가격변동이 심하며6) 석유 등 원자재는 투기적 목적으로 해상운송 중(afloat)에 서류로 전매되는 경우도 많으므로 서류의 엄격한 일치성이 요구된다.7)

 

2. 매도인의 서류교부의무
협약에서는 서류를 수반하는 매매에서 매도인은 계약에 일치하는 물품과 함께 물품에 관련된 서류를 교부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8) 이에 따라 매도인은 계약서에 명시되거나 계약조건으로 존재하는 경우 혹은 서류매매(documentary sale)인 경우 서류교부의무를 부담한다.

 

(1) 교부서류
오늘날 국제매매에서 서류는 매도인으로부터 매수인에게 직접 송부되거나 은행을 경유해 송부된다.9) 이들 서류는 격지거래의 특성상 직접 매단계의 이행상태를 수출지의 현장에서 확인하지 못하는 매수인이나 통관행정기관에게 매도인이 계약대로 잘 이행했음을 입증해주는 유력한 증거가 된다.


협약의 제30조는 매도인에게 물품인도의무와 함께 매도인의 관련서류제공의무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다.10) 즉 매도인은 계약과 협약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물품을 인도하고 관련서류를 교부하여 물품의 소유권을 이전하여야 한다. 여기서 ‘물품관련서류’에는 그 소지자에게 물품을 처분할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선하증권이나 해상운송장(sea waybill)11), 창고증권, 부두수령증12), 보험증권과 같은 서류들이며, 물품을 처분할 유가증권적 권리는 없으나 물품의 사용이나 처분과 관련하여 매수인에게 필요한 상업송장13), 원산지증명서, 중량증명, 품질·분석증명서 등과 기타 유사한 서류들이 포함된다.


특정 거래에서 관련서류가 정확히 무엇인가는 해당거래에 사용된 무역거래조건과 결제조건에 의해 규정된다.14) 만일 결제조건으로 신용장조건이 사용되었다면 구체적인 서류요건은 신용장조건에 나타난다. 또는 당사자들이 계약에서 특정서류를 명시할 수 있다. 이들 서류들은 매수인으로 하여금 매매, 처분과 관련한 권리행사에 지장이 없어야 하고 또한 수입통관에 필요한 적격성을 갖춰야 할 것이다.


 (2) 서류교부의무의 내용
협약의 제30조에 이어 34조15)는 서류의 교부방식, 교부시기와 장소, 교부형태등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는 반면 관련서류가 무엇인지, 서류교부시기, 장소, 방식에 대해서는 자세한 내용을 기술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서류의무를 판단하기 위해 법원은 계약내용과 거래과정, 무역관행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1) 교부방식
매도인은 대금을 받기 위해 신용장에 명시된 서류를 매입은행16)에 제공한다. 신용장거래구조에 비추어 볼 때 수익자는 신용장에서 지시하는 바에 따라 지정은행이나 매입은행에 서류를 제출한다. 이 때 대부분의 경우 신용장에 지정된 서류를 구비하여 환어음을 발행하거나 혹은 환어음없이 서류만 제시하도록 지시하기도 한다.17) 통상적으로 신용장에는 선하증권에 대하여 비교적 자세하게 서류의 적격성요건을 규정하고 있다.18) 이는 선하증권이 지니는 권리증권성을 비롯한 법적인 지위로 인해 그만큼 신중하게 취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최근 근거리무역에서는 선하증권 원본 한 부를 포함한 서류1조(set)를 별도로 매수인에게 송부하고 남은 서류를 은행에 제출하여 결제에 이용하도록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19) 이 경우 통상적으로 매도인은 신용장의 지시대로 이행하고 그 사실에 대한 진술서(beneficary's statement)를 제시하게 된다. 선하증권이나 보험서류를 제외한 여타의 서류에 대하여는 일반적으로 서류의 통수, 발행자 등을 지정하는 것 외에 특별히 서류의 속성과 관련한 까다로운 조건은 명시되지 않는다.
 
2) 교부시기와 장소
서류를 교부해야 하는 시기는 계약조건에 의하거나 신용장조건에 서류제시기일 혹은 신용장만기일로 나타난다.


교부장소에 있어서는 지급(payment), 인수(acceptance), 매입제한(restricted negotiation)신용장의 경우 특정은행이 지정되므로 그곳이 서류교부장소가 되며 자유매입신용장의 경우에는 지정은행의 제한이 없다. 실무적으로 대부분 지정은행은 수출지의 어떤 은행이 되지만 개설은행이 제시장소로 지정되기도 한다.

 

3. UCP의 서류일치성에 관한 원칙  
(1) 신용장거래에서 매도인의 서류적합의무
 많은 국제매매계약에서 당사자들은 선적서류를 대금결제의 담보로 요구하는 화환신용장(documentary credit)에 의한 지불을 약정하고 있다.20) 신용장거래는 은행이 핵심당사자로서 독립추상성의 원칙에 따르게 되므로 서류의 엄격이행이 요구된다.21) 신용장은 수익자가 대금지급을 받기 위해 제출해야 할 서류의 종류의 형식, 서류제시기일, 제시방법 등을 조건으로 명시하게 되며 수익자(beneficiary)인 매도인은 이에 일치하는 서류를 입수하여  지정된 기일 내에 신용장에서 지정한 방식으로 제출하여 대금을 받는다. 따라서 신용장방식인 경우 CISG에서 규정하고 있는 서류교부의무에 관한 내용이 훨씬 명료해진다.
신용장거래의 경우 명시적 언급에 의하거나 협약의 제9조 (2)항에서 의미하는 거래관행(trade usage)으로서 ICC에서 제정한 UCP22)가 적용된다.23) 

 

서류가 갖춰야 할 요건에 관하여 현행 UCP 60024)은 제17조에서 제28조에 걸쳐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서류의 원본성, 운송수단별 운송서류의 요건, 상업송장, 보험서류의 요건, 서류검토은행이 서류와 신용장조건과의 일치성을 판단하기 위해 적용하는 원칙과 해석기준 등이 주요 내용이다.25)

 

이에 따라 계약에서 화환신용장에 의한 지불을 요구하고 있을 경우 모든 서류는 “무하자”(clean)이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매수인은 계약을 해제할 권리를 갖는다.26) 여기서 ‘무하자’서류란 운송서류의 경우 ‘물품 또는 포장의 하자상태(defective conditions)를 명시적으로 선언하는 조항 또는 부기가 없는’ 운송서류를 말한다.27) 이와 관련하여 UCP의 제14조는 서류검토의 기준을 규정하고 있고. 제18조이하의 여러 규정들에서 수리가능한 서류와 거절될 수 있는 서류들을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28)

 

(2) 독립성의 원칙(The Principle of Independence)
신용장규범은 오랜 기간에 걸쳐 관습(custom)과 국제은행관행을 통해서 발달되어 왔다. 신용장은 비록 매매계약에 의해 생성되지만 일단 개설되면 독립추상성을 바탕으로 매매계약과는 관계없이 독자적인 거래구조를 형성하고 은행은 기본계약 및 실제 이행여부와 관련없이 신용장거래를 하게 된다. 은행이 지불할 의무의 조건은 신용장의 조건에서만 찾아야 되고 어떤 식으로든 매도인이 매매계약에 따라 지켜야 할 의무이행에 좌우되지 않는다.29)


주지하듯이 신용장의 독립성은 신용장이 근거하고 있는 기본계약과 신용장거래를 분리하는 것으로 기본계약의 당사자가 아닌 은행을 보호하려는 배경을 가지고 있다. 만일 독립성의 원칙이 준수되지 않으면 국제무역에서의 주요 지불수단으로서 신용장시스템은 지속성을 담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독립성의 원칙에 대한 유일한 예외는 서류를 제시할 때 매도인에 의해 행하여지는 사기(fraud)이다. 만일 은행이 매도인에 의해 제공된 서류상의 사기를 발견했다면 그 서류가 신용장의 조건들과 일치하게 보임에도 불구하고 지불을 거절할 권리가 있다. 


이처럼 신용장의 독립성으로 인해 은행은 서류의 일치성을 판단함에 있어 어떤 불일치나 부적합이 매수인의 이익을 실질적으로 해하였는지 등의 사실관계를 고려할 여지가 없다. 만일 고려하여 행동한다면 이는 신용장거래의 가장 기본원칙인 독립성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이다.30)

 

(3) 엄격일치의 원칙(The Principle of Strict Compliance)
독립성의 원칙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신용장거래를 규율하는 또다른 원칙은 엄격일치의 원칙이다. 매도인이 신용장 거래하에서 대금을 지불받기를 원한다면 신용장의 제조건과 엄격하게 일치하는 서류가 제공되어야 한다.


엄격일치의 원칙을 가장 엄격한 의미로 적용하게 되면 매우 사소한 불일치도 은행으로 하여금 신용장조건과의 불일치를 이유로 거절하도록 허용한다.31) 이러한 판결은 그 후 엄격일치의 원칙을 정의하고 다듬고 재정의하면서 영국과 미국을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오랫동안 법정판결의 토대가 되었다.


UCP는 서류일치성의 기준을 규정함에 있어 매우 일반적이고 그러한 엄격일치의 원칙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UCP 600의 제14조(a)항은 서류가 ‘문면상 신용장의 제반조건들과 일치할 것’과 은행이 ‘서류만을 근거로’ 일치성을 확인해야 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32)


이 점에서 엄격일치의 원칙은 독립성의 원칙과 연계되어 신용장거래의 중추적인 토대가 된다. 개설은행은 신용장에 기술되어 있는 한도내에서 매수인을 위하여 행동한다. 은행이 이러한 한도를 넘어 잘못된 판단을 할 경우 매수인은 서류의 인수와 대금상환을 거절할 수 있으므로 신용장의 문구를 정확하게 따르는 것이 안전하다. 그러나 현행 UCP의 제14조(d)는 엄격일치의 요건에 서류가 정확하게 똑같을 필요는 없고 상호간에 모순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33) 이는 엄격일치의 원칙에 실용적 관점을 보완한 것으로 실질일치의 원칙(Substantial Compliance)으로 불린다. 이에 따르면 은행은 단순히 철자가 잘못되었거나 사소한 인쇄오류를 포함하는 서류들은 거절할 수 없다.


결국 은행은 신용장거래에서 제공된 서류들이 신용장조건과 정확하게 일치하는지 여부만이 아니라 서류상호간에 모순되지 않고 일치하는지를 판단할 의무가 있고 단순한 철자오류는 보통 그러한 일치성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UCP 600의 제18조(c)항은 단지 상업송장만이 신용장에 있는 명세에 엄격하게 합치하는 물품명세를 포함해야 하고 반면에 다른 서류들은 이러한 기술이 신용장 및 다른 서류들과 모순되지 않는 한 좀더 일반적인 기술을 포함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34)


서류의 엄격일치를 전제한다고 볼 때 서류의 누락이나 오기는 충분히 그 실제적인 중요성을 떠나 은행의 거절사유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매수인의 구제에 앞서 서류취급은행의 거절권이 우선 행사되고 대금은 지불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매수인의 서류에 대한 일치성 판단은 맨 마지막단계에서 이루어지는데 그 이전에 이미 은행이 기본 매매계약과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그리고 서류만을 근거로 상당히 엄밀하게 서류의 일치성을 판단한다면 25조에서 의미하는 본질적 위반을 구성함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매수인의 이익을 고려할 여지는 현실적으로 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UCP 제16조의 (a)에서 볼 수 있듯이 하자서류의 경우 실무적으로 은행은 독자적으로 판단하기 보다는 매수인과 교섭한다. 따라서 개설은행은 매수인과 같은 입장에서 행동할 가능성이 크다.

 

<CISG상의 본질적 위반요건과 효과>
 1. 본질적 위반의 개념과 요건
매도인의 계약위반이 있는 경우 협약하에서 매수인의 계약해제권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매도인의 위반이 본질적 위반(fundamental breach)이라는 점을 매수인이 입증해야 한다.35) 이 개념은 중요하지 않은 계약적 의무위반에 근거하여 계약당사자의 일방에 의한 계약의 해제를 방지하려는 목적으로 도입된 것이다.36)


협약은 25조에 본질적 위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당사자일방의 계약위반은 그 계약에서 상대방이 기대할 수 있는 바를 실질적으로 박탈할 정도의 손실을 상대방에게 주는 경우에 본질적인 것으로 한다. 다만 위반당사자가 그러한 결과를 예견하지 못하였고 동일한 부류의 합리적인 사람도 동일한 상황에서 그러한 결과를 예견하지 못하였을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이처럼 계약위반이 본질적인 것이 되기 위하여는 계약위반이 일정한 성질과 중요성을 가진 것이어야 하는 바 그 요건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37)


첫째, 계약위반이 있어야 한다. 이는 매매계약에 속하는 모든 종류의 의무의 위반을 포함하며 그 의무가 주된 의무인지 부수적 의무인지를 묻지 않는다.38)


둘째, 위반당사자의 상대방, 즉 피해를 입은 당사자의 기대를 실질적으로 박탈할 정도의 손실을 주어야 한다. 본질적 계약위반이 되기 위하여는 계약위반에 의하여 피해당사자가 정당한 계약상의 기대를 상실하여야 한다.39) 그리고 계약위반에 의하여 피해당사자가 기대할 수 있는 바를 실질적으로(substantially) 박탈할 정도의 손실을 입어야 한다.


셋째, 위반당사자의 예견가능성(predictability)이 있어야 한다. 협약은 계약위반을 본질적 계약위반과 비본질적 계약위반으로 구분하여 위반당사자가 당해 매매계약에서 피해당사자가 기대할 수 있는 바를 실질적으로 박탈할 정도의 손실을 입혔더라도 위반당사자가 피해당사자의 기대의 ‘실질적 박탈’이라는 결과를 예견할 수 없었고 또한 ‘동일한 부류의 합리적인 자’가 ‘동일한 상황’에서 그러한 결과를 예견할 수 없었다면 본질적 계약위반이 되지 않는다.40)


매수인에 대한 피해의 심각성은 계약조건, 물품의 구매목적, 결함을 치유할 가능성의 유무 등을 고려하여 판단할 수 있다.41) 매도인의 계약불이행의 경우 그 정도에 따라 매수인은 협약의 제45조에 규정된 손해배상청구권, 제46조(1)항의 특정이행요구권, 제46조(2)항의 대체물인도청구권, Article 46조(3)항의 수선권 혹은 제50조의 대금감액권 등 여러 구제수단을 갖게 된다. 그 위반의 정도가 심각하여 매수인의 이익을 실질적으로 해하는 등 본질적 위반의 경우에만 매매당사자는 계약을 해제할 수 있게 되는 바 이는 협약의 틀 내에서 당사자들이 마지막으로 의존할 구제수단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42)

 

2. 본질적 위반의 효과
 전술한 바와 같이 매도인이 정해진 시기, 장소, 형식에 의한 서류교부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그 법적 효과는 제45조에서 규정하는 구제권의 규정에 의해 통상적인 매수인의 구제가 적용된다.43) 이러한 구제권들은 논리적으로 양립가능한 한도 내에서 경합적으로 병존하며 그 중에서 어느 구제권을 행사할지의 선택권은 매수인이 갖는다. 다만 손해배상청구권은 중복구제에 해당하지 않는 것을 한도로 다른 구제권과 병행하여 행사할 수 있고 나아가 다른 구제권과는 달리 원칙적으로 모든 계약위반에 대하여 인정된다.44)


특히 협약의 제49조 제1항은 매수인의 계약해제를 위한 요건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계약위반의 존재만으로는 계약을 해제할 수 없고45) 매도인의 의무불이행이 제25조에서 의미하는 본질적인 경우에 가능하다. 당사자 일방의 계약위반은 그 계약에서 상대방이 기대할 수 있는 바를 실질적으로 박탈할 정도의 손실을 상대방에게 주는 경우에 본질적인 것으로 한다.


또한 제47조1항에 따른 추가기간을 정하여 이행을 최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간내에 이행이 없는 때 혹은 매도인이 이행하지 아니할 의사를 표명한 때에는 본질적 계약위반의 성부와는 무관하게 매수인이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46). 이처럼 협약은 일단 체결된 계약은 가능한 유지하도록 한다는 계약유지의 이념에 근거하여 계약해제권의 성립요건과 행사방법에 일정한 제한을 두고 있다. 

 

<CISG상 신용장조건 불일치서류의 법률효과와 매수인의 구제>

1. 서류교부의무의 위반과 매수인의 구제
신용장에 의한 지불은 매매계약에서 주요한 합의의 하나이며 대금지급은 매수인의 핵심의무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은행에 지급하도록 요청하는 것은 매도인이 하게 되며 일치서류의 제공은 매수인의 대금지급을 위한 전제조건이 된다. 서류의 엄격일치성의 요건은 서류검토의 기준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는 현행 UCP 600의 제14조 (a)로부터 유추될 수 있으며 또한 제27조는 운송서류의 ‘무고장’요건을 규정하고 있다.


서류하자가 사소한 것이라면 매도인에 의해 치유되거나 UCP 600의 제16조(c)항하에서 매수인에 의해 면제될 수 있을 것이다.47) 신용장이 아직 만기 도래전이라면 매도인은 서류를 다시 제공할 수 있으며 서류상의 하자를 치유하기 위한 중대한 제의가 합리적인 기간내에 이루어진다면 본질적인 위반은 발생하지 않고 매수인은 계약을 종료할 권리를 갖지 않는다.48)


협약의 제48조 (1)항에 의해 매도인은 매매계약서에 명시된 시기 이후에라도 하자있는 물품이나 서류를 치유할 추가적인 기회를 가질 수 있다.49) 이는 매도인이 불합리한 지체나 매수인에 대한 불편을 끼치지 않고 치유할 수 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50) 다만 신용장이 일단 만기가 되면 매도인은 이전의 결함을 치유하기 위해 서류를 다시 제시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협약의 제48조 (1)항에 규정된 치유권은 신용장거래에서는 현실적으로 행사되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엄격일치의 원칙은 신용장거래관습의 초기에 비해 오늘날 그 엄격성의 정도가 실질일치 내지는 실질일치의 원칙으로 완화되고는 있으나 여전히 서류거래의 원칙을 지탱해주는 근본토대이다. 그런 한편으로 매수인은 계약하에서 복잡하고 까다로운 신용장명세 등으로 매도인이 의무를 방해해서는 안되며 매도인이 올바른 서류를 인도할 수 있도록 합리적으로 협조할 묵시적 의무를 갖는다.51)


주지할 것은 본질적 계약위반의 성부에 관한 판단에 있어 법원은 서류의 종류에 따라 다른 기준을 취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권리증권 혹은 그와 상환으로 매매대금이 지급되어야 하는 문서를 교부하지 아니하거나, 반면에 그 문서가 계약과 내용상 불일치하는 경우에는 객관적으로 중대한 하자가 인정된다.52) 보험증명서, 검사증명서, 통관서류 및 원산지증명서와 같은 부수적인 서류에 있어서는 매수인이 물품의 활용에 제한을 받는가의 여부 혹은 매수인이 스스로 그 문서를 용이하게 조달할 수 있는가의 여부에 따라 하자의 경중이 달라진다.53) 독일연방법원에서 다루어진 한 사안54)에서 법원은 원산지증명서와 품질증명서상의 하자는 매수인이 스스로 불충분한 서류를 보완할 수 있고 또 그렇게 보완된 서류를 통해 물품을 다른 사람에게 판매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계약하에서 기대했던 것을 본질적으로 박탈당하거나 매수인의 이익이 침해된 것이 없어 본질적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이 거래는 신용장결제방식은 아니었으나55) 본질적 위반을 판단하는데 있어 서류만이 아닌 사실적 상황을 고려한 데 대하여 특히 영국의 보통법계를 중심으로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56) 오랜 해상송부매매 및 신용장중심 서류거래의 관행에 비추어볼 때 매수인이 본질적인 계약위반이 있는 경우에만 통상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원칙은 CIF조건과 같은 서류매매의 전형적인 관행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1978년의 초안57)에 대한 사무국주석(Secretariat’s Commentary)도 ‘본질적 위반’의 개념이 서류매매의 관행에서 떨어져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58)

 

2. 실무적 유의점

서류거래에서 매도인이 제시한 서류들은 계약과 엄격하게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 해상송부매매나 신용장중심거래관습에서 확립된 일반적인 원칙이다. 따라서 당사자들이 신용장에 의해서 지불하기로 합의한 경우 당사자들은 기본매매계약에서의 서류와 관련한 엄격일치성에 묵시적으로 합의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협약이 국제적인 통일매매법으로 기능하게 됨에 따라 해상송부매매 및 신용장거래와 같은 전형적인 서류매매에서 매도인이 엄격하게 신용장의 조건과 일치하는 서류를 제시하지 못한 경우 매수인이 계약을 해제할 권리를 갖는가의 여부는 협약과 UCP를 같이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신용장거래는 서류거래59)이므로 설사 서류상의 하자가 큰 실무적 중요성을 갖지 않는 경우라 하더라도 서류를 거절할 권리를 당사자에게 허용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라는 점에서 협약의 본질적 위반요건은 일응 그러한 관행과 괴리되는 것으로 보인다.60) 그러나 협약의 제9조(2)는 국제매매계약이 무역관습과 관행에 따라 체결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정하는 바 이 점에서 서류매매계약에서의 서류요건에 대한 엄격일치성을 수용하고 있다.61) 즉 별도의 합의가 없는 한 당사자가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관행으로서 국제거래에서 당해 거래와 동종의 계약을 체결하는 사람에게 널리 알려져 있고 통상적으로 준수되고 있는 관행은 당사자의 계약 또는 그 성립에 묵시적으로 적용되는 것으로 본다.62)


이처럼 협약은 국제무역관행을 인정하고 있고 이에 따라 신용장결제에서는 UCP에 의해서도 서류일치성의 원칙이 적용된다. 따라서 본질적 위반요건을 적용함에 있어서도 UCP의 독립성과 엄격일치의 원칙이 우선 적용할 논거를 갖게 되었다.


반면에 그 결과로 협약은 다음의 두가지 점에서 서류매매계약에서의 서류적합성에 관한 쟁점을 노정하게 되었다. 첫째, 결제조건에 따라 서류적합성의 판단원칙이 이원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서류적합성을 판단함에 있어 신용장결제조건이라면 UCP가 우선 적용되는 반면 비신용장조건의 거래에서는 협약과 Incoterms가 적용된다. 협약은 거래의 효율을 추구하는 관점에 있기 때문에 서류불일치가 논란이 된 경우에 그것이 매수인에게 실질적으로 얼마나 손해를 입혔는지를 중요하게 고려하는 점이 계약위반을 인정함에 있어 관건이 된다. 반면에 영국법을 중심으로 발전되어 온 서류매매관습이나 신용장관습에서는 서류의 일치성을 판단함에 있어 훨씬 엄격하다.63) 즉 거래의 사실관계를 배제하고 ‘서류만’을 근거로 일치성을 판단한다. 그러나 협약이 적용되는 비신용장거래에서는 본질적 위반의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서류만이 아닌 사실적 상황을 역시 고려한다. 이렇게 되면 결제가 신용장에 의해 이루어질 때와 비신용장방식으로 이루어질 때 서류적합성의 기준이 달리 존재하게 되는 가능성이 발생한다. 신용장방식의 결제에서는 협약의 일반적인 기준에 우선하여 일차적으로 UCP가 적용될 것이므로 독립추상성의 원칙이 적용되며 이는 서류거래의 성격에 맞게 이루어졌는지의 관점에서 서류적합성을 판단한다. 그런 반면에 비신용장방식에서는 협약과 Incoterms를 기준으로 하되 거래의 효율성을 도모한다는 관점에서 서류의 불일치성이 과연 얼마나 실질적으로 매수인의 이익을 해하였는지를 고려할 것이다.


이 점에 대해 협약의 자문위원회(CISG-AC)도 서류교부의무의 이행기준이 신용장과 비신용장, 원자재상품시장과 공산품시장에서 달리 적용될 수 밖에 없는 점을 인정한다. 결국 실무자들은 서류매매, 원자재상품, 신용장등에는 엄격일치의 원칙을, 부수적인 서류에 대해서는 매수인의 이익을 해하였는가 등을 염두에 두고 서류취급에 임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특히 오늘날 국제무역의 결제가 신용장보다는 비신용장방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므로64) 매매당사자들은 비신용장방식인 경우 서류보다는 사실관계에 무게를 두는 이러한 관습을 숙지하고 그에 맞는 거래행태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둘째, 결제조건에 따라 서류적합성 여부에 대한 판단자가 달라지게 됨에 따라 같은 하자를 놓고서도 서로 다른 판단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졌다. 신용장결제인 경우 은행이 주된 판단자가 되는 반면에65) 송금 등 대부분의 비신용장방식거래에서는 서류가 매도인으로부터 매수인에게 직접 송부되므로 매수인이 서류적합성을 최종 판단하게 된다. 이는 불가피하게 매수인의 이해관계와 주관이 개입될 소지가 있음을 의미한다. 예컨대 특정서류가 누락되었을 때 신용장방식에서라면 시황이나 매수인의 사정과 무관하게 일차적으로 매입은행이 거절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비신용장거래에서라면 이 서류누락으로 매수인의 이익이 해하였는지를 고려하여 서류교부의무의 위반이 결정될 것이다.66) 이처럼 매수인이 신용장거래에서의 매입은행처럼 ‘서류만을 근거로 “객관적 서류의 적합성을 판단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남긴다.


셋째, 신용장결제방식일 경우 매매계약서에는 신용장조건만 명시하고 서류에 관한 요건은 신용장에 명시됨으로써 매도인이 제공해야 할 서류명세가 규정되었으나 오늘날 주된 결제방식인 후송금(O/A)조건의 거래에서는 계약서에 서류에 관한 지시가 보다 명료하게 나타날 필요가 있다. 신용장거래에서는 서류의 종류, 형태, 속성 등에 대한 요건이 신용장자체에 명시되고 그 적합성에 대한 판단기준이 UCP에 의해 구체화되었으나 비신용장조건에서는 그러한 상세한 지침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매매당사자들 스스로가 서류명세의 설정에 유의함으로써 불확실성과 분쟁가능성을 최소화해야 한다.


넷째, 실무적으로 어떤 서류조건의 위반이 본질적 위반에 해당하는가를 실무자들의 계약에서 분명하게 합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협약은 당사자들로 하여금 협약의 적용을 배제하거나 어떤 규정의 효력을 무시 혹은 변경하도록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67) 당사자들의 필요에 따라 계약서에 서류와 관련해서 특정조건을 위반한 경우 매수인으로 하여금 계약을 종료시킬 수 있도록 하는 명시조항을 둠으로써 해당 조항의 이행실패를 본질적인 위반으로 간주하여 본질적 위반에 해당하는지의 논란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당사자들이 계약에서 침묵할 경우 협약의 일반원칙이 적용될 것인 바 협약은 기본계약의 심각한 위반시에만 해제를 인정할 것이고 이것이 당사자들의 의사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래상황이 일반적으로는 계약의 해제를 정당화시키기에 적합하지 않아 보일 수 있는 사소한 서류하자라도 매수인에게 계약해제권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한 경우 당사자 자치에 의해 본 협약의 적용을 배제하는 제 6조와 당사자들이 합의한 관습과 관례에 의존할 수 있는 협약 제9조에 의해 본질적 위반을 정당화시킬 수 있다. 이렇게 당사자가 삽입하는 조건은 당사자로 하여금 협약의 적용을 배제하고 엄격이행의 원칙과 같은 무역관행이 계약에 포함될 수 있게 해주고 그들의 의도대로 그 조항을 이행함에 있어 사소한 결함도 본질적인 위반이 성립되게 할 것이다.

허 은 숙 건양대학교  전자상거래무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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