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일자의 모든 매스컴은 석선장의 의식회복에 대한 기사로 넘쳐흘렀다. 이는 분명 온 국민의 염원과 노력이 결실을 이루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런데 아직도 매체의 관심은 ‘에덴만의 여명’ 작전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한 번 쯤 선장이란 직업에 대하여 알아보고 왜 에덴만 여명 같은 작전이 필요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


이번 사건에 있어서 해상수송을 우리의 생명줄인 밥이라고 하면 청해부대의 파견이나 그에 따른 작전 등은 그저 숟가락의 일부일 뿐이다. 이는 공자가 제자인 자공이 정치에 관한 질문에 답하는 내용에도 잘 나타나 있다. 공자는 정치는 세 가지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 세 가지 기능은 ‘첫째로 백성들이 경제적으로 잘살게 하고, 둘째로 백성들을 외부의 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군비를 튼튼히 하고, 셋째로 백성들이 믿게 하는 것’이라고 상세히 지적했다. 이 세 가지 기능 중에서 우선 순서를 묻는 자공에게 공자는 ‘믿음, 경제, 국방’의 순서라고 밝혀주었다. 이것은 정치의 치도(治道)를 묻는 중요한 대목이며 경제와 신뢰의 중요성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국민들 중에 이렇게 중요한 국가경제에서 해운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아마 매우 낮은 수준일 것이다. 해운산업 자체가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아무리 언급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다른 산업도 중요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직접적으로 끼치는 영향은 피하고 해운산업이 다른 산업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알아보자. 우선 우리의 주력 기업만 언급하면, 우리나라 4대 조선소, 5대 정유사, 포스코, 현대/기아차, 삼성/LG전자, 한국전력 등은 해상운송을 통한  원자재 수입이 불가능하면 아예 존재 자체가 어렵거나 매우 힘든 경쟁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원자재를 수입하는 제조업, 완성된 제품을 세계시장에 수출하는 무역업, 해외건설이 주를 이루는 기업 등이 해상 수송로를 상실하게 되면 원가 경쟁력에서 뒤쳐져 현재와 같은 기업으로서의 생존여부가 불투명했을 것이다. 또한 해상 수송은 우리 생필품 공급에도 영향을 미친다. 얼마 전 자연 재해로 배추 파동이 발생했을 때 값싼 중국산 배추를 제때에 공급하여 농산물 파동을 안정시켰다. 만약 해상운송이 어려워 육상 수송이나 항공 수송만으로 배추를 공급하였다면 그렇게 싼값에 제때의 공급이 가능했을까?


우리에게 바다가 없었다면 아마 우크라이나, 몽골, 우즈베키스탄 정도의 국가로 머물러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해상운송의 야전군 사령관이 선장이다. 선장은 통상 배에서 캡틴이라고 부른다. 배는 움직이는 영토로 주로 외국과의 교역을 위하여 항해하며 외국인을 상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선장보다는 캡틴이라는 칭호가 훨씬 친숙하다.


그러면 우리의 캡틴은 누구인가. 캡틴은 지금도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망하는 최고의 직업이며 배에서는 어느 누구보다도 높은 위치로 존경을 한 몸에 받는다. 영화에서 보는 캡틴의 긍정적인 모습은 선교갑판에서 노을 지는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보며 파이프 담배연기를 뿜어내는 낭만적인 모습이다. 또 지금은 고인이 된 어느 원로 해운인은 이렇게 회고하였다. “1960년대 어려웠던 시절 한국인의 미국 이민생활은 푸대접과 외로움 그 자체였다. 그런데 어느 날 산더미 같이 큰 선박이 태극기를 달고 입항하여 달려가 보니 한국인 캡틴이라는 사람이 코쟁이들에게 호통을 치며 명령하는 것을 보고 가슴이 벅차 눈물이 흘렀다.” 이 일화는 그 당시 캡틴이 해외 이민자들에게는 일시적이지만 위안을 주는 무관(無官)의 외교관이었음을 입증하는 하나의 예이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모습 뒤에 지도자의 고독이 숨어있다. 많게는 수 조(兆)원에 달하는 자산과 20여명 가까운 생명을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지키면서 최소의 비용으로 목적지까지 항해(航海)해야 하는 최고의사결정자의 고뇌가 그것이다.

 

오늘날 외부의 위험은 거의 자연조건으로 부터 오는 재해이지만, 때론 석 선장처럼 해적과 같은 인위적인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도 있다. 과거 통신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오로지 캡틴 자신의 경험과 지식만으로 이 난관을 극복해야 했으니 그 의사결정의 고통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였을 것이다. 지금은 전설 같은 이야기지만 과거 1757년 6월 플래시 전투 소식은 케이프항로를 항해하는 선박에 의해 1758년 2월에야 영국에 알려졌고 1821년 세인트헬레나에서 나폴레옹이 사망한 소식이 런던에 도착하는 데에는 두 달이 걸렸다. 조지워싱턴의 죽음이 뉴욕에 전달되는 데에는 7일이 걸렸지만, 케네디 암살은 미국민 68%가 30분 이내에 소식을 들었다. 통신의 기술이 이렇게 발달하면서 이제는 실시간으로 모든 의사결정정보를 참조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외로운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고통은 줄어드는 대신에 본사로 부터 간섭 받을 일이 많아져 과거와 같은 전성시대는 지나갔다는 자조의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는 통신의 발달과 정보의 공유로 모든 분야에 공통적으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대통령의 권한, 국가정보원의 권한, 판검사의 권한, 어느 것 하나 예전의 권력을 누리는 분야는 없다.


그러면 캡틴들의 역할은 이것이 전부였을까?
해기사(海技士)들은 업종의 특성상 외국과의 관계가 필수적인 만큼 초창기부터 타 산업 대비 비교적 국제적이고 조직적이며 세련된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이들이 해운산업에 종사하면서 경험한 지식은 해외여행이 극도로 제한된 일반인이 접하기 어려운 것들이며 당시에는 새로운 것일 수밖에 없다.


이들의 세련되고 선진화된 해상 경험이 육지에서는 국가의 국방, 외교, 학문, 경제 분야 등에서도 일정한 역할을 하는 계기가 된다. 특히 해운산업에서는 해기기술 분야는 물론이고, 해운경영, 해운교육, 해운정책 등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하며 불모지의 해운을 세계 5대 해운국으로 발전시키는 초석이 되었다.


오늘의 캡틴은 누구인가. 해운계 학교를 졸업하고 일정기간동안 세련된 경험을 쌓고 나면 10년 내외에 캡틴이 될 수 있다. 동료들은 아직 회사의 과장정도의 직에서 힘겹게 살고 있을 30대에, 수천억에서 조(兆)대에 이르는 자산을 관리하며 년 간 억(億)대의 소득이 있는 최고경영자, 그가 캡틴이다.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이들이 해상에서 취득한 해기(海技)경험은 육지의 많은 직업군에서 환영을 받고 있다. 또 그들만이 해기(海技)기술의 절정체이며 화룡정점인 도선사(導船士)라고 하는 도선고시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이들은 배에서 존경받는 캡틴들이 존경하고 선망하는 또 하나의 정점이며 대한민국 최고 직업 중의 하나이다.


캡틴의 사전적 의미는 “장, 지도자, 지휘관, 명장, 지도자, 대 실업가, 거물” 이란 단어를 포함하고 있다. 캡틴 석은 공자가 말한 정치의 제2의 치도(治道)인 경제의 도(道)를 완수하고 제3의 치도(治道)인 국방의 도(道)도 도와주었으니 캡틴으로서 제대로 애국을 하였다. 그러니 그의 업적은 해군부사관 정복이 아니라 상선사관 캡틴의 정복이 훨씬 어울리고 값진 것임을 온 국민과 매체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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