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제기
우리나라의 해운, 조선 및 물류산업은 눈부신 성장을 해왔다. 선박보유량으로 세계 6위, 조선산업은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부대산업도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선급(KR)과 한국선주상호보험조합(Korea P&I)의 성장도 하나의 좋은 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해상법과 해사법정이 활용되는 빈도는 개선되지 않고 답보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해운산업은 영국을 중심으로 발달되어왔고, 그 전통에 따라 해상법과 해상보험의 중심지는 아직도 영국이라고 하여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전통에 따라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사용하고 영국법원과 영국해사중재를 분쟁해결 장소로 지정하는 관행이 오랫동안 지속되어오고 있다. 그리하여 대형 선박회사의 보험법무팀의 직원들은 우리나라 해상법의 내용보다는 영국법의 내용에 더 관심을 많이 기울이고 영국변호사와 통신을 주고받는다. 이에 따라 상당한 법률비용이 영국 등 해외로 나갈 수 밖에 없다. 특히 해상보험의 경우에 우리나라 대법원은 우리나라 상법의 해상보험 규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준거법으로 약정한 1906년 영국해상보험법(MIA)의 규정을 해석하는 많은 판례를 만들어내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관행들이 이제는 변화되어야 한다는 점을 신념으로 삼고 있다. 해상운송계약과 용선계약은 상대방 혹은 보험회사가 외국 기업일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우리나라 법정과 우리나라 법이 준거법으로 사용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부분에까지 우리나라 법과 우리나라 법정을 반드시 사용하도록 되어야 함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선박회사와 우리나라 대형화주 사이의 장기운송계약, 우리나라 선박회사가 우리나라 조선소에 선박을 발주할 때 사용되는 선박건조계약, 우리나라 선박끼리의 선박충돌사고에서의 손해배상의 문제 등과 같이 완전히 우리나라만의 요소만이 개입된 경우에는 반드시 우리나라 법과 우리나라 법정이나 중재를 이용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고 본다. 관행적으로 업계에서 사용되던 계약서 등을 아무런 고려없이 사용하게 됨으로써 그 계약서에 존재하는 영국준거법과 영국해사중재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어 실제분쟁이 발생한 경우에는 이에 구속되고 만다.


우리나라 법과 법정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수요자에 해당하는 선박회사 등이 우리 법과 우리 법정이 안정적이고 도움이 됨을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 

 

현황조사 및 타개책 제시
사실 많은 분들이 현재 우리나라 해사법정이 해운산업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변화가 없음을 지적하면서 해사중재 등의 창설을 주장하여왔지만, 우리나라 관련 사건이 외국에서 처리되는 비율, 왜 외국에서 처리될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타개책은 무엇인지 학술적으로 조사하여 발표된 자료는 필자가 알기로는 없다. 선박회사의 90%사건은 영국으로 간다, 일본은 50%가 자국에서 처리된다는 등의 추측만 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한국해법학회는 이번 9월에 해사법정 활성화를 위한 캠페인을 하는 일환으로서 선박회사의 해상사건 처리에 대한 각종 자료를 수집하고 타개책을 연구하여 내어놓는 작업을 하고 있다. 시의적절하고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외국판례, 입법을 신속히 소개하는 장치의 필요성
일본의 해운집회소를 주목하자. 일본의 해운집회소는 해사중재의 사무국의 역할도 하면서, 해사법연구와 저변확대를 위한 작업을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하여왔다. 한 달에 한번 씩 동경과 고베에서 최신의 영국의 해상법판례 등을 발표하고 토론한다. 3개월에 한번 씩 해사법 연구회지를 발간한다. 100여 페이지 분량의 이 책자에는 최근의 영국, 미국 그리고 일본의 해상법 판례를 소개하고 현재 쟁점이 되고있는 내용을 소개한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이러한 제도와 모임은 없다. 한국해법학회와 기타 개인적인 모임이 몇 개 있기는 하지만 해상법관련 정보를 신속하게 업계에 제공하는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 해운집회소의 이러한 활동은 일본선박회사들에게 상당한 이익을 가져다준다. 예컨대, 중요한 해상법판례가 영국에서 나왔다고 하면 여러 대형선사가 모두 이 판례에 대한 번역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영국의 변호사에게 의견을 구한다고 하자. 일본과 같이 신속하게 내용을 분석하여 소개하면 업계의 모든 분들이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니, 다른 분들은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나라 전체로 보면 상당한 시간과 비용의 절약을 가져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학계와 업계가 힘을 합하여 일본과 같이 외국의 해상법판례와 우리나라의 판례, 국제적인 입법동향을 신속하게 지속적으로 업계에 공급하는 조직적인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이러한 조치 없이는 한국법정이 활성화될 수 없다고 본다.

 

선박충돌과실비율 산정의 경우
어떤 분들은 주요 해운국에는 존재하는 해사법원과 해사중재 창설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이는 해묵은 과제이다. 물론 이러한 제도를 창설하면 한국법정의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제도의 도입도 우리나라에서 처리되는 해상사건의 숫자가 일정규모가 될 정도로 늘어나지 않으면 도입이 어렵다. 현 제도를 잘 활용하는 것도 지혜로운 일이다.    


우리가 쉽게 관심을 갖고 시작하여볼 수 있는 분야는 선박충돌의 과실비율 산정이다. 한국선박끼리의 선박충돌사건이나 중국, 일본 선박과의 충돌사건에서 과실비율산정을 우리나라에서 처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선박충돌사건에서 과실비율 산정에 대한 상당한 장기를 가지고 있다. 우선 해양안전심판원이 과실비율(원인제공정도) 산정에 대한 지침을 마련하여 시행한지 이미 10년 가까이 되어 노하우가 축적되어있다. 해양안전심판원을 거치지 않고 민사법원에 바로 가는 사건에 있어서도 전문심리위원 혹은 감정을 통하여 전문가들이 과실비율을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제공할 수 있고 또 현재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굳이 영국으로 가서 처리할 필요가 없다. 필자와 같은 학자도 전문가의 한명이고, 해양안전심판원의 심판관을 역임하신 분들, 업계의 보험법무 담당자들, 해상변호사들 중에서도 명망있는 분들이 많다. 한국해법학회 혹은 중앙해양안전심판원 혹은 심판변론인 협회 등에서 과실비율 제공을 위한 위원회를 만들어 이러한 수요에 부응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중재가 될 수도 있고 한국의 법정을 통하는 방법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모두 우리나라에서 현재 실시되고 있는 제도로서, 선박충돌과실비율 산정의 전문가들이 중재인으로서 혹은 감정인으로서 혹은 전문심리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를 활성화하여 우리법과 우리 법정이 활용되는 분야를 점차 확대시켜 나가보자. 선박회사와 보험회사는 법률비용을 절감하게 될 것이고, 우리 해상법은 연구와 활용의 기회가 많아짐으로써 해상법이 발전할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는 동북아시아의 해상사건 처리의 중심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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