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O 사무총장 첫 도전의 의의와 과제

 

 
 
해운·조선산업과 관련된 국제기구로는 IMO(국제해사기구)와 IOPC FUND(국제유류오염손해보상기금)이 있다. IMO의 법률위원회는 선주책임제한조약을 제정 및 개정하고, FUND는 유류오염손해보상을 담당하므로 이 두 기구는 해상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난 6월 28일 런던의 IMO에서 실시된 차기 사무총장선거에 출마한 채이식 교수는 낙선하였다. 그가 지난 17년간 IMO에 기여한 공헌(그는 1994년이래로 IMO 법률위원회와 IOPC FUND에 한국대표의 일원으로서 참석하였고, 법률위원회 의장 및 FUND의 집행위원장을 역임하였다), 해상법 교수이자 한국과 영국 양국의 변호사출신인 그의 개인적인 역량과 우리나라 해운·조선 산업의 위상을 고려한다면, 아쉬운 패배였다. 


당선자를 배출한 일본은 20년 전부터 자국민을 IMO 사무국 직원으로 진출시키고, 사무총장배출을 위하여 심혈을 기울여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운 1위국으로서의 위상과 경제대국으로서의 지위를 십분 발휘하여 일본은 각국에게 장학금 지원, 공익기금 제공 등으로 탄탄한 지지기반을 닦아왔다. 선거결과에 대하여 일부 언론에서는 부정적인 코멘트를 달기도 하였다. 그러나 채후보의 긴 선거과정을 지켜본 필자로서는 이번 선거가 많은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평가하고자 한다.

 

사무총장 선거 출마의 긍정적 메시지

첫째, 한국이 IMO 사무총장직에 도전할 정도로 국가적 위상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1960년대만 하여도 선박이라고는 몇척 없었고 선박건조도 미미한 상태였다. 그러던 것이 30년 정도 지나면서 우리나라는 선복량 보유 10위권 이내, 선박건조 1위가 되면서 IMO 이사국(A그룹)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1980년대만 하여도 IMO 협약제정이나 기술회의에 우리나라는 참석하지 못하고 단지 결과만을 국내에 적용하는 수동적인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차츰 회의에 참석하여 사안을 파악하는 참여자가 되었다.

1990년대에 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또 문서를 제출하는 단계에 접어든 후, 비로소 2000년대에 들어서 회의체의 의장을 배출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1년 이번에 사무총장직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출중한 경력과 경륜을 가진 후보자를 사무총장 후보로 하여 국가적인 역량을 동원하여 선거운동을 펼친 것은 그 자체로서 높아진 우리나라 위상을 말하는 것이다.  


둘째, 수석대표의 찬조연설과 후보자의 연설은 6개국중 최고수준이라는 찬사를 각국 대표로부터 받았다는 것이다. 특히 채 후보는 쉬우면서도 내용이 담긴 그리고 유머가 있는 명연설문을 작성하여 유창한 영어로 연설함으로써 100여개국에 가까운 대표단으로 하여금 비록 국가간의 경쟁에서는 졌지만 연설에서는 1등이라는 강한 인상을 각국에 심어주었다. 지지연설을 한 수석대표의 연설도 뛰어났다. 이것은 한국이 비영어권이지만 영어구사에 능통할 뿐만 아니라 IMO 관련 사안의 파악과 IMO의 이상과 현실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이해와 관심도 정상수준인 점을 알리는 것이었다. 채 후보는 연설에서라도 1등을 하여야 된다고 하면서 연설문의 작성에도 많은 정성을 쏟았다. 이들의 연설문은 우리나라 정부의 다른 국제기구 선거에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후배들에게 IMO 사무총장등 관련 선출직등에 대한 진출의 기회가 주어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알다시피 국제기구는 지역안배가 있기 때문에 1국가에서 사무총장이 배출되면 아마도 수십년 내에는 다시 같은 국가에서 총장이 배출되지 않을 것이다. 채 후보의 실패라는 동전의 다른 면을 보게 되면 후배들에게 사무총장 도전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IMO에 관심을 갖는 패기있고 실력있는 많은 젊은 분들이 뜻을 세우고 준비하고 국가도 체계적으로 지원하면 우리나라도 늦어도 20년 이내에 사무총장을 반드시 배출할 수 있을 것이다.


IMO 사무총장의 배출은 해운계는 물론 정부로 보아서도 국가적인 큰 사업이다. 첫번째의 도전에 우리는 실패하였다. 평창동계 올림픽의 성공도 두 번의 실패를 딛고 일어선 것이다. IMO 및 IOPC FUND의 선출직에 당선자를 배출하기 위하여는 아래와 같은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좋다.

 

 

국제기구 선출직 당선자 배출을 위한 제언 


첫째, 장기적인 플랜을 짜야 한다. 1-2년 계획이 아니라 5년, 10년 계획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IOPC FUND에는 법률자문역(Legal Council)이라는 제2인자 혹은 제3인자의 자리가 있는데 일본인들이 4대째 독식을 하고 있다. 일본은 국제기금 담당 과장급을 회의에 대표로 파견한다. 1-2년이 지나면 이 사람이 국제기금 총회 등의 부의장이 된다. 전임 법률자문역이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면 이 사람이 공개시험에 응시하여 그 자리에 선발되게 된다. 과장은 법과대학 출신이고 IOPC FUND에서의 경험도 있기 때문에 쉽게 선발이 된다. 이번 사무총장 선거에서도 일본은 한 사람의 후보를 일찌감치 정하였고 IMO의 국장자리에 있었던 후보 본인의 직원신분을 이용한 지속적인 이미지 심기와 일본정부의 경제적인 지원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내부적으로 두 명의 후보자가 경쟁하였고 후보가 등록할 때까지도 내부정리가 되지 않아 전력이 분산된 아픔이 있었다. 


둘째, 우리나라 공직사회의 문제점인 순환 보직제를 극복하여야 한다. 담당 공무원이 곧 다른 곳으로 전근을 가기 때문에 전문성을 기를 수가 없다. 국토해양부의 주무관 사무관들에게 법학석사과정에서 법학공부를 하게 하면 국제기구 전문직에 진출할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민간인 전문가를  활용하여 회의 자체의 연속성을 이어가는 것도 하나의 타개책이 될 것이다. 


셋째, IMO등 국제기구에 진출하고자 하는 후보를 선발함에 있어서는 공개적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공정한 선발과정이 있어야만 후보자의 정당성이 확보되고 다른 후보자의 승복을 받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후보자는 선거일 2년 전에는 내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내정된 자는 비록 등록은 하지 않았지만 내정자로서 선출직의 당선을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도록 하는 의무를 명시적으로 부과하여야 한다. 후보자와 경선을 거친 사람이 선거와 관련된 직책에 계속하여 머물지 않도록 인사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비록 민간인이 후보로 선정되었다고 하더라도 정부는 당선을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가능한 모든 외교적 역량을 동원하여 선거운동에 나서야 한다. 이러한 의무를 해당 국가기관에 부과하여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하여주어야 한다. 상기의 내용을 담은 가칭 ‘국제기구 선출직 진출을 위한 규정’을 법률로 혹은 내규로라도 제정하면 좋을 것이다.


우리나라 해운업계와 조선업계로서는 처음으로 국제기구의 수장자리에 도전하였었다. 외형적으로는 실패하였지만 그것은 실패가 아니고 성공을 위한 하나의 초석이 될 것이다. 채이식 교수의 17년에 걸친 IMO 활동도 그의 선거실패로 막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과정에서 투표권을 가진 이사국 30개국을 순방한 열정과 선거일에 보여준 명연설은 후배들에게 온전하게 전달될 것이다. 훗날, 채이식 교수의 도전이 있었기에 오늘의 성공이 있다는 한국출신 사무총장의 수락연설을 기대한다. 채이식 후보를 비롯하여 선거를 위하여 노력하신 정부 당국자 및 민간 후원자들에게도 해운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 동안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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