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게는 개방정책 실현의 창구로, 남한에게는 중소기업 생산공동화의 대안으로 탄생한 ‘개성공업지구(이하 개성공단)’가 과연 남북한 경제협력의 미래에 희망이 될 수 있을까?

 

 “개성공단 생산활동 잘 하고 있어요”

 

8월 22일 복합운송업협회 개성공단 견학단 110명 방북
물류업계 “별 기대없이 간 개성서 큰 기대 안고 왔다”
공단내 13개사 생산가동 활발, 27개사도 공장건립중


북한에게는 개방정책 실현의 창구로, 남한에게는 중소기업 생산공동화의 대안으로 탄생한 ‘개성공업지구(이하 개성공단)’가 과연 남북한 경제협력의 미래에 희망이 될 수 있을까?


3년전인 2003년 6월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던 개성공단의 착공식 이후, 2004년 12월 첫 생산품인 리빙아트의 주방가구들이 남한에 출시되면서 개성공단의 생산활동이 정상 가동되고 있음이 알려졌다. 이후 개성공단은 3단계 개발계획의 1단계 개발을 꾸준히 진행해 왔다. 오전 9시 30분과 오후 4시 30분경 자유로를 통해 도라산으로 향하는 인근도로에서는 컨테이너를 실은 화물차들이 줄을 지어 개성을 오가는 행렬을 매일 볼 수 있다. 개성공단 생산품의 물류현장이다.


복합운송업협회가 주관해 8월 22일 시행한 ‘개성공단 방문단’ 일행으로 참가해 50년간 남한공단으로 운영되는 개성공업지구 현장을 둘러보았다. 일행 전원이 첫 방북자들이어서 두려움과 설렘으로 들어선 개성은 세관에서의 빠르고 편안한 통관과 같은 언어를 쓰는데서 오는 동질감 때문에 생각보다 친숙했다. 참가자들은 비무장지대를 넘어 북한을 다녀온 편안한 하루의 특별한 여행에 벅찬 감회를 경험했다. 

 

복합운송업협회가 개성공단의 물류현장을 견학한다는 목적에서 모집한 개성공단 시찰단은 처음 기획단계에서 차량 2대 인원을 계획했다. 그러나 시찰단 모집공고가 나가자 참가신청이 쇄도하는 바람에 107명까지 신청을 받아 협회직원까지 모두 110명을 실은 3대의 차량이 서울을 출발했다.

 

공단 시찰단 신청 쇄도해 110명 출발
모집공고가 나간 이후 북한의 미사일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에 혹시 시찰행사의 차질을 우려했는데, 아무 지장없이 예정된 일정대로 개성공단을 다녀올 수 있었다. 개성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다른 기관에서 추진했던 시찰행사는 주최측의 취소사례로 그동안 전혀 없었다고 한다. 개성공단 방문 자체도 불안해하는 심리가 작용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우리일행은 개성공단을 관리운영하는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이하 관리위원회)’로부터 기대이상의 환대를 받았다. 북한의 법인이지만 대부분의 인력이 남한의 인력으로 조직돼 있는 관리위원회측은 그동안 ‘개성공단은 문제없냐’고 쇄도하는 문의에 답답하고 속상했다고 하소연했다. 개성공단은 미사일 정세와 관계없이 안정적이고 편안하게 생산활동을 하고 있는데 대내외 언론들에 의해 불안심리가 확대과장되었다는 지적이다.

 

광화문 출발 1시간만에 도라산 CIQ 도착

견학단은 경복궁 주차장에서 오전 8시 30분까지 집결했다. 김인환 복합운송업협회장과 정은구 삼영익스프레스 회장, 강부부 동신상선 회장, 신백용 우진글로벌로지스틱스 대표, 어윈에이취비트마이어 퀘네앤드나겔 대표 등 포워딩업계의 CEO들이 대거 참가해 개성공단에 대한 관심도를 확인해 주었다.


인간사 어떤 행사든 진행을 방해하는 X맨은 있기 마련. 일행의 한사람이 늦는 통에 견학단은 예정시간을 넘겨 9시 15분경 광화문을 출발해, 차내에서 간단한 방북교육 비디오를 시청하면서 자유로를 통해 통일전망대를 지나 남한의 CIQ(세관)가 위치한 도라산에 도착했다. 1시간 가량 소요된 것 같다. 북한방문은 일정한 시간내에서 오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엄수는 매우 중요하다.


도라산의 세관건물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경의선 복원을 대비해 만들어진 도라산 역사가 건립돼 있다. 영화 ‘한반도’에서도 나왔던 바로 그 역사였다. 일행의 수속완료를 기다리며 사진촬영을 하는 도중에 때마침 도라산역에 진입하는 열차를 볼 수 있었다. 하루에 2차례 출퇴근 열차가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언제 실현될지 모르지만 TKR(남북횡단철도)의 시발점 현장에 선 감회가 새로웠다.

 

분사군계선 통과하며 일행 감격의 ‘박수’
남측 세관에서 ‘출경’수속을 밟고 일행은 10시 40분경 남북한 군부측에서 나온 호위차량을 따라 비무장지대로 진입했다. 비무장지대를 통과하기 위해서 일행이 탄 차량은 노란색 깃발을 달아 ‘비무장차량’임을 표시했고 번호판은 앞뒤를 모두 가렸다. 방문단의 소지품 가운데 휴대폰과 MP3 등은 우리측 CIQ에 맡겨놓고 출경해야 했다.  


비무장지대는 남한과 북한이 각각 2km로 총 4km이다. 비무장지대안의 남한측 도로에 놓인 가로등에는 한반도기의 엠블럼이 눈에 들어왔다. 일행중 한명은 안내를 맡은 현대아산 직원에게 군사분계선을 재차 확인하며, 그곳을 통과하자 박수를 치며 ‘벅찬 감회’를 표현하기도 했다. 어찌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절대 가볼 수 없는 금지의 땅으로 여겼던 비무장지대를 통과해 북으로 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비무장지대에도 남과 북의 차이는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삼림이 무성한 남측의 지대와는 달리, 북측에는 나무를 찾아보기 어렵고 수풀만이 무성했다.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또 백두산의 한쪽편에서 북한땅을 멀리 건너다보긴 했지만, 직접 밟아본 것은 처음이다. 기자 뿐만 아니라 함께 참가했던 110명의 일행 모두가 북한 방문은 초행(初行)이었다. 반세기 넘게 분단되어 서로 다른 체제속에 살아온 탓에, 가깝지만 마음대로 갈 수 없는 북한나들이가 일행 모두에게는 아주 특별했을 것이다. 내게도 그랬다. 존재만 알고 있던 궁금했던 친척을 방문하고 온 기분이 이와 같으리라. 10시 50분 남측 세관을 지난 지 10분만에 북측 CIQ에 도착했다. 비무장지대를 지나는 내내 반세기동안 외롭게 남북을 이어온 경의선 철로가 놓여있다.

 

북측 CIQ 신속처리, 세관원 친근감 표시
해외여행을 하면 가장 먼저 이국임을 느끼게 하는 것은 세관통과 절차다. 같은 민족이지만 외국의 존재보다도 더 멀었던 북한으로 들어가는 개성세관의 수속절차는 정말 한민족임을 절감한 경험이었다. 몸수색을 하며 ‘처음 방문이십니까’라고 묻고 핸드백속의 소지품을 확인하며 ‘이것 디저털 카메랍니까’라고 친근감있게 묻는 세관요원의 말에서 긴장이 풀리고 허탈하기까지 했다. 북한의 방문에는 통일부에서 발행하는 ‘북한 방문증’이 여권을 대신한다. 방문증을 확인하는 과정에서도 ‘다음’ ‘몇호차 누굽니까’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교차했다. 세계 어느나라도 함께할 수 없는 언어를 같이 쓰면서 반세기 이상, 또 앞으로 얼마가 더 될지 모를 기간동안 하나가 될 수 없는 우리민족의 슬픔이 아련하게 느껴졌다. 

 

수속을 마치고 세관건물을 나오자 바로 앞에 개성공단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곳에서 한참을 더 가야 도착하는 줄로만 예상했던 터라 개성이 서울과 지척에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랬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구나.

 

도라산서 10분거리에 개성공단 ‘지척이었네’
견학단이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www.kidmac.com)에서 나온 직원들의 인솔을 받아 처음 방문한 곳은 관리위원회였다. 개성공단의 국제경쟁력 확보를 위해 운영방침을 정하고 남북한 당국 등 관련기관과 입주기업들과 최적의 기업입주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조직된 관리위원회는 북한법인이다. 기획조정실과, 사업부, 공단관리부, 출입사업부, 협력부, 서울지사로 구성된 관리위원회에는 남과 북의 인력이 총 70여명 근무하고 있다. 협력부의 경우 전원이 북한측의 인력으로 구성돼 있고 나머지 부서의 인력은 대부분 남한인력이다.

미사일사태 “기업활동 전혀 지장없다”


관리위원회의 김동근 위원장은 일행을 맞은 인사말을 통해 “미사일 사태이후 첫 방문객”이라며 환대했다. 김위원장은 “그동안에도 개성공단은 안정적으로 편안하게 기업활동이 이루어졌다. 북측에 있는 공단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는데, 남한과 해외에서 많이 걱정했다. 원자재 공급에는 차질이 없느냐 묻는 전화가 잇따라 입주기업들이 오히려 안심시켰다. 이번 사태를 기회로 경쟁사가 틈새공략을 하는 모양까지 볼 수 있었다”면서 흐트러짐 없이 생산활동이 계속되고 있음을 강조했다. 또한 있는 그대로를 보고 주변에 전해달라고 부연했다. 김 위원장은 “미사일 사태는 오히려 개성공단이 정치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음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수 있어 오히려 잘 됐다”고 관리위원회는 긍정적으로 수용하려 한다고 말했다.

 

공단 내에선 사진촬영도 자유롭다
2002년 11월 북한이 ‘개성공업지구법’을 발표하고 2003년 6월 공단 착공식에 이어 2004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를 조직해 10월 개소하면서 개성공단은 생산활동과 그 지원활동이 본격화되었다.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측의 설명자료에 따르면, 2000만평 규모의 개성공단부지는 현대아산이 북측으로부터 50년간 사용권을 얻은 북한내에 소재한 남한공단이다. 공단 800만평과 배후지원단지 1,200만평(물류단지와 상업지구, 관광지구)을 2012년까지 3단계에 걸쳐 완공한다는 것이 사업계획이다.


실제 일행은 개성공단내에서 북측 근로자들에게 근접을 제한하는 요구외에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았다. 디지털 카메라는 사진촬영도 자유롭다. 단 북한 민간인들이 거주하는 풍경을 차창을 통해 찍은 사진은 세관에서 직접 확인시 발각되면 미화 100달러의 벌금을 물고 그 자리에서 삭제된다. 일행도 개성에서 나오는 중에 금지된 사진을 찍은 사실이 드러나 벌금을 요구받았는데, 실랭이를 벌이다가 나중에 송금해주고 돌려받기로 한 해프닝이 있었다. 

 

근무자 8,583명, 북 근로자 7,984명

 

개성공단에는 현재 관리위원회 사무실과 현대아산, 토지공사, 한국전력, 식당, 은행(우리은행), 편의점(훼미리마트), 병원(그린닥터 개성병원) 등이 입주해 있으며, 입주기업도 13개사가 생산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 개성공단 내에서 근무하는 인원이 북측 근로자만해도 8,000명에 달한다. 올해 7월말 현재 공단관계 근무자는  북측 근로자가 7,984명 남측 근로자가 599명으로 총 8,583명이다. 북측 근로자들의 교육수준은 높은 편이다. 고졸이 81%이며, 전문대학졸업자가 9.7%, 대학졸업자가 9.3%를 차지하고 있다.


이같은 교육수준 때문에 개성공단 근로자들의 기술습득은 외국의 다른지역 현지근로자 교육기간보다 휠씬 단축된다고 한다. 여기에 언어의 장벽이 없다는 것이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북측 근로자들의 임금은 월 50.7불 가량(한화 5-6만원)이다. 


작년 말과 올 초 가동하기 시작한 시범단지에는 신원과 삼덕 등 15개 기업이 입주했고 이들 기업중 13개사가 공장을 가동하며 상품을 생산하고 있다. 또한 작년하반기 본단지 1차로 분양된 5만평 부지에는 모두 25개 업체가 입주하게 되며, 이미 11개 기업의 공장이 건립 중이다. 그밖에 공단의 기업활동을 원활히 하기 위한 폐수종말처리장과 폐기물 처리장 등의 시설이 2007년 6월까지 모두 완성될 예정으로 공사 중이다. 일행이 방문한 중에도 공사는 계속되고 있었다.   
 

아직은 하루 8-10톤 물량 2회 수송 ,  10만평 규모의 종합물류단지 건립예정
관리위원회 측은 현재 개성공단에서 생산되는 상품은 1일에 2회(8-10톤) 수송되는 물량으로 미량이며, 따라서 북측 세관에서 입주기업에 직접 찾아가 검사하고 봉인한다고 밝혔다. 예정된 공단개발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2012년까지 이 공단에서 발생되는 물류량은 대략 10만teu(500만톤)으로 예상되고 있다. 따라서 공단내에는 1단계와 3단계 개발지역 사이에 ‘종합물류단지’가 건립될 예정이다. 북측에서 CIQ 부근에 물류단지를 짓자는 제의가 있었지만 환적과 수배송이 원활한 위치로 정해졌다고 한다. 이곳은 경의선 철도가 근접해 있고 앞으로 CY 등이 들어서게 된다.


개성공단이 생산하는 물량에 대한 해상운송 계획을 묻는 일행의 질문에 관리위원회 측은 “아직까지는 전혀 없다”고 답변하고, 개성공단의 물량이 현재의 운송경로를 이용하지 못할 만큼 넘치면 강화도나 김포에 연륙교를 놓아 인천항만과 공항으로 운송하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것도 2단계 개발계획이 끝나는 시점에서나 가능한 사안이라고 김위원장은 덧붙였다. 

 

“남북근로자 마주하며 일하는 유일한 곳”
김동근 위원장은 “개성공단은 남북이 실제로 접촉하며 일하는 곳이다. 물론 임가공을 위한 생산공장들이 있지만 남북근로자와 관리자가 직접 마주하며 함께 일하는 곳은 이곳 뿐”이라며 “이곳은 작은 통일이 이뤄진 공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통일을 향한 첫걸음이라고 볼 수 있다. 공단내 기업활동을 원활히 하기 위한 일들은 통일에 접근하는 방법을 연습할 수 있으며, 통일후 과제에 대해서도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모쪼록 북한을 이해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견학단에게 말했다. ‘작은 통일을 실현하는 장’이라는 표현은 과거 하나의 염원이었던 ‘통일’에 대한 생각이 지금은 분분하게 갈린 우리의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별기대없이 왔는데, 큰 기대 갖게 됐다”
이번 견학단의 대표인 김인환 복합운송업협회 회장은 김동근 위원장의 인사말에 회답하는 자리에서 “별 기대없이 방문을 신청했는데, 추진과정과 실제 방문을 통해 물류업계에서도 관심을 가지면 앞으로 개성지구의 사업과 연계할 수 있다는 큰 기대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사업을 떠나서도 방북은 처음이다. 참 가까운 거리를 먼길로 왔다. 첫 방북감회는 말하지 않아도 참가자 모두 같은 심정일 것이다. 북한 땅을 밟는 절차도 어렵고 두려울 것으로 우려했는데, 실제 편안하고 신속했다. 남북한의 발전적인 미래로 볼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되었다”다며 개인적인 소감도 밝혔다. 이질감이 없는 세관의 수속절차가 참가자들에게 퍽 인상적이었나 보다.


관리위원회 측의 공단 설명회를 가진 뒤, 일행은 기업활동 지원을 위해 입주해 있는 우리은행과 병원, 편의점, 소방서 등을 둘러보았다. 우리은행에는 모두 5명이 근무하고 있는데, 그중 2명이 북측의 전문대졸 여성이다. 그린닥터 개성병원과 편의점인 훼미리마트, 한국전력도 둘러보았다. 마트의 물건은 모두 달러로 판매되고 있었고 남한의 생필품들이 진열돼 있다. 병원은 아직 응급서비스 수준에서 운영되고 있다.

 

현대아산 ‘“개성공단은 북측의 파격적인 제의”
식당은 아라코와 현대 푸드가 운영하고 있다. 일행은 현대푸드가 운영하는 개성관에서 뷔페로 식사를 하고 곧바로 현대아산을 찾았다. 현대아산측에서도 개성공단에 대한 추가 설명이 있었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당초 대외개방을 목적으로 한 공업지구는 해주나 신의주를 염두에 두었는데, 북측이 먼저 개성을 공단으로 지정하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고 밝혔다.


반공교육 세대들에겐 전쟁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있다. 그러한 연유로 지금도 예고없이 터지는 폭죽소리에 깜짝 놀라곤 하는 나는 접경지역에 남북경제협력의 새로운 장(場)인 대외개방형 공단을 조성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북한의 개방정책에 대한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북한이 대외개방 정책을 추구하고 있고 이러한 개방경향은 국제정세가 바뀐다고 해도 달라지기 힘든 대세’라고 어느 세미나에서 한 연구자가 발표했던 내용이 불연 듯 떠오르며 북한이 달라지고 있는 현실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개성공단 관련자들은 “더 많은 사람들이 와서 북한의 현재를 이해하고 통일에 대한 왜곡된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개성공단은 북측에만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주는 장과 기회가 아니라 이미 원가경쟁력의 열위로 중소기업들의 제조환경이 국제경쟁력을 상실한 우리기업들이 선택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의 저변확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힘의 논리가 작용하는 국제정세의 영향은 불가항력인 면이 있지만 말이다.

 

의류, 신발, 전자·자동차 부품 생산중
오후엔 입주기업의 생산공장을 방문했다. 개성공단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의류와, 신발류, 전기회로, 전자 및 자동차부품, 화장품 용기, 조립금속제 등. 이들 제품은 남한의 내수와 수출의 판로이다. 수출품은 주로 호주와 러시아, 중국, EU 국가들로 팔려나간다. 미국의 경우 북한산으로 원산지가 표시될 경우 35%의 무거운 관세가 부과되고 있어 수출경쟁력이 없다. 사실상의 금수(禁輸)조치이다. 수출의 경우 원산지 표시는 수입국의 상황에 달리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일행은 신발제조사인 삼덕통상과 의류제조사인 신원을 방문했다. 먼저 방문한 삼덕통상은 주문자방식(OEM)으로 웰빙신발과 등산화, 그리고 제복을 만드는 기업이다.
일행은 웰빙신발을 만드는 생산현장을 들렀다. 공장안에는 북측의 근로자들이 수작업으로 신발을 만들고 있었고, 일행은 생산라인을 따라 제품 생산과정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사진을 찍는데도 북측 근로자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개성공단의 큰 이점은 ‘원활한 언어소통’

입주기업의 말에 따르면, 개성공단의 메리트는 임금 측면 보다도 의사소통에 있다. 동남아 생산공장의 경우 작업 지시나 기술교육을 위해 수개월이 걸리는 시간을 개성공단에서는 언어가 같고 교육수준이 높기 때문에 1-2달이면 끝낼 수 있는 큰 이점이 있다는 것.

이는 공장의 곳곳에 한글로 적혀있는 작업지시서와 용어설명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작업환경 때문에 남한에서 지방의 한 생산라인을 견학하러 온 기분이었다.


신원에서는 숙녀용 의류가 생산되고 있었다. 어떤 부위인지 알 수 없는 공정부터 보기시작했는데 생산라인 끄트머리즘 가니 주름스커트가 완성되는 광경은 남한에서도 보지 못했던 흥미로운 구경거리였다. 공장의 근로자들은 거의가 여자들이다.

 

신원에는 10개 라인에 북측 근로자 556명과 남측 관리자 8명이 근무하고 있다. 신원에서 만드는 옷은 모두 남한 내수용이다. 하루에 한번씩 완성된 의류가 남한으로 운송돼 오후 5시 반이면 광주에 있는 물류창고로 옮겨져 다음날이면 신원의 전국매장으로 배송된다고 한다. 신원 관리자는 올해 공장이 5개라인을 증축했는데, 증축이후 첫 손님이라고 기분좋게 반겼다. 


개성공단의 북측 근로자들은 관리위원회에서 제공하는 버스 33대와 자전거 1,100대로 출퇴근하고 있다. 출근과 퇴근은 보통 2인조로 나누어 이루어진다. 개성시내와는 약 20분거리에 있는 공단에서 근무하는 이들은 북한내에서도 형편이 조금 나은 편에 속한다고 한다. 공장 가동 초기에는 북측 근로자들에게 점심도 제공하려고 했으나 그들의 월급을 감안할 때, 점심을 제공하는 비용이 더 드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 때문에 지금은 근로자가 직접 도시락을 싸오고 있다고 한다.  

 

금지된 지역 사진촬영엔 100달러 벌금
개성공단의 시설과 자동차에 대한 보험은 모든 건물에 대한 화재보험이 북측 기업에 들어있다. 자동차의 경우는 남한 차적일 경우 남한 보험을 이용하며, 차적을 관리위원회에 옮겨놓은 경우는 위원회가 등록을 받고 북측 보험회사에 가입해야 한다.


공장견학을 마치고 다시 남북한 CIQ를 통과해 돌아왔다. 현대아산에서 방북교육을 시킬 때 이동중 차량안에서는 사진촬영을 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었지만, 일행중 금해진 장소에서 사진을 찍은 사람이 발각돼 벌금을 요구받았다. 미화 100달러, 적지않은 금액이다. 환전한 달러가 없어 결국은 북측 세관에 그 디지털카메라는 추후에 송금한 뒤 관리위원회를 통해 돌려받기로 합의를 하고서야 일행은 북측 CIQ를 통과할 수 있었다. 그런데 비무장지대에서 사진촬영이 금지라는 것쯤은 상식인데도 또 금지된 사진촬영을 한 또다른 X맨이 등장하는 바람에 우리측(남한) CIQ에서도 해당사진을 삭제하는 일을 거쳐야 했다. 그러나 자진해서 신고하면 금지된 사진만 삭제하는 정도로 가볍게 넘어갔다. 남북관계에 변화가 온 것은 확실한 것임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예전 같으면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이었겠는가.


개성공단 시찰, 사실은 북한 방문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북한속의 남한공단’이라는 말이 개성공업지구에는 알맞은 표현인 것 같다. 공단에 도착하는 방북과정도 생각했던 것보다 통과절차가 간편하고 빨라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 미사일 사태이후 개성시내 관광이 제한돼 있어 고려의 500년 도읍인 개성의 유적지를 찾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지만 개성방문은 내 생애 금단의 지역을 경험한 아주 특별한 여행이었다.


북측 근로자가 말한 “여러분의 미래를 이곳에 투자하십시오. 개성공단은 민족의 새로운 시작입니다”라는 설명과 그녀의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아직도 뇌리에 떠오른다. 작은 시작에 불과하지만 개성공단이 남북한간의 경제협력 활성화에서 더 나아가 통일의 단초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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