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파워 코드’물류산업의 중심

 

풍차, 튜울립, 그리고 축구 - 네덜란드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풍차와 튜울립이 등장하는 동화속의 목가적인 풍경으로 막연히 동경해온 먼 나라에서 2002년

김홍인현대상선 홍보실 차장
김홍인현대상선 홍보실 차장

월드컵 4강을 선물해준 ‘고마운 히딩크의 나라’로 우리에게 뚜렷이 각인된 네덜란드.

 

그러나 정작 우리국토의 2/5, 인구 1,600만에 불과한 네덜란드가 어떻게 손꼽히는 富國으로 발돋움했는 지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네덜란드를 손꼽히는 선진국으로 견인한 진정한 파워코드는 바로 ‘물류산업’. 그 중심에 로테르담(Rotterdam)항이 있다.

 

네덜란드 제2의 도시이자 최대항만
로테르담은 수도인 암스테르담에 이어 네덜란드 제 2의 도시이자 최대 항만이다. 축구를 좀 안다는 사람이라면 박지성, 이영표 선수가 활약하며 유럽챔피언스리그 4강에 올랐던 네덜란드의 최고 명문팀 아인트호벤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로테르담을 연고로 하는 페예누르트 역시 한때 송종국 선수가 활약한 네덜란드 3대 명문팀중 하나로 로테르담을 연고지로 하고 있다.


암스테르담의 스키폴 공항과 로테르담간을 잇는 70km의 고속도로. 곧게 뻗은 도로좌우로 키 크고 늘씬한 네덜란드 사람을 닮은 풍차가 가로수처럼 지나가고, 지평선까지 이어진 드넓은 초원, 초원위에 힌점을 박은 듯 촘촘히 풀을 뜯는 양떼들...그것만 보면 동화속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다.


늘 칙칙한 날씨 탓에 한낮에도 전조등을 켜고 달리는 소형차는 꼭 장난감처럼 스쳐가고, 로테르담 시내는 너저분할 것 같은 항구도시의 선입견을 비껴간다. 한가롭고 여유가 넘친다. 

 

도로 철도 운하 500km 유럽전역 연결  
로테르담항은 라인강 하구에서 북해에 이르는 약 50km 지역에 분포한다. 일부는 바다보다 낮은 땅을 매립하여 조성했다, 항만을 중심으로 도로와 철도 운하로 반경 500km 이내에 유럽전역이 방사선처럼 연결되는 천혜의 지리적 조건을 타고났다. 2차 대전 당시 이 항의 패권을 두고 연합군과 독일군이 치열하게 싸웠던 것도 이 때문이다. 유리한 지리적 조건에 네덜란드인들의 노력과 수완이 더해져 로테르담은 유럽의 심장으로 자리잡았다.

 

△로테르담항에 접안중인 '현대 컨퍼런스호'
△로테르담항에 접안중인 '현대 컨퍼런스호'


미국과 아시아 기업의 유럽 물류센터중 절반이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150km안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을 거쳐야만 가장 쉽고, 편리하게, 빠르게 유럽 어디든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장점들이 있어 외국 제조기업들은 유럽 공장의 전진기지로 로테르담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다. 


로테르담 항만은 전세계 1천여개 항만과 연결되면서 컨테이너, 벌크, 자동차, 원유 등 거의 모든 화물이 처리되는 진정한 유럽의 중심항만(Hub Port) 역할을 한다. 유럽으로 들어오는 물량의 60%, 나가는 물량의 30%를 처리한다. 유럽의 모든 길이 로테르담으로 통하는 셈이다. 지난해 총 화물처리량이 3억 5,240만톤으로 세계 3위, 유럽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컨테이너 화물만 지난해 828만TEU를 처리해 유럽최대·세계 7위의 컨테이너 항만이다.

 

유럽 물류센터의 절반이 네덜란드 위치
중국 항만 등의 급성장으로 물동량면에서는 상대적으로 순위가 밀리는 듯 하지만, 지난해 항만의 부가가치액이 245억 달러로 부산항의 34억 달러에 8배에 이른다. 항만 경쟁력의 표본을 보여주고 있다. 


로테르담항에서는 다른 항만과 달리 사람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낯설기까지 하다. 컨테이너 터미널은 겐트리 크레인(Gantry Crane)을 다루는 핵심요원을 빼고는 컨테이너 박스를  옮기고, 쌓는 작업까지 모두가 무인 자동화되어 있다. 애초부터 비용은 줄이고, 효율을 극대화하는데 포인트를 둔 덕분이다. 하역-이동-적재-배송 등 터미널에서 이루어지는 전 과정이 첨단 전자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로테르담항에서 유럽각지로 48시간내에 이어지는 5개의 고속도로망, 4개의 철도노선, 동유럽 구석까지 실핏줄로 연결된 내륙운하로 밤낮 없이 화물이 소통된다. 오죽하면 유럽 어디를 가도 네덜란드의 트레일러와 트럭천지라고 할까. 요즘 들어 특히 운하가 주목받고 있다. 바다와 연결된 강의 폭이 깊고 넓어 화물선이 독일 내륙지방까지 다닐 수 있는데다, 비용이 저렴하고 대용량 운반이 가능해 물류기업들이 바지 운송을 늘리는 추세다.

 

항만부가가치액 245억불 부산항의 8배
로테르담항을 둘러싼 배후의 완벽한 물류단지는 항만 경쟁력을 배가시킨다. 지난 96년까지 1단계로 38만㎡의 유통단지를 조성했으며, 올해까지는 45만㎡이 추가로 조성된다. 농산물, 과일 등을 전문적으로 내리는 터미널과 물류기지가 각각 따로 조성되어 있고, 컨테이너 터미널 주변에는 엠하벤(Eemhaven), 보틀렉(Botlek), 마스블락트(Maasvlakte) 등 화물의 보관, 배송을 위한 첨단 물류단지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5개 국어를 구사한다는 히딩크 만큼은 아니더라도 한가지 이상의 외국어를 자유자재로 쓰는 국민이 전체의 70%가 넘는다는 점도 물류강국 네덜란드의 경쟁력을 유지시키는 강력한 키워드다.
점심시간에 외식을 하는 직원이 거의 없고, 대부분 집에서 준비해온 샌드위치나, 과일 한 조각이 전부다. 근무하는 동안은 놀라운 집중력으로 완벽하게 일을 하고 퇴근만큼은 예외 없이 제시간에 한다. 대부분 스포츠나 레저활동으로 자신을 단련하고, 여가를 즐기면서 재충전하는데 투자한다. 우리 식으로 보면 좀 야박하게 느껴지는 ‘더치페이(Dutch Pay)’ 문화도 1/N의 이해타산적인 개념이 아니라  ‘내가 먹은 것만큼은 내가 낸다’는 대단히 합리적이고 존중할만한 그들의 한 단면이다.

 

국민 70% 외국어 자유자재 구사 경쟁력 더해
네덜란드인들의 이런 점들은 외국인들을 끌어들이는 또 다른 매력이다. 그들이 중국의 華商과 맞먹는 和商으로 인정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1987년 멕킨지 보고서 권고로 물류중심국가를 미래의 생존방향으로 설정한 네덜란드. GDP의 절반가까이를 해운, 항만을 포함한 물류산업에서 거둬들이는 그들의 안목은 언제나 남들보다 두서너수가 앞서간다. 네덜란드 항만과 산업 전반에 관한 미래발전 연구 프로젝트인 ‘Projections 2020'도 추진중이다.


로테르담 항만은 미래 항만 경쟁력 강화를 위한 ‘Maasvlakte 2' 프로젝트에 45억 달러의 투자를 계획하는 등 적극적인 확장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08년 연간 처리능력 240만TEU를 확장한다는 복안이다. 로테르담항은 이 같은 계획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세계 주요 15개 선사와 터미널 운영사들과 항만 이용에 대한 논의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Maasvlakte 2' 프로젝트와 처리능력 80만TEU의 전용바지 터미널이 운영에 들어가기 전까지 항만 효율을 최대한 높여 급증하는 물동량을 적절히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항만산업 미래발전 ‘Projections 2020' 추진
로테르담항의 터미널운영업체인 ECT는 현재 연간 처리능력 88만TEU의 신규터미널을 개발하고 있다. 2008년 개장해 주로 소형 피더선과 내륙수로를 운항하는 바지선 전용 터미널로 이용될 예정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로테르담 항만과 함께 네덜란드 물류산업의 한 축을 형성하는 스키폴 공항과의 연계 발전도 꾀하고 있다. 스키폴 공항은 유럽의 4대 공항중 하나로 로테르담 항만과 마찬가지로 배후의 광대한 물류기지가 자리잡고 있어 유럽의 허브공항으로 각광받고 있다. 현재 스키폴 공항과 로테르담항을 직접 연결하는 물류벨트를 형성하여 시너지효과를 거두겠다는 것이다.


물류강국답게 물류 전문가를 키우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지난 2000년 부터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 대학 대학원에 2년 과정의 물류전문가 과정을 신설하여 운영중이며, 그밖에 1년 정도의 단기 코스를 운영하는 물류 연수기관에는 네덜란드인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선진 물류 노하우를 배우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외국기업의 투자유치를 위한 정부의 행정적 지원과 유인책도 완벽하다. 네덜란드가 가장 투자하고 싶은 나라로 손꼽히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스키폴공항과 로테르담항 물류벨트 형성
17세기초 일본으로 가던 네덜란드 상선 스베르베르호가 제주도에 표류했다. 이 상선의 서기였던 하멜의 꼼꼼하고도 충직한 임무수행의 산물인 ‘하멜 표류기’로 우리나라와 네덜란드와의 인연이 시작된 후, 4세기가 흐른 지금 히딩크로부터 시작돼 지금의 아드보카트까지 축구 열풍으로 인해 어느 때보다 네덜란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14세기 로테 강변에 위치한 자그마한 어항에 불과했으나 수로개설에 의한 북해와의 연결과 산업혁명으로 인한 물동량 증가로 급성장하기 시작한 로테르담. 히딩크의 선진축구를 전수 받아 월드컵 4강을 일궈냈듯이, 그들과 마찬가지로  동북아의 허브(HUB)를 지향하는 우리나라가 지금부터라도 유럽의 허브로 우뚝 선 네덜란드 로테르담항의 경험과 노하우를 배우는 일은 부끄럽지도, 자존심 상하는 일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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