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호 출항식에 참석한 윤보선 대통령(중앙)과 윤상송 학장(왼쪽)
반도호 출항식에 참석한 윤보선 대통령(중앙)과 윤상송 학장(왼쪽)
들어가며
우리나라의 무역규모는 세계 11위권이고 물동량은 99%가 선박을 통하여 우리나라의 항구를 입출항한다. 우리나라도 다른 해운국가와 같이 도선사 제도를 도입하여 선박의 안전한 입출항을 돕도록 하고 있다.


5년 이상 원양상선의 근무경력과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도선사라고 하더라도 가끔은 사고에 연루되어 어려움을 겪게 된다. 불행하게도 인사 사고 혹은 물적 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도선사가 형사상, 행정법상의 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 법원이 도선사에게 민사책임을 인정한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도선사에게 선장을 도와주는 자로서의 지위가 인정되어  선박소유자(이하 선주)가 사용자책임을 부담하여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2009년 4월 2일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2007가합1479)에서 도선사의 민사책임이 인정되었고 최근 항소심에서 조정으로 종결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2006년 5월 24일 울산항에서 러시아 선주의 선박에 강제도선사가 승선하였다가 도선 지점보다 먼저 내린 다음 선장의 잘못으로 원유 부이의 수상호스를 접촉하여 오염사고가 발생하였고 부이의 소유자는 방제비, 수리비등 4억 5,000만원 정도의 손해를 입게 되었다. 이에 손해를 배상한 러시아 선주가 도선사에게 구상청구를 하였다(선주는 책임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보임). 도선사는 도선약관 제16조 제1항에 따라 자신의 책임은 도선료와 도선선료의 합계액으로 제한된다고 주장하였다. 법원은 (i) 도선약관은 강제도선에서는 적용이 없고, (ii) 특별한 사정없이 도선지점보다 먼저 하선한 것은 중과실이기 때문에 도선약관의 책임제한은 적용되지 않을뿐더러(제16조 제3항) (iii) 도선점 이전의 불법적인 하선후의 사고에는 도선약관의 적용이 없다고 판시하였다. 결론적으로 법원은 선장의 과실을 60%, 도선사의 과실을 40%로 판단하여 1억 7,000여만원의 책임을 도선사에게 부과하였다(항소심에서 금액이 약간 인하된 상태로 조정되었다고 함). 

 

대내적 책임
도선사와 선주와의 관계는 대내적인 관계이다. 도선사는 선장의 보조자로서 항구에서 선박을 안전하게 이동시키는 일을 도와주기 때문에 도선중 사고가 발생하면 선장과 도선사의 공동불법행위가 된다. 그런데, 피해를 입게 된 선주는 도선계약위반을 이유로 도선사에게 직접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예컨대, 선저손상에 따른 수리비). 도선약관에 따르면, 도선사가 고의 혹은 중과실이 없는 한, 도선사의 선주에 대한 책임은 도선료와 도선선료의 합계액으로 제한된다(제16조 제1항). 그러므로 선주가 1억의 청구를 하여도 도선사의 책임은 도선료와 도선선료의 합으로 제한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대법원이 취하는 청구권 경합설(계약위반과 불법행위에 대한 청구 두 개를 모두 인정함)에 의하면 계약위반 뿐만아니라 불법행위에 기한 청구도 가능하고, 불법행위에는 약관의 내용이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손해액 전액에 해당하는 1억을 청구할 수 있게 된다.   

 

대외적 책임
대외적 책임이란 도선사가 선주 이외의 제3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는 경우를 말한다. 예컨대, 부두에 손상이 발생된 경우에 부두소유자가 도선사에게 청구하는 경우와 같다. 약관은 계약관계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계약관계가 없는 도선사와 제3자 사이에는 도선약관이 적용되지 않는다.  


통상은 선장과 도선사가 공히 사고에 과실이 있는 공동불법행위가 되고 피해자는 도선사에게도 청구가 가능하다. 도선사는 제3자에게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 책임을 부담하고, 선주는 그 사용자로서 민법 제756조의 사용자 책임을 동시에 부담한다(위 울산항 사고를 참고할 것). 선주는 또한 선장의 사용자로서 민법 제756조의 사용자 책임을 부담한다. 선주는 이러한 손해에 대비하여 책임보험(P&I 보험)에 가입하고 있어서 피해자에게 보험회사가 보험금을 지급하게 된다. 피해자들은 통상 도선사에게 먼저 청구하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것은 제3자에게 손해배상을 한 선주가 직접(혹은 그 선주의 보험자가 피보험자인 선주의 도선사에 대한 청구권을 대신 행사하여) 도선사에게 청구하는 경우이다. 특히 외국 선주인 경우 청구 가능성이 높다.

 

현행 제도의 문제점
도선약관으로 도선사의 책임을 도선약관으로 제한하여온 것이 우리나라 도선의 오랜 관행이다. 그런데 이 도선약관은 우리 법하에서 첫째, 불법행위를 청구원인으로 하면 적용이 없다. 둘째, 고의 혹은 중과실인 경우에는 적용이 없다. 셋째, 강제도선의 경우에는 계약관계가 없기 때문에 적용되지 않을 여지가 있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책임제한의 고려
베트남 해상법의 경우는 도선사의 민사책임을 묻지 못하도록 법률로 정하고있다. 중국과 일본은 우리나라와 유사한 입장이지만 실무적으로 책임을 물은 경우가 없다고 한다. 영국에서 도선사 개인의 책임은 1,000파운드(약 180만원)로 제한된다(도선기구는 고용 도선사수 × 1,000파운드).


우리나라에서 도선사는 선장의 보조자적인 지위에 있다고 보기 때문에 비록 도선사의 과실로 인한 손해의 경우에도 선주는 그 사용자로서 책임을 부담하여 왔다. 선주 자신의 손해는 물론 제3자에 대한 손해도 선박보험 및 책임보험(P&I 보험)을 통하여 처리된다. 도선사의 과실이 있더라도 선주가 보험금을 지급받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선주 혹은 운송인은 도선사의 과실에 의한 사고의 경우에도 책임제한(항해과실면책 포함)을 할 수 있다. 선박운항에서 발생하는 수입의 대부분을 획득하는 선주 혹은 운송인은 적절하게 책임제한 혹은 면책을 하면서 극히 일부를 취득하는 도선사가 손해액 전체에 대한 책임을 부담하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다.


약관이 가지고 있는 결점을 보완하는 입법을 통하여 도선사의 민사책임에 예측가능성을 부여하고 그 금액에 대하여 전문가 책임보험에 가입하면 좋을 것이다. “청구원인의 여하에도 불구하고 도선사의 도선중 사고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에 대한 도선사의 손해배상책임은 도선료와 도선선료 합계액의 ×배(예컨대 10배)로 한다. 다만, 그 손해가 고의 혹은 손해의 발생을 인식하면서 무모하게 행한 작위 혹은 부작위의 결과로 발생한 것인 경우에는 제외한다(제정안)”는 내용의 입법을 고려할 수 있다.


약관이 적용되는 경우에는 약관의 책임제한액인 도선료와 도선선료의 합계액이 적용된다. 만약 불법행위에 기한 청구에는 위 제정안과 같이 도선료와 도선선료의 ×배가 도선사의 책임제한액이 된다. 도선사의 고의에 가까운 무모한 행위로 인하여 사고가 발생하였다면 위 제정안은 적용되지 않아서 도선사는 책임제한을 할 수 없지만 현실에서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울산항 사건에서 (i)(ii)는 제정안의 적용대상이 되어 해결된다. 그러나 (iii)은 적용의 대상이 아니다. 이것까지 보호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입법을 하게 되면 도선사의 책임은 예측가능한 것이 되고 도선제도는 안정적으로 운용될 것이고, 항만의 경쟁력도 향상될 것이다(201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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