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진해 웅동 앞바다 소재로 탄생

작사가 이용일 씨 군복무 때 고향 떠올리며 만들어
이미자 불러 히트…2003년 11월 6일 노래비 준공 


 
 
3면이 바다인 우리는 해양국가다. 바다는 우리들 삶에 직결돼 있다. 부산, 인천 등 항구도시일수록 더욱 그렇다. 섬은 말할 것도 없다. 바다는 생활터전이자 곧 역사다. 자연히 바다와 관련된 문화들이 발전했다. 소리문화인 노래도 예외가 아니다. 그 속에 만남, 사랑, 이별, 눈물, 즐거움과 웃음이 담겨있다. 특히 노래 속의 바다와 섬, 항구는 한 시대를 증언하기도 한다. 바다, 섬, 항구를 소재로 만들어진 노래사연과 에피소드를 시리즈로 싣는다.

이용일 작사, 백영호 작곡, 이미자 노래로 유명한 대중가요 ‘황포돛대’는 가락이 아주 맛깔스럽다. 4분의 4박자로 전형적인 트로트풍이다. G코드 음으로 시작되는 ‘황포돛대’는 구슬프면서도 서정적인 냄새가 물씬 난다.
해지는 바다, 석양을 등지고 포구로 향하는 고깃배들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누런 색깔의 돛을 단 배가 바다바람에 밀려가는 장면도 그렇고, 철썩이는 파도의 너울거림도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1963년 12월 포병부대서 노랫말 메모
노래 탄생 배경지는 경남 진해 앞바다. 해군사관학교, 통제부, 거북선 등 해군사령부와 군함들의 기지가 있는 그곳은 군항이자 벚꽃으로 유명한 남녘의 아담한 항구도시다. 올 6월말 현재 인구 수는 17만 8,886명(6만 6,657가구), 면적은 120.23㎢, 행정구역은 15동 284통 2,074반으로 돼있다. 시가지가 깨끗하고 시내 한 가운데 제황산이 솟아있다. 일제 때 일본 사람들이 살던 적산가옥들이 아직도 시내 곳곳에 있고 장복산 고개(터널)를 넘어가면 창원과 이어진다. 2010년 7월 1일 창원시 진해구로 바뀌었다. 

‘황포돛대’ 노랫말이 만들어진 건 진해출신 작사가 이용일 씨(본명 이일윤)와 관련 있다. 이 씨는 2000년 고인이 됐지만 원래 진해시 대장동 237번지에서 태어나 살았다.
노래탄생 에피소드는 1963년 경기도 연천군 지역에 있는 한 포병부대에서부터 비롯된다. 이 씨가 군 복무 중일 때로 세모가 가까운 12월 눈이 오는 어느 날 밤이었다. 추운 날씨에 고향생각이 간절했고 부모, 형제, 같이 뛰놀던 벗들도 모두 잘 있는지 궁금했다.

전방부대에서 푸른 제복을 입고 군 생활을 하던 그는 그날따라 어릴 때 고향생각이 머리를 가득 메워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누구나 한번쯤 겪는 젊은 군인의 향수병 탓일까. 특히 파도가 넘실대는 진해 앞 바다 영길만이 눈에 아른거렸다. 석양빛에 비쳐 바닷물이 붉게 물든 모습이며 황포돛대를 달고 몰려드는 웅동포구의 고깃배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타임머신을 타고 떠난 겨울밤 추억의 고향여행필름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맴돌았다.
떠오른 고향의 생각과 글들은 메모지를 가득 채웠고, 그 가운데 서정적인 구절만을 추려 다듬은 게 바로 ‘황포돛대’ 노래 가사다. 슬픈 느낌이 드는 내용으로 한편의 시이다.

 
 
세월은 흘러 1964년 이 씨가 제대한 뒤 노랫말은 작곡가 백영호 씨에게 넘겨져 곡이 만들어졌다. 악보가 완성되자 노래를 부를 가수 찾기에 나섰다. 노랫말 내용이나 멜로디 흐름으로 볼 때 ‘천의 목소리를 가졌다’는 여가수 이미자가 적격자로 꼽혔다. 이미자가 취입한 음반은 불티나게 팔렸고 방송전파를 타면서 국민애창곡으로 크게 히트했다.
‘마지막 석양빛을 기폭에 달고~’ 깔끔하고 해맑은 이미자의 목소리에 구성지게 넘어가는 곡조가 팬들을 사로잡았다. 노랫말 첫머리의 ‘마지막 석양빛’은 작사가 이 씨의 어린 시절 어느 해 연말 오후 진해 웅동 앞바다의 해지는 모습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붉은 색의 석양빛이 돛에 어우러져 비친 모습을 ‘(석양빛을) 기폭에 걸고…’로 표현했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이 씨의 고향바다 모습이 가사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작사가 이 씨는 하춘화가 부른 ‘물새 한 마리’, 이미자의 ‘꽃 한 송이’ 등 20여 편의 대중가요 노랫말을 썼다. 그는 고향사랑 실천에도 앞장섰다. 1985년 ‘내 고장 노래 만들기 운동본부’를 만드는 등 여러 애향활동들을 펼쳤다. 진해를 노래한 ‘진해찬가’ 가사도 그가 썼다.
당시 진해시는 ‘황포돛대’ 노래 탄생 유래를 알리면서 작사가 이 씨를 기리기 위해 남양동 324~8번지 해안관광도로변 영길만 앞바다 쪽에 노래비를 세웠다. 2003년 2월초 진해시 문화공보실(☎055-548-2043) 주관으로 노래비 건립 공모 안내 설명회가 열렸다. 그해 8월말 비를 만들어 9월 1일 준공식을 하려다 태풍(매미) 때문에 11월 6일로 늦춰 개막식을 가졌다.

노래비 제막식 행사장엔 당시 김병로 진해시장, 진해출신 김학송 한나라당 의원, 문화·예술계 관계자, 시민들이 참석해 축하했다. 가로 5m, 세로 6m, 높이 7m 크기의 비는 화강석과 청동을 재료로 만들어졌다. 2개의 기둥과 작품 밑 부분에 무게감을 줄 수 있는 밝은 색 화강석에 가사가 궁서체로 새겨져 있다. 저녁의 태양이 서쪽 바다와 산이 붉게 물들고 붉게 물든 바다위에 황포돛대가 떠있는 모습을 모티브로 삼았다.

 
 
노래비 주변 관광지, 횟집 등 즐비
‘고향의 향수’란 작품명이 붙은 비 앞면엔 노랫말이, 뒷면엔 작품설명이 새겨졌다. 제작에 들어간 돈은 약 1억 원. 노래비 설명 바닥 돌에 톡 튀어나온 스위치를 밟으면 ‘황포돛대’ 노래가 흘러나와 감흥을 더해준다. 노래비 주변엔 웅천왜성, 안골왜성, 수치해변 등 볼거리가 많고 횟집들도 있어 길손들의 발길을 붙든다.
한편 노래가 히트하자 1966년에 같은 제목의 영화 ‘황포 돛대’도 개봉됐다. 강찬우 감독이 만들었고  김진규, 이경희, 태현실, 김운하 등이 출연한 멜로물로 많은 여성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작사가(이용일), 작곡가(백영호)는 저 세상으로 떠났지만 가수(이미자·71)는 KBS-1TV 월요일 밤 ‘가요무대’ 프로그램 등에서 노래탄생 41년째를 맞고 있는 ‘황포돛대’를 가끔 불러 세월무상을 느끼게 한다.  

 
 
[필자 왕성상 wss4044@hanmail.net]=마산중·고,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신문방송대학원을 나와 1979년 한국경제신문 기자를 시작으로 언론계에 몸담아오고 있다. 특히 ‘남인수가요제’에서 우수상을 받아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에 등록(865호), ‘이별 없는 마산항’ 등을 취입했다. ‘기자가수’로 가끔 무대에 서면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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