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보리암에 머물다 밤배 불빛 보고 작사, 작곡 * 휘문고 선·후배 대학생 듀엣 ‘둘다섯’ 취입해 히트

[필자 왕성상]=마산중·고,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신문방송대학원을 나와 1979년 한국경제신문 기자를 시작으로 언론계에 몸담아오고 있다. 특히 ‘남인수가요제’에서 우수상을 받아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에 등록(865호), ‘이별 없는 마산항’ 등을 취입했다. ‘기자가수’로 가끔 무대에 서면서 글을 쓰고 있다.
[필자 왕성상]=마산중·고,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신문방송대학원을 나와 1979년 한국경제신문 기자를 시작으로 언론계에 몸담아오고 있다. 특히 ‘남인수가요제’에서 우수상을 받아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에 등록(865호), ‘이별 없는 마산항’ 등을 취입했다. ‘기자가수’로 가끔 무대에 서면서 글을 쓰고 있다.
3면이 바다인 우리는 해양국가다. 바다는 우리들 삶에 직결돼 있다. 부산, 인천 등 항구도시일수록 더욱 그렇다. 섬은 말할 것도 없다. 바다는 생활터전이자 곧 역사다. 자연히 바다와 관련된 문화들이 발전했다. 소리문화인 노래도 예외가 아니다. 그 속에 만남, 사랑, 이별, 눈물, 즐거움과 웃음이 담겨있다. 특히 노래 속의 바다와 섬, 항구는 한 시대를 증언하기도 한다. 바다, 섬, 항구를 소재로 만들어진 노래사연과 에피소드를 시리즈로 싣는다.

 

묵은해가 저물고 2012년 새해가 밝았다. 새로운 마음으로 한해를 설계하며 각오를 다진다. 삶이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앞을 보고 달려가는 게 인생이다.

 


‘검은 빛 바다 위를 밤배 저 밤배~’로 나가는 ‘밤배’는 삶을 빗댄 가요다. 깜깜한 밤바다를 거세게 몰려오는 파도와 맞서며 목적지를 향해 묵묵히 나가는 배를 노래한 것이다. 밤바다와 파도는 험한 세상을, 배는 바로 우리들을 말한다. ‘밤배’는 음악으로 들려주는 희망의 메시지다. 
 

 

 

 
 
‘밤배’는 4분의 4박자, 슬로우 록 풍으로 부르기 쉽다. 포크듀엣가수 작곡가 겸 작사가 오세복이 만들고 그가 소속된 둘다섯이 부른 곡으로 유명하다. 40, 50대라면 가사만 들어도 이내 흥얼거리게 되는 추억의 명곡이다.

 

 

1973년 ‘긴 머리 소녀’와 동반 히트
노래가 첫 선을 보인 건 지금으로부터 37년 전이다. 듀엣 둘다섯이 1975년 ‘긴 머리 소녀’와 함께 히트한 곡이다. 세월은 흘렀지만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노래방 등에서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밤배’의 탄생과 히트는 듀엣 둘다섯의 우연한 만남에서 비롯된다. 둘다섯은 가수 이두진(1952년생)과 오세복(1953년생)으로 뭉쳐진 팀이다. 둘다섯은 두 사람의 성씨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이두진의 ‘이’=둘(2), 오세복의 ‘오’=다섯(5)으로 작명된 것이다.

 


 

 
 
서울 휘문고 선·후배간인 이들은 동국대를 다녔다. 1973년 봄 선배인 이두진은 후배 오세복이 전산학과에 입학하자 기분이 좋았다. 오세복과 음악적으로 통하는 데다 고교에 이어 대학동문까지 됐다는 사실에 뿌듯했다. 이두진은 ‘참 잘 됐다. 저 후배는 곡도 잘 쓰면서 노래도 잘 하고, 덩치까지 크니 듀엣을 만들면 잘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고교시절 서로 다른 동아리에서 음악을 했던 터라 안면이 있었다.    

 

  
어느 날 이두진은 오세복을 불렀다. “세복아! 이번 신입생환영회때 듀엣을 만들어 한번 발표해보지 않을래? 너 곡 써둔 거 많잖아!” 선배 제의를 받은 오세복도 싫은 표정은 아니었다. 잘 아는 고교선배가 대학생이 된 자신을 불러준 게 고마워했다. 게다가 써 놓은 곡들을 묵히기 아까운 생각도 들었다. “그러죠 뭐!” 오세복의 답은 간단했다.

 


그렇게 해서 이두진과 오세복은 2+5(둘다섯) 듀엣가수가 돼 음악활동에 나섰다. 이들은 그해 대학 신입생환영회 행사때 자작곡 ‘긴 머리 소녀’를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학교신문에 보도되고 졸지에 대학가의 화제인물이 됐다.

 


이 소식은 음반업계에게까지 알려져 지구레코드의 최경식 상무가 이들을 수소문해 불렀다. 두 사람은 “전속가수로 계약하고 음반을 내자”는 최 상무 제의를 받아들였다. 대학졸업 때까지 모든 비용을 대어준다는 조건이었다.

 


 
 
대학생 듀엣가수 이두진과 오세복은 그때부터 짬짬이 무대에 서는 등 연예활동에 나섰다. 1975년 1집에 이어 2집 음반도 냈다. 대학생가수란 깨끗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순수한 목소리, 풋풋한 사랑얘기가 담긴 노랫말이 먹혀들었다. 두 사람은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돼있었다는 말을 실감했다. 1960년대 말의 트윈 폴리오와 1960년대 초·중반의 어니언스 뒤를 이어 국내 남성듀오계보를 이어가면서 1970년대 중반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남해 상주에 ‘밤배’ 노래비
둘다섯의 히트곡 ‘밤배’ 남해의 절에서 만들어졌다. 둘다섯 멤버인 오세복이 경남 남해군 금산 보리암에 머물면서 상주 앞바다에 떠다니는 밤배의 불빛을 보고 가사 초안을 만든 것이다. 이두진이 2007년 7월 이런 내용의 글을 ‘둘다섯(밤배)과 다정한 사람들’이란 사이버카페에 올리면서 노래 배경지가 남해란 사실이 알려졌다.

 


이 씨는 카페에서 “1973년 남해를 여행하던 중 금산 보리암에 하룻밤을 묵게 됐다. 발아래는 남해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고 상주해수욕장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캄캄한 밤바다에 작은 불빛이 외롭게 떠가는 게 정말 인상적이었다”며 “그 인상을 그대로 메모해 즉석에서 곡을 흥얼거려보니 어느 정도 노래가 되어 그 다음날 서울로 올라와 다듬어 ‘밤배’를 완성했다”고 했다. 그는 또 “아직도 금산 보리암에서 바라본 밤바다의 작은 불빛, 그 밤배의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며 “가야할 목적지를 향해 쉼 없이 가야하는 밤배는 거친 바다와 싸우며 삶을 살아가는 어민들의 운명이기도 해 ‘밤배’는 그들에게 바치는 노래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남해군은 2008년 11월 14일 상주면 은모래비치(옛 상주해수욕장)에 노래비를 세웠다. 3m 높이의 비는 돛 모양으로 된 자연석에 밤배 악보와 건립동기 등이 새겨져있다. ‘얼룩 고무신’, ‘어부’, ‘일기’, ‘바다’ ‘눈이 큰 아이’ 등 둘다섯의 노래 10곡을 골라 들을 수 있게 음향시설까지 갖춰져 있다.

 

 

 
 
긴 머리 유행하고 밤배 타고 피서 붐
‘밤배’는 그렇게 해서 완성돼 ‘긴 머리 소녀’와 더불어 방송전파를 타면서 크게 히트했다. ‘긴 머리 소녀’가 먼저 인기곡으로 떴고 여세를 몰아 ‘밤배’도 상종가를 쳤다. 노래바람에 서울 구로공단은 물론 전국 대학가, 공단 등지엔 여대생과 여회사원들의 긴 머리가 유행했다. 머리를 기르고 밤배를 타고 피서를 가는 게 붐을 이룬 적도 있었다. ‘밤배’는 특히 감미로운 노랫말과 곡이 아름다워 초등학교 6학년 음악교과서에 실리는 등 지금도 국민애창가요로 사랑받고 있다. 시적인 가사, 서정적인 멜로디를 인정받았다는 평가다.

 


노래가 한창 인기를 끌 때 둘다섯은 오세복의 입대로 멤버가 바뀌었다. 이두진과 이지민이 오영진이란 이름으로 짝을 이뤘다. “오세복 뒤를 이을 사람은 같은 오씨여야 한다”는 말이 있어 이지민의 예명을 오영진으로 바꿨다. 이지민은 후에 하야로비 멤버로 뛰었다. 김영진과 4월과 5월 4기로 활동하면서 ‘장미’를 히트시켰다. 그 뒤 둘다섯은 다시 오세복과 우영철로 바뀌었다.  

 


둘다섯의 초기멤버 이두진과 오세복은 대학졸업 후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이두진은 직장생활을 하다 1995년 서울 서초동에 국내 최초의 음치교정학원인 음치클리닉을 열어 10여년 운영했다. 지금은 분당에서 라이브카페를 하고 있다.

 


 
 
오세복은 미국서 음치교정기술을 공부, 귀국한 뒤 학원과 주부노래교실을 차려 운영했다. 서울 송파에서 4대째 살았던 그는 2006년 심장수술을 받으려고 날을 잡아놓고 우연히 들렀던 안동이 맘에 들어 폐업한 카페를 사들여 운영했다. 안동댐기념탑 석동선착장 부근으로 그해 5월 ‘밤배’란 상호로 라이브카페를 연 것이다. 지난해 12월엔 서울 강남구청역 근처에 라이브공연을 하는 신개념음식점 ‘오세복의 밤배’를 개업했다. 미국 뉴저지의 일반음식점에서 라이브공연하는 것을 보고 차린 음악과 음식이 결합된 음식점이다. 문화외식복합공간을 지향하며 정육식당에 음악공연을 접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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