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법과대학의 해상법 교수인 김인현씨가 안식년을 맞아 올해 1월부터 싱가폴 국립대학의 펠로우 및 방문교수로 싱가폴에 체류 중이다. 싱가폴 현지에서 그곳의 해상법과 해운산업을 체험하고 있는 김인현 교수에게서 ‘싱가폴 해상법 교실’이라는 주제로 싱가폴 현지의 생생한 관련 이야기들을 기고받아 연재한다. 김 교수는 이전(2003-04년)에도 미국텍사스대학(오스틴)에서 석사과정을 이수하던 시절 ‘미국해상법 교실’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한 바 있다.                                            -편집자 주-





해상법의 비중
싱가폴은 법대가 학부에 존재한다. 과거 우리나라와 같은 제도였다. 학부 4년동안 법학을 공부한 뒤, 6개월간 변호사시험대비 연수교육을 받은 다음 변호사 시험을 보고 일정기간 변호사 연수를 하면 변호사 자격이 취득된다. 싱가폴 국립대학만 법과대학(정원 200명)이 있었고 모두 우수한 학생들이기 때문에 100% 합격이라고 한다. 그런데 최근 정부는 법률수요가 늘어나서 SMU에도 변호사를 배출하기 위하여 180명 정원의 법학부를 열어주었다.

싱가폴은 한마디로 해상법을 대단히 장려하는 국가이고 학생들도 해상법을 좋아한다. 이것은 싱가폴의 지리적인 환경때문이기도 하다. 해안가로 나가면 많은 선박이 정박하고 있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싱가폴은 제조업이 없는 나라로서 해운, 무역, 금융, 관광을 기반으로 하지 않을 수 없는 국가이다. 그러니 이들을 뒷받침하는 해상법이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변호사 시험과목에도 나타난다. 2011년 변호사시험변경으로 두 과목을 선택하여야 하는데 해상법이 제2선택 과목 중에서 인기과목(2011년 485명의 변호사 수습생 중에서 100명이 해상법을 선택하여 수업을 들었다)으로 자리하고 있다. 

싱가폴의 대형 로펌에서 해상분야가 유명한 곳으로는 라자탄(Rajah & Tann), 알렌&그래드힐(Allen & Gredhill), 드류&나피에르(Drew & Napier), 웡파트너(Wong Partnership)가 있다(라자탄에만 해도 파트너가 11명이고 전체 30명이라고 하니 놀랄 일이다). 이외에도 영국로펌인 Clyde&Co 등이 들어와서 활동하고 있다. 싱가폴에는 해상변호사가 100여명 존재한다. 2심으로 진행되는 바 1심법원인 High Court에 해사법원(2002년 2월 4일 가장먼저 설치됨 기타 지적재산권법원과 중재법원이 있음)이 만들어졌고, 4명의 판사가 있고 4명 모두가 해상법전문가라고 한다(라자탄의 파트너로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스티븐 정 포함). 이번 학기에 개설된 해상법 5과목(용선계약, 해상보험, 해운의 국제적인 규제, 해사국제사법, 해상법)과 담당교수에 대하여 잠시 보자.

용선계약
거빈(Girvin) 교수와 그렉슨(Gregson) 변호사가 강의하는 용선계약(charter party)이 있다. 거빈교수가 전반부에 항해용선에 대하여 강의하였다. 그리고 후반부는 유명한 해사중재인이자 영국변호사인 그렉슨씨가 정기용선에 대하여 강의한다. 강의시간은 화요일 밤이다. 저녁 6시 30분부터 시작하여 9시 15분까지이다. 수강 학생은 약 30명이 된다.

거빈 교수 자신의 교재와 자신이 작성한 요약집이 강의 부교재이다. 항해용선계약의 당사자 사이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체선료에 대하여 자세한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실무에서 많이 볼 수있는 WIBON(Whether In Berth Or Not)과 같은 정박기간 관련 약정에 대한 체계적인 강의를 듣는 것은 유익한 것이었다. 항해용선계약에서는 Berth Charter 인지 Port Charter인지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설명이었다. Berth Charter는 선석에 선박이 접안하여야 선적기간이 개시되기 때문에 선박의 대기(waiting)의 위험을 선박소유자가 부담하게 되어 용선자에게 유리한 것이고, Port Charter는 항구에 입항하기만 하면 선박대기 등에 무관하게 선적기간이 개시되기 때문에 선박소유자에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2월말 1주일의 휴식기간을 가진 다음 정기용선계약 강의가 시작되었다. 그렉슨 변호사가 담당이었다. 기본적으로 NYPE를 중심으로 설명하였다. 첫 시간에는 그 유명한 2008년 영국귀족원의 Achilleas호 판결에 대한 설명을 하였다. 정기용선자는 반선을 6일 넘기게 되었다(over lap). 선주는 해약일에 늦게 되자 후속의 정기용선계약을 지키기 위하여 6,000달러를 감액하여 주었는데, 선주가 정기용선자에게 청구할 수 있는 손해배상액은 얼마인가 하는 것이 이슈였다. 선주는 후속 용선계약 전체기간의 일당 6,000달러를 곱한 금액을 청구하였다. 이 판례는 특별손해를 결정하는 Hadley v. Baxendale의 적용문제였다. 제1손해와 제2손해가 있는데 통상의 손해만이 배상되고, 채무자가 채권자의 특별한 사정을 알지 않았다면 특별한 손해는 청구할 수 없다는 것이 요지이다. 귀족원은 제2손해가 배상되는 상황이 아니고 제1손해만 배상하면 된다고 판시하였다.

다음 주 수업에서는 정기용선자의 용선료 지급의무에 대하여 강의하였다. 만약 용선료지급이 제때에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라고 하더라도 시간요소는 계약의 본질적인 요소에 해당(condition)하지 않기 때문에 보통법상 선주는 용선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 용선료의 지급은 용선기간동안 중단없이 지급되는 것이 원칙이고 별도의 규정이 없다면 보통법상 용선자는 용선료를 계속 지급하여야 한다. 따라서 용선료 지급중단과 관련된 off-hire 조항이 NYPE에 필요하게 된다는 설명이었다. 선주의 과실은 묻지 않고 용선자가 off-hire 사항에 해당함을 입증하면 된다.

거빈교수는 남아공 더반 태생이다. 영국의 버밍햄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고 싱가폴 국립대학에서는 초빙교수로 강의를 하다가 여기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는 현재 교무부원장으로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Carriage of Goods by Sea는 옥스퍼드대학 출판사에서 발행되었다. 고려대학에서는 국제적인 명성이 있는 대학에서 출간되는 책에 대하여는 연구 인센티브를 부여한다. 그 중에 옥스퍼드대학도 포함된다. 그가 대단한 학자임을 알 수 있다. 약 30만원 정도하는 책을 5만원 정도로 할인하여 학생들에게 제공할 정도의 성의를 보이는 분이다.

그렉슨 변호사는 현재 싱가폴 중재원의 해사중재인으로 맹활약하고 있는 분이고 영국변호사이다. 그렉슨 변호사는 50대의 영국변호사들이 그렇듯이 런던대학의 UCL에서 해상법 LLM을 하였다. 그는 싱가폴 해상중재인으로서 The Arbitration Chamber(중재인 5명의 공동사무실)의 구성원이다. 키는 나직하지만 항상 만면에 웃음을 가득히 하고 강의한다. 항상 NYPE의 약정이 없다면 영국보통법의 입장은 무엇인가 하고 질문을 던지면서 수업을 시작한다.  
 
해상보험
다음으로 해상보험(marine insurance)이 있다. 실무 변호사 두사람이 강의한다. 토요일 오전 9시 30분에 시작하여 12시경에 수업이 종료된다. 수강생은 약 20명 정도이다. 학생 두명이 주제를 받아서 PPT자료를 만들어서 설명한다. 그리고 교수가 추가하는 형식이다. 1906년 MIA와 실무에서 사용되는 보험증권의 약관과 영국판례가 발표의 대상이다. 전반부와 후반부에 해상변호사들이 수업을 나누어서 진행하였다. 전반부는 리 키아트 셍(Lee Kiat Seng) 변호사가 담당하였다. 그는 싱가폴 출신의 수잔 호지(Suzan Hodge)의 해상보험법 저서를 추천하였다. 그리고 템플만의 해상보험도 참고 서적이다.

싱가폴의 해상보험법은 영국의 MIA를 그대로 사용하기로 하는 단행법이 1990년대에 제정되었다. 그래서 영국 1906년 MIA가 수업의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청구권 대위에 대한 그의 설명이 기억에 남는다. 손해보험은 보상보험이기 때문에 청구권대위가 일어나지 않는 상황이라면 손해보험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청구권대위는 영국은 피보험자의 이름으로 하여야 하기 때문에 불편한 점이 많아서 양도를 받아서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상법규정에 의하여 청구권대위가 일어나므로 보험자는 자신의 권리로서 청구가 가능하므로 보험자에게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담보특약(warranty)에 대하여 세계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 엄격성을 해소하는 입법적인 동향을 소개하지 않은 점은 아쉬웠다. 

후반부는 라자앤탄의 해상변호사인   춘린, 위스톤(Kwek Choon Lin, Winston) 변호사가 강의하였다. 현실전손과 추정전손의 차이점을 설명하였다. 해적과 관련하여 최근의 사례에서 “석방금을 주고 선박이나 화물을 찾아오는 것은 공서양속에 반하는 것”이라고 일부 판례나 제정법이 보고 있으므로 이것을 추정전손 주장하는 자가 원용하면, 즉, 해적당한 선박을 석방금을 주고 풀어낼 수도 없으니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어서 추정전손을 선언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질문을 던졌다. 영국 판례와 싱가폴 법률을 통하여 알아보았다.

마지막 수업에서 공동해손, 해난구조 등을 본 다음, 담보특약관련 싱가폴 법원 항소법원의 판결을 보았다. Marina Offshore Pte Ltdv. China Insurance Co 사건(2006)이다. 항해시 연안항해를 하라는 내용이 담보특약인지가 문제되었지만 첫 문장에서 항해개시전이라는 수식어가 있어서 아닌 것으로 판시되었다. 항차용 선박보험(voyage policy)인지 아니면 기간용 선박보험(time policy)인지가 먼저 문제되었다. 항소법원에서는 기간용 선박보험으로 판시되었기 때문에 선박이 불감항 상태였어도 보험자가 승소하지 못하고 피보험자의 불감항에 대한 인식을 입증하였어야 하였지만 입증되지 않아서 피보험자는 보험금을 수령하였다. 여러가지 내용을 한꺼번에 적용해볼 수 있는 좋은 사안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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