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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상곤 협운해운그룹 회장
“욕심내지 않고 성실하게 신뢰를 쌓아왔다”
[476호] 2013년 04월 29일 (월) 16:44:03 이인애 komares@chol.com

   
 
글로벌 선사들의 한국시장 ‘지사체제화’가 일반화되면서 국내 대리점업계는 예전에 비해 많이 위축돼 있다. 그러나 지금도 해외 유수의 선사들과 오랜 대리점 관계를 유지하며 해운 부대업 서비스에 충실한 대리점 기업들이 있다. 협운해운그룹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1976년 TSR(시베리아횡단철도)업무 중심의 해상주선업체로 출범한 협운해운그룹은 78년부터 윌헬름센 라인과 대리점업무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웨스트우드, 스톨트 넬슨, 기어벌크, 라스코쉬핑, 스타크루즈, 유코 카캐리어스 등 여러 해외선사들의 대리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중견’ 대리점사로 성장했다.
협운해운그룹의 5개 자회사들은 핵심사업인 해운대리점을 비롯해 포워더, 육운및 보세창고, 컨테이너 임대업, 프로젝트및 중량화물, 탱커 컨테이너클리닝 등 다양한 해운부대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7명의 직원으로 출발한 동사는 37년이 경과한 현재 157명의 종사원이 근무하며 연간 130여억원의 매출을 실현하는 중견기업으로 성장 발전했다. 이는 대외개방이후 과열경쟁으로 부침이 적지 않았던 해운부대업계에서 협운이 리딩그룹으로 건재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협운해운그룹은 창립자인 마상곤 회장을 빼놓고는 거론할 수 없다. 한국해양대학교 항해학과를 졸업한 마 회장은 국제 해운업계에서 애칭 ‘SK마’로 통한다. 한국에서 TSR 서비스를  개시한 장본인이기도 한 그는 TSR서비스를 통해 동사를 창립했고 이후 여러 대리점업과 부대업을 직접 유치하고 안정시키며 성장을 이끌어왔다. 이 과정에서 그는 ‘SK마에게 맡기면 틀림없다’는 국제적인 신뢰를 쌓았고, 그 결과 그가 맡은 대리점 업무는 한국 해운시장의 대외개방에도 지사체제로 전환되지 않고 대리점업을 유지하고 있다.
동사는 신한상운과 협운스톨트항운의 창고및 시설과 사옥 등 대리점으로서는 자산규모도 적지 않다. 자산규모에 대한 질문에 마 회장은 “우린 그보다 더한 무형의 자산을 가지고 있다”면서 “협운이 고객에게서 받고 있는 신뢰와 성실이 그것”이라고 우문에 현답을 내놓았다. “앞으로도 보이지 않은 협운만의 자산으로 사업의 건실성을 유지해나갈 것”이라고 마 회장의 말에서 우리나라 수출입화물 운송업의 한 성장축으로 기능해온 해운부대업계 중견 기업의 면모를 느낄 수 있다.
마 회장은 해운계의 ‘기부천사’ 원로로도 주목받고 있다. 가난한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사회입문이후 시작한 경제사정이 어려운 학생돕기의 범위를 확대시키고 있다. 그동안 모교와  후배들에게 기부해온 그는 올해 일반 중고생을 대상으로 장학사업을 시작했다. 협운의 37주년 창립일을 기점으로 ‘책 한권 사볼 수 없는’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는 취지에서 9-10명을 대상으로 장기 후원사업에 들어간 것이다. 그로인해 쏠리는 시선에 대해 마 회장은 “부담감도 크지만, 해운계의 기부문화 확산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는 주변의 격려와 칭찬에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4월 10일 오후 3시, 도렴동에 위치한 협운해운그룹의 본사에서 마상곤 회장을 만났다. 마침 건강검진이 오전시간에 예정된 날에 약속된 일정이었는데도 그는 피곤한 기색없이 장시간 인터뷰에 응하는 노익장을 과시했다. 약속 이행에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그의 평소 신조를 확인할 수 있었다.  

-글로벌선사들이 지사체제를 확장하면서 국내 대리점업계가 과거에 비해 위축돼 있는 가운데 협운해운그룹은 여러 해외선사들과 수십년간 관계를 유지하며 성장해왔다. 관련 귀사의 주요사업이 성장해온 스토리에 대해
우리 그룹은 1976년 해상화물주선업을 시작으로 창업했지만 이후 해외선사들의 업무를 지원하는 대리점업을 하나둘씩 덧붙이며 이를 핵심사업으로 영위하며 성장시켜왔다. 현재는 해운대리점을 비롯해 국제프레이트포워더, 육상운송및 보세창고, 컨테이너리징업, 프로젝트및 중량화물, 탱커 컨테이너 클리닝 분야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당시 협성의 계열사인 영창해운에 근무하던 시절 창업했다. 77년 인터풀INTERPOOL사와 대리점계약을 체결하고 컨테이너 임대업을 시작했고, 이듬해인 78년에는 노르웨이 선주인 WILH. Wilhelmsen Line과 대리점계약을 체결하고 중동행 수출입화물의 한국 지역 운송업무를 개시했다. 83년에 미국선주인 Westwood Shipping Lines의 대리점업을 시작했으며, 같은 해 협운기업을 설립해 해상운송주선업무를 분사시켰다. 주선업을 하다보니 운송시설이 필요해 87년에 신한상운을 설립, 특수차량 운송업을 시작했으며 90년에는 Stolt Nielsen과 대리점 계약을 맺고 탱크선과 탱크컨테이너 수송업무를 개시해 부정기선업무를 강화했다. 이후 96년에 협운기업과 신한상운의 업무를 단일화하고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신한상운으로 해상운송주선업과 육상운송업을 통합하고 이듬해(97년) 양산에 대규모(4,517평) CFS 보세창고를 증개축했다.

99년에는 스톨트항운의 클리닝 스테이션부지를 양산에서 매입해 이듬해 관련시설을 건립, 사업을 시작했다. 같은해 당사는 노르웨이 Gearbulk Ltd와 대리점계약을 체결하는 한편 2000년에는 미국의 Lasco Shipping과 대리점계약을 맺고 부정기선 업무를 더욱 강화했다. 또한 2000년에는 말레이시아의 Star Cruises와 대리점계약을 통해 유람선 취항업무도 개시했다. 

해운업이 대외에 개방되면서 관련 외국자본이 한국에 유입될 당시 92년 협운스톨트항운(주)를 스톨트넬슨과 5: 5지분의 합작회사를 설립했고, 96년에는 신한상운은 양산시에 보세장치창용으로 부지를 확보했다. 같은해(96년) 노르웨이에 소재한 바윌 에이젠시(Barwil Agencies)와 합작으로 바윌협운에이전시를 설립하고 윌헬름센 라인과 Norsul Line의  Tramper업무를 전담하기 시작했으며 2006년부터 Eukor Car Carrier의 울산대리점업무도 개시했다. 바윌협운에이전시는 이후 08년에 웰헴슨협운쉽스서비스로 사명을 바꾸었다. 2001년에는 웨스트우드의 대리점업무를 전담할 자회사(협운인터내셔날)를 웨스트우드사와 5:5 지분투자를 통해 설립했다. 협운스톨트항운은 08년에 울산에 추가부지를 확보하고 2010년 월 400teu의 컨테이너를 세척할 수 있는 사업장을 추가로 완공함으로써 사업을 확장했다.

-연혁에서 일부 설명이 됐는데, 5개 자회사와 그 업무내용을 간략히 정리하자면
우선 협운해운그룹내 자회사는 5개사이다. 이중 협운해운과 협운인터내셔날, 윌헴슨협운쉽스서비스가 국제해운대리점이며 신한상운은 운수업과 포워딩, 창고업사업을 영위하고 있고  협운스톨트항운은 탱크 컨테이너크리닝 사업체이다. 이들 5개사중 윌헴슨쉽스서비스와 협운스톨트항운은 선주사와 합작사로 설립, 운영되고 있다. 그리 크지 않은 조직을 사업별로 계열분리한 것은 선주사가 각기 다르다는 점도 있지만 책임경영체제를 통한 전문성 확보와 고위직 직원들에게 비전을 준다는 취지에서 추진했다. 이러한 경영체제에 대해 선주사에서도 선호하고 있으며 전문성 제고를 통한 업무성과도 높게 나타나고 있다.

-창업 초기와 현재 조직규모를 비교하면

우리 협운해운그룹은 자회사 통산 전체 157명이 근무하고 있다. 조직은 회사별 팀별로 운영되고 있는데, 현재 그룹내 팀장만도 16명이다.  본사 이외의 조직으로는 부산사무소와 울산사무소, 인천사무소, 평택사무소가 있고, 양산과 온산에 협운스톨트항운의 공장이 있으며 신한상운은 양산에 보세창고를 운영하고 있다. 창업당시 7명에서 157명으로 조직의 규모가 확대됐으니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최근 귀사의 경영실적은

협운해운그룹 전체로 지난해(2012년) 매출은 130억 3,400만원이었으며 세후 당기순이익은 22억 2,800만원이었다. 당사는 창립이후 계속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 대리점은 운항사업과 달리 선주에게 수수료를 받는 서비스업이기 때문에 선주와 고객과의 건실한 관계를 잘 유지하면 큰 부침이 없는 사업분야이다. 그러나 본연의 업무를 소홀히 할 때는 선주사의 불만을 사게 되고 대리점이 바뀌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당사는 최선을 다해 신용과 실적을 쌓아올리며 사업을 확대해왔다고 할 수 있다.

-직원들의 교육 등 복지후생 여건도 좋다고 들었는데
팀별로 직무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필요할 경우 고객만족 예절교육과 외부 위탁전문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영어 등 어학교육은 학원비의 50%를 회사가 부담하고 있다. 복지는 회사별로 흑자가 나며 꾸준히 사내복지기금을 늘려왔다. 사내복지기금법인을 운영하며 임직원의 자녀중 고등학생과 대학생에게 50%의 학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대리점과 해운부대업으로 37년의 역사를 가지고 꾸준한 성장을 하기가 쉽지 않은 일인데 고객과 오랜 파트너관계를 유지해온 비결은?

당사는 창립이후 37년간 지금까지 현재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신용과 성실로써 신뢰를 쌓아왔다. 이렇게 노력해온 결과 선주와 고객에게 꼭 필요한 대리점으로 성장발전해온 것으로 생각한다. 운도 좋았다. 글로벌 컨테이너선사들이 지사체제를 구축하는 추세에 있는 상황에서 우리 회사가 서비스하는 해외선주는 굴지의 선사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사들도 아시아에 지사를 운영하고 있는 점을 살펴본다면 대리점인 당사에 대한 신뢰가 한국시장에서의 대리점체제 유지의 배경이라고 생각한다. 일부 선주는 지금도 “한국에서 지사는 필요없다. 대리점관계를 지속할 것”이라며 “대리점이 잘하기 때문”이라 말하곤 한다. 당사의 파트너 선주들중에서도 일부는 한국시장의 대외개방이후 합작을 통해 자본참여를 한 회사가 일부 있다. 그러나 규모가 크지 않으며 합작사가 대리점일을 보고 있다.

-서비스업을 꾸준히 확장하기가 힘든 현실속에서 협운의 장수비결은
먼저 얘기한데로 운이 좋았다. 그리고 ‘기본에 충실하면 또다른 기회가 온다’는 소신을 전직원과 함께 실천하며 노력해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오늘 할 일을 못하면 불신이 생기고 대리점업을 상실한다면 과연 다른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 내 지론이다.

선주와 대리점의 관계는 갑을 관계이다. 따라서 ‘신용’과 ‘실적’이 기본이다. 최선을 다해 선주사의 니즈를 염두에 두고 그에 부응해야 한다. 창업 당시에도 ‘욕심 내지 말자. 지금 주어진 일을 성실히 성공시키면 내일 희망이 있다’는 생각으로 사업을 이끌어왔다. 운항사업과 달리 대리점사업은 서비스업이다. 따라서 성실과 신용이 무형의 자산이다. 부동산 자산보다 남들이 알아주고 일을 더 맡기려 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 자산이다. 좋은 선주와 좋은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며 신뢰를 쌓아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오늘 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신용을 쌓은 결과 사업이 계속 확대됐다.

-최근 모교를 비롯한 일반사회를 대상으로 한 통큰 기부활동이 주목받고 있는데
7살에 아버지를 여의어 어머니가 홀로 행상을 하며 어렵게 대학까지 뒷바라지를 하셨다. 한국해양대학교 재학시절에는 책 한권 살 돈이 없어서 남들 자는 시간에 책을 빌려 공부를 한 적도 있다. 당시 어려움이 한이 돼서 취업한 이후 조금씩이나마 어려운 학생들을 도왔다. 

개인적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성공에 만족하고 있다. 해상주선업과 대리점업 관련협회의 회장단을 지냈고 해양대학교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산업포장도 받았다. 내게는 이러한 것들이 국회의원이 된 것보다 더 명예롭게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이룰만큼 성취했고 가족과 주변에 대해서도 살핀 만큼 사회기부활동을 위해 최근 몇년간 10억원의 기금을 모아왔다. 그래서 지난해 모교에 5억원을 기부했고 나머지는 중고등 학생을 대상으로 한 장학사업을 시작했다. 모교에서 그동안 발전기금과 장학금으로 기부해온 금액을 기록해두었다가 발표하는 바람에 한국해대에 기부한 금액(11억 1,700만원)이 알려져 버렸다. 너무 알려져 민망한데 또 일각에서는 해운산업계의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서는 많이 알려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일러주기도 한다. 과거 나처럼 너무 어려워서 책 한권 사볼 수 없는 학생(9명)들을 위한 장학사업은 올해 창사 37주년을 기점으로 본격 시동됐으며 학생들과의 교류를 통해 더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앞으로 10년간은 지속할 계획이다.   

-해운인으로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해운서비스업을 하며 살아온 50년 가까이 운도 좋았고 또한 노력한 만큼 신용과 사업을 이루어왔다. 그러나 해양대학교 항해학과 출신으로서 운항사업에 대한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으로 남아 있다. 해운 호황때 잠깐 유혹을 받았지만 일이 잘 진전되지 않았다.  해운불황이 장기화되고 있는 지금은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운항사업에 대한 아쉬움은 앞으로 후배들의 몫이다. 그러나 사업은 무리할 정도로 너무 벌리면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특히 잘될 때 비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반세기 해운인으로 살아온 삶 회고와 좌우명은?
지금 이뤄놓은 성취에 대해 만족한다. 양심껏 살아왔다고 자부하며, 건실한 중견기업을 일궈온 것에 만족하고 대리점업계의 원로로서 행복하다. ‘자기분수를 아는 행복추구’가 좌우명이다. 분수를 모르고 원대한 것만 바라면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마상곤 회장 약력>
△1940년생 △60년 대구계성고 졸업 △64년 한국해양대학 항해학과 졸업 △2010년 한국해대 명예경영학 박사학위 취득 △71-76년 9월 성창해운(부장대리), 협성선박, 영창해운(상무) 근무 △76년 협운해운 창립 대표 △78년 한국복합운송주선업협회 부회장 △88년 신한상운 대표 △92년 협운스톨트항운 대표 △96년 윌헴슨협운쉽스서비스(주) 대표 △96년 미 조지아항만국 한국대표(現) △2000-2003 한국국제해운대리점협회 회장 △2001년 협운인터내셔날 대표이사 회장-각 자회사 현재 대표이사 회장 △2008년 한국해양대학교 총동창회 회장 △2008년 현대글로비스 이사회 사외이사(現) △2006년 산업포장 △2012년 자랑스런 해양대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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