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너스 동상을 얼싸안고 소근 대는 별 그림자~”

6·25전쟁 도우러온 미국에 보답하는 뜻에서 만든 대중가요
1952년 장세정이 첫 취입…백설희가 다시 불러 크게 히트


비너스 동상을 얼싸안고 소근 대는 별 그림자
금문교 푸른 물에 찰랑대며 춤춘다
불러라 샌프란시스코야 태평양 로맨스야
나는야 꿈을 꾸는 나는야 꿈을 꾸는 아메리칸 아가씨

네온의 불빛도 물결 따라 넘실대는 꽃 그림자
빌딩에 날아드는 비둘기를 부른다
불러라 샌프란시스코야 태평양 로맨스야
내일은 뉴욕으로 내일은 뉴욕으로 떠나가실 님이여

메트로 포리탄 오페라에 꿈을 꾸는 님 그림자
달콤한 그 키스에 쌍고동이 울린다
불러라 샌프란시스코야 태평양 로맨스야
나이트 여객기가 나이트 여객기가 유성같이 날은다

샌프란시스코의 유명한 거리 피셔맨스워프
샌프란시스코의 유명한 거리 피셔맨스워프
청 말띠의 해 2014년이 열렸다. 2013년 7월 6일 미국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공항에서 일어난 아시아나항공기 추락사고 6개월째가 된다. 새해가 됐지만 사고원인 규명과 희생자들에 대한 처리가 최종 마무리되지 않아 가슴이 아프다. 아시아나항공기 추락사고 후 가끔씩 전해지는 관련 언론보도를 접하다보면 비행기가 떨어진 그곳 지명을 딴 추억의 대중가요 ‘샌프란시스코’가 생각난다. 무역선들이 드나드는 이곳은 국제무역항으로 우리나라 선사들과 해양물류기지, 화물창고 등이 운영되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 백설희(본명 김희숙) 노래의 ‘샌프란시스코’는 62년 전에 만들어진 노래다. 6·25전쟁이 한창 때인 1952년 여가수 장세정이 맨 먼저 취입해 오리엔트레코드에서 음반으로 내놓은 것이다. 대중가요 ‘병원선’(신세영 취입)과 같이 발매된 이 노래는 백설희가 다시 불러 더 잘 알려졌다.
 

노래 나오자 부산, 샌프란시스코에서 히트
이 곡의 노랫말을 찬찬히 들려다보면 그 무렵 한반도 전쟁터에 달려와 피를 흘리며 함께 싸워준 우방국 미국을 동경했던 우리나라의 사회상을 간접적으로나마 읽을 수 있다.
이 노래는 어떤 배경에서 만들어지고 히트했을까. 1951년 우리나라엔 미국으로부터 6·25 전쟁을 돕는 구호의 손길들이 몰려들었다. 군인 파병은 물론 미국 병원선 2척이 전쟁터에서 다친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 한반도로 온 것이다. 인정 많은 한국인들은 그냥 있지 않았다. 낯선 이방인들에게 숙박지 등을 안내하고 전투와 치료를 도왔다.

특히 피란시절임에도 ‘평화의 사도’들에게 보답하는 노래들이 만들어졌다. 미국에 고맙다는 뜻이다. 늘 검정 고무신에 검정점퍼 차림이었던 작사가 손로원의 가사에 박시춘이 곡을 붙이고 백설희가 노래한 ‘샌프란시스코’는 그래서 태어났다. 이 노래가 나오자 피난민들이 몰려든 부산과 병원선이 출항한 미국의 항구도시 샌프란시스코에선 크게 히트했다.

백설희씨가 이 노래를 재취입할 땐 대사가 음반에 실려 새로운 맛을 줬다. (갈매기 울음소리) ‘이국의 하늘이다 낯 설은 곳이다 / 여기는 항구 샌프란시스코다 / 금문교엔  은빛물결이 찰랑 댄다 / 발 빛에 부서지는 바닷물이 너무나 곱다 / 그러나  나는 혼자서 그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 내일은  뉴욕으로  그 다음날은 다른 항구로 떠나갈 그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노랫말과 대사를 보면 미국을 중심으로 유행하는 서양의 대중음악 특성이나 서양 분위기를 의도적으로 강조하는 느낌이 든다. 미국을 비롯한 서양이나 다른 나라의 풍경을 상상적으로 형상화하거나 군데군데 외국말을 쓴 가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래서 ‘샌프란시스코’ 가사를 놓고 국적불명이란 평이 따라다녔다. 6·25전쟁 때 ‘다국적군’이 한반도에 들어오면서 이국異國문화가 한국인들의 상상에 들어온 징후라고 보는 견해도 없지 않다. 1940년대 중반 한국인들이 아시아 각지에 흩어지면서 이국문화를 경험했다면 1950년대엔 ‘6·25전쟁’을 계기로 한반도에 온 외국 군인들을 통해 해외문화가 수입된 셈이다.

샌프란시스코 노래 속에 나오는 금문교
샌프란시스코 노래 속에 나오는 금문교

‘샌프란시스코’ 노랫말 속의 비너스동상은 청동, 쇠 등으로 만든 상象이 아니다.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있는 언덕으로 2개의 산봉우리가 비너스의 젖가슴처럼 생겼다고 해서 ‘비너스 동산’으로 부르게 됐다.
이 노래는 대만 여가수 고승미가 ‘우리의 슬픔을 날려 보내주오~’로 나가는 ‘제가 당신 곁에’란 제목으로 번안해 부르기도 해 화제가 됐다. 몇 년 전엔 어느 중국 인이 호주 시드니 지하철역에서 이 번안 곡을 배경으로 인형극을 펼쳐 언론에 보도됐다. 
 

샌프란시스코는 30여 년 전만해도 낯선 도시
노래 소재이자 제목인 ‘샌프란시스코’는 30여 년 전에만 해도 우리들에게 그리 잘 알려진 곳이 아니었다. 미국 내 도시 중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사는 신흥도시 로스앤젤레스(LA)와 떨어져있는 데다 지역분위기도 달랐다. 지금은 고인인 된 코미디언 이주일이 1982년 6월 미국 공연을 위해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내렸을 때의 에피소드가 재미있다. 조용필, 하춘화, 혜은이 등 일행은 낯선 풍경에 가슴이 설랬다. 미국 공연이 처음이었던 이주일씨와 그의 매니저 최봉호 회장은 즐거워했다. 최 회장이 갑자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가요 ‘샌프란시스코’였다. 노래를 끝낸 최 회장은 “주일아! 여기가 샌프란시스코인 것은 알겠는데 아메리카는 아직 멀었냐?” 최 회장이 농담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진짜 몰라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주위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다.

1978년 세샘 트리오가 부른 ‘나성에 가면’이란 노래 가사 속의 나성羅城이란 LA의 한자어 지명이다. 지금 LA는 미국 태평양연안의 제1항구도시지만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골드러시로 불리던 미국 서부개척시대 으뜸도시는 따로 있었다. LA 북쪽 바닷가마을 샌프란시스코였다. 부근 시에라네바다 산지에서 금광맥이 발견되자 1848년을 기점으로 그곳에 엄청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800명 남짓이던 어촌인구가 2만5000명을 넘어섰다. 마을이름도 예바브웨이나(Yerba Buena)에서 샌프란시스코로 바뀌었다. 1847년 13세기 이탈리아 아시스의 산프란치스코수도회 창립자 이름을 딴 것이다. 일본에선 샌프란시스코의  머리글 ‘샌(San)’ 대신 발음이 비슷한 한자 ‘뽕나무 상桑’자에 ‘항구 항港’자를 덧붙여 ‘소코桑港’라 불렀다. 한글로 읽으면 ‘상항’이다.

샌프란시스코 근교해변 하프 문 베이 전경
샌프란시스코 근교해변 하프 문 베이 전경

캘리포니아주 서부 샌프란시스코만灣에 있고 북쪽은 마린반도, 동쪽은 오클랜드와 이어진다. 식품, 식육가공, 제당, 인쇄출판, 고무, 섬유 등 경공업이 발달돼 있다. 여름에 서늘하고 겨울에 따뜻한 지중해성기후로 관광객들이 연중 모여든다. 금문교, 샌프란시스코-오클랜드 베이브리지, 차이나타운, 골든게이트공원, 케이블카, 어시장, 오페라하우스 등 볼거리가 많다. 인구 5만명이 넘는 차이나타운은 작은 중국을 이룬다.

1906년, 1989년의 대지진도 버텨낸 샌프란시스코는 한국·중국·일본의 역사가 서린 도시이기도 하다. 1900년대 초 도산 안창호 선생과 장인환·전명운 의사는 이곳에서 일제로부터의 독립운동을 벌였다. 하지만 중국교민들에겐 피와 땀이 베인 곳이다. 1933년 시작돼 4년간 이어진 금문교(Golden Gate Bridge) 건설공사에 참여했던 수십 명의 중국이주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본은 1951년 9월 8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연합국에 무릎 꿇는 강화조약을 맺었다.
 

백설희씨, 연예인 남편·아들·손녀 둬
이 노래는 부른 백설희씨는 1927년 1월 29일생으로 서울기예여고를 나와 1943년 가요계에 데뷔했다. ‘봄날은 간다’, ‘샌프란시스코’, ‘물새 우는 강 언덕’ ‘목장 아가씨’ ‘딸 칠형제’ ‘아메리카 차이나타운’ ‘하늘의 황금마차’ ‘청포도 피는 밤’ 등 수많은 노래를 불러 유명하다. 1950년대 말 최고의 인기 여가수로 사랑 받은 그는 영화 ‘자유부인’에 특별출연한 이력도 있다.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꾀꼬리 목소리로 인기가 많았다.

영화배우 황해(2005년 별세)의 아내로 가수 전영록 등 4남 1녀를 둔 어머니다. 인기 소녀그룹 멤버인 손녀 전보람 양(전영록 전처인 탤런트 이미영 사이에 태어남) 등 3대째 연예인가문의 맥을 잇고 있다. 고인은 6·25전쟁 때 전선을 돌며 군인위문공연을 펼친 공로를 인정받아 국가유공자로 선정됐다. 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 ‘봄날은 간다’의 주인공 백씨는 자신의 노래 가사처럼 봄날과 함께 83세로 2010년 5월 5일 새벽 고혈압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작사가 손로원은 1950년대를 거치면서 이국적 분위기의 작사를 도맡다시피 한 가요인으로 유명했다. ‘샌프란시스코’, ‘인도의 향불’, ‘홍콩 아가씨’, ‘페르샤 왕자’, ‘사하라사막’, ‘런던 소야곡’, ‘바다비아의 밤’, ‘밤 깊은 차이나타운’, ‘이별의 월남선’, ‘카이로 시장’, ‘내가 울던 빠리’, ‘모로코 사랑’, ‘베니스의 창문’, ‘워싱턴 블루스’, ‘정거장 에키타스리’, ‘차이나 워리 꾸냥’ 등 찾아보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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