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악용한 불법 행위 만연, 보완 대책 ‘미비’

 

 

지난해 인천내항에서 발생한 수입화물 무단 밀반출 사고가 항만업계, 해운업계 모두에게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악덕 수입업자가 주도하고 부두 운영사가 개입해 수입화물을 빼돌린 동 사고로 인해, 연루된 부두 운영사는 공중 분해됐고 운송인이었던 해운회사는 거액의 손해배상을 물게 됐다. (해양한국 2014년 3월호 <‘수입화물 밀반출 사고’ 해법 없나> 참조)


문제는 이와 같은 수입 화물의 무단 밀반출이 관행처럼 이어져오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부두에서 발생하고 있는 이러한 행태들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부의 부두운영회사(TOC, Terminal Operating Company) 제도하에서는 이를 근절할 수 있는 보완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하지만 정부는 아직 뾰족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내항 1부두 운영 (주)청명 부도
인천항노사정, 항운노조 고용승계 등 대책 마련

2007년부터 인천내항 1부두에서 2개 선석을 운영했던 (주)청명이 1차 부도 처리된 것은 지난해 11월. 동사는 경기 침체로 인한 물량부족 등으로 인해 수익성이 떨어진 상황에서 작년 3월 철근 수입업자인 효산스틸에게 20억원 상당의 철근을 무단 반출하다 소송에 휘말리며 심각한 경영 타격을 입었다. 무단 밀반출 사건 이후 심각한 경영난을 겪은 동사는 결국 지난해 11월 6일 5,700만원의 어음을 막지 못해 1차 부도처리 됐다.


(주)청명의 부도는 인천 항만업계에 커다란 타격을 줬다.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컨테이너 화물 200만teu를 달성했던 인천항이지만, 6년 넘게 운영되던 부두운영사가 5,000여만원의 어음도 막을 능력이 없었다는 것은 몇몇 부두운영사의 영세성을 그대로 드러낸 단면이었다.
 

(주)청명이 부도처리 된 후, 가장 큰 쟁점이었던 항운노조 조합원 16명의 고용 승계 문제는 3월 14일 인천항 노사정 인력관리위원회에서 최종 타결됐다. 인천항만공사IPA, 인천지방해양항만청, 인천항만물류협회, 인천항운노동조합으로 구성된 인천항 노사정은 16명의 항운노조 근로자 중 4명은 항만현장관리소로 배치하고, 12명은 남항부두운영(주), 북항INTC, 대주중공업, CJ대한통운, 동방, 동부, 영진, 세방, 우련통운, 한진, 동화실업, 선광 등 12개 업체가 1명씩 추가 고용하기로 합의했다. IPA는 청명 조합원을 고용한 12개 회사에게 첫해 임금에 한해 항만위원회 의결을 거쳐 지원하기로 했다.
 

한편 인천항 노사정은 TOC부도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강구하기로 했다. △인가하역요금  준수 △TOC부두 자체 평가 실시 △임대료 이행보증증권 제출 의무 △폐기물 처리비용 발생자 부담 등 대책을 추진해, TOC부도로 인한 항만 경쟁력 악화를 방지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인천항만물류협회 회원사는 인가된 하역 요금을 준수해야 하고, IPA는 이와 관련된 자료 제출을 업체에 요구할 수 있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IPA가 선석과 부두 사용을 제한할 수 있으며, IPA는 인천항 부두운영사TOC 경쟁력 강화를 위해 자체 평가를 하고, 평가 결과가 저조한 업체에 패널티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 안길섭 IPA 홍보팀 부장은 이에 대해 “회사간 과당경쟁을 방지해 인천항 전체적인 경쟁력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행 TOC 제도에선 밀반출 막을 방법 없어
그러나 (주)청명 부도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적되는 화물 밀반출에 대한 대책은 여전히 미진하다. 현행 TOC제도 하에서는 수출업자(화주)-운송인-부두운영사-수입업자(화주) 간의 운송거래를 국가나 항만공사(PA)가 나서서 일일이 관리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당시 사건을 복기해보면 수입업자가 수출업자에게 물품대금을 지급하지 않은 상황에서 부두운영사가 수입업자에게 화물을 무단으로 밀반출한 것이다. 정상적인 거래였다면 수입업자가 화물을 찾기 위해서는 수출업자에게 물품 대금을 지불하고 화물인도지시서(D/O)를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동 사건의 경우 수입업자가 물품 대금을 지불하지도 않았고 화물인도지시서도 없었으나 부두운영사가 화물을 내어준 것이 문제가 됐다.
 

국가가 관리하는 공영부두는 선박이 부두에 접안해 화물이 하역·보관되고, 그 화물이 화주에게 전해질때까지 모든 과정에 항만당국이 관여하게 된다. 그러나 민간 사업자가 운영하는 TOC부두는 사실상 세관절차를 제외하면 국가가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다. 수출입 과정 중 무단 반출 등의 행태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여건인 것이다. 하물며 철근과 같은 무관세 화물이라면, 불법을 저지를 수 있는 기회는 더욱 많은 실정이다.

 

관행처럼 이어져온 화물 밀반출, “웃돈 줄테니 미리 빼달라” 요구도
문제는 이번 뿐만아니라 이러한 수입화물 무단 밀반출이 관행처럼 이어져오고 있다는 점이다. 한 항만 관계자는 “(주)청명의 경우 그동안 해왔던 반출량이 꽤 컸던데다가 수입업자가 도주하면서 이렇게 큰 사건이 터진 것이지 어디서든 약간의 반출은 관행처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불법적인 일이 만연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어려워 죽겠는데 갑이 하라면 해야하지 않겠나. 을의 입장에서 강력하게 ‘못준다’고 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닌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입업자가 영세한 부두 운영사에게 화물을 빼돌리도록 요구를 하면, 고정 고객을 묶어둬야 하는 운영사들은 화물을 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부두 운영사와 수입업자의 규모가 모두 영세한 상황에서는 소위 ‘외상거래’가 다반사로 일어나고, 수입업자는 화주에게 대금을 받은 다음 수출업자나 운영사에게 대금을 치르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외상거래에서도 화물인도지시서 제시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마음먹고’ 수입업자가 물품을 빼돌리려 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수입업자는 화물인도지시서 없이 화물 반출을 시도하면서 부두 운영사에게는 ‘하역료나 보관료에 웃돈을 얹어 줄테니 얼만큼만 미리 빼달라’는 요구를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다른 관계자는 “부두운영사가 불법을 알고 빼주는 경우도 있고 모르고 빼주는 경우도 있다. 어찌됐든 불법은 발생하는 것이고, 부두 운영사도 공범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TOC 제도 민간 항만투자 활성화 항만물류 효율화 목표로 97년 시행
영세한 부두 운영사의 사정과 물량 감소로 인한 자금난과 함께 지적되는 것이 TOC 부두의 관리 소홀이다. 민간의 항만투자 활성화, 수입 물류의 효율화를 위해 시행됐던 TOC 제도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부두운영회사 제도(TOC 제도)는 국가에서 건설한 부두시설을 민간업체에게 일괄 임대하며 자율적으로 전담운영하게 하고 국가에서는 부두임대에 따른 임대료만 징수하는 제도로, 1997년 시행됐다. 이후 2005년 7월 항만공사법이 시행되며 부두 운영사의 선정 권한은 각 항만공사가 갖게 됐고, 정부는 부두 운영사에 등록·허가 권한만 갖고 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전국의 TOC 부두는 전국 10개 항만에 42개 업체가 45개 부두가 운영 중이다. 이 중 21개 업체는 지방해양항만청 관할이고, 나머지 21개 업체는 항만공사 관할이다.
 

이번 사건에 대해 IPA는 TOC 부두의 개별 거래까지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는 입장이다. 암묵적으로 진행됐던 화물 밀반출 행태에 PA가 인지할 수 조차 없었다는 것. 다만 TOC 부두 운영사의 경영상황을 확인하기 위한 자체 평가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계획은 세웠다. IPA 관계자는 “개별 거래까지 PA가 나서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으나, 부두 운영사의 부도 사태를 막기 위해 업계와 협력한 다양한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1년에 한번씩 평가하지만 화물 밀반출 인지조차 못해
전국 항만 부두를 관리하는 해양수산부도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1년에 한번씩 이뤄지는 ‘부두운영사 성과평가’가 유일한 평가 기준이다. 그러나 동 평가만으로는 부두운영사의 불법 화물밀반출을 막을 방법이 없다.


2011년부터 전국 35개 TOC 부두운영사를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는 성과평가는 1년간의 실적자료를 통해 △물동량 유치노력 △생산성 제고 △투자비 △안전성 신뢰도 △이용자만족도 △정부정책순응도를 기준으로 점수를 매기고 있다. 이를 종합해 상위 3개 등급 부두운영사에게는 임대료 감면등의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있지만, 하위 그룹에 대한 페널티는 거의 없다.
 

해수부에 따르면, 부두운영사 성과평가를 통해 최하위 그룹에 속한 운영사가 3년간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하면, 2년간의 재기기간을 부여한다. 만일 그 운영사가 재기기간인 2년 동안에도 최하위 그룹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갱신계약을 불허하고 계약을 종료시킬 수 있다. (주)청명의 경우 지난해 최하위 그룹에 속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최하위 그룹에 속한 운영사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운영사가 어디인지에 대해선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해양수산부 항만운영과 관계자는 “TOC 평가는 부두운영사간의 선의의 경쟁을 유발시켜서 물량을 더욱 많이 창출하도록 하는 긍정적 평가 자료”라며, “청명의 경우 최하위 그룹에 속해있었지만, 계약해지의 패널티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총 5년간 최하위 그룹에 있어야 했다. 정부에서 손을 쓰기 전에 부도처리 된 것”이라고 밝혔다.
 

화물 무단 밀반출 사건이 TOC 관리 정책 소홀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TOC 제도에는 문제점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전국 항만에서 운영되는 TOC가 잘 운영되고 있는데, 유독 한 회사가 잘못됐다는 이유만으로 제도의 근간이 잘못됐다고 평가하는 것은 부당하다”면서, “TOC 제도는 한마디로 국가와 사업자간 부동산임대차계약과 같은 것이다. 계약은 정상적으로 진행됐는데, 임대인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임대계약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 않는가”라고 답했다.
 

무단 밀반출 사건에 대한 패널티 조항 마련여부에 대해서도 계획된 것이 없다는 답변이다. 해수부 측은 “무단 밀반출은 회사의 기본적인 영업이 잘못된 것인데, 이런 일이 발생하면 그 운영사에 대한 신뢰도 하락과 물량 감소로 TOC 평가에서도 저평가를 받게될 것”이라면서, “화물 밀반출에 대한 추가적인 대책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개별 거래 감시·관리할 수 있는 보완대책 필요”
그러나 항만 연구자와 전문가들은 어떠한 식으로든 정부의 관리 감독 체계가 강화돼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개별 거래에 대한 전수조사는 불가능하겠지만 이러한 행위가 근절될 수 있는 감시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 항만 연구자는 “적어도 기본적인 서류만 오고 갔다면 이러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TOC 정책이 민간투자 활성화와 항만 효율성 강화를 위해 시행된 만큼 일일이 정부가 감독하게 되면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화물 밀반출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에 대해 IPA 측은 “아직 사건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 말하기가 조심스럽다”면서도, “만일 부두 운영사의 불법 여부가 확정된다면 이러한 행위를 제제할 수 있는 방안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부두에서 화물 밀반출 사고가 발생했다. 단지 한 부두 운영사의 잘못으로만 덮고 넘어간다면 유사한 사건이 또다시 발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것이다. 항만 현장에서 증언하듯이 화물 밀반출은 전국 많은 부두에서 관행처럼 일어나고 있다. 우리 항만 신뢰도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길 수 있는 이러한 행태를 바로잡을 수 있는 항만관리 보완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정부와 관련기관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저작권자 © 해양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