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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인터넷을 활용한 세월호 사고예방
[495호] 2014년 12월 01일 (월) 11:48:45 조봉기 komares@chol.com

   
조 봉 기
한국선주협회 해무이사
여기 세월호 같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작은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1. 프림졸
인터넷 구글에서 프림졸Plimsoll을 검색하면 고무밑창에 헝겊으로 발등을 덮은 형태의 신발 사진이 여러 개 나온다. 그런 신발을 통틀어서 ‘프림졸 신발’이라고 한다. 프림졸 신발의 특징은 바닥이 질척한 길을 걸을 때 나타난다. 바닥에 고인 물이 신발의 고무밑창 높이보다 낮을 때는 발이 젖지 않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신발에 물이 샌다. 즉 방수는 방수인데 얕은 곳에서만 물이 안 새는 ‘조건부 방수신발’인 것이다.
프림졸에 대한 다른 검색 결과는 배마다 중간지점에 붙어있는 ‘프림졸 마크’이다. 지름이 30센티미터인 동그라미와 그 한 가운데 수평으로 선을 그어놓은 형상의 이 마크는 그 선까지만 배가 물속에 잠겨야 한다는 ‘적재한계선’을 뜻한다. 프림졸 신발에 비유하자면 그 선을 중심으로 아래 부분은 고무밑창이지만 윗부분은 헝겊이기 때문에 배에 아무리 물건을
   
 
많이 싣거나 사람을 많이 태우더라도 최소한 갑판에서 프림졸 마크까지는 물에 젖지 않게 남겨둬야 배가(신발처럼) 물에 젖지 않는다는 뜻이다. 최소한 물에 젖지 않아야 하는 부분, 이것을 영어로는 freeboard프리보드라고 하고 일본어로는 乾舷강겐, 중국어로는 干舷강시안이라고 한다. 우리도 건현이라고 하고 있다. 모두 다 배가 물에 젖지 않은, 혹은 젖으면 안 되는 마른 부분을 의미한다.

   
 
이 프림졸 마크는 배 뿐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다. 런던 지하철의 상징으로서 모든 지하철역에서 프림졸 마크를 만나게 된다. 인명존중의 심볼인 프림졸 마크를 활용해서 열차 운행에도 인명보호를 최우선시 하겠다는 것이리라. 서울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었을 때 역이름을 알리는 표시판도 약간 변형된 프림졸 마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밖에도 런던에는 프림졸로가 있고 프림졸다리도 있다.

2. 사무엘 프림졸이라는 사람
사무엘 프림졸이라는 사람은 지금부터 100년도 훨씬 전인 1898년에 세상을 떠난 사람이지만 그 사람 이름은 신발에, 지하철에, 거리에 남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구에 배가 존재하는 한, 아마 영원히 남게 될 것이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옛말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다.
   
 
사무엘 프림졸은 1824년 영국 브리스톨에서 출생했다. 궁핍한 환경에서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맥주공장에 취업하여 일을 시작했다. 1853년 런던에 진출해서 석탄 중개업에 도전했으나 쫄딱 망해 알거지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때부터 자기와 처지가 비슷한 빈민, 불쌍한 사람, 안타깝게 죽은 자들에 대한 관심에 사로잡혀 이들에 대한 헌신을 결심했다고 한다. 특히 당시 모든 이들의 공분을 샀던 코핀쉽(coffin ship)문제에 깊은 한탄과 문제의식을 가슴속 깊이 간직하게 되었다고 한다.

코핀쉽(coffin ship)이란 말 그대로 관棺배, 배가 곧 거대한 관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그 배에 탄 사람들은 모두 이미 시체나 마찬가지이거나, 그 배에 탄다는 것이 곧 관속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는 끔찍한 얘기이다. 보험업계에서 코핀쉽이라고 하면 어떤 배의 기대수익보다 그 배를 바다에 빠뜨리고 수령하게 될 보험금이 월등히 많아 배가 물속에 빠져버리는 것이 선주에게 득이 될 것 같은 배를 말한다. 때로 선주는 보험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건현이 조금밖에 안 남을 때까지 짐(또는 쓰레기 더미)을 싣거나 혹은 태평양 한 가운데에서 불을 지르거나 폭발물을 터뜨려 배를 가라앉히는 보험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기의 막바지로 여전히 세계의 공장역할을 하고 있었다. 수많은 원자재를 실은 배들이 템스 강으로 들어오고, 또 생산품들이 실려 나갔다. 런던뿐만이 아니라 곳곳의 항구마다 수많은 배들이 들고 났다. 그 과정에서 대서양과 북해의 거친 풍랑에 많은 배들이 침몰되어 사라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빈발했다. 사무엘 프림졸은 이런 사고로 소중한  목숨을 잃는 선원들에 깊은 관심과 연민을 품게 된 것이다.

1841년부터 시작된 아일랜드의 대기근으로 1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굶거나 병들어 죽었다. 기아의 공포를 피해 고국을 등지고 이민선에 올라탄 사람들도 10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아일랜드 디아스포라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중 수많은 사람들이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고 배와 함께 물속으로 수장되는 일도 자주 일어났다. 이 또한 프림졸의 마음속에 분노와 개탄으로 남아있었으리라. 아마 세월호 사고를 접한 우리의 심정과 똑같았을 것이다.

이후 프림졸은 민주당 의원으로 선출(1867)되어 국회에 진출하게 된다. 제일 먼저 발의한 법안이 늘 생각해 두었던 최소건현의무화 법안이었다. 배마다 최소한 확보해야 할 건현을 법으로 정하고 이를 지켜나가자는 내용으로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상식적인 법안이었다. 그런데 프림졸이 발의한 법안은 여러 의원들의 반대에 부딪친다. 당시 영국 국회에는 선주들도 상당수 진출해 있었던 모양이다.
너무나도 어이 없이 법안이 폐기되자 충격과 실의에 빠졌을 프림졸은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1872년 「우리 선원」 이라는 책을 집필하게 된다. 선원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그럼에도 얼마나 덧없이 목숨을 잃고 있는지, 어떻게 하면 그런 안타까운 죽음을 막을 수 있는지 온 국민에게 호소하는 내용이었고 다행히 온 국민은 프림졸의 호소에 감동하기에 이르렀다.

이 짧은 소책자가 불러일으킨 반향으로 1873년에는 왕립 특위가 구성되어 프림졸 발의 법안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게 된다. 2년이나 질질 끈 끝에  정부 발의 법안이 마련되었다. 프림졸은 당초 자신이 제안했던 내용에 비해 다소 느슨해진 법안의 내용이 좀 못마땅하긴 했지만 정부법안에 동의하였고 마침내 법이 통과되나보다 했다. 그런데 보수당 출신 벤자민 디즈레일리 총리가 직권으로 본 법안을 폐기시키고 만다. 선주들의 입김이 작용했던 것이다.

격분한 프림졸은 분을 참지 못하고 “이 쓰레기 같은 놈들아(Villains!)” 고함치면서 연단으로 뛰어 올라 법안에 대한 반대의견을 피력하는 동료의원에게 주먹을 휘두른 모양이다. 이 일로 옥신각신하다가 결국은 프림졸이 공개적으로 사과를 하긴 했지만, 오히려 민심은 프림졸 편이었다. 거대한 민심으로 직권을 남용한 총리가 사퇴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법안은 최종 가결되게 된 것이다.  
이후 프림졸이 창안한 최소건현의무화제도는 1966년 국제만재흘수선협약이라는 이름으로 채택되어 글로벌 스탠다드로서 수없이 많은 생명을 구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된다. 당시의 해양기상학, 선박공학, 항해학의 지혜를 총동원하여 전 세계 해양을 세분화하고 계절별로, 또 염분의 정도에 따라 나누어 각각의 케이스 마다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건현을 정하는 기준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3. 배가 스스로 침몰하는 세 가지 경우
배가 스스로 침몰하는 경우는 세 가지다.
첫째, 배가 점점 무거워지면서(짐을 많이 싣거나 사람이 많이 타면서) 건현도 따라 점차 줄어들고 급기야는 건현이 없어지면서 배가 물속으로 들어가는 경우이다. 유원지에서 노 젓는 배를 빌려 2명이 타야 되는데 10명 쯤 타면 벌어질 일이다.

둘째, 배(배에 실려 있는 모든 것을 다 포함해서)의 무게중심이 배가 흔들리는 회전중심보다 위에 있을 경우 중력으로 배가 뒤집히면서 물속으로 들어가는 경우이다. 유원지 놀잇배를 타면서 자리에 앉지 않고 벌떡 일어섰을 때 일어날 일이다. (현실에서는 완전히 뒤집히기 전에 사람이 먼저 물에 빠지면서 배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온 국민을 멘붕에 빠트린 세월호도 이런 유형의 사고인 것이다.
셋째, 배 가운데 부분이 절단되면서 물속으로 들어가는 경우인데 배의 길이가 폭에 비해 과도하게 길어진 상태에서 화물이 고르게 실리지 않고 앞과 뒤에 심하게 집중될 경우, 가운데 부분이 견디지 못하고 부러져 버리는 것이다. 폭이 좁고 길이가 10미터쯤 되는 긴 놀잇배 앞과 뒷자리에 여러 명이 탄다면 가운데 부분이 부러져버릴 것이다.

사무엘 프림졸이 주목했던 사고는 세 가지 중 첫 번째 유형의 사고였다. 프림졸이 주장한 최소 건현확보 의무화 제도가 바로 첫 번째 유형의 사고를 막자는 취지였다. 이 제도는 그야말로 효과 만점의 제도로서 이제 첫 번째 유형의 사고는 완전히 소멸되었다고 할 수 있다. 최소한의 건현이 확보되지 못했다면 어느 보험자도 보험금을 내주지 않을 것이고 어느 항만도 입출항을 불허할 것이다. 선주 또한 최소건현 확보를 생명선처럼 존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반면에, 안타깝게도 두 번째, 세 번째 유형의 사고는 지금도 종종 발생하는 것이 현실이다. 화물의 특성상 아랫부분을 비워둔 채 위쪽에 화물을 실을 수 있는 자동차 운반선이나 카페리선, 또는 컨테이너선들도 종종 기울어지고 뒤집어진다. 중량화물을 주로 싣는 대형 벌크선들은 가운데 부분이 절단되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최근에는 대형 컨테이너선박도 중간부위가 절단되는 사고가 있어 세계해운업계가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4. 사물인터넷
프림졸이 창안한 제도가 전 세계적인 스탠다드가 되고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프림졸 마크가 쉽게 눈에 띄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만약 최소한의 건현을 정해주기만 하고 배에 마크가 없었다면 엄격히 지켜지지도 않고, 있으나 마나한 제도로 전락했을지도 모른다.
두 번째, 세 번째 유형의 사고도 이미 답은 나와 있다. 무게중심이 회전중심보다 위에 있으면 배가 뒤집어 진다. 너무 무거운 물건이 배의 일부분에 집중되면 어느 순간 배는 부러져 버린다. 이것은 너무나도 뻔 한 사실이지만 뭔가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것이다. 현재 무게 중심이 배 밑바닥에서 어느 높이에 있는지 또 배의 앞뒤로 무게가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지 한참 동안 계산하기 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뭔가 프림졸 마크처럼 시시각각변하는 무게중심과 무게의 분포를 실시간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사물인터넷이 인기다. 책방에 가면 사물인터넷에 대한 책이 쉽게 눈에 띄고 생각해보면 일상생활에도 이런 게 사물인터넷인가 싶은 것들이 점점 많아진다. 사물인터넷은 각종 정보를 수집하는 센싱sensing기술과 수집된 정보를 전달하는 통신기술이 고도로 발전하면서 두 가지 기술이 융합한 것이다.
11월 5일 코엑스에서 열린 「2014 사물인터넷 국제전시회」에서 스마트 텀블러가 선보였다고 한다. 물병에 센서를 달아 언제 얼마나 물을 마셨는지 스마트폰을 통해 알려주는 시스템이다. 얼마나 마셨는지, 언제 많이 마시는지, 내가 마시는 물에 대한 모든 궁금증을 해소시켜준다고 한다. 스크린 골프장도 유행이다. 공이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회전하면서, 얼마나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지 센서가 정보를 수집해 눈 깜짝할 사이에 컴퓨터로 전달하고 계산을 통해 스크린에 공의 예상 비행궤적을 보여준다. 집에 설치한 카메라로 집안에 무슨 일이 있는지 스마트폰으로 관찰한다. 스마트폰으로 집에 보일러를 켜거나 온도를 조절하기도 한다.  

5. 사물인터넷으로 프림졸 마크를
세월호 사고 이후에 이런저런 회의나 세미나 등을 참석하면서 어떻게 하면 무게중심의 위치를, 또는 배에 가해지는 하중의 정도를 쉽게, 실시간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파주 프리미엄아울렛에 갈 기회가 있었다. 주차장 건물이 따로 있었는데, 주차장 입구에 층마다 빈 주차공간이 몇 개나 있는지 표시해주는 장치가 있었다. 그리고 주차장 입구에 차를 세우면 차번호를 인식하고 내 차가 몇 층에 몇 번째 구역에 주차되었는지도 센싱하고 있었다. 양 옆으로 차들이 쭉 주차되어 있는 주차장 복도를 지나가면서 불현듯 이곳이 주차장이 아니라 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타보았던 자동차 운반선과 똑같았던 것이다. 세월호 같은 카페리선박과 비교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금만 더 생각을 키워보면 컨테이너선박도 비슷한 모양새다.

그 순간 주차장 입구에서 차량번호만 인식할게 아니라 차의 무게도 센싱한다면 나의 고민이 해결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어떤 무게의 차량이 어느 위치(배 밑바닥에서 부터 높이, 배의 중앙에서 앞 또는 뒤로의 거리)에 있는지만 안다면 배(배 안에 실려 있는 것을 모두 포함하여)의 무게중심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고 스크린에 골프공이 날아가듯이 실시간으로 무게중심의 위치나 분포를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자 상상의 나래를 펴보자. 세월호가 정박했다. 여객과 화물을 실은 차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차량이 들어오는 램프 바닥에 차량의 무게를 측정하는 계량기가 있어 자동으로 차량의 무게를 측정한다. 차량이 몇 번 갑판, 어느 구역에 정차되는지 탐지한다. 이렇게 탐지한 정보는 실시간으로 전달되어 배와 배안의 모든 물건의 무게 중심을 계산한다. 각종 탱크에 실린 물이나 기름도 무게와 위치정보를 계측하여 합산한다. 모든 정보가 합산되면 원하는 곳으로 결과를 전달한다. 선장이 휴대한 스마트폰으로, 해경이 운영한다는 관제실로, 원한다면 승객들에게도 전송한다.

묵직한 화물차 한대가 배에 실리면 아마 배가 1센티미터쯤 가라앉을 것이다. 이건 무슨 계산이나 공식이 아니라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실이다. 그와 동시에 무게중심에도 어떤 변화가 생길 텐데 그 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감지하기 어려운 변화를 눈으로 보게 해주는 것이다.
컨테이너 선박도 마찬가지 상상이 가능하다. 크레인이 컨테이너를 들어올린다. 들어 올리는 것과 동시에 무게를 잰다. 그 컨테이너를 몇 번 베이, 몇 번째 셀, 몇 번째 칸에 싣는지 모든 정보가 자동으로 본선에 전달된다. 본선에서는 실시간으로 무게중심을 계산하고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성수대교가 내려앉고, 수많은 사건사고가 있었다. 그런데 그런 사고들은 어는 한 순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조금씩 틈새가 벌어지고, 사람이 느끼지 못할 정도로 천천히 무너지기 시작할 것이다. 인간의 감각이 무디고 둔하여 마지막에 참사가 벌어질 때까지 센싱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인간 보다 뛰어난 감각기관을 소유한 쥐나, 개미나, 개들은 벌써 위험을 느낀다고 하지 않는가. 사물인터넷이 인간의 부족한 감각능력을 보완해줄 수 있는 것이다.
 

6. 마무리하며
아니야. 이건 공상일 뿐이야. 우리가 조선 강국인데 만들 수 있었다면 벌써 누군가 만들었겠지. 이런 생각들이 나를 주춤하게 한건 사실이다.
너무나도 단순하고 조악해서 아이디어라고 하기에도 볼품없어 망설여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봤는데 이건 공상이 아니다. 센싱기술과 통신기술의 최전선에 있는 우리가 현실로 만들 수 있고, 또 현실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전세계에 운항중인 수많은 또 다른 세월호를 위해 반드시 누군가 현실화해줄 것을 제안한다. 

끝으로 세월호 사고 이후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접하게 된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사무엘 프림졸 본인이 써서 당시 영국의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는 「우리선원 (Our Seamen)」이라는 책이다. 놀랍게도 140년 전에 발간한 책을 지금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인터넷만 있으면 누구나 공짜로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이 책은 그림에서 보다시피 호소문 (an appeal)이다. 생명을 위한, 선원을 위한 일종의 호소문이었던 것이다.

또 하나의 책자는 2006년에 니콜렛 존스라는 언론인 출신 여성 작가가 쓴  「더 프림졸 센세이션 (The Plimsoll Sensation)」이라는 책이다. 나중에 영국의 해사문학상의 수상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이 책의 부제는 〈해상에서 인명을 구하기 위한 위대한 캠페인〉으로서 사무엘 프림졸의 일대기이다.
여기 내가 접한 두 권의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내가 접하기만 하고 충분히 읽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기에 이렇게 소개하여 뜻있는 분들의 번역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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