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갈 길 먼 ‘고부가 물류’

 
 
입주업체 58개사 계속 늘어…CFS 요율 덤핑 심각
사업실적평가 ‘논란’ 환적화물 없어 대부분 패널티?

부산신항에 대규모 배후물류단지가 조성된 지 벌써 9년이 흘렀다. 2015년 9월 현재 58개의 물류업체들이 입주해 영업활동을 벌이고 있으나 애초 의도대로 고부가가치 물류의 활성화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대부분의 업체들이 고부가 화물 유치에 어려움을 겪으며 단순보관, 운송, 상하차 기능의 한계를 안고 있다. CFS요율 덤핑경쟁도 위험수위를 넘어선 데다 사업실적평가도 논란에 휘말렸다. 부산항이 동북아 항만물류 중심지이자 세계 2대 환적거점항으로 도약하기 위해 넘어야할 암초가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동북아 물류시장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중국 항만들이 급부상하고 글로벌 선사들의 전략적 제휴가 강화되었으며 동북아 항만간 환적화물 유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우리 정부는 부산항을 오는 2020년까지 세계 2대 환적거점항으로 육성한다는 비전을 내놓았다. 2013년 현재 세계 10대 환적항만 순위는 1위가 싱가포르항 2위가 홍콩항 3위가 부산항이다.

부산항의 환적화물은 고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부산항만공사BPA에 따르면, 부산항은 2014년 환적화물 941만 3,000teu를 처리했으며 1조 1,100억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1995년 43만teu 대비 22배가 성장한 셈이다. 2015년에는 환적화물 1,000만teu를 돌파하여 1조 2,000억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 터미널에서 발생한 환적화물로 배후물류단지에서의 환적물량은 아주 미미한 상황이다.

부산신항 배후물류센터 58곳 운영
2014년 128만teu처리, 환적화물은 18%
현재 부산신항 배후물류단지에는 419만㎡의 부지에 물류업체를 중심으로 58개사가 입주해 있다. 웬만한 국내 물류업체들은 모두 이 지역에 물류센터를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는 2020년까지는 서측 컨(1단계, 47만㎡), 남측 컨(144만㎡), 북 컨(2단계, 52만㎡), 웅동 2단계(112만㎡) 등 총 944만㎡가 조성될 예정으로 있어 앞으로 입주업체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 북 컨 배후부지에 30개 업체들이 물류센터를 운영 중이며 웅동 1·2차부지에는 28개사 중 25개사가 운영 중이며 3개사는 공사 중이다. 3차 부지의 10개사는 실시협약을 체결한 상태다. 최근에는 일본기업들이 국내 물류기업들과 손을 잡고 웅동배후부지에 투자를 하기도 했다.

지난해 부산신항 배후단지에서는 총 128만teu의 물동량을 창출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환적화물은 18% 정도로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 이에 대해 한 입주업체 관계자는 “배후단지의 물류창고로 환적화물이 들어오면 운송료와 작업료가 발생하기에 부산항의 환적화물은 터미널에서 발생한 것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대부분 단순보관, 운송, 상하차 기능 한계
업계 최초 사업계획서 제대로 이행 못해
9월 15일 오전, 부산신항 배후물류단지에는 활기가 돌고 있었다. 6년 전 방문했을 때의 썰렁한 분위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한 블록 건너 하나씩 대형 물류센터들이 자리했고, 야드마다 화물을 컨테이너에 싣고 내리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잘 닦여진 도로마다 컨테이너를 실은 화물차들이 바쁘게 오갔다. 바로 앞 신항 컨테이너터미널에서는 일렬로 늘어선 갠트리크레인들이 접안한 선박으로 끊임없이 컨테이너를 옮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활기찬 분위기와 달리 배후물류단지의 고부가 물류는 계속 제자리 걸음을 걷고 있다. 대부분의 업체들이 입주 당시 제시한 고부가 물류 사업계획을 이행하지 못하고 있으며 단순보관, 운송, 상하차 시스템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있다. BPA 관계자는 “업체들마다 꾸준히 노력하고 있으나 특출하게 고부가 물류를 잘 하는 업체는 아직 없는 게 현실”이라며 “일부 업체를 제외한 대부분이 단순보관 위주의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고부가 해외 물량 유치가 어려운 이유로 국내 업체들의 해외 영업망 부실, 부산신항 환적 경쟁력 약화 등을 꼽고 있다.

물론 입주업체들이 전혀 고부가 물량 유치 활동을 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업체들마다 해외화물 유치를 위해 다양한 사업모델을 시도해왔다. 저렴한 임대료와 각종 세금감면, 물류비 절감 등을 경쟁력으로 삼아 일본 등 해외 화주들을 대상으로 고부가 물류 비즈니스를 추진해왔다. 초기에는 일본의 선적항이 72개항으로 많고 내륙운송료 등 물류비가 높은 것을 감안해 부산신항 환적허브 모델을 제시했으나 현재는 이마저도 경쟁력이 떨어져서 거의 진행이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한 입주업체 관계자는 “초창기 일본업체들과 많은 미팅을 갖고 화물유치를 위해 노력했으나 현재는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면서 “특히 신항에서 북항으로 이동하는 내륙운송료가 큰 부담이 되면서 경쟁력이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곳곳에 공사중인 웅동배후단지
곳곳에 공사중인 웅동배후단지
업체들 “고부가 화물 유치 어려워”
저렴한 임대료, 보관료만으로 수익창출?
북컨에 입주한 B사의 경우 2010년 암웨이의 아시아지역 화물을 유치해서 단순 환적창고 기능을 벗어나 생산 공정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다. M사의 경우 일본 화주를 타겟으로 농산물 등에 대한 포장, 라벨링 등 고부가 화물을 처리하고 있다. 2011년 개장한 B사의 경우 “2년간 고생을 했으나 지난해부터 흑자로 돌아섰다”면서 “앞으로 매출의 30%는 자체 영업을 하고 향후 배후지에 창고를 추가건설할 계획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체들은 이구동성으로 고부가 화물 유치는 쉽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M사 관계자는 “다양한 부가가치 사업모델을 구상하고 있으나 실행이 어려운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부산신항 배후단지의 현실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초기 부산신항 배후단지를 기획했을 때와 현재의 동북아 물류시장 정세가 많이 바뀌었다”면서 “10년이 지난 현재 중국의 위상이 달라졌다. 중국에서 생산을 거의 완료하므로 굳이 부산신항 배후단지에 와서 부가가치를 창출할 일거리가 거의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배후단지의 물류센터가 60여개고 앞으로 100여개가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업체들이 고부가가치를 어디서 어떻게 창출해야 하는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입주업체들이 입찰을 위해 애초에 실현가능성이 없는 무리한 사업계획서를 제시한 것이 아니냐고 지적한다. 또한 저렴한 임대료로 인해 창고보관만으로도 수익창출이 가능하다 보니 기존 화물유치를 위한 가격경쟁만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배후부지의 인기는 여전히 뜨겁다. 주변지역 50분의 1에 해당하는 저렴한 임대료 때문이다. 이에 입주조건인 외국인 투자를 맞추기 위해 경영에 참여가 없는 페이퍼 외국회사만 차려놓았다는 지적도 일고 있으며 올 4월에는 배후단지 입주와 관련해 뇌물수수 비리가 터지기도 했다.

제 살 깎기 CFS요율 경쟁 ‘해도 너무 한다’
일본 톤당 30-40불 반면 부산은 5불 수준
부산신항 배후단지 입주업체들이 꼽은 공통적인 애로사항 중 하나는 바로 ‘CFS요율’ 문제다. 업체들은 현재 부산신항 배후물류단지의 CFS요율은 30년 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제 살 깎아먹기’ 경쟁이 도를 지나쳤다고 우려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업체 관계자는 “부산항이 세계 6위인데 CFS요율은 전 세계에서 맨 끝”이라며 “CFS요율이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일본은 톤당 30-40불인데 우리나라는 5불 수준”이라고 푸념했다. 그는 “물류창고의 안전문제를 위해서도 어느 정도 경쟁력이 있어야 하고 적당한 가격을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CFS요율은 항만하역 요율에 근거해 책정되고 있으나 부산신항 배후부지에 입주한 물류업체들이 점점 많아지다 보니 단가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대기업의 단가 후려치기로 피해를 본 사례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신규 창고들이 계속 늘어나다 보니 영업이 탄탄하지 않아 덤핑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어떤 화주들은 가격에 따라 물류업체를 이리저리 바꾸기도 한다. 요율문제가 개선되어야 서비스 퀄리티가 높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신규 물류창고가 계속 생기다 보니 인력 이동현상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면서 “우리 창고는 오픈한지 4년 가까이 됐으나 직원을 훈련시켜 경력자로 만들면 다른 신규업체로 가버리는 등 인력이동 현상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무리한 사업실적평가에 업계 ‘골머리’
자격미달 ‘패널티’ 지나치다 분통도
입주업체들의 사업실적평가는 또 하나의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입주업체들은 3년마다 사업실적을 평가받아 입주 때 써낸 물동량 유치 계획에 미치지 못할 경우 패널티를 받게 돼 있다. 계획 물동량의 70% 미만이면 입주 계약을 해지당하거나 토지임대료를 국유재산법상 사용료 수준으로 올리게 돼 있다. 80% 미만이면 정부가 고시한 기본임대료 수준으로 임대료를 인상하는 것이 벌칙 조항이다. 실적평가에는 고용창출과 신규투자 등의 고부가가치 활동이 강조된다. 항만배후단지가 고부가 물류활동을 목적으로 저렴한 임대료의 혜택을 주는 만큼 업체들에 대한 사업실적 평가는 긍정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입주업체들은 이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대부분의 업체들이 조만간 예정된 사업실적 평가에서 외국화물(환적화물)의 점수가 매우 저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업체들은 배후단지 임대료가 저렴하고 혜택을 보는 것은 사실이지만 글로벌 경기침체로 물동량이 감소한 것을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 BPA 규정대로 실적평가가 이뤄지면 대다수의 기업들이 과중한 패널티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입주업체들에 대한 BPA와 세관지원 업무는 ‘굿Good’이다. 대부분의 분야에서 업체들을 잘 지원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사업실적평가를 두고 다들 말들이 많다”고 전했다.

올해 실적평가가 예정돼 있는 한 업체 관계자는 “하반기에 실적평가 규정이 확정되어 16개 업체들의 평가가 이뤄질 경우 대부분의 환적화물 점수는 0점으로 패널티 폭탄이 예상된다”면서 “힘든 시기에 사업에 타격을 미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에 실무자들 사이에서는 “고부가는 무슨 고부가냐, 고부가의 정의가 대체 뭐냐”는 푸념소리도 들리고 있다.

사업실적 평가시 신규 입주업체와 기존 입주업체들간 형평성 차이도 지적되고 있다. 웅동지역 신규 입주업체들에게는 환적화물에 로컬화물도 포함하는 반면 기존 북컨 입주업체들은 환적화물에 외국화물 비중만 갖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북컨 입주업체 관계자는 “웅동지역과는 사업실적 규정이 다르다. 웅동의 환적화물에는 수출입화물이 포함되지만 북컨의 환적화물은 해외화물만 갖고 평가해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사업실적자료를 만들기 위한 인력의 업무부담도 과중하다는 지적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3년간 물량통계자료를 취합해서 내야 하는데 인력의 업무부담이 과중하다”면서 “소량화물을 하다 보니 한달 수출입이 6,000건 이상으로 자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인력이 소모되고 자료가 한 차 분량이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신항 입주업체들은 궁극적으로 사업실적평가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업체 대표는 “한 예로 부산신항 컨터미널 업체들의 경우 과거에 BPA에서 실적평가를 했다가 폐지된 이후 오히려 기업들이 사업을 더욱 활성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사업실적 평가에 크게 부담을 갖지 않는 업체들도 있다. 중소규모의 A사는 “사업계획서를 부풀린 곳은 사업실적 패널티를 부담했으나, 우리는 실현이 가능한 사업계획을 제안서에 냈다”면서 “외국자본 유치를 정확히 하고 실행가능한 수치를 넣어 입찰했기에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B사 역시 “2년 전에 실적평가 80점 이상으로 무사히 통과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KMI 이성우 박사는 “실적평가 부분은 결국 입주할 때 약속한 사업활동을 하지 않은 기업들의 탓과 부실하게 평가한 관리주체간의 책임이 공동으로 존재하는 부분”이라며 “신규 입주하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확실한 사업계획서 평가를 통해 기업을 선정하고 입주 후에는 기업실적 평가를 없애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입주업체들은 배후단지의 도로 및 부대시설 확충, 도로보수문제, 환경미화문제 등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부산신항 배후물류단지의 고부가 환적화물을 둘러싼 정부의 정책방향과 실제 현장의 업체들 사이에는 미묘한 괴리감이 흐르고 있다. 해양수산부와 BPA 그리고 배후물류단지 입주업체들 간 고부가 화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엇갈리는 가운데 정부와 업계의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과거 하역위주의 항만에서 고부가가치 항만으로 도약하기 위해 배후물류단지가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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